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41)화 (41/190)

40화 – 저는 봄이를 지킬 것입니다

헌터의 밤이 열리는 당일. 은새는 초저녁부터 파티가 열리는 호텔 방 하나에 붙잡혀 있었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은새가 난처하게 말했다.

“저……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안 돼요, 유은새 헌터! 모처럼 사람들 앞에 서는 건데 대충할 수 없다구요. 이건 저희 자존심이 걸린 문제예요!”

전담 코디팀 팀장인 여나희가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솜사탕처럼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의 머리를 질끈 높이 묶고 손가락 마디마다 화장할 때 쓰는 브러시를 끼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얼핏 광기가 느껴진 듯했다.

“지금 온 세계가 유은새 헌터를 주목하고 있다고요. 가장 완벽한 상태로 회장에 나가야 합니다!”

“아니, 누가 주목을 한다고…….”

“유은새 헌터! 그렇게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서야 어떻게 S급 헌터라고 할 수 있겠어요? 남궁솔 헌터를 본받으세요. 그분은 코디가 시키지 않아도…….”

열성적인 여나희의 외침에 은새가 결국 손을 들었다.

“알겠어, 알겠어. 다 네 마음대로 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에요.”

은새가 잠정적 은퇴를 선언하고 쉬는 동안 할 일이 없어 서러웠던 여나희였다. 그녀는 오늘 그 한을 풀 생각이었다.

사실 은새도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주최하는 파티지만, 참석하는 면면이 화려한 만큼 주목도가 높았다.

게다가 스카우트 목적이라고 했으니 어느 누가 선택될지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터였다.

참고로 오늘 다른 길드의 간부급에게도 초대장이 갔으나 그들 모두 도의적인 이유로 화환만 보내고 오지 않았다.

다른 소속 길드원 중에서 초대장을 받은 이들은 참석 여부가 자유였다. 대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이었다.

“음, 등이 너무 휑한데.”

“요즘 이 정도 노출은 다들 해요!”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은 은새가 거울 앞에 섰다. 옅은 분홍빛 눈두덩이, 그녀의 동그란 눈매를 강조하는 아이라인, 그리고 복숭앗빛으로 물든 뺨이 평소보다 사랑스러워 보였다.

의상은 등이 허리까지 시원하게 파인 머메이드 드레스였다. 목에 맨 리본 끈이 도드라진 날개뼈 위로 늘어졌다.

은새는 제 모습이 어색한지 자꾸만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음, 안 이상한가?

“자, 시간 됐어요. 얼른 나가세요!”

저대로 두면 은새가 다른 옷으로 갈아입겠다고 할까 봐 여나희가 얼른 그녀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아니, 아직 마음의 준비가…….”

쾅. 은새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던 여나희가 문득 이상했던 은새의 행동을 곱씹었다.

평소 은새는 투정 부리기는 해도 결국 입혀 주는 대로 입는 편이었다. 오늘처럼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생겼나?’

여나희도 은새에게 가깝게 지내는 외국인 남자 헌터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지만 그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게 공식 입장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유은새인걸. 아무리 열렬한 대시를 받아도 끄떡 않는 그녀였다.

여나희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또각, 또각.

호텔 방을 나온 은새는 한 층 아래로 가 문을 두드렸다. 곧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벌컥 열렸다.

[뉴나! ……헙.]

“우리 별이, 역시 일등으로 누나를 맞아 주는구나.”

크고 또렷해진 검은색 눈이 사르르 휘어졌다. 순간 넋을 놓았던 별이 킁카킁카 냄새를 맡으며 은새 주위를 맴돌았다.

평소와 다른 은새의 변신이 신기한 눈치였다.

[뉴나, 평소랑 다른 냄새가 나요.]

“싫어? 불쾌해? 지울까?”

[아니요! 뉴나, 꽃처럼 예뻐요. 구슬처럼 반짝여요.]

“정말? 고마워.”

향에 예민한 마수들 때문에 향수는 뿌리지 않았으나 화장품 냄새가 나는 모양이었다. 방 안에는 별이 말고도 봄이, 백합이, 황새가 있었다.

덩치가 큰 다른 마수들은 길드원들이 데려올 것이었다.

그리고.

“벨키오르 님, 모시러 왔어요.”

은새가 이쪽을 보고 있는 벨키오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낯선 장소에서 보는 그는 색달랐다.

분명히 평소와 같은 차림이건만 왜 느낌이 다를까. 묘한 기분에 은새가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은새의 뺨이 붉어진 건 비단 블러셔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데리러 왔다니, 이 세계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에스코트하나?”

“아니요.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보통은 남성이 에스코트하지만 오늘 벨키오르는 ‘손님’인 입장이었다. 그녀 때문에 나온 만큼 그가 불편하지 않게 이끌고 싶었다.

그런 은새를 가만히 쳐다보던 벨키오르가 역으로 손을 내밀었다. 크고 반듯한 손이었다.

“손을.”

“…….”

눈앞에 놓인, 생각지도 못한 손에 은새가 움찔하며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몬스터 테이머로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온갖 행사에 참여했다. 물론, 에스코트를 받은 경험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특별한 느낌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은새가 조심스럽게 그의 손에 손바닥을 올렸다.

가볍게 잡아 오는 손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맞닿은 손이 순간 찌릿한 거 같았는데, 착각인가?

