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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35)화 (35/190)

34화 – K국의 매운맛 고라니

다음 날, 은새가 모처럼 쉬는 날이었다. 하지만 은새는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다.

마당에 커다란 솥을 들고 나와 장작을 피우고 펄펄 끓이기 시작했다. 연속된 전투로 지쳤을 마수들에게 보양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최상급 육질의 돼지고기가 각종 약재와 푹 고아졌다. 어느새 냄새를 맡은 마수들이 근처에 빙 둘러앉아 입맛을 다셨다.

“뉴나~”

“별아, 일어났어?”

귀여운 공룡 잠옷을 입은 별이 현관으로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은새가 얼른 뛰어가 별을 안아 들었다.

은새는 말랑콩떡 같은 별이 너무 귀여워 쪽쪽 뽀뽀했다. 비몽사몽 졸린 눈을 비비던 별이 헤헤 웃었다.

별을 뒤따라 나오던 벨키오르가 마당에 벌여 놓은 걸 보고 미간을 좁혔다.

“괜한 수고를 하는군.”

“아, 이따 별이랑 낮잠 잘 거라서 괜찮아요.”

푹 쉬기나 하지, 사서 고생한다는 벨키오르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은새가 밝게 미소 지었다.

은새는 별을 쪼쪼의 등에 태워 놓고 마저 고기를 삶았다. 그 모습을 보며 벨키오르는 다음에 이럴 것 같으면 그냥 자신이 마물을 해치우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쪼쪼, 푹신푹신이 사라져떠.”

아기일 적 쪼쪼의 청백색 털에 푹 파묻혀 있는 게 익숙했던 별은, 여름이라 털이 바짝 밀린 쪼쪼를 낯설어했다.

매애애.

쪼쪼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주인이 해 준 건데 보기 흉한가? 이제 자신이 싫은가?

“아냐, 쪼쪼 조아.”

드래곤이라 마수의 말을 알아들은 별이 쪼쪼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우울했던 쪼쪼는 단숨에 기분이 좋아졌다.

겅중겅중 제자리에서 높이 뛴 쪼쪼가 별의 머리를 날름날름 핥았다.

“하지 마, 축축해져.”

그렇게 말하면서도 별은 쪼쪼를 밀어내지 않고 방실방실거렸다. 그 모습이 힐링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은새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찰칵찰칵찰칵찰칵.

“별이랑 쪼쪼, 너무 귀여워……!”

“은새. 우나?”

“안 울어욥…….”

물기가 아른거리는 눈을 부릅뜬 채 주먹을 입에 가져다 댄 그녀를 벨키오르가 착잡하게 바라봤다. 저렇게 좋을까.

은새가 그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끓어 넘친 솥을 벨키오르가 제어했다.

은새의 마수들은 별이 1차 각성을 하면서 강대한 힘을 품었는데도 전과 같이 별을 대했다.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여전히 주인-은새-에게 속한 존재로 봤다.

달라진 점이라면 보호해야 할 개체에서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등급이 올랐다는 것일까. 벨키오르는 그 점이 신기했다.

아기도 은새의 마수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듯했다. 드래곤이 다른 종에게 호의를 갖기란 외눈박이가 두눈박이 세계에서 적응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이 어릴 때 쌓은 유대 때문인 걸 모르는 벨키오르는 역시 제 아들은 좀 특이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얘들아, 밥 먹자!”

크와앙.

꾸꾸!

푸르릉.

주변에 널려 있던 마수들이 열띤 호응을 했다.

은새는 다 삶아진 고기를 쑹덩쑹덩 잘라 마수들 전용 그릇에 담았다.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마수들에게도 차별 없이 분배했다.

와드득, 와드드득.

뼈째 씹히는 소리가 살벌했다. 하지만 은새는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대도 끼니를 챙겨라.”

“내 정신 좀 봐. 벨키오르 님, 배고프지 않으세요? 별이랑 같이 안에 들어가서…… 별아?”

마수들이 먹는 걸 보며 별이 어느새 입가에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별이 홀린 듯 손가락으로 솥을 가리켰다.

“뉴나, 나도 저거 먹을래요.”

