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유은새 헌터 복귀합니다
그들이 가기로 한 던전은 흰모래호수 던전이었다.
그곳에서 등장하는 마수는 호수가오리로, 고래 같은 몸체에 가오리의 지느러미를 가졌다.
호수가오리는 대개 물에서 살지만 하늘을 날 수 있고 코끼리의 상아 같은 크고 단단한 엄니가 특징이었다.
호수가오리의 주변엔 웅덩이토끼가 반드시 발견되었다. 귀여운 외견과 다르게 회오리를 부르는 능력 때문에 성가셨다.
“호수가오리가 저렇게 미쳐 날뛰는 건 처음 봐.”
시선을 멀리 둔 인찬이 중얼거렸다.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엄니 하나가 뽑혔으니 저럴 만도 하지.”
“누가 저랬지? 그냥 깔끔하게 죽이지. 남이 뒤처리를 하게 만드네.”
호수가오리의 왼쪽 엄니가 없었다. 광분한 마수가 몸부림치자 호수가 박살이 났다.
웅덩이토끼들이 우왕좌왕하며 그 주위를 맴돌다 파란에 휘말렸다.
호수가오리는 본디 유유히 수면을 헤엄쳐 다니는 마수였다. A급이라고 해도 상대하기 까다롭지 않아 경험이 적은 헌터들이 주로 찾았다.
우리가 투덜거렸다.
“아, 던전 지형이 호수라고 해서 낚시도 하고 여유롭게 캠핑이나 하려고 했더니 바로 레이드 들어가야겠네.”
“끝내고 놀든가.”
“너라면 피비린내 나는 곳에서 한가롭게 모닥불 피우고 경치 구경하고 있겠냐? 도시락 까먹고?”
“안 될 건 또 뭐야.”
솔이 어깨를 들썩이며 낄낄댔다. 그녀가 몸을 쭉쭉 스트레칭했다.
“힘들여 도발은 안 해도 되겠네. 계속 저 상태로 날뛰어서 힘도 많이 빠졌을 테고.”
“아…… 죄짓는 기분이야.”
“그거 기만이다, 서인찬. 우리가 언제 약한 마수라고 살려 주고 부상당한 마수라고 놓아주고 그랬냐?”
솔이 붉은 머리를 질끈 올려 묶었다.
“마수는 마수일 뿐이야. 우리가 망설이면 민간인이 크게 다쳐.”
“맞는 말이긴 한데 솔이 네가 그 말 하니까 왜 이렇게 어색하냐?”
“멋진 모습 나한테 빼앗겨서 배 아프니, 길짱? 옹졸하기는.”
그들은 여유로웠다. 친구들에게 버프를 걸어 준 미리내가 은새를 불렀다.
“은새야. 할 수 있지?”
“물론이지.”
은새가 무기 아이템을 소환해 손에 쥐었다. 육식 독룡 베일 카라스의 꼬리뼈로 만들어진 봉이었다.
손목을 이용해 몇 번 돌려 본 은새가 도다리의 등에 탔다.
“레이드 진형으로.”
앞장선 우리가 호수 표면을 검으로 내려쳤다. 촤아아악!
물 표면이 갈리고 언뜻 호수의 바닥이 보였다. 검격은 호수가오리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허공을 날아오른 호수가오리가 일행을 발견하고 미친 듯이 돌진했다. 눈은 풀려 있었고 입에서는 침인지 진액인지 모를 액체를 뚝뚝 떨어트렸다.
불꽃을 키우던 솔이 흠칫거렸다.
“야, 야…… 광견병, 아니지 저건 뭐라고 해. 미친 마수 병 같은 건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은데.”
우리의 안색이 잠깐 어두워졌다. 그는 마수가 호수의 절반을 건넜을 때 공중에 도약해 오러를 날렸다.
우우우우-
적을 감지한 웅덩이토끼가 회오리를 일으켰다.
꾸꾸-!
도다리가 크게 날갯짓했다. 호수를 빨아들여 급속도로 팽창하던 회오리가 잠시 주춤했다.
유하의 화살이 호수가오리의 지느러미에 타다닥 꽂혔다. 호수가오리가 몸부림쳤다.
쉭쉭 거친 숨을 내쉰 호수가오리가 하나 남은 엄니로 우리를 들이받았다.
솔의 불꽃 창이 수직으로 꽂혔다. 물기를 머금은 살갗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꾸에에엑!
고통스럽다 못해 처절