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45)화 (45/190)

44화 – 영국으로

우리는 비서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길드장님. 길드로 밀렵꾼들에 대한 제보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밀렵꾼들이 나대고 있어?”

한우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밀렵꾼이란, 마수에게서 무기 강화에 필요한 재료만 취하고 던전 공략은 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하급 재료부터 고급 재료까지 섭렵하며 사익을 챙기는 사람들.

흰모래호수 던전에서 호수가오리의 엄니만 뽑아 간 것도 그들일 가능성이 컸다.

비서가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네. ‘재료’는 블랙마켓을 통해 유통되는 것 같습니다.”

정식으로 헌터 협회에서 관리하는 사이트에 등록해서 매매하는 게 아닌 개인을 통해 은밀히 거래되는 블랙마켓.

블랙마켓은 점조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통제가 쉽지 않았다.

성가신 것들이 또 날뛰고 있네. 가볍게 혀를 찬 우리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단속 강화해. 그리고 밀렵꾼을 발견하는 즉시 헌협 헌터관리본부에 신고하게 하고.”

“길드원들에게 지침 내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비서가 추가 서류를 건넸다. 우리가 서류를 훑어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골드스타 얘네는 왜 또 특이한 짓을 하지? ‘페르세포네의 석류’랑 ‘천년나무의 새순’, ‘눈꽃유리의 결정’은 왜 이렇게 사 모으는 거야?”

“그게,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조사한 바로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비서가 난감해하며 우리의 눈치를 봤다.

“이것들 또 사재기해서 가격 올리려는 거 아냐?”

던전에서 비교적 흔하게 채굴되는 마석을 독점해 이익을 뽑아내는 골드스타 길드의 만행은 악명 높았다.

무기 강화에 기본적인 재료가 되는 만큼 수요가 높아 시장 공급이 줄어들면 그만큼 타격이 컸다.

게다가 현대에 이르러선 마석 배터리도 대중화되었다. 마석이 안 쓰이는 곳이 없었다.

자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신입 헌터들이나 등급이 높지 않은 헌터들은 마석 공급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뛰면 구매가 쉽지 않아 생활에도 지장이 갈 정도였다.

골드스타 길드 뒤에 금성 그룹이 버티고 있으니 뭐라고 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헌협에도 로비를 해서 기껏해야 정부 국정 감사 때 말로만 하는 문책을 당하는 정도. 대기업이라는 놈들이 더했다.

“희귀한 재료들이긴 하지만 그다지 쓸모가 없어서 사재기로 가격을 올려도 소용없을 텐데요.”

드롭 확률이 낮아 희귀해도 아직까지 각각의 재료들이 가진 특성이나 효능이 밝혀지지 않아 가격도 그리 높지 않았고 인기 있는 재료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길드도 아닌 골드스타 길드가 아무 이유 없이 저 재료들을 사 모을 리가 없었다.

“우리도 은밀히 사들여.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도천 길드의 수장으로서 줄곧 골드스타 길드를 견제해 온 우리의 감이었다.

***

별이와 마수들이 낮잠을 자는 틈을 타 은새는 자택으로 도착한 편지를 분류하고 있었다.

국제 우편에서부터 국내 우편까지 다양했다.

“으, 귀찮아.”

세계 각국에서 오만 가지 이유를 붙여 은새를 초청하는 게 대다수였다.

속 보이게 별이와 봄의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희귀한 드래곤과 춘티엔더야오칭이니,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이런 건 무시, 무시.”

은새는 읽은 편지들을 한쪽으로 분류했다. 아마 동일한 내용으로 이메일도 와 있을 테니 메일함도 정리해야 할 듯싶었다.

“아, 이건.”

내내 성가시단 기색이던 은새가 처음으로 반색했다. 하늘색 봉투에 낯익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은새는 눈을 반짝이며 레터 나이프로 봉투를 샤샥 뜯어서 편지를 열어 봤다.

검은색 눈동자가 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이건 가야겠다.”

보낸 이의 이름은 스텔라 본. 영국인 헌터로, 앞이 보이지 않지만 별들의 소리를 듣는 이능을 가졌다.

은새가 친하게 알고 지내는 몇 안 되는 해외 헌터들 중 한 명으로 그녀에게는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해외로 나가는 건 오랜만인데. 봄과 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마수들과 함께 데려가야 할까, 벨키오르에게 맡겨야 할까. 은새는 고민에 잠겼다.

***

다행히 은새의 고민은 금방 해결됐다. 별이와 봄이의 신변을 걱정하자 벨키오르가 선뜻 같이 가 주겠다고 나선 것.

그의 허락에 신난 은새가 핸드폰을 들었다.

[유은새: 나 영국에 며칠 다녀올게. 길드 전용기 빌려줘.]

그렇게 단체 메시지 방에 톡을 보낸 은새는 경호 인력을 이끌고 다음 날, 공항에 나타났다.

달려드는 기자들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그녀는 프라이빗 게이트로 들어섰다.

그런 그녀의 뒤를 봄과 별을 안은 벨키오르가 따랐다.

도다리와 하늘이는 미리 도천 길드 전용기에 실어 놓은 상태였다.

