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31)화 (31/190)

30화 – 아기의 이름은

은새는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심각하게 봤다. 기자가 격양된 어조로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

[어제 낮 12시경, 강원도 횡성에 있는 C급 던전에서 돌연 마수가 나타나 채굴 중이던 헌터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던전은 3년 전 공략이 완료된 던전으로, 이와 비슷한 현상이 전국 26개의 던전에서 일어났습니다. 고등급 레벨에서 채굴 중이던 이들은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치료 중에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던전 리셋 현상’이라고 판단하고 앞으로 이런 현상이 얼마나 더 일어날지…….]

“이거…… 아기 때문일까요?”

“그럴 거다.”

벨키오르가 예사롭게 대답했다. 세계수의 권능이 이형의 힘이 도사리는 던전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은새의 눈치를 보던 아기가 울상을 지었다. 옷자락을 쥐어 오는 작은 손을 발견한 은새가 아기의 불안을 달래 주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누구나 실수는 하니까. 중요한 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야. 이제 아빠 말 잘 들어야겠지?”

“네에…….”

은새가 벨키오르에게 질문했다.

“언제까지 이 상태가 지속될까요?”

“아기의 힘이 안정되면 멈출 거다. 며칠 후면 잠잠해지겠지.”

방에 가서 우리와 통화를 한 은새가 바쁘게 외출 준비를 했다. 휘파람 소리를 내 마수들을 불러 모았다.

“길드에 가 봐야겠어요. 그쪽도 정신없는 모양인데 피해가 더 발생하기 전에 정리해야죠.”

“뉴, 뉴나! 나가요?”

“응. 수습하고 와야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큰 결심을 한 것처럼 아기가 아장아장 은새의 뒤를 쫓아왔다.

“나도 따라갈래!”

“어? 왜?”

아기가 우물쭈물했다.

“내가 잘모태쓰니까…… 내가 책임지게 해 주세요!”

“그런 말은 누구한테 배웠어? 아기는 책임질 필요 없는데. 이런 거 하라고 어른이 있는 거야.”

은새는 아기를 다정하게 안아 주고 벨키오르에게 넘겼다. 아빠에게 안긴 아기가 다급하게 말했다.

“나, 나두 갔다 올래요.”

“그 모습으로?”

세 살 정도 되는 어린이는 따라가 봤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게다가 언론에 아기의 얼굴이 노출된 적이 있어서 불필요한 관심을 받게 될 터였다.

퐁!

[이 모습이면 갠찮아!]

매끄러운 하늘색 비늘을 뽐내는 아기 드래곤이 파닥파닥 날아올랐다.

“아, 아니…… 책임감같이 무거운 걸 느낄 필요가 없다니까? 누나가 얼른 가서 해결하고 올게.”

[나눈 쓸모가 업서요……? 아빠만큼 강하지 않아서?]

아기 드래곤의 눈꼬리가 축 처졌다. 은새는 어떻게 해 달라는 눈으로 벨키오르를 쳐다봤다.

그는 고심하다가 한마디를 했다.

“네가 가 봤자 은새의 발목만 잡을 거다.”

“벨키오르 님, 그런 거 아니거든요?”

은새는 어떻게 하면 아기가 납득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그녀는 아기 드래곤과 시선을 맞추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밖에 나가면 네가 말할 줄 안다는 걸 숨겨야 해. 말을 하는 마수는 없으니까.”

[괜차나요! 이렇게 뉴나 머릿속으로 말하면 돼요. 히히.]

입을 벌리지 않았는데도 아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웅웅 울렸다. 이런 걸 전음이라고 하나?

뛰어난 아기의 능력에 은새는 칭찬을 듬뿍 해 줬다.

“또 내가 챙겨야 하는 사람이 많아서 아기를 제대로 돌봐 줄 수 없을지도 몰라. 서운하지 않겠어?”

[내가 뉴나를 잘 따라다닐게요! 나, 냄새 잘 맡아서 어디에 있어도 뉴나 잘 찾을 수 이써요.]

아기를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던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은새는 다시 한번 벨키오르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드님이 절 따라 인간 세계에 첫발을 내딛으려 하는데 괜찮을까요?’

은새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벨키오르의 대답은 단조로웠다.

“네가 저지른 짓이니 네가 해결하도록.”

[아라써요.]

드래곤의 교육 방식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은새는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다가 결정을 내렸다.

“으으음…… 그래! 우리 아기 데뷔하자! 까짓거 내 마수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어. 그렇지?”

[네! 뉴나 조아. 헤헤.]

그렇게 충동적으로 아기 드래곤의 첫 외출이 결정되었다.

***

은새는 아기 드래곤을 어깨에 얹고 도다리의 등에 올라탔다. 하늘이와 민들레, 쿠키는 사슬이 연결된 특수 제작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마수들은 도다리가 들어서 이동할 것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아기는 걱정하지 마세요.”

“은새. 무리하지 말도록.”

은새는 문득 이 상황이 부끄러웠다. 자신은 출근하고 벨키오르가 배웅해 주는.

“좀 늦을 수도 있어요. 식사 챙겨 드세요!”

은새가 신호하자 도다리가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꾸-! 긴 울음소리와 함께 도다리가 비상했다.

“저 아이는 제 식사는 제대로 안 챙기면서 남의 식사에는 기이할 정도로 관심이 많군.”

K국의 유별난 밥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벨키오르가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도천 길드 빌딩. 지하 사육소에 아기 드래곤을 제외한 마수들을 데려다 놓은 은새가 곧장 길드장실로 향했다.

