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29)화 (29/190)

28화 – 던전 입찰 경매

은새는 길드 휴게실에서 무언가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창문으로 그 모습을 본 솔이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은새는 98인치 티브이로 웬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편식하는 아이를 위한 유아식 만들기……. 화면 왼쪽 상단에 쓰인 글씨를 보고 솔이 표정을 구겼다.

“야, 야. 모처럼 집에 안 처박혀 있고 나와 있다 했더니 그런 거 보고 있는 거야?”

“우리 아기는 내가 주는 건 다 잘 먹던데 싫어하는 음식이 있으면 어떡하지?”

“유난이다, 진짜.”

“그때를 대비하려면 어쩔 수 없어.”

은새가 다시 티브이 화면에 집중했다. 화면에서는 우리 아이 채소 먹이는 세 가지 레시피에 대해 한창 설명하고 있었다.

“그냥 내가 영양제 사 줄게…….”

“아! 영양제도 챙겨야 하나.”

은새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솔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은새의 앞에 놓인 프랜차이즈 커피를 빼앗아 쪼옥 빨았다.

“진짜 웬일로 밖에 이렇게 오래 나와 있냐.”

“아기랑 벨키오르 님이 없으니까 허전해서.”

은새가 겸연쩍게 얘기했다. 솔은 어이가 없었다.

“너 계속 혼자서 살았잖아…….”

“그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잖아. 집에 있으면 좀 외로워서.”

솔이 은새의 손목을 잡고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다. 일정 없지? 백화점 가자.”

“어? 왜?”

“왜긴. 너 옷 좀 사고 오랜만에 미용실도 들르자. 잘나가는 S급 헌터가 이렇게 꾸질꾸질하게 다니면 욕먹어.”

“나 꾸질꾸질해?”

당황한 은새는 자신의 차림을 살펴보았다. 글씨가 쓰인 흰 티에 청바지, 스니커즈 운동화. 허리까지 오는 생머리.

무난했다. 하지만 솔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결국 솔의 자차에 실려 도천 그룹 소유의 백화점으로 갔다.

오기 전 미리 연락을 해서 전담 매니저가 대기 중이었다. 매니저가 상냥하게 물었다.

“VIP룸으로 모실까요?”

“네.”

“아니야, 됐어! 나 모처럼이니 둘러보면서 쇼핑하고 싶어.”

“어디 인파에 파묻히고 싶으면 그래 봐. 여기서 기자 회견 한번 열어 줘?”

“아…….”

은새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는 말없이 VIP룸으로 이동했다.

통유리창으로 탁 트인 공간에 행거가 여럿 놓여 있었다. 은새가 자주 입는 스타일의 옷이 죽 걸려 있고 그녀와 비슷한 체형의 모델들이 대기 중이었다.

전담 매니저가 웃으며 태블릿 피시를 건네주었다. 유명 브랜드의 시즌 신상 목록이 떴다.

“음…… 난 이거, 이거, 그리고 이거.”

“유은새, 죽을래?”

은새가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옷만 고르자 솔은 속이 터졌다. 태블릿 피시를 빼앗아 대신 고르기 시작했다.

화사하고 로맨틱한 느낌의 원피스, 투피스가 주를 이뤘다. 은새가 뺨을 긁적였다.

“좀 튀지 않나?”

“튀어도 돼! 그래도 돼!”

솔이 고른 옷들을 입고 모델들이 워킹을 돌았다. 솔이 매의 눈으로 구두와 액세서리 등을 골랐다.

“아무래도 튀는 것 같은데…….”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속 터지니까.”

쇼핑백이 쌓여 갔다. 대강 쇼핑이 끝났을 때쯤 은새가 전담 매니저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기, 유아 용품도 볼 수 있을까요?”

“네?”

“한 세 살에서 네 살 정도? 남자아이예요. 옷이랑 신발, 장난감 같은 거요.”

“유은새…… 여기까지 와서…….”

매니저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도 은새가 아기를 키운다는 소식은 들었다.

나이대가 조금 다른 듯했지만 프로 판매원한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기만 하면 될 따름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매니저는 어딘가로 급하게 연락했다. 잠시 뒤, 새로운 행거가 주르륵 등장했다.

본인 옷을 사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던 은새가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연신 감탄을 쏟아 냈다.

“이거 너무 귀여워! 이것도, 저것도!”

“야, 야…….”

“수영복도 있어. 아기가 입을 수 있을까? 어떡해…… 진짜 귀엽다. 솔아, 이거 봐라. 공룡 잠옷!”

“유은새,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진정 좀 하고……. 이건 뭐예요, 변기 커버? 이런 게 왜 있어요?”

“호호, 세 살이면 슬슬 배변 훈련을 할 때거든요.”

“아니…… 매니저님 알뜰하게도 챙겨 오셨네.”

근데 그 아기는 드래곤이라 따로 배변 훈련을 할 것 같지 않거든요. 솔이 어렵게 뒷말을 삼켰다.

“너무 예뻐서 다 갖고 싶어!”

은새는 답지 않게 물욕을 부렸다. 그래서 행거에 걸린 옷들 대부분을 결제하고 -왜 전부가 아니냐 하면 잘못 섞여 온 여자아이 옷이 있었기 때문에- 가을용 트렌치코트에 겨울용 무스탕, 패딩까지 예약 주문을 했다.

장난감은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있는 전담 매니저의 추천을 받아 소근육 발달 장난감, 인지 능력 발달 장난감, 지능 발달 장난감 등 온갖 것을 사들였다.

