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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32)화 (32/190)

31화 – 나비의 무덤

은새는 던전에 입장하기에 앞서 헌터들을 모아 놓고 브리핑을 했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우리가 오더를 내렸지만 이곳에서는 S급인 은새가 이들을 이끌어야 했다.

“지금 들어갈 던전은 ‘나비의 무덤’이에요. 지난 레이드 시간은 24시간 8분. 지형은 밀림이고 던전 보스는 사이콥시스예요. 등장하는 마수들의 약점에 대해서는 다들 찾아봤겠죠?”

은새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헌터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재공략이니만큼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주력할 거예요. 선두는 저와 마수들이 서고 그 뒤를 김정열 길드장님과 이기민 부길드장님이 바짝 따릅니다. 이번 레이드에서 힐러와 원거리 딜러, 탱커는 후방으로 빠집니다. 필요한 아이템의 수는 충분히 확보됐겠죠?”

“네!”

“좋아요. 이 안에 들어가면 믿을 사람은 옆에 있는 동료뿐입니다. 그럼 힐러분들 버프 부탁해요.”

은새의 오더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공격수 위주의 속도전.

경험 많은 은새가 동행하는 만큼 AA급 던전이라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헌터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입장합니다.”

광활한 빛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감았던 눈을 떴을 때 그들은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 있었다.

가장 먼저 초목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름진 흙과 썩은 초목 위로 빽빽이 자라난 초록색 덤불들.

이끼와 기생 식물이 나뭇가지마다 머리카락처럼 늘어져 있어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헌터들이 긴장하는 가운데 성체로 몸을 부풀린 은새의 마수들이 숲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길게 포효했다.

크아아앙!

야생동물들이 황급히 달아났다. 하지만 반대로 호전적인 성향의 마수들을 불러오는 결과를 일으켰다.

지형적인 문제로 도다리의 등에 타지 않고 봉을 손에 든 은새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기척을 감지했다.

“9시 방향, 옵니다.”

시익!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독가시구렁이였다. 110m나 되는 몸길이, 등에 돋은 수십 개의 뾰족뾰족한 가시.

사냥감을 노리고 덤벼드는 마수를 민들레와 하늘이가 견제했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민들레의 그림자가 독가시구렁이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들이 머리를 상대하는 동안 헌터들은 마수의 몸체를 공격했다. 원거리 딜러의 활과 총알이 비늘을 파고들었고 오러를 두른 도검과 창, 도끼 등이 착실하게 데미지를 냈다.

덩치가 큰 만큼 독가시구렁이의 반항이 거셌다. 헌터 몇 명이 꼬리에 맞아 날아갔다.

그러다 가시에 잘못 찔려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알맞게 힐이 들어가 헌터들을 치유했다.

“쿠키랑 도다리! 후방으로!”

은새가 오더를 내리기 무섭게 다른 마수들이 등장했다. 큰갈퀴사마귀와 네눈박이이구아나였다.

거대 마수들에게 둘러싸인 헌터들이 겁을 먹었다. 일각수 쿠키와 조룡 도다리가 매섭게 대항했지만 위축된 기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은새는 냉정한 눈으로 헌터들의 전력을 살피며 베일 카라스의 봉을 휘둘렀다. 그 모습이 친구들과 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아기 드래곤, 별은 생생한 레이드 현장을 목격하고 심장이 뛰었다. 사냥하고 싶다. 드래곤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조아! 나두 뉴나 도와줄 거야.’

별의 손에서 개나리색 마력이 피어났다. 별은 큰갈퀴사마귀의 움직임을 주시하다가 마법을 발동했다.

마수가 서 있던 땅이 푹 꺼지면서 흙더미가 폭발했다. 진흙더미를 맞은 헌터들이 으악, 비명을 질렀다.

[어, 어. 이게 아닌가?]

“아기야? 아기가 한 거야?”

[뉴나, 나 실수해떠…….]

시무룩한 별에게 은새가 손짓했다.

“아니야, 아직 힘 조절에 미숙해서 그래. 이리 와, 누나랑 같이 해 볼까?”

[웅!]

별이 은새에게 쪼르르 날아갔다. 은새가 전황을 살펴보고 지시를 내렸다.

“아기야, 저 마수의 눈을 잠깐 멀게 할 수 있어?”

은새가 가리킨 건 네눈박이이구아나였다. 마수의 혀가 쭉 길어졌다.

으악! 헌터 한 명이 붙잡혀 끌려가려는 찰나 일각수 쿠키가 푸르릉 콧김을 뿜으며 달려들었다.

마수의 네 개의 눈이 제각기 움직였다. 마수는 넓은 시야로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저를 향한 공격을 모두 피했다.

[해 보께.]

별이 마력을 모았다. 마수의 눈만 멀게 하는 방법.

‘아, 그게 있찌!’

별은 아공간에서 은새에게 주려고 했던 꽃송이를 꺼냈다. 통통한 빨간 꽃잎이 탐스러웠다.

‘뉴나 주려고 가져왔지만…….’

별은 꽃가루를 탈탈 털어 냈다. 그리고 마법을 사용해 바람을 일으켰다.

“갑자기 바람이?”

조금 강하다 싶을 정도의 바람에 헌터들이 고개를 들었다. 꽃가루가 네눈박이이구아나의 눈앞을 덮쳤다.

가르르륵!

마수는 격렬히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꽃가루가 닿은 눈에 확 간지럼이 일었다.

별이 가져온 꽃에는 만지면 염증을 일으키는 성분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은새에게도 보여 주기만 할 뿐 만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잘했어, 별아!”

궁수들이 쏜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고 힐러들이 건 디버프 스킬이 마수에게 발동되었다.

