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남자의 직감이야?
헌터 디스 패치의 최영민 기자는 도천 길드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맨 처음 유은새 헌터의 결혼설을 터트린 기자였다.
최영민은 유은새의 상대로 지목된 남자에 대한 정보가 통제되는 것에 의혹을 느끼고 직접 알아보기 위해 나섰다.
그런 그의 눈에 도천 길드 소속 헌터들이 눈에 띄었다. 그는 기자증을 숨기고 행인인 척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말씀 좀 물을게요.”
“뭡니까?”
“여기 버스 정류장은 어디 있나요?”
“아~ 저어기 아래로 내려가야 해요.”
사이비인가 해서 경계했던 길드원들이 의심을 풀었다. 다시 그들끼리 대화를 나누려는데 최영민이 넉살 좋게 끼어들었다.
“그런데 도천 길드에 소속된 분들이시죠? 대단하시네~ 여기 S급 힐러 최미리내 부길드장과 한국 랭킹 1위 한우리 길드장 있는 곳 아니에요?”
“예, 그렇죠.”
“다들 대단하신 분들이네. 그러고 보니 티비에서 한 번쯤 본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 저희가 한가락 합니다. 그래도 더 열심히 해야죠.”
도천의 길드원들은 소속 길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최영민이 슬슬 발동을 걸었다.
“몬스터 테이머 유은새 헌터도 자주 보나요?”
“아~ 알겠다. 유은새 헌터 팬이시구나?”
“최근 들어 자주 오시죠. 도다리 타고 강원도에서 여기까지 왔다 갔다. 아쉽게도 오늘은 출근을 안 하셨네요.”
최영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런데…… 기사에서 나온 그 남성분이 길드로 온 적은 없나요?”
“……왜 그런 걸 질문하세요?”
“야, 야. 가자.”
“직접 보신 적은 없고요?”
최영민의 목적을 알아챈 길드원들은 그 이상 대꾸하지 않고 멀어졌다. 최영민은 집요하게 그들을 따라가며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쯧. 뭐 하나 건진 게 없네.”
이후로도 최영민은 도천의 길드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접근해서 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하, 씨. 도천에서는 대체 입단속을 어떻게 시켰길래 이 모양이야.’
도무지 걸려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최영민의 시야에 A급 헌터 박도윤이 들어왔다. 그는 팀원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최영민이 머리를 흔들었다.
“박도윤이는 안 돼. 길드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 높아. 조금 어수룩하고 초짜 티가 나는 놈이…….”
최영민이 눈을 번뜩였다.
“그래, 저렇게 생긴 놈!”
박도윤의 옆에 ‘신출내기’라고 써 붙인 듯한 어린놈이 있었다. 세상의 쓴맛이라고는 요만큼도 겪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최영민은 그 어린놈이 혼자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서야 어린놈은 퇴근길에 올랐다.
곧장 따라붙은 최영민이 서글서글한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도천 길드원이시죠?”
“네? 그런데요?”
서호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최영민이 예상한 것처럼 갓 스무 살, 사회 초년생이었다.
“헌터 디스 패치의 최영민 기자입니다. 유은새 헌터와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할 말 없습니다!”
서호랑이 기겁했다. 그는 A급 박도윤 팀의 막내였다.
설령 아무 뜻 없이 한 말도 길드 내에서 영향력 있는 팀에 있다는 이유로 오피셜로 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기자는 없는 말도 지어내는 직종이 아닌가.
사냥감을 눈앞에 둔 뱀처럼 최영민이 눈을 번뜩였다.
“그러지 마시고, 국민에게도 알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만 대답해 주세요. 유은새 헌터의 상대는 실존합니까?”
“뭐, 뭐…… 실존하냐고요?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아차.”
서호랑이 제 입을 때렸다. 요, 입. 요, 입. 어느 입이 소리를 내었는가. 어느 입이 소리를 내었어!
그는 은새의 집을 경호하다가 은새와 벨키오르, 아기를 실제로 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말이 헛나왔다.
“저는 할 말 없습니다! 가십 쫓아다닐 시간에 진실을 알리는 데 힘쓰세요!”
자신은 촌철살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촌스러운, 사회 초년생답게 요령 없는 말을 남긴 채 서호랑이 달려갔다.
“됐다. 걸렸다.”
최영민이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
[헌터디스패치] 유은새 헌터의 남자, 그는 실존한다!
“이게 뭔 기사야…….”
우리는 오늘 아침 특종으로 뜬 기사를 보고 기함했다. 보고서를 들고 들어오던 미리내가 그 꼴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거, 하도 벨키오르 님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까 일각에서 허상의 인물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거든.”
“허상의 인물? 재미있네.”
“다들 상상력이 참 뛰어나다니까. 하여튼 그래서 맨 처음 결혼설을 제기한 기자가 저격당한 모양이야. 도천 길드의 노이즈 마케팅에 가담했다고.”
“저격? 그래서?”
“오늘 그 기사 쓴 사람 헌디패 최영민 기자지? 은새 결혼설 터트린 기자도 그 사람이야. 어지간히도 억울했던 모양이지. 들어 보니 길드 건물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캐고 다닌 것 같더라?”