멋진 어린이용 차도 한 대 뽑았다. 동화책은 전집으로 구매했다. 옆에서 말려 보려던 솔이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너 아기 물건은 그렇게 사면서 그…… 님 선물은 안 사?”

“어? 벨키오르 님?”

직원들의 귀가 일순 쫑긋했다. 은새가 보호하고 있는 아기의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은새는 심오한 고민에 빠졌다.

‘벨키오르 님의 선물?’

옷…… 그는 현대와 다른, 판타지 세계에서 볼 법한 치렁치렁한 복색을 하므로 탈락.

시계…… 위의 이유로 탈락.

신발…… 가방…….

고심하던 은새가 한 가지를 생각해 냈다.

“머리 장식?”

“너 진심이야?”

“하지만 떠오르는 게 그거뿐인걸. 벨키오르 님은 예쁜 하늘색 장발을 가지셨으니까 잘 어울릴 거야.”

“제발 참아 주라…….”

“왜? 그렇게 별로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래,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이라 미안하다!”

솔은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전담 매니저가 보여 준 물건 중에 은새 마음에 드는 게 없어 포기해야만 했다.

‘아쉽네…… 디자이너라도 섭외해야 할까?’

구매한 물건들은 전부 길드로 배달시켰다. 그러면 길드원들이 은새의 집으로 가져다줄 것이었다.

쇼핑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해 미용실은 다음에 가기로 했다. 은새는 발걸음 가볍게 도다리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 벨키오르와 아기가 돌아왔을까 해서 뒤뜰로 가 봤으나 그곳에는 세계수 미니미만이 우뚝 서 있었다.

은새가 물뿌리개를 들었다.

“무럭무럭 자라라.”

세계수 본목만큼은 아니어도 커다랗게 자라기를 바랐다. 은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연분홍색 알을 발견했다.

“저걸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중국에서 양도받은 마수의 알. 은새는 먼저 이능을 알에 부여해 봤다. 백색의 빛이 어른거리다가 알에 스며들었다.

그러길 수어 분. 하지만 알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이게 아닌가?”

은새가 알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귀를 가져다 댔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는 누구니? 어떻게 해야 태어나 줄래?”

“…….”

“벨키오르 님은 아시려나…….”

자꾸만 그의 생각이 났다. 노을이 지는 창밖을 내다보다 은새가 입을 삐쭉였다.

“보고 싶다.”

아기도, 벨키오르 님도.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갔다.

***

충청북도 괴산에 S급 던전이 발생했다. 헌터 협회에서 각 길드에 입찰 공고일을 알렸다.

오늘이 고지한 당일이었다. 헌터 협회 건물로 우리와 실무팀 팀장인 김윤희 헌터가 들어섰다.

“랭킹전 이후로 처음 보는군. 한우리 길드장.”

골드스타 길드의 백찬민 길드장이었다. 보는 눈이 있어서인지 그는 백사자다운 젠틀한 모습이었다.

“잘 지냈나? 육재희 부길드장도 같이 왔군.”

“유은새 헌터 복귀 소식은 들었어. 축하해.”

“뭘. 파파라치가 참 극성이지 뭐야. 마수들이 지키는 강원도 산골까지 찾아가 사진을 찍을 줄은 몰랐어. 백찬민 길드장도 조심해. 언제, 무슨 사진이 찍힐지 모르잖아?”

우리가 피식 웃었다. 너희가 한 짓이란 걸 알고 있다는 투였다.

“……말이 나왔으니 묻는 건데, 그 남자는 누구지? 유은새 헌터에게 연인이 있었나?”

“그럴 리가. 그자에 대해선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가 능청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오늘 잘 부탁하지. 유은새 헌터 복귀 선물로 주고 싶거든.”

“이거 어쩌나. 우리 측에서도 준비를 많이 해서.”

웃고 있지만 말투에 묘하게 가시가 돋아 있었다. 우리는 맞잡은 손에 힘을 꾹 주었다가 뗐다.

“부디 페어플레이가 되길 바라.”

우리는 김윤희 헌터와 지정된 자리로 갔다. 백찬민과 육재희도 아무렇지 않은 척 본인들 자리를 찾아갔다.

S급 던전 입찰 경매인 만큼 국내 상위권 길드는 다 모였다. 충북에 거점을 둔 길드에서도 올라왔다.

시간이 되자 헌협 담당자가 단상에 나와 말했다.

“입찰 금액을 써서 이 상자에 넣어 주시면 됩니다.”

우리가 김윤희 헌터에게 눈짓했다. 정보부에서 남몰래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책정한 금액이었다.

잠시 후 헌협 담당자가 다시 단상 위에 올라왔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최종 낙찰가 32억 8천 1백만 원으로 골드스타 길드가 충북 괴산에서 발생한 S급 던전 소유권을 획득했습니다!”

뭐?

우리는 당황했다. 그가 몸을 돌려 김윤희 헌터를 바라봤다. 그녀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이 적은 금액은 32억 8천만 원이었다. 딱 백만 원 차이.

어떻게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지? 골드스타 측에서 도천의 정보를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우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하네…….”

수를 읽혔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우리는 웃고 있는 백찬민을 노려보다가 김윤희 헌터와 함께 건물을 빠져나갔다.

육재희가 백찬민에게 다가가 귓속말했다.

“정말 쪽지에 적힌 내용대로군요.”

“그래.”

그들은 이곳에 오기 전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쪽지를 전달받았다. ‘도천 길드에서 32억 8천만 원을 써 낼 테니 그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하라’고.

백찬민이 턱을 쓰다듬었다.

“누굴까…… 누가 뒤에서 움직이는 걸까.”

그의 감이 예사 인물이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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