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44)화 (44/190)

43화 – 이름이 뭐라고?

“자, 이제 물놀이 규칙을 설명해 줄게!”

은새가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명료한 목소리에 별이와 봄이 쫑긋하며 귀를 기울였다.

“첫째, 서로에게 과하게 물을 뿌리지 말 것.”

“……말 것!”

시키지도 않았는데 별이 은새의 말을 따라 했다. 아기 새 같은 모습에 은새가 웃음을 참느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둘째, 다리가 저리거나 추워지면 바로 말할 것.”

“말할 것!”

삐삐!

“셋째, 신나게 재미나게 놀 것.”

“놀 것!”

삐!

어느새 봄이도 별이를 따라 은새의 말에 호응했다. 당장 물에 뛰어들 듯 다리를 구르는 아이들을 붙잡아 은새가 준비 운동을 시켰다.

“팔 위로 쭉쭉! 하나, 둘. 하나, 둘.”

은새의 구호에 맞춰 둘이 몸을 씰룩씰룩 움직였다. 별은 짤막한 팔을 위아래로 흔들었고, 봄은 앞다리를 쭉 내밀었다 접었다 했다.

“다리 운동!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은새를 따라 하는 게 재미있는지 별이 까르르 웃는 소리를 냈다. 봄도 삐삐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흉내 냈다.

은새의 집을 지키는 헌터들의 표정에 흐뭇한 빛이 어렸다. 특히 경호팀 막내인 서호랑은 귀여워 죽겠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준비 운동을 마치고 은새가 미리 불어 두었던 튜브를 가져왔다.

“자, 튜브는 이렇게 허리에 끼는 거야. 그러면 물 위에 뜰 수 있어.”

“우와아. 신기해여. 마법을 쓰지 않아도 둥둥 떠요?”

“그래. 별이 오리 장난감처럼.”

음? 박도윤의 귀에 이상한 단어가 들린 듯했다. 방금 마법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별이라면 얼마 전 데뷔한 유은새 헌터의 드래곤 마수 아닌가?

박도윤은 자신 말고 들은 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박도윤의 안색이 일변했다. 마법이라……. 뭔가 걸리는데,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뭐, 관용적인 표현으로 마법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니까. 그는 찝찝함을 무시하고 임무에 임했다.

“이제 들어가자!”

오래 기다린 별과 봄을 은새가 번쩍 안아서 풀장에 넣었다.

처음에는 두둥실 떠다니기만 할 뿐, 이게 뭐가 재미있는 건지 어리둥절하던 아이들은 은새가 물을 튀기자 이내 찰박찰박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으엑, 물 머거떠.”

삐-삐!

봄이 본능적으로 수영을 했다. 네 다리를 힘차게 구르며 앞으로 나아가자 풀장 주변으로 작은 꽃들이 소담하게 피어났다.

봄이 느끼는 감정을 반영하는 듯했다.

별이 봄을 따라 하며 개구리 수영을 했다. 하지만 튜브 때문에 잘되지 않았다.

“뉴나? 뉴나?”

별이 자꾸만 은새를 찾았다. 은새가 웃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별아, 이렇게 하면 돼.”

은새는 튜브를 살살 밀어 주었다. 요령을 터득한 별은 풀장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뉴나! 별이 이러케도 할 수 이써요!”

삐!

종횡무진하는 별을 따라 봄이 도 질 수 없다는 듯 몸을 움직였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래. 처음인데 아주 잘하네, 우리 별이랑 봄이.”

활발하게 노는 아이들을 보고 은새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중에 워터 파크에도 데려가 볼까? 큰 유수 풀장에서는 더 재밌게 놀 수 있을 텐데. 생각만 해도 즐거운 상상에 그녀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봄과 별이 신나게 놀고 있는데 근처에서 구경하던 황새와 백합이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은새가 풀장에 눈을 떼지 못하는 그들을 발견했다.

“너희도 물놀이할래?”

까악, 까악!

쉭쉭.

풀장은 그들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활기찬 대답에 은새가 웃으며 손짓을 하자 황새와 백합이가 퐁당 물에 빠졌다.

“물 튀어써! 황새, 너!”

까악!

별과 황새가 파닥파닥 물벼락을 주고받았다. 백합이는 수면 위를 유유히 유영했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던 은새가 시계를 확인했다. 얼추 30분쯤 지나 있었다. 슬슬 아이들 몸이 차가워졌을 때였다.

“이제 쉬는 시간! 잠깐 물 밖에 나와서 햇볕 쬐자!”

은새가 별과 마수들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준비해 뒀던 수건으로 폭 감싸 물기를 탈탈 털어 주었다.

그런 은새의 어깨 위로 수건이 내려앉았다.

“그대도 젖었다.”

“아, 감사해요.”

벨키오르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타나자 은새와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며 평화로이 있던 헌터들이 긴장했다.

세간에서 ‘유은새의 남자’로 불리는 그를 직접 본 그들은 처음에 당혹스러워했다.

마법 이능 헌터라고 들었는데, 어느 수준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애초에 마법 이능 헌터 자체가 적어서 비교 대상이 없는 데다 왠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풍겼다.