“‘관계자가 말하길, 그는 두말할 것 없이 실존 인물이니 지나친 억측을 자제해 달라고…….’ 여기서 말한 관계자가 누구야?”
“박도윤 팀장이 실토했어. 자기네 팀원이 실수한 것 같다고.”
“박도윤 팀에서 그럴 만한 사람이라면, 아~ 서호랑? 걔라면 그럴 수 있지.”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화가 나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니, 서호랑이라면 지레 찔려서 의도치 않게 말을 흘렸을 모습이 상상이 갔다. 그만큼 순진한 이였다.
미리내가 보고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나는 말 안 했다. 호랑이한테 내가 말했다고 얘기하지 마.”
“그러면 걔 분명 서운해 죽겠다고 징징댈걸.”
“맞아.”
미리내의 말을 듣고 가볍게 웃던 우리가 조금 망설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은새한테 물어봤어? 헌터의 밤에 그…… 온대?”
“벨키오르 님? 아직 답장은 안 왔는데.”
미리내가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은새에게 온 연락은 어젯밤 이후로 없었다.
미리내가 머리를 기울였다.
“과연 올까? 봄이를 소개하는 중요한 자리이긴 해도, 굳이 그분까지 올 필요는 없잖아.”
“은새 때문에라도 올 것 같은데.”
“남자의 직감이야?”
오래 은새 곁을 머물렀던 한우리이니, 뭔가를 느낀 게 아닐까. 누구보다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는 미리내가 샐쭉 웃었다. 얄미운 표정에 우리가 울컥했다.
“웃지 마!”
“알았으니 결재나 해 주시죠. 길드장님이 일거리를 만드는 바람에 서류가 밀렸습니다.”
“기다려! 금방 할 거야.”
괜히 성질을 내는 우리를 보며 미리내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리가 씩씩거리며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동안, 은새는 벨키오르와 마주하고 있었다.
파앗.
벨키오르의 손에서 금빛의 마력이 쏟아져 세계수에 빨려 들어갔다. 멍하니 그 광경을 구경하던 은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벨키오르 님, 내일모레 밤에 뭐 하세요?”
“특별한 일 없으면 집에 있겠지.”
“그럼 저랑 같이 파티 가실래요?”
“파티?”
갑작스러운 물음에 벨키오르가 나른한 눈매를 깜박였다. 금빛 눈동자가 그녀에게 도르르 굴러왔다.
짙은 시선을 받은 은새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빛을 마주하는 게 왠지 긴장이 됐다.
“꽃을 닮은 마수를 소개하는 자리라는 그곳 말인가?”
“네, 봄이요. 그날 저랑 별이, 제 마수들 전부 집을 비우는데 혼자 계시잖아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가시면 어떤가 해서요.”
“내가?”
은새의 말을 듣고 벨키오르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내가?’라는 말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먼저 드래곤인 자신이 인간들의 파티에 참석하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벨키오르에게는 이 세계의 생명체 중 오직 은새만 특별했다. 다른 인간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인간들을 위한 파티에 가서 무얼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혼자 있는 게 무어 어쨌다고 그런 이유로 동행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혼자 있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
그의 무심한 표정에서 그런 속뜻을 읽은 은새가 시무룩해졌다.
“다 같이 가는데, 벨키오르 님도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서…….”
“…….”
“역시 힘드시겠죠? 그래도 아쉬운데…….”
아쉬워? 여전히 이해 안 가는 말이었다. 그러나 은새가 눈썹을 늘어뜨린 꼴이 보기 언짢을 따름이었다.
결국 고민하던 벨키오르가 입을 열었다.
“가지.”
“정말요?! 와, 신난다.”
“딱히 그런 자리를 즐기는 건 아니지만, 인간들이 모인 곳에서 별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별을 해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테니 딱히 걱정되지는 않지만. 별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기보다는, 별이 칠 사고를 염려하는 것이었다.
“지금 별이라고 부르셨어요?”
은새가 눈을 초롱초롱 떴다. 처음이었다. 아기에게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그가 불러 준 것은.
놀란 듯한 은새의 반응에 벨키오르가 마력을 주입하던 손을 거두고 말했다.
“그게 왜?”
“아니에요! 참, 그러면 벨키오르 님 의상도 준비해야 하는데. 일단 백화점에 가서…….”
“그럴 필요 없다.”
옷이야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도 충분했다. 인간들에게 딱히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었고, 본래 그가 입는 옷 자체로 화려하고 우아하다 못해 신성함이 흘러넘칠 정도였으니 충분했다.
그러나 은새는 아니었는지 하늘이 무너진 얼굴을 했다. 다시 축 처지는 그녀의 눈썹을 보고 벨키오르는 서둘러 변명하듯 덧붙였다.
“어차피 인식 저하 마법으로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이는 없을 테니까.”
“아…….”
은새는 아쉬웠다. 현대의 옷을 입은 그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편이 나을 듯했다.
“그래도 좋아요! 참석하신다니 기뻐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금방 회복한 은새가 방긋방긋 미소 지었다. 어쨌든 벨키오르와 함께 갈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기뻤다.
신이 난 은새는 핸드폰 단체 메시지 방에 벨키오르의 참석 소식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