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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37)화 (37/190)

36화 – 누구도 반박 못 하도록 해 줄게

우리와 친구들은 기가 막혔다.

은새에게 걸려온 영상 통화를 받은 우리는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얹기보다 다급히 미리내를 호출했다.

미리내가 길드장실에 불려 가니 뭔 일인가 해서 솔이 따라왔고, 솔이 움직이니 유하와 인찬도 덩달아 길드장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우리의 핸드폰 액정 너머로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아기 마수를 보게 되었다. 솔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액정을 가리켰다.

“……내가 보는 게 맞냐?”

“어. 아마 맞을 거다.”

“저게 춘티엔더야오칭이라고?!”

“조용히 말해, 이 바보야!”

“읍, 읍!”

유하가 솔의 입을 틀어막았다. 방음이 완벽한 공간이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었다. 특히 국가 분쟁의 소지가 있는 건에 대해서는.

우리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유은새가 또…….”

-우리 봄이 너무 귀엽지?

“이름이 봄이야? 그래, 잘 어울리기는 한데…… 너는 왜 그렇게 천하태평이냐?”

-어? 심각해야 할 이유가 있어? 봄이 건강하게 태어났고, 별이랑도 사이 좋아. 둘이 같이 찍은 사진 있는데 볼래?

은새가 핸드폰을 조작했다. 그러더니 친구들의 핸드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띠링띠링띠링 알람이 울렸다.

분홍색 꼬리를 살랑거리는 봄과 아기 드래곤이 뒤엉켜 노는 사진은 보기만 해도 흐뭇함을 자아냈다.

미리내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봄의 탑 던전에서 나온 알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혹시나 하긴 했는데 진짜 춘티엔더야오칭이었네.”

“야, 이거 어쩌냐. 중국 배 아프겠다.”

유하가 낄낄거렸다. 솔도 편승해서 같이 배를 잡고 뒹굴었다.

중국의 상징 격이라고는 하지만, 춘티엔더야오칭을 소유한 중국인 헌터는 없었다. 그런데 한국인 몬스터 테이머 은새가 그 마수를 테이밍한 것이다.

이건 국제적 이슈였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 아마 팬들 사이에서 ‘춘티엔더야오칭’이 중국의 상징이냐, 유은새의 상징이냐로 분쟁이 날 가능성이 컸다.

일단 복잡한 건 제쳐 두고 우리가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어떻게 부화시킨 거야? 중국에서도 못 한 것을.”

-어어, 벨키오르 님이 조언해 주셨어. 알이 부화하는 데 적합한 환경이 있는데 거길 벗어나서 깊이 잠들었다고. 그래서 생명력이 충만한 세계수 근처에 놓아두면 태어날 거라고.

“그런 환경이라면 던전? 던전인가. 그럼 중국에서 알을 던전에 가져다 놨으면 부화시켰을 수도 있겠네.”

-그리고 보석 하나를 부숴서 흡수시켰는데, 의미는 잘 모르겠어.

“흠. 아무튼 축하해. 업적 하나 세웠네.”

-고마워!

“축하해, 유은새~”

“은새야, 나중에 봄이랑 별이 데리고 길드 놀러 와!”

-응!

은새가 헤실거리며 좋아했다. 축하 행렬이 잦아들었을 때 미리내가 손끝을 모아 첨탑처럼 세웠다.

“자 이제…… 봄이를 어떻게 할지 얘기를 좀 나눠 보자.”

화면 너머 은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친구들도 머리를 맞댔다.

우리가 말했다.

“일단 이 사실을 숨겨야 하지 않을까?”

“왜?”

“안 그래도 최근 ‘드래곤’ 때문에 은새한테 이목이 너무 쏠렸어. 그런데 춘티엔더야오칭이라니.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표적이 될 거야.”

“설마 또 납치, 협박 그런 거 당하려나?”

“으, 사라진 유은새 찾아다니느라 전 세계를 헤집고 돌아다니던 때의 악몽이 떠오른다.”

“나 그때 발 지문 다 닳아 없어지는 줄 알았잖아.”

“오버는.”

지금은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당시에는 심각했다. 은새가 자발적으로 위치 추적기를 신체 내에 삽입했을 정도였다.

그러고도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던 사이에 연락이 끊기고 보름 뒤 지구 반대편에서 발견된 사례도 있었다.

특히 중동 국가의 만행이 극심했다. 그곳과는 지금도 사이가 안 좋았다.

우리가 우려스럽게 말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은새 넌 일단 길드 와서 위치 추적기 달자.”

-어쩔 수 없네.

은새는 순순히 수긍했다. 그녀가 아무리 S급이라고 해도 작정하고 동급의 헌터가 떼로 덤벼들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에 S급이 은새만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잠시 생각에 잠겼던 미리내가 말했다.

“아마 중국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은새를 이민시키거나, 봄이를 빼앗거나, 혹은 사살할 거야.”

-…….

“그게 깔끔할 테니.”

중국은 결코 춘티엔더야오칭이라는 상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들을 감싼 공기가 날카로워졌다. 실제로 중국이 할 법한 대응이었고, 중국은 그걸 실현시킬 만한 힘이 있었다.

“나는 오히려 봄이가 은새의 마수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해야 한다고 봐.”

“왜? 은새가 위험해질 텐데도? 게다가 한국 정부도 싫어할걸.”

정부는 외교 관계가 시끄러워지는 걸 싫어했다. 지금도 별이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압박이 들어온다고 죽는소리를 했다.

미리내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설명했다.

“첫째, ‘드래곤’에 대한 관심을 딴 데로 돌려야 해.”

별은 은새의 마수로 소개되면서 지나친 관심을 받았다. 게다가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마수.