“쿠키, 마무리!”

순간 쿠키의 뿔에서 빛이 났다. 쿠키는 그대로 마수를 들이받아 날려 버렸다.

움찔거리던 마수의 숨이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도다리가 큰갈퀴사마귀의 머리를 뜯었다.

쿵! 거체가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독가시구렁이뿐이었다.

헌터들의 스킬과 전력을 모두 파악한 은새가 세세하게 지령을 내렸다.

“김정열 씨, 오러를 최대한 응축해 방출하고 이기민 씨, 20초 뒤 연속기 쓰세요! 배연경 씨, ‘불굴의 기사’ 스킬 발동하시고 임유성 씨, 이기민 씨 공격에 맞춰 ‘폭류’ 사용하세요! 나머지 분들 물러나요!”

은새가 별에게 말했다.

“별아, 아까 했던 거 다시 해 줄 수 있어? 땅 푹 꺼지는 거. 저 마수의 배가 보여야 해!”

[해 보께요!]

별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본능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드래곤이지만 은새는 지금 ‘어떻게 힘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고 있었다.

점차 내부의 힘이 안정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왠지 벨키오르가 이곳에 보내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쿠쾅쾅!

흙이 튀어 오르며 땅이 뒤집히고 독가시구렁이가 하얀 배를 드러냈다. 마수의 거대한 덩치 때문에 별이 할 수 있을지 걱정했던 은새의 낯빛이 환해졌다.

“지금이에요!”

이기민의 연속기와 임유성의 폭류가 들어갔다. 끼에에엑! 배가 갈린 마수는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숨이 끊어졌다.

헌터들이 환호했다.

“모두 잘하셨어요. 이동하기 전에 정비하세요.”

“대단해요, 유은새 헌터! 이렇게 쉽게 전투가 끝날 줄 몰랐는데. 초입부터 대형 마수를 세 마리나 잡다니!”

“이 기세대로라면 정말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방금 뭐였죠? 땅이 뒤집어진 거요. 정말 엄청난 스킬이네요!”

“그거 유은새 헌터의 새 마수가 한 거 아니에요? 분명 저쪽에서…….”

헌터들의 시선이 별에게 향했다. 그들이 몰려들자 별이 깜짝 놀라서 은새에게 안겨 들었다.

은새가 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아, 정말 잘했어. 처음이었는데 훌륭하게 해냈네.”

[나 잘했어요?]

별은 고양감에 차올랐다. 누나한테 칭찬받았다.

은새의 마수들이 몰려와 별의 얼굴을 할짝거렸다. 별은 더, 더 잘하고 싶었다.

“이동할게요.”

던전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동안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쌍침살상벌들이 붕붕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헌터들과 대치했다.

“원딜 분들, 타겟팅 실수하지 마세요! 탱커! 우측이 비었어요. 이준일 씨, 불 이능을 최대한 넓게 펼쳐 견제해 주세요!”

은새가 숨을 훅 들이마셨다. 위쪽으로 공격해 오던 마수가 베일 카라스의 봉에 맞아 배가 터졌다.

찐득찐득한 진액이 튀어도 은새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궁수와 사격수들의 다중 타겟팅 확률이 좋지 않았다. 유하의 실력에 익숙한 은새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그런 걸 이들에게 기대해서도 강요해서도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리더였기 때문에. 아군의 전력에 맞게 지시를 내리는 게 은새의 역할이었다.

“민들레야, 그림자로 저것들을 묶어 줘!”

캬웅!

솟구친 검은 줄기가 쌍침살상벌들을 묶었다. 그러자 공격 성공률이 확 올라갔다.

격전 끝에 마수들이 다 바닥에 널브러졌다. 하늘이가 마수의 시체 사이를 돌아다니며 킁킁거렸다.

죽은 척하고 있다가 반격을 노리는 마수들이 종종 있었다. 김정열이 호쾌하게 웃으며 은새에게 다가왔다.

“아깝네요. 쌍침살상벌들의 독침은 하급 포션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데. 하하하!”

은새가 고개를 끄덕였다. 힐러는 다른 직군에 비해 수가 적고 그나마도 스카우트되어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가 빈번했다.

모든 파티가 힐러를 데리고 다닐 수 없는 만큼 이 세계에서 포션은 중요했다. 포션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슬슬 중심지예요.”

썩은 과일이 풍기는 향기가 짙고 무거웠다. 그들이 가는 길목에 고인 검은 물웅덩이에 거머리 떼가 우글거렸다.

던전 보스 사이콥시스.

일명 버터플라이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이 마수는 나비의 날개 같은 화려한 눈 무늬의 날개를 가졌다.

크기는 작지만 ‘현혹’을 사용해 정신 착란을 일으키기에 위험했다. 보스를 도발하기 전 은새가 헌터들에게 말했다.

“보고서를 봤다면 알겠지만 사이콥시스의 약점은 불이에요.”

불의 이능을 다루는 임유성과 이준일이 침을 꿀꺽 삼켰다. 레이드에서 큰 역할을 맡은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신계 공격은 까다로우니까 절대로 마수와 눈을 마주치지 마세요. 날개의 무늬를 빤히 들여다봐도 안 돼요. 만약 옆에서 그런 사람이 있으면 때려서라도 그러지 못하게 막으세요. 그렇다고 녹다운시킬 정도로 때리면 안 되고요.”

긴장감에 꽁꽁 얼어 있던 헌터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은새가 씩 웃었다.

“만약 환상을 보거나 홀린다 싶으면 힐러 분들에게 신호해 주세요. 자, 그럼 보스 사냥을 하러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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