몰려 있던 기자들을 벨키오르가 드물게 신경 쓰며 말했다.

“매번 이러는 거 지치지 않나?”

“아…… 사람들이요?”

은새가 뺨을 긁적였다. 쏟아지는 질문과 플래시 세례, 한 걸음 떼기도 어려울 만큼 빽빽이 둘러싼 사람들.

“이젠 익숙해져서요. 물론 곤란할 때도 있지만, 대처 매뉴얼이 다 있죠.”

은새가 씩 웃었다. 전 세계를 다니며 하도 많이 경험해 본 터라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다. 여유로운 미소에 벨키오르가 살짝 찌푸렸던 표정을 풀었다.

세계수 위그드라실을 지키며 한적한 삶을 살아온 벨키오르로서는 낯선 환경이었다.

기실 이 세계 자체가 그랬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서로에게 무심하며 날이 선 인간들뿐이었다.

은새가 아니었다면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은새는 신기했다. 한가롭게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 듯한데 외부 활동도 꺼리지 않았다.

그건 그녀 말대로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앞서가는 은새의 얼굴에서 벨키오르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 뒤 은새가 전용기 앞에 서서 양팔을 활짝 펼쳤다.

“벨키오르 님, 비행기는 처음 타 보시는 거죠?”

벨키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거대한 고체 덩어리가 비행기라는 것도 몰랐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 드래곤 별이 들뜬 음성으로 전음을 전해 왔다.

[뉴나! 이게 비행기라눈 거예요?]

그림책을 통해 비행기의 모양을 알고 있던 별이었다. 실제로 보니 더 커서 놀랐지만.

비행기는 마치 날개를 펼친 거대한 새 같았다.

“그래. 이걸 타고 하늘을 날아서 다른 나라에 갈 거야.”

[나는 지금도 날 슈 있는데!]

삐삐!

아기 드래곤이 파닥파닥 날아올랐다. 봄이 자신도 그렇다는 듯 해맑게 울었다.

“그래. 하지만 그보다 높이높이 날아갈 거야. 구름 위로!”

[우와아.]

사실 별도 마음만 먹으면 구름 위로 날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은새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막상 시도해 본 적은 없었다.

전용기 문이 열리고 마중 나온 승무원이 은새를 자리로 안내했다. 여느 때보다 인식 저하 마법을 강하게 발동한 상태라 승무원은 벨키오르를 발견하지 못했다.

“제 옆에 앉으세요.”

은새가 소곤소곤 얘기했다. 벨키오르가 은새를 따라서 안전벨트를 맸다.

맞은편 자리에 별과 봄을 위한 베이비시트가 마련됐다. 은새가 둘의 안전벨트를 꼼꼼히 매 주며 말했다.

“비행기가 뜰 때 귀가 아플 수도 있어. 그럼 그때는 침을 꼴깍 삼키면 돼.”

[꼴깍? 이러케요?]

별이 침을 삼키는 시늉을 했다. 은새가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봄이는…….”

삐-?

봄은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다. 은새가 난처한 얼굴을 하자 벨키오르가 손을 뻗었다.

“이 마수는 한숨 자는 게 좋겠군.”

금빛 마력이 봄의 이마에 새겨졌다. 눈을 끔벅이던 봄이 이내 몸을 말고 쿨쿨 잠에 빠졌다.

-비행기 이륙합니다.

기장의 인사 멘트가 끝나고 곧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두둥실 떠올랐다.

[우와!]

울렁거리는 느낌에 별이 신기해하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즐거워하던 것도 잠시 귀를 압박하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은새를 바라봤다.

[뉴, 뉴나. 귀 아파요…….]

별이 끙끙거렸다. 침을 삼켜도 변하는 게 없었다.

“잠깐만 참으면 돼. 잠깐만.”

은새가 안절부절못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벨키오르가 별에게 조언했다.

“마법을 사용해라.”

[……! 녜!]

다행히 마법을 사용하고 증상이 없어졌는지 별이 금세 방긋 웃었다. 그때부터 별과 은새, 벨키오르는 평안한 여행길에 올랐다.

그들은 비행기 안에서 식사도 하고, 미리 다운받은 애니메이션 영화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노래도 듣고 잠을 자기도 하면서.

은새는 종종 다른 칸에 실린 도다리와 하늘이의 상태를 살폈다. 한때 해외로 나가는 일이 잦았던 만큼 그들은 의연했다.

별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 슬슬 싫증을 낼 무렵 비행기가 런던 시티 공항에 착륙했다.

“도착했다!”

은새가 전용기에서 내리며 기지개를 켰다.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을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별이 얌전한 편이고, 봄은 잠들었기에 망정이지. 마수들도 별문제 없이 얌전히 있어 줘서 다행이었다.

경호 인력에 둘러싸여 공항을 벗어나자 그녀 앞에 차가 여러 대 섰다.

그중 맨 앞의 차에서 아는 얼굴이 나왔다. 단발머리에 날카로운 눈매, 차가운 인상을 가진 그녀는 스텔라 본의 비서였다.

“어서 오세요, 유은새 헌터.”

“안녕하세요, 린다 씨.”

둘은 영어로 대화했다. 은새와 가볍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눈 린다가 곧바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스텔라 씨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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