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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30)화 (30/190)

29화 – 아기가 사고 쳤다

아기는 입이 댓 발 나왔다.

세계수가 있는 숲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성. 벨키오르의 레어에서 아기는 식사 중이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음식을 앞에 두고 아기가 투정을 부렸다.

“뉴나가 해 주는 게 더 마시써.”

“그래도 먹어라.”

벨키오르는 작게 자른 완자를 포크에 찍어 내밀었다.

1차 각성을 마친 드래곤 해츨링은 직접 사냥을 나가서 먹이를 구해야 했다. 벨키오르 또한 이 세계에 있는 동안 아기를 야생으로 내몰았다.

아빠가 지켜봐 주는 가운데 아기는 성공적으로 큰뿔야생양을 잡았다. 그것으로 벨키오르는 먹을 만한 요리를 했다.

벨키오르가 어렸을 때는 받아 본 적 없는 배려였다. 선대는 벨키오르가 사냥에 실패하면 며칠을 굶든 내버려 두었다.

조리된 음식? 그는 스스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따뜻한 식사를 해 본 적 없었다.

선대는 벨키오르가 숨넘어가게 아플 때나 와서 들여다보는 정도였다. 후계자가 죽으면 곤란했으니까.

은새 때문에 그도 변한 것이었다. 지금도 딱히 극성스럽게 아기를 돌보는 편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은새가 아기에게 하던 것만큼은 해 주려고 했다.

아기가 마지못해 완자를 입에 가져다 넣었다. 우물우물…… 꿀꺽.

“뉴나한테 언제 갈 수 있어요?”

“아직은 안 돼.”

“뉴나 보고 시퍼! 아빠 거짓말쟁이. 금방 갈 쑤 있을 거라고 했으면서!”

퐁!

아기 드래곤이 울먹거리며 날아서 식당을 나가 버렸다. 벨키오르는 골치가 아팠다.

침실로 돌아온 아기는 씩씩거렸다. 아무래도 아빠한테 속은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식사 때가 되면 사냥을 나가고 남은 시간에 벨키오르에게 마법 이론에 대해 배웠다.

자유 시간이 생기면 세계수가 해 주는 재미있는 얘기를 듣다가 노을이 지는 하늘을 멍하게 올려다봤다. 은새가 보고 싶어 코를 훌쩍거릴 때도 있었다.

“뉴나한테 갈래. 갈 꼬야.”

비장하게 일어선 아기는 아공간에 이것저것 챙겼다.

지나가다 본 예쁜 꽃, 이로운 효과가 있는 열매, 벨키오르의 레어에서 찾은 온갖 귀하고 값비싼 보석들을 챙겼다.

은새가 이것을 받고 좋아할 모습이 상상돼 아기는 헤실헤실 웃었다. 다 뉴나 꼬야.

호다닥 방을 나서려는데 문 앞에 두둥, 벨키오르가 서 있었다. 아기가 펄쩍 뛰었다.

“어디 가는 거지?”

“위, 위그드라실한테…….”

벨키오르가 창문을 힐끔거렸다. 자욱하게 어둠이 깔린 뒤였다.

“너무 늦었어. 오늘은 이만 자라.”

“아직 안 졸린데!”

“은새가 어릴 땐 잠을 많이 자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맞다. 그랬다.

정작 은새는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 하는데 드래곤들이 더 철칙처럼 지키고 있었다. 아기는 터덜터덜 침대로 향했다.

이불에 파묻혀 얼굴만 쏙 내민 아기의 배를 벨키오르가 토닥거렸다.

“조금만 참아라. 곧 위그드라실에게 받은 권능이 안정될 테니.”

“웅…….”

하지만 아기는 오늘 기필코 은새에게 가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바짝 긴장한 채로 꾸벅꾸벅 졸던 아기는 깊은 밤, 반짝 눈을 떴다.

캄캄한 방 안. 아기는 조심스럽게 개나리색 마력을 피워 올렸다.

위그드라실 옆이 가장 성공 확률이 높지만 성을 빠져나가면 벨키오르가 바로 눈치챌 것이다.

‘뉴나가 있는 곳으로 갈 꺼야.’

아기는 좌표를 잡았다. 기회는 단 한 번. 실패하면 벨키오르에게 붙잡혀 꼼짝없이 시간이 흐르길 기다려야 한다.

마법진 여러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번쩍!

‘뉴나! 내가 만나러 가께!’

1차 각성 전에도 가출에 성공했던 아기였다. 아기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마음속으로 벨키오르와 세계수에게 인사했다. 모두 안녕! 또 봐요.

마력의 파동을 느끼고 급하게 아기 방으로 달려온 벨키오르는 이마를 짚었다.

“기어코 갔군.”

어쩐지 낌새가 수상하다고 했다. 세 번째 가출이었다.

“곤란한데…….”

아기의 힘이 채 갈무리되지 않았다. 세계수의 권능은 생명력 그 자체이다. 이는 반드시 은새의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벨키오르가 주인을 잃은 방을 정돈했다. 이 천방지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둘러 가 봐야겠군.”

간만의 재회였다.

***

우르릉. 별안간 강원도 산천에 천둥소리가 울렸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더위에 마당에서 마수들의 털을 깎아 주고 있던 은새는 특수 미용기를 집어 던지고 일어났다.

“아기야? 벨키오르 님?”

그녀는 서둘러 뒤뜰로 달려갔다. 세계수 미니미에 앉아 쉬고 있던 아기 드래곤이 은새를 발견하고 폴짝거렸다.

[뉴나! 나 와써요!]

