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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38)화 (38/190)

37화 – 봄의 개화(開花)

삐삐.

은새는 한 팔로 별을 안은 채 봄의 턱을 긁어 줬다. 나긋한 목소리로 봄을 타일렀다.

“봄아, 배부르게 먹었는데 친구 걸 욕심내면 안 되지.”

봄은 골골거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은새가 뭐라고 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별이 씩씩거렸다.

“뉴나가 말하는데……!”

“아직 너무 어려서 그래, 별아. 별이가 이해해 주자.”

삐!

봄은 해맑아도 너무 해맑았다.

자신이 우유를 탐냈던 걸 그새 잊어버린 봄은 포르르 날아서 거실 구석에 만들어 놓은 볼풀장에 풍덩 들어갔다.

봄은 우제류와 비슷한 외관이지만 벚꽃이 날리는 것처럼 공중을 날 수 있었다.

봄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자 볼이 사방으로 튀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파스텔컬러의 볼을 별이 마법으로 띄웠다.

별이 몽땅한 허리에 손을 얹었다.

“너! 이러케 어지르면 어떡해?”

삐삐?

은새는 참지 못하고 그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가 웃자 별과 봄이 돌아보았다.

별이 쪼르르 달려와 은새의 얼굴을 기웃기웃 들여다보았다.

“뉴나, 왜 웃어요? 기분 조아요?”

“별이가 너무 기특하고, 봄이가 귀여워서. 별이도 같이 들어가서 놀까?”

“……네에!”

은새는 별이를 슝 들어 올려 옆구리에 꼈다. 그리고 볼풀장에 같이 들어갔다.

처음에 은새를 신경 쓰던 별은 이내 봄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노는 재미에 푹 빠졌다. 금방 거실이 어질러졌다.

벨키오르가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말했지만, 봄은 지나치게 해맑았다.

“봄이 어디 있니?”

아침부터 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밥도 먹이고 해야 해서, 은새는 걱정하며 집 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삐삐!

“거기 있었어?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니까.”

뒤뜰에서 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은새가 얼른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잎사귀가 파릇파릇 자라난 세계수 미니미 가지에 봄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은새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봄아. 배 안 고파? 평소에는 두 시간마다 밥 달라고 하면서.”

삐-

봄이는 은새가 장난치는 줄 알고 방싯거리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손이 닿을 듯 닿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됐을까.

“아이, 참.”

봄의 풍성한 꼬리가 살랑거렸다. 지금 재밌어 죽겠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한 은새는 주머니에서 닭가슴살 육포를 꺼냈다. 그리고 유인하듯 살살 흔들었다.

“이거 맛있겠다. 봄이가 좋아하는 간식이네? 냠냠. 내가 다 먹어 버릴까?”

삐!

봄이 쏜살같이 내려왔다. 은새가 말랑포근한 아기 마수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잡았다, 요 녀석!”

은새는 그대로 봄을 안아 들고 집으로 들어와 든든히 우유를 먹였다. 어느새 요리 담당이 된 벨키오르가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으며 은새에게 말했다.

“배고프면 어련히 알아서 나타날 테니 내버려 둬라.”

“아직 아기잖아요. 어려운 일도 아니고 고작 밥 챙겨 먹이는 건데요.”

“뉴나, 별이도 아가예요…….”

“그래. 우리 별이도 한참 아가지.”

은새가 별의 부슬부슬한 머리에 코를 묻고 비볐다. 별이 뺨이 발갛게 상기된 채 좋아했다.

오전 시간을 종이접기 강좌를 보면서 보낸 은새는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여전히 그녀의 바느질 실력은 형편없었다. 정성 들여 만든 애착 인형이 패잔병 몰골을 벗어나지 못했다.

떨어진 단추나 겨우 다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종이접기로 순회했다. 별의 소근육 발달에도 좋다고 하니.

“봄이가 또 어디 갔지?”

어쩐지 주변이 조용했다. 별은 침대에서 낮잠을 자는 걸 확인했고 다른 마수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직 봄이만 자신의 시야 안에 두어야 안심이 되었다.

“봄이야, 어디 있어?”

“…….”

“봄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은새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집 주변을 뛰어다녔다.

“봄아!”

도천 길드 소속 A급 헌터 박도윤의 눈을 피해 잠복해 있다가 벨키오르의 사진을 찍어 간 은신 능력자가 떠올랐다.

혹시 그자가 또? 은새가 기감을 넓혔다. 하지만 근방에서 잡히는 게 없었다.

봄이의 기척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은새가 다급하게 아공간에서 호루라기를 꺼냈다.

삐-익!

커다란 호루라기 소리가 산천을 울렸다. 마수들을 부르는 신호였다.

가장 먼저 도다리가 날아왔다. 오색 찬연한 깃털로 뒤덮인 조룡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은새를 걱정했다.

다음으로 하늘이와 민들레, 쿠키, 쪼쪼 등이 도착했다. 은새가 안절부절못하며 그들에게 질문했다.

“얘들아, 봄이가 없어. 봄이 못 봤어?”

마수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꾸꾸? 크르릉. 매애. 푸릉푸릉.

전부 부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은새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애들은 눈 떼면 사라진다더니 정말이었다.

별이는 이런 사고는 친 적 없어서 더욱 당혹스러웠다. 별이가 워낙 은새 껌딱지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봄이 너무 어려서 테이밍이 제대로 안 된 탓도 있는 듯했다.

“일단 봄이를 찾자. 다들 주변을 돌아봐 줘!”

마수들이 재빠르게 흩어졌다. 은새도 봄이 갈 만한 곳을 가 보려는데 어느새 벨키오르가 그녀 뒤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벨키오르 님! 봄이가 사라져서요. 혹시 보셨어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은새는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시가 급했다.

