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헌터들이 숨죽인 가운데 저격수가 이능을 최대로 담은 총알을 장전했다. 던전 부산물로 특수 제작된 라이플.
총구가 향한 대상은 도롱도롱 잠에 빠진 던전 보스였다.
저격수, 강아람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단 한 발. 전투가 시작되기 전 단 한 번의 시도로 던전 보스에게 최대한의 데미지를 내야 한다.
총부리에서 불꽃이 터졌다. 대포라도 쏘아지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갸가가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사이콥시스가 날뛰었다. 좋았어, 강아람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대로 머리를 날려 버렸으면 좋았겠지만 단단한 머리뼈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래도 사이콥시스가 이성을 잃을 만큼의 충격을 주었으니 됐다.
힐러들의 디버프가 때맞춰 들어갔다. 피를 흘리는 사이콥시스를 은새의 마수들이 덮쳤다. 특히 성체 모습의 도다리는 덩치가 거의 비슷해서 선두로 나섰다.
캬오오옹!
푸릉!
그들의 공격을 지켜보던 은새가 소리쳤다.
“임유성 씨!”
임유성의 폭류가 일대를 휩쓸었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회오리는 사이콥시스를 집어삼키는 듯했으나 안타깝게 놓치고 말았다.
“괜찮아요! 원딜 분들 몸통 위주로 저격해 주세요! 모두 적정 거리 유지하고, 절대 날개를 빤히 들여다보지 마세요!”
은새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원거리 딜러들이 이를 악물고 공격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던전 보스에게 유효타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단잠을 방해받은 사이콥시스는 성질이 나 몸을 뒤틀었다.
갸가각!
날카로운 발톱에 쿠키가 옆구리를 찔렸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쿠키는 뿔로 사이콥시스를 들이받았다.
“하늘아, 포효!”
크와아앙!
검은뿔표범이 내지른 살기가 사이콥시스를 압도했다. 사이콥시스가 일순 휘청거렸다.
“이준일 씨, ‘분쇄’ 사용해 주세요!”
은새의 부름만 기다리고 있던 이준일이 무기에 불의 이능을 두른 채로 마수들이 뒤엉킨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의 고유 능력이 발동했다.
그는 빠른 속도로 던전 보스에게 접근해 날갯죽지를 베었다. 치명타였다.
“윽!”
공격에 성공했다는 기쁨 때문인지 이준일은 하마터면 날개의 무늬를 빤히 들여다볼 뻔했다. 허공에서 멈칫한 그를 민들레가 물어다 멀리 던졌다.
한동안 접전이 이어졌다. 습격자들이 쉽게 물러날 기색이 없자 화가 난 사이콥시스가 긴 울음을 토해 냈다.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화려한 눈 무늬의 피막이 드러났다.
“다들 고개 돌려요!”
하지만 사람이 눈이 달렸는데 보이는 걸 안 볼 수는 없는 법. 만반의 준비를 갖췄는데도 AA급 던전 보스의 ‘현혹’ 스킬은 만만치 않았다.
“아…….”
고작 한 명이었다. 타이밍을 놓친 힐러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그걸 본 옆에 있던 다른 힐러가 즉시 상태 이상 해제를 하려고 했으나 현혹이 ‘전이’되었다. 기존에는 없던 능력 상승이었다.
“유은새 헌터, 힐러들이!”
다급하게 외친 헌터 또한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 효과가 옮기는 모양이었다.
헌터들 사이에 정신 착란 증세가 역병처럼 퍼졌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몇몇 헌터는 즉시 자리를 이탈했다.
일단 은새도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은새의 지시 없이도 도다리가 사이콥시스의 어깻죽지를 물고 늘어졌다. 이준일 헌터가 벤 그 자리였다.
갸가가각!
현혹의 효과가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헌터들은 여전히 정신 착란 증세에 빠져 적아(敵我)를 구분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제정신인 힐러가 없어.’
아직 목숨이 위험할 만큼 크게 다친 사람은 없지만 더 놔둔다면 분명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어떡해야…….
“별아!”
[웅, 누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 등에 매달려 있던 별이 대답했다. 은새가 다급하게 부탁했다.
“혹시 저 사람들 정신 번쩍 나게 해 줄 수 있어?”
[……해 보께요!]
난해한 요청이었다. 별은 아직 정신계 마법을 사용할 만큼 마력을 다루는 것에 능숙하지 못했다.
이론은 알지만 아까처럼 완급 조절을 못 해 분명 사달이 날 터였다.
‘정신이 번쩍 나게, 정신이 번쩍 나게…….’
그때 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아, 누나가 읽어 줬던 동화책!’
눈의 여왕. 차가운 얼음 심장을 지닌 주인공이 진실한 마음을 가진 친구 덕에 상냥함을 되찾는 내용이었다.
‘눈! 아직 직접 보지 못했지만……! 엄청 차갑고 희고 푹신푹신하다고 했어. 아마 인간들도 눈이 확 뜨일 거야!’
별이 마법을 사용하자 하늘이 우르릉 소리를 냈다. 심상치 않은 먹색의 구름이 몰려왔다.
은새가 당황했다.
“벼, 별아. 뭐 했어?”
[눈이 올 거예요! 차가운 걸 맞으면 갠차나질 거예요!]