대책 회의를 하고 나온 우리가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그는 은새가 사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마셨다.

“은새야, 대화 끝나면 마수들 데리고 경북 안동 지역으로 가 줄래? 멀어서 네가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알겠어. 그리고 전화로 했던 얘기 말이야.”

“그래. 그게 무슨 소리야? 아기 때문에 이 소란이 벌어졌다니…… 어?”

고개를 든 우리의 눈에 낯선 생물체가 보였다. 은새의 품에 인형처럼 안긴 처음 보는 마수.

아니, 사진으로는 봤다. 하늘색 비늘로 덮인 매끄러운 몸체에 톡 튀어나온 주둥이, 앙증맞은 두 개의 뿔. 피막이 덮인 작은 날개.

은새가 자랑하듯이 소개했다.

“우리 아기야! 귀엽지?”

아기 드래곤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봤다. 마, 말해도 되나……?

“우리한테는 괜찮아. 인사해, 아가.”

[아, 안뇽하세요.]

“으아, 말도 해? 근데 데리고 나와도 돼?”

“응. 벨키오르 님이 허락하셨어!”

은새가 활짝 웃음 지었다. 그녀를 보는 아기 드래곤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휙휙 움직이는 꼬리를 보고 우리가 ‘드래곤이 아니라 꼭 강아지 같네.’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게 말이지.”

은새는 벨키오르에게 들었던 대로 우리에게 설명했다. 얘기가 끝난 후 우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상황이 일시적인 거라니 다행이네. 지금 밖에서는 세상이 곧 멸망할 것처럼 떠드는데.”

언론에서는 던전 리셋 현상을 중대하게 다루었다. 한국에서만 벌어진 기현상이니 무리도 아니었다.

각 길드는 던전을 재공략하느라 바빴고, 헌터 협회는 쏟아지는 민원을 받아 내느라 비상이 걸렸다.

은새가 아기 드래곤을 안고 일어났다.

“안동으로 가면 된다고?”

“어. 그런데 데리고 갈 거야?”

“응. 아기가 가고 싶다고 하니까 데려가야지.”

“그런데 네가 새 마수를 데리고 나타나면…… 뭐,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잘 다녀와. 가면 협조 요청한 경북 지역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을 거야.”

“다녀올게!”

[다녀오게씀다!]

은새와 아기가 활기차게 인사했다.

***

꾸우-! 하강하기 직전 도다리가 긴 울음을 토해 냈다. 안동 지역 AA급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헌터들과 기자들이 창공을 올려다봤다.

“유은새 헌터다!”

“마수들도 함께야! 나 실물로 처음 봐.”

사람들이 동그랗게 둘러싼 공터에 도다리가 착륙했다. 마수들을 우리에서 꺼내 주며 은새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것 아닌 행동에도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안녕하세요! 도천 길드에서 온 유은새라고 합니다. 이곳 담당자분 어디 계세요?”

“여, 여기 있습니다, 유은새 헌터! 도천 길드 소속 안동 던전 담당 B급 헌터 최가희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 여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도천 소속이지만 파견을 나와 있어 은새를 미디어로밖에 접하지 못했던 최가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은새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최가희 헌터. 이쪽이 오늘 공략을 함께 진행할 페이커 길드원들인가요?”

“맞습니다. 페이커 길드의 길드장 김정열입니다. 유명인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참 좋군요. 하하하!”

“부길드장 이기민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페이커 길드는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길드였다. 도천 길드에서는 이처럼 지방에 있는 던전은 지역 길드에 협조를 요청해 맡기는 편이었다.

나름의 공생 관계를 구축하고 지역 길드와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기자들이 목청 높여 질문했다.

“유은새 헌터! 오늘 공략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던전 리셋 현상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도천 길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마수 소개를 한 번만 해 주시죠!”

[뉴, 뉴나…….]

생전 처음 낯선 상황에 처한 아기 드래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번쩍번쩍하는 카메라 플래시, 사람들이 내지르는 고함, 어지럽게 뒤엉키는 열기 등이 위협으로 다가왔다.

마수 쿠키가 은새의 등에 매달린 아기 드래곤을 혀로 핥았다.

“아기야? 괜찮아?”

[내가 뉴나를 지킬 꼬야.]

따뜻한 손길에 아기 드래곤이 정신을 차렸다.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 열화와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처, 처음 보는 마수! 유은새 헌터, 새 마수를 들였습니까?”

“특종이다! 새 마수의 종은 뭡니까? 덩치가 작은데 이번 레이드에 참가하는 겁니까?”

“혹시 중국 길드에서 양도받은 알에서 태어난 마수입니까?”

“마수의 이름은 뭐죠?”

“이름이요?”

은새가 당황했다. 그녀는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씩 대답했다.

“일단 이 아이의 종은 드래곤이에요. 중국에서 온 알과는 관련이 없고요. 이름은…….”

은새가 아기 드래곤과 시선을 맞췄다. ‘이름’이라는 말에 금색 눈이 별처럼 초롱초롱했다.

은새는 고민했다. 자신이 아기의 이름을 지어 줘도 될까?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

벨키오르 님의 허락도 안 받았는데.

[뉴나.]

아기 드래곤이 앞발로 은새의 옷자락을 꼬옥 쥐었다.

하지만 아명이라면……. 아기가 이토록 기대하는데.

은새는 짧은 고민을 마쳤다. 나중에 벨키오르에게 혼나더라도.

“별이. 이 아이의 이름은 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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