“응? 별이는 다른 거 해 주려고 했는데. 저거 먹을래?”

“네! 가튼 거 먹구 시퍼요.”

“너는 안 된다.”

“네?!”

“왜요!”

예상외의 단호한 말에 은새는 깜짝 놀랐고 별은 이를 드러냈다. 벨키오르가 차분히 설명했다.

“네 식사는 네가 직접 구해 오는 게 원칙이다.”

“아, 마따.”

이해한 별을 보고 은새가 안절부절못했다.

전에 듣긴 했다. 위그드라실이 있는 세계에서, 별은 끼니때마다 나가서 사냥해야 했다고.

은새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 근데 여기서요? 아무리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지만 원래 세계보다 사냥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함부로 동물 잡는 거 불법이에요.”

“내가 인간들의 규율을 지켜야 하나?”

“지켜 주셨으면… 좋겠는데…….”

“…….”

법 문제도 곤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은새는 별의 영양소 섭취가 제일 걱정됐다. 한창 자랄 나이인데, 육식만 하면 안 좋을 것 같았다.

은새가 계속 눈치를 보자 별이 벨키오르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빠, 뉴나 말대루 해요.]

[…….]

[아빠 때문에 뉴나 슬퍼지면 아빠 미워할 거예요.]

솔직히 아기가 미워한다고 협박하는 건 별로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은새가 슬퍼하는 건 왠지 탐탁지 않았다.

벨키오르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생존을 위해서 사냥 연습을 하는 건 필수적이다.”

“네…… 알죠. 아는데요.”

“그러면 사냥은 하고 놓아주도록 하지.”

“네?”

은새가 고개를 쳐들었다.

“식사는 그대가 재료를 준비하면 내가 요리하겠다. 됐나?”

“가, 감사해요. 별아, 잘됐다!”

“웅, 뉴나! 나 운동 마니 하고 올께요!”

별과 은새는 서로를 얼싸안고 좋아했다. 벨키오르는 그게 또 불만이었다. 허락해 준 건 자신인데 왜 기쁨을 저 둘이서만 나눈단 말인가.

벨키오르는 별의 덜미를 낚아챘다. 대롱대롱 들린 아기가 손을 흔들었다.

“다녀오개씀다!”

“잘 다녀와, 별아.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벨키오르 님!”

은새는 그들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앗, 별이 잠옷 입고 갔네. 다음부터는 외출복으로 갈아입혀 줘야지.”

한편, 사냥에 나선 별은 주섬주섬 은새가 입혀 줬던 옷을 벗었다. 벌거숭이가 된 별을 보고 벨키오르가 의아해했다.

“왜 벗는 거지?”

“옷 더러워지면 안 대니까요.”

“왜?”

“뉴나가 사 줬으니까요.”

벨키오르는 그깟 천 쪼가리를 소중히 여기는 별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드래곤은 저마다 집착하는 게 있었다.

어떤 이는 동물의 화석을 모으는 게 취미였다. 또 다른 이는 꽃잎에 고인 새벽이슬만 마셨다.

참고로 전자는 풍요의 드래곤 몬텔라였고, 후자는 신탁의 드래곤 아케이아였다.

개나리색 마력이 피어올랐다. 아기 드래곤의 모습이 된 별이 바닥에 코를 킁킁거리며 동물의 흔적을 쫓았다.

[크르릉…….]

파충류처럼 동공이 샐쭉 가늘어졌다. 여리지만 확실한 포식자의 울음.

게다가 날카로운 이빨이 삐죽 튀어나왔다. 은새와 있을 때는 거의 볼 수 없는 호전적인 모습이었다.

아기 드래곤이 고라니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풀숲에 잠시 몸을 숨긴 별은 고라니를 어떻게 사냥할지 머릿속으로 그렸다.

잡아서 먹는 게 아닌 놓아줘야 한다. 그러려면 최대한 상처 없이 잡아야 했다. 난도가 쬐끔 올라가는 것이다.

식사거리를 사냥할 때의 규칙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신체 능력만으로 잡는 것이다. 그래야 실전 경험도 쌓고, 육체를 다루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아얏!]