어쩐지 달아오르는 얼굴에 은새가 황급히 말을 돌렸다.

“저, 저에게 하실 말 없으세요? 옷이 어떻다든가, 머리가…….”

“아름답군.”

“……정말요?”

“불필요한 거짓말은 하지 않아.”

단정치 못하다든가, 노출이 과하다든가 그런 말을 예상했던 은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는 눈이 사실을 얘기하듯 덤덤했다. 은새가 활짝 웃었다.

“감사해요.”

기쁜 듯 웃으며 은새가 가깝게 붙었다. 벨키오르는 순간적으로 훅 끼쳐 온 향긋한 향기에 무표정이던 얼굴이 살짝 풀렸다.

평소 그녀에게 풍기던 자연스러운 향과 달리 조금 인위적인 향이 섞여 있었지만 왠지 그게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보다, 조금 더 가까이 붙어도 괜찮을 정도로.

은새는 소형 마수들을 잘 챙겨서 벨키오르와 함께 파티가 열리는 홀 입구로 갔다. 이미 도다리와 하늘이, 민들레, 쿠키, 쪼쪼가 길드원들의 통솔을 받으며 와 있었다.

야외로 연결된 홀이라 마수들이 움직이는 데에 불편함이 없을 것이었다.

은새가 나지막하게 봄을 불렀다.

“봄아.”

삐삐!

문 너머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의 기척을 느낀 듯 봄이 밝게 대답했다. 다행히 낯을 가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안심한 은새가 웃으며 봄이에게 말했다.

“이 안에 들어가면 네 마음대로 해도 돼.”

삐!

봄은 완전히 신이 났다. 정말? 정말 내 마음대로 해도 돼?

아기 드래곤 모습의 별이 못마땅한 듯 콧잔등을 씰룩였으나 얌전히 은새 품에 안겨 있을 뿐이었다.

[뉴나, 봄이가 심하게 말썽부리면 내가 못 하게 말릴게여.]

“그래, 별이한테 부탁할게.”

은새가 기특하다는 듯 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실, 별이나 봄이가 굳이 오지 않아도 되는 자리인 만큼 최대한 파티를 즐기길 바랐다.

“그럼 들어가자.”

은새와 벨키오르가 앞서 걷고, 그 뒤를 마수들이 따랐다. 장엄한 행렬이었다.

“유은새 헌터다!”

“와, 진짜 마수들 다 끌고 왔네. 쪼쪼랑 황새, 백합이는 평소에 잘 못 보는데.”

“오늘 오길 진짜 잘했다. 나 유은새 헌터 가까이에서 처음 봐.”

그들의 시선은 오직 은새와 마수들에게만 향해 있었다.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는 벨키오르에게는 생각보다 그리 시선이 몰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은새 옆에 누가 있는 건 알겠는데 그게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은새는 그게 신기했다.

‘인식 저하 마법의 효과가 굉장하구나.’

벨키오르의 마법인 만큼 효과가 탁월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은새는 안심하며 조금은 긴장을 풀었다.

어느 정도 마수들의 입장이 끝날 때쯤,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봄을 발견한 것이다.

“그, 그런데 저 마수는 뭐야? 분홍색 마수!”

“어……? 그러게? 근데 저 외관……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어?”

“그거! 그거! 중국의 상징! 춘티엔더야오칭!”

“뭐? 정말 그거야? 비슷한 다른 마수 아니야?”

“이 바보야, 춘티엔더야오칭이랑 비슷한 마수가 있을 리 없잖아!”

순식간에 회장이 뒤집혔다. 춘티엔더야오칭은 사슴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다리와 꼬리 부분의 털이 구불구불한 깃털처럼 발달되어 있는 게 특징이었다.

아직은 작은 새끼더라도 봄이의 분홍색 털과 생김새는 어디로 보든 중국의 상징인 춘티엔더야오칭이었다.

사람들의 격렬한 반응에도 은새는 꼿꼿하게 걸어 들어갔다. 벨키오르가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는 은새를 힐끔 바라보았다.

삐삐!

봄은 사람들이 자신을 연호하자 방방 날뛰었다. 공중에서 빙그르르 돈 봄의 주변으로 꽃이 피어났다. 파티장 가득 분홍색 꽃비가 내렸다.

그 광경을 사람들이 넋을 놓고 쳐다봤다. 저건 춘티엔더야오칭이 가진 특성 중 하나였다. 빼도 박도 못하게 춘티엔더야오칭이라는 게 밝혀졌다.

멍하니 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로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유은새 헌터! 새 마수입니까? 중국에서 양도받은 알을 부화시킨 겁니까?”

“춘티엔더야오칭이 맞습니까? 한 마디만 해 주세요, 유은새 헌터!”

우리가 오늘 파티를 위해 일부러 배치해 놓은 기자들이었다. 은새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차분하게 대답했다.

“봄이는 춘티엔더야오칭이 맞습니다.”

“봄이? 새 마수의 이름입니까?”

“중국에서 양도한 그 알이 맞습니까? 중국에서 이 사실을 알면 가만있겠습니까?”

한 기자의 말에 눈살을 찌푸린 은새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봄이는 제 마수입니다. 설령 어느 누가 와도 저는 봄이를 지킬 것입니다.”

그건 중국을 긴장시키는 단호한 선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