길드로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 중 하나는 ‘어느 던전에서 잡았냐’는 것이었다.

한국이냐, 타국이냐. 타국이라면 드래곤의 소유권을 제대로 따져 봐야지 않겠느냐.

한국이라면 도천 길드에서 드래곤을 독점하려는 게 아니냐.

이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닌 별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확실히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니 봄의 화제로 별에 대한 관심을 양분화시키자는 게 미리내의 생각이었다.

“둘째, 여론을 이용해야 해.”

아무리 춘티엔더야오칭이 중국의 상징이라고 하더라도, 도천 길드와 은새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알을 양도한다는 공증된 문서. 그러니 그것을 이용해야 했다. 확고하게 봄을 은새의 마수라 못 박아 놔야 했다.

설령 중국이 수작을 부리더라도 국제적인 비난을 피하지 못하게.

“셋째, 우리에겐 그 존재가 있잖아. 벨키오르 님.”

그랬다. 미리내는 모든 계획에 벨키오르의 존재를 상정해 두고 있었다.

벨키오르는 이미 은새를 구해 준 전적이 있었다. 그런 그가 은새가 위험에 빠지는 걸 두고만 볼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여자의 직감인데, 벨키오르는 은새에게 어떠한 종류의 관심이 있는 듯했다. 애정이든, 호기심이든.

정작 은새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어차피 시간문제라는 게 미리내의 생각이었다.

“벌써 거기까지 생각했어? 역시 부길드장이네. 도천의 두뇌.”

“길짱은 자리만 차지하고 이런 계책 하나도 못 내놓고. 우우, 퇴임하라.”

“퇴임하라, 퇴임하라!”

“남궁솔이랑 김유하, 조용히 안 해?”

우리가 버럭 역정을 냈다. 친구들이 키득거렸다.

-괜찮은 생각 같아.

잠자코 듣고 있던 은새가 긍정을 표했다. 우리는 못마땅했다.

“하지만 은새야,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로 가야 할까?”

“우리가 언제는 쉬운 길로만 갔나?”

솔의 대꾸에 도천 길드의 S급들이 자신만만한 얼굴을 했다.

-푸핫, 맞아. 그리고 우리는 늘 승리했지. 게다가 저주도 사라졌으니 난 두려울 게 없다고.

“유은새 멋있다~ 최고다~”

“꺅, 유은새가 저런 말을 하는 날도 오고. 격세지감이다, 진짜.”

-무슨 격세지감씩이야.

무거웠던 분위기가 밝아졌다. 우리가 이마를 짚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급발진하지 말고 일단 기다리고 있어, 은새야. 네 안전과 연관돼 있으니 미리내랑 더 상의해 보고 가장 화려한 무대를 준비해 줄게.”

-무대?

일단 결정 난 사안에 있어서는 체념이 빠른 우리가 장난을 꾸미는 악동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누구도 봄이가 네 마수라는 것에 반박하지 못하도록 해 줄게.”

근묵자흑. 도긴개긴. 가재는 게 편.

한우리도 어쨌든 도천 크루의 일원이었다.

***

“……그래서 그렇게 됐어요, 벨키오르 님.”

은새는 낮에 우리와 했던 통화 내용을 벨키오르에게 전달했다.

봄이가 세상에 알려지면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점과 중국에서 어떤 모략을 펼칠지 모른다는 점, 쓸데없는 국제 분쟁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벨키오르가 혀를 찼다.

“새끼 마물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벨키오르는 마물 한 마리 때문에 인간들이 사활을 거는 게 별나게 보였다.

“하지만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걸 예전에 배웠는걸요.”

은새가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 은새가 세계 최초의 몬스터 테이머로 각성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헌터의 입지는 좋지 못했다. 정부의 간섭도 심했고, 규제도 빡빡했다.

은새는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어서 최대한 참고, 완만히 해결을 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개나 소나 은새를 휘두르려고 들었다. 여기서 개란 한국 정부이고, 소는 은새를 만만히 본 헌터 놈들이었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왔을 때 은새는 참았던 분노를 터트렸다. 그때 피바람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은새가 한국 랭킹 3위에 오른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게다가 그때 일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헌터로 자리매김했다.

은새가 도천 그룹의 자제인 우리와 손을 잡고 헌터 규제를 대부분 철폐하거나 완화해 버렸으니까.

친구들이 은새더러 세상에 내놓으면 등골을 빨아 먹힐 호구라고 하면서도 결코 그녀를 순진하게 보지 않는 이유였다.

순한 것과 순진한 건 궤가 달랐으니까.

은새는 한번 마음먹으면 상대가 살려 달라고 빌 때까지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이 역사는 다른 나라에서 수작질을 부릴 때도 이어졌다.

삐!

“봄이야, 왜?”

봄의 다급한 울음소리에 은새가 후다닥 달려갔다. 거실로 가자 별과 봄이 대치 상태에 있었다.

은새의 마수들이 그 둘의 주변을 맴돌았다. 별의 앙증맞은 눈썹이 샐쭉 올라간 걸 본 은새가 질문했다.

“별아, 왜 화났어?”

“뉴나, 얘가 내 우유를 뺏어 머거써요!”

삐삐?

봄이 머리를 기우뚱했다. 별이 화가 났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몸짓이었다.

별은 속이 터졌다. 새 친구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여느 새끼 마수가 그렇듯 봄은 그저 본능적으로 행동할 뿐이었다.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답답해하는 별을 보며 은새가 웃음을 참았다.

“그랬구나. 봄이가 별이 우유를 뺏어 먹어서 화가 났어.”

“네에.”

은새가 별을 둥개둥개 해 줬다. 별의 기분이 사르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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