게다가 신체적 조건이 보통의 검사나 무투사를 뛰어넘었다.

저게 어떻게 마법사야…….

지금 여기 모인 자들 중 그에게 덤벼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에 더해 S급 헌터 유은새가 그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게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분명 S급, 혹은 그 이상이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아니, 한우리 길드장님은 저런 사람이 있는데 왜 자신들을 세워 놓은 거야?

침을 꿀꺽 삼킨 헌터들은 벨키오르의 행동을 주시했다.

벨키오르가 주변을 훑었다. 인간들의 경계 따위 그에게 신경 쓸 거리가 아니었다. 다만 지켜보는 도중 걸리는 게 있었다.

‘저자는 별에 대해 무언가 눈치챈 듯하군.’

금빛 눈동자가 박도윤에게 잠시 머물렀다.

벨키오르는 암시를 더 강하게 걸었다. 별과 아기 드래곤이 별개의 존재고 별이 특이한 행동을 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못하게.

이는 순전히 은새를 위해서였다. 그녀가 혹여 별의 비밀이 밝혀질까 노심초사하니 염려를 덜어 주려는 목적이었다.

드래곤의 암시를 벗어날 수 있는 인간 헌터는 없었다. 설사 정신 간섭 차단 스킬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자, 몸을 따뜻하게 데웠으면 다시 들어가 놀자!”

맑은 웃음을 짓는 은새와 아이들을 보며 벨키오르의 눈빛이 조금 부드럽게 풀렸다.

***

“흠…….”

“…….”

골드스타 길드의 길드장, 백찬민은 육재희가 데려온 남자를 삐딱하게 응시했다.

독특한 형태의 대검을 등에 메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남자는 백사자라 불리는 자신 앞에서도 덤덤했다.

다짜고짜 자신을 만나러 왔다고 해서 뭔 놈인가 했는데 평범하지 않은 기백에 조금 흥미가 생겼다. 백찬민이 막대 사탕을 까서 물고 질문했다.

“이름이 뭐라고?”

“천창현입니다.”

“그래, 천창현 헌터. 당신이 헌협이 숨겨 놓은 던전을 공략해서 마켓에 마석을 푼 장본인이라고?”

줄곧 침묵하던 천창현이 입을 열었다. 낮고 걸걸한 목소리였다.

“네. 제가 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길드가 본 손해가 상당해. 그런데 무슨 염치로 이곳에 온 거지?”

백찬민이 지긋한 시선으로 천창현을 바라봤다.

날 선 압박감이 천창현의 어깨를 짓눌렀다. 랭크 대전에서는 도천의 남궁솔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 줬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도천과 맞먹는 길드의 수장이자 S급 헌터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창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찬민과 시선을 맞추더니 대뜸 반문했다.

“저를 찾지 않으셨습니까?”

“…….”

“마치 골드스타 내부의 움직임을 아는 것처럼 치고 빠지고, 헌협의 비리를 털어먹고. 제 정체를 궁금해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놈 봐라? 백찬민이 헛웃음을 지었다.

분명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데 어린놈이 자신을 다 아는 것처럼 구니 기분이 나락을 쳤다.

그가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오도독오도독 깨물었다.

“용건은?”

“저를 골드스타 길드에 받아 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도천을 이기고 싶지 않습니까?”

직접적인 물음에 백찬민의 눈썹이 움찔했다. 도천은 백찬민의 역린이었다. 저놈은 지금 그걸 알고도 자신에게 저리 당당히 내뱉는 건가.

형형하게 눈을 빛내는 백찬민에게 천창현이 담담하지만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드리죠.”

“네가 무슨 재주로? 나는 그쪽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 뭘 믿고?”

“상급 포션 제조법. 알려 드리지요.”

“뭐라고?”

상급 포션 제조법? 그런 게 있다고? 처음 듣는 정보에 백찬민의 표정이 굳었다.

한국에서 고등급 힐러의 수는 극히 적었다. 그나마 있는 이들도 외국으로 스카우트되어 빠져나가는 실정이었다.

때문에 일반적인 회복은 포션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포션은 다른 아이템들보다 드롭 확률이 낮았다. 엘릭서 같은 궁극의 회복력을 자랑하는 포션은 특히.

하급 제조 포션은 지금도 유통되지만 상급 포션은 전무했다.

상급 포션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헌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손해 본 만큼, 아니 그 이상을 벌어 드리면 되겠습니까?”

천창현이 심연처럼 어두운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대신 제가 이룬 성과만큼 확실한 보상을 주셔야겠습니다.”

마치 맡겨 놓은 걸 내놓으라는 듯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큭, 하하핫!”

백찬민이 폭소했다.

“나는 너 같은 애들 싫지 않아.”

건방지지만 자신이 가진 것에 큰 자신감을 갖고 있는 놈. 그리고 그걸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녀석.

오랜만에 칼자루를 잡고 제대로 휘두르는 놈을 보았다.

“좋아. 어디 마음껏 날뛰어 봐.”

백찬민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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