“그 마물은 꽃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

“꽃이요?”

벨키오르가 나지막하게 조언했다. 은새의 머릿속에서 정원에서 우물우물 꽃을 뜯어 먹던 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아! 감사해요!”

은새가 전속력으로 봄이 있을 만한 장소로 달려갔다. 떠오르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벨키오르는 아까 은새가 했던 것처럼 기감을 퍼트렸다. 산 어딘가에서 작지만 찬란한 생명력이 박동하는 게 느껴졌다.

“별일은 없겠군.”

한편, 봄은 팔랑팔랑 날갯짓하는 나비를 따라왔다가 길을 잃은 상태였다.

삐삐?

은새를 찾았으나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작은 머리가 갸웃갸웃했다.

아직 따로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어 ‘혼자’라는 개념이 없는 봄은 놀라서 울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거기다 해맑은 성격도 한몫했다.

봄은 풀밭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그러다가 향기로운 냄새에 이끌려 벌떡 일어났다.

10분가량을 날아가니 봄이 좋아하는 달콤한 것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삐삐!

봄은 기쁜 마음에 겅중겅중 뛰어다니다가 꽃밭을 뒹굴었다. 슬슬 허기지던 차였는데, 잘됐다는 생각뿐이었다.

붕붕 날아다니던 벌들이 갑자기 난입한 봄을 경계했다. 하지만 봄의 특성, ‘자연과의 친화’가 벌들의 화를 누그러뜨렸다.

은새가 걱정하는 줄도 모르고, 봄은 한가로이 꽃을 뜯어 먹었다. 자그마한 배가 불룩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놀다 보니 봄은 슬슬 은새가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사방이 나무로 가로막혀 있었다. 게다가 항상 옆에 있던 별이나 다른 마수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봄은 덜컥 겁이 났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알 수 없었다.

삐…….

봄의 귀가 축 늘어졌다. 집 밖을 벗어난 세상은 봄이에게 너무 크고 넓었다.

바스락 풀을 밟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은새인가? 봄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나타난 건 흉악하게 생긴 멧돼지였다. 영역을 침범당한 멧돼지가 봄을 발견하고 성난 울음을 우짖었다.

꾸엑!

봄은 깜짝 놀랐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상대는 처음 만났다. 지금까지는 줄곧 포근한 울타리 안에 있었으니.

삐삐!

봄이 낯선 상대에게 친근한 의사 표시를 했다. 하지만 멧돼지는 씩씩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발 구름을 할 뿐이었다.

멧돼지가 돌격했다. 봄이 파드득 날아올랐다.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공격당한 봄은 서러운 소리를 냈다. 봄은 어떻게든 멧돼지에게 의사 전달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멧돼지는 바짝 약이 오를 뿐이었다. 주변에서 깔짝거리며 연약한 소리를 내는 봄은 멧돼지에게 침입자, 그 이상이 되지 못했다.

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자리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반격도 하지 못하고 봄은 근처를 맴돌았다.

계속 힘을 쓰다 보니 금세 지친 봄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쿵!

멧돼지가 나무를 들이받았다.

쿵!

또 들이받았다. 후드득 나뭇잎이 떨어지며 봄의 몸이 기우뚱했다. 봄은 벌벌 떨었다. 난생처음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삐이!

다급한 봄의 목소리가 강원도 산천에 울려 퍼졌다. 기감을 확장한 은새의 귀에도 들어갔다.

“봄아!”

삐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자 봄은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봄이 얼른 은새에게 날아갔다.

멧돼지의 분노가 온전히 은새를 향했다. 은새가 사태를 파악하고 몸을 피하기 전, 봄이 꼬리를 부채처럼 활짝 펼쳤다.

삐이-!

‘하지 마!’라고 말하는 듯했다. 봄의 주위로 분홍빛의 물결이 퍼져 나갔다.

발밑에서 자라난 꽃 넝쿨이 멧돼지를 꽁꽁 묶었다. 꾸엑!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멧돼지가 꽉 눌린 비명을 토해 냈다.

의외의 광경에 은새가 격앙된 어조로 물었다.

“봄아, 지금 능력을 썼어?”

삐삐?

봄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아마 보호자인 은새가 위험한 것 같자 무의식적으로 힘을 쓴 듯했다.

춘티엔더야오칭의 능력은 식목(植木)과 관련이 있었다. 어떤 꽃이든 나무든 피워 내고 지게 할 수 있었다. 그게 약재든 독성 식물이든.

그래서 중국에서는 화타의 신수로도 불렸다.

마찬가지로 봄의 구조 신호를 들은 은새의 마수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봄을 둘러싸고 걱정했다고 얼굴을 삭삭 핥았다.

“음. 일단 멧돼지는 풀어 주자.”

은새가 봄을 살살 달래 멧돼지를 놓아주게 했다. 풀려난 멧돼지를 도다리가 멀리 쫓아냈다.

꾸엑! 억울한 외마디 소리만 남긴 채 멧돼지가 사라졌다. 미안한 마음에 허허, 웃은 은새가 많이 놀란 듯한 봄의 턱을 쓸어 주었다.

“봄아, 첫 외출은 어땠어?”

삐삐…….

봄은 많이 지쳐 있었다. 봄이 꾸물꾸물 은새의 품에서 몸을 말았다.

“좋은 기억만 남으면 좋을 텐데. 이제 괜찮아, 괜찮아.”

별에게 하듯, 은새가 봄을 둥개둥개 했다. 무사히 찾았으니 됐다.

“이제 집에 돌아가자.”

반나절 동안 일어난 소동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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