아기 드래곤이 고라니에게 살금살금 접근했다가 뒷발에 걷어차이고 말았다. 작은 몸체가 풀밭 위를 떼굴떼굴 굴렀다.

애애애!

겁 많은 고라니가 죽음의 함성(Lv.10)을 질렀다. K국 고라니의 매운맛을 제대로 본 아기 드래곤은 잠깐 혼이 쏙 빠졌다.

고라니가 달리기 시작했다. 놓치지 않기 위해 아기 드래곤이 있는 힘껏 날갯짓했다.

[안 대! 뉴나가 기다리고 있다구. 너를 잡아야 뉴나가 맛있는 걸 해 줄 수 있어!]

분명 요리는 벨키오르가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별의 머릿속에는 그 사실이 왜곡되었다.

이따 실제로 벨키오르가 요리를 해도, 별에게는 은새가 한 것으로 기억될 터였다. 그편이 더 행복하니까.

애애애! 애애액!

연약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고라니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는 걸 인지한 동물의 눈빛에 광기가 차 있었다.

거기서 별은 조금, 소름이 돋았다.

퍽!

[아야!]

고라니가 날아차기를 시도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악을 지르는 듯한 시끄러운 울음소리로 고막을 파괴했다.

[아휴, 별로 강한 것 같지는 않은데.]

별이 귀를 틀어막았다. 고라니는 참, 희한한 동물이었다. 사냥하기 쉬울 거라는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다.

무엇보다 저 울음소리.

애애액! 아악!

[…….]

신경을 자극하는 불길한 소음이었다. 별은 은새의 세계에는 별의별 동물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찍었으니 끝장을 봐야 했다. 별은 고라니의 다리를 주로 공격했다.

처음에 뒷발 공격을 당했기 때문은 아니고, 몸집에 비해 다리가 길고 가늘어서 약점이 될 것 같았다.

아기 드래곤의 집요한 추격 끝에 고라니는 결국 항복했다. 결과가 정해진 승부였다.

체력이 다한 고라니는 주저앉아 상처가 난 다리를 혀로 열심히 핥았다. 이럴 땐 또 순해 보이니, 아이러니한 생명체였다.

벨키오르는 고라니를 치료해 주고, 지켜본 바를 피드백했다.

“처음 본 마수나 동물을 사냥할 때는 우선 약점을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고 방심하면 안 된다.”

“녜에…….”

약해 보이는 겉모습에 무심코 다가갔다가 걷어차인 게 별은 부끄러웠다. 게다가 날아차기까지.

어릴 때 누구나 하는 실수였기에 벨키오르는 그 이상 나무라지 않았다.

“다음에는 조금 더 영리하게 대처하도록. 함정을 이용하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좋겠군.”

“네!”

벨키오르가 해의 높이를 가늠했다.

“수고했다. 이만 돌아가지.”

별은 다시 주섬주섬 공룡 잠옷을 입었다. 발을 넣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것을, 벨키오르가 뛰어난 민첩성으로 붙잡아 주었다.

“아빠, 이거 더러워져떠요…….”

종아리 부근에 흙이 묻어 있었다. 소중한 건데, 누나가 나 입으라고 준 건데…….

몰려오는 서러움에 별이 입을 삐쭉거렸다.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아빠가 해 쥬세요.”

벨키오르는 순순히 그 요청을 들어주었다. 금색 마력이 별의 몸을 휘감았고 이내 잠옷이 빤 것처럼 뽀송뽀송해졌다.

별이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벨키오르에게 안겨서 별은 은새의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 밖까지 나와 서성이던 은새가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녀가 양팔을 번쩍 들었다.

“별아! 벨키오르 님!”

“뉴나! 나 악, 악 우는 거 잡았떠요!”

“고라니? 고라니 재빨라서 잡기 어려웠을 텐데. 장하네, 우리 별이!”

“헤헤.”

은새는 별을 듬뿍 칭찬해 주었다. 별은 두둥실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은새가 방긋 웃으며 벨키오르를 돌아보았다. 벨키오르의 시선은 그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얼른 식사해요. 재료 준비 다 해 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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