“아기야! 우리 아기, 잘 지냈어?”

은새와 아기 드래곤은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털이 밀리다 만 쪼쪼와 마수들이 컹컹 짖으며 다 같이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벨키오르 님은? 같이 안 왔어?”

[아, 아빠는…… 나중에 와요.]

“왜? 무슨 일 있었어?”

심각해진 은새를 보고 아기 드래곤이 눈치를 봤다.

[으응. 뉴나 보고 시퍼서 나 먼저 왔어요.]

“어? 허락 맡고 온 거지?”

[…….]

아기 드래곤이 시선을 피했다. 은새가 탄식했다.

“아이고, 아기야. 또 가출한 거야?”

[하, 하지만 아빠가 안 보내 줘써요. 금방 돌아갈 슈 있다고 했으면서!]

“그래, 그래. 아빠도 금방 오시겠다. 오시면 같이 잘못했어요, 하자.”

[네에…….]

시무룩해진 아기 드래곤을 은새가 달랬다. 나무 밑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요거트를 떠먹여 줬다.

아기 드래곤은 은새에게 폭 안겨서 냠냠 받아먹었다. 히히. 아기 드래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뭘 배웠는지 재잘거렸다.

은새는 아기가 사냥을 했다는 것에 놀랐지만 어려도 드래곤은 드래곤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아빠 오셨다.”

세계수 근처에서 금빛 마력이 회오리쳤다.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에 은새의 눈동자가 반가움으로 반짝거렸다.

“너.”

은새 품에 안긴 아기 드래곤을 발견한 벨키오르가 눈썹을 찌푸렸다. 아기 드래곤이 움찔거렸다.

은새가 중재에 나섰다.

“벨키오르 님, 오셨어요? 음……. 너무 혼내지는 말아 주세요. 자, 아기야. 아빠한테 죄송하다고 해야지?”

[죄송함미다…….]

벨키오르가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 은새가 시키는 대로 다 하면 아기가 아니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온 은새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비현실적인 외모에 은새가 침을 꿀꺽 삼켰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기 때문인지 몰라도 긴장됐다.

“기다렸나?”

“네. 오지 않으셔서 걱정되던 참이었어요.”

“그건 미안하군.”

벨키오르의 금색 눈동자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두근. 은새는 빨개지려는 얼굴을 손으로 빠르게 부채질했다.

“아기가 오고 나서 이 세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나?”

“문제요? 잘 모르겠는데요.”

“한번 알아보는 게 좋을 거다. 아기가 세계수의 힘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넘어와서 분명 영향이 미쳤을 테니.”

몰랐던 사실에 아기 드래곤이 딸꾹질을 했다. 은새가 아기 드래곤의 등을 토닥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요?”

벨키오르는 고민했다. 과연 어떤 식으로 힘이 발현될 것인가.

“땅. 지금으로선 단서가 그것뿐이군.”

***

벨키오르의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증명되었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혜화 길드 소유의 C급 던전. 광물을 채굴 중이던 D급, F급 헌터들은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에 당황했다.

캬오오-

크륵, 크륵.

“뭐, 뭐야? 마수 소리 아니야?”

“여기 공략 완료된 거 아니었어?!”

채굴로 생계를 이어 가는 그들은 신체 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조금 나을 뿐, 전투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우왕좌왕하는 인간들 주위로 마수들이 모여들었다.

크르르…….

“마수, 마수다! 진짜 마수가 나타났어!”

“도망쳐! 으아악.”

트레시이터(trash-eater), 통칭 ‘쓰레기발바리’로 불리는 마수가 큰 입을 쩍 벌리고 네발로 기어왔다. 얼룩덜룩한 보라색 몸체에 초록색 혀.

호신용 단검을 들고 다니는 D급 헌터가 마수를 공격했지만 수가 워낙 많아 소용없었다. 채굴한 광물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사람들이 입구를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살려 줘! 으악!”

마수들이 도망가는 사람들의 뒤를 덮쳤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던전 리셋.

강원도 홍천과 가까운 곳부터 이런 기현상이 점차 퍼져 갔다.

***

“그게 무슨 말이야. 공략 완료된 던전에서 마수가 튀어나오다니?”

비서의 보고를 받고 우리는 황당했다. 비서가 태블릿 피시로 전송되는 보고서를 빠르게 읽었다.

“그게, 저희 길드 소유의 던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는 모양입니다. 던전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고, 일부 던전에서만 리셋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일부 어디?”

“일단 저희가 소유한 던전 중에는 충북 제천과 단양, 경북 안동, 경기도 양평과 광주, 이천 소재지의 던전에서 그러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미치겠다. 안동이랑 양평에 있는 던전은 AA급 아니야?”

“맞습니다.”

“인명 피해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이어지는 비서의 보고를 들으며 우리가 책상을 빠르게 두드렸다. 아직 사망자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원인은?”

“파악 중입니다.”

그때 우리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은새였다.

-우리야, 지금 통화돼?

“어, 은새야. 지금 좀 바쁜데…… 무슨 일이야?”

-지금 뉴스 속보로 나오는 거 진짜야? 던전 리셋 현상.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난리다. 원인도 안 밝혀졌는데 지금 당장 공략팀 꾸려서 파견해야 할 판이야. 은새 너도 길드로 와.”

-있잖아, 그거…… 아기 때문인 거 같거든?

“엥? 아기?”

우리의 행동이 우뚝 멈췄다. 은새가 ‘음.’ 하고 곤란한 신음을 흘렸다.

-자세한 건 길드로 가서 말해 줄게. 이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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