은새가 아차 했다. 조금 더 설명해 줬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미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뒤였다. 밀림에 때아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눈이 아니었다. 유례없는 폭설.
별이 그림책을 통해 익힌 ‘눈’의 이미지는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드는 것이었으니.
은새의 입에서 입김이 새어 나왔다. 주변의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은새가 아공간을 열어 두툼한 겉옷을 꺼냈다.
그리고 별을 둘둘 말았다.
[뉴, 뉴나?]
“감기에 걸릴지 모르니까. 별아, 내 마수들이랑 저기 숨어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어?”
[네!]
개나리색 마력이 춤을 췄다. 갑작스러운 기상 이변에 사이콥시스가 당황했다.
던전 보스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게 눈에 보였다. 은새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아, 이런 방법이.”
사이콥시스는 밀림에 산다. 그러니 극지방에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물론 사이콥시스만 몰아치는 눈보라에 죽을 둥 살 둥 하는 건 아니었다. 하나둘 정신을 차린 헌터들 역시 비명을 지르며 살려 달라고 외쳤다.
“얘들아, 막타!”
은새의 마수들이 전부 달려들었다. 사이콥시스는 갈가리 찢겨 그새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쓰러졌다.
던전 클리어였다.
“유은새 헌터! 이게, 이게 대체!”
“일단 나가죠!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은새는 별이 눈 폭풍을 불러왔다는 걸 숨겼다. 알려져 봐야 좋을 것도 없고, 이미 던전 보스의 능력 상승이라는 이변이 있었으니.
헌터들이 다급하게 출구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쿠구구궁.
땅이 흔들렸다. 은새가 품에 안고 있는 별을 쳐다봤다.
“별아, 너야?”
[아니요!]
한가롭게 생전 처음 보는 눈을 구경하고 있던 별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이건.
은새는 이런 진동을 경험해 본 적 있었다. 흰모래호수 던전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은새는 우리에게 보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비의 무덤 던전 총 공략 시간 19시간 36분. 은새가 계획했던 것보다 압도적으로 단축한 결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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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ㅇㅇㅅ 복귀하더니 사고침
새 마수 봄? 별이?
능력이 마법이래. 희귀종 아니냐?
이젠 마법까지 재패함. 유은새가 국력이다.
댓글(199개)
⤷별이 대박ㄱㅇㅇ
⤷어디서 나타난 마수냐 진짜 뜬금없네
⤷제목 어그로ㅡㅡ
⤷근데 왜 마법 이능 쓰는 헌터는 수가 극히 적은 거냐?
⤷⤷ 아 아재요 스킬 습득 문제로 원래 적어요 자세한 건 (링크)
⤷근데 별이 드래곤이라는 거 진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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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드래곤이란 무엇이냐!(전우치 톤)
흐싸 흐싸 흐싸 흐싸 드래곤이란 땅을 뒤엎고
의쌰 의쌰 의쌰 의쌰 드래곤이란 강풍을 불게 하며
우쨔 우쨔 우쨔 우쨔 드래곤이란 던전 이변으로 추위에 떠는 헌터들을 구제해 주지!
댓글(1201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 우리 드래곤 보유국이다!
⤷⤷이야! 우리 유은새 보유국이다!
⤷⤷⤷이야! 우리 하늘이민들레쿠키도다리...etc 보유국이다!
⤷그런데 드래곤 테이밍 최초 아님?
⤷⤷몬스터 테이머 자체가 최초임
⤷⤷⤷유은새는 뭐만 하면 최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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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진짜 세계 멸망하는 거 아니야?
이제라도 교회 다녀야 하나.
던전 리셋 현상부터 던전 보스 능력 상승, 던전 기후 변화까지.
던전 처음 터졌을 때처럼 불안함
댓글(35개)
⤷나도ㅠㅠ
⤷설마 이보다 더 상황이 악화되려고
⤷⤷마법의 단어 나왔다. ‘설마’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아 사이비 안 사요
⤷어 근데 던전 리셋 현상은 차츰 잦아드는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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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유은새. 기어코 아기를 온 세계에 자랑하는구만.”
솔이 쯧쯧 혀를 찼다. 리셋된 던전을 수습하고 모인 이들 틈에서 은새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별이 사진 잘 나왔지?”
“그렇게 좋아?”
“응. 새끼 드래곤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냐고 온갖 곳에서 연락이 오는 건 귀찮지만.”
“안 그래도 정부에서 대놓고 물어보더라.”
우리가 피로한 낯을 했다. 은새가 눈을 깜빡였다.
“뭐라고 대답했어?”
“대답 안 했지. 중국 알이랑은 상관없다고 딱 잘라서 말했고. 그나저나 그거 성과 좀 있어?”
“아니…… 괜히 중국에서 넘긴 게 아니더라. 이능은 흡수하는데 반응을 안 해.”
“이러다 춘티엔더야오칭이라도 나오면 난리 나겠다.”
“어우, 상상만 해도 무섭다.”
유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양도권을 넘겼다고 해도 중국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걸어온 싸움을 피하진 않을 테지만.
“그래서 은새야. 진동이 또 있었다고?”
미리내가 사뭇 진지한 투로 말했다. 은새가 순순히 긍정했다.
“응. 내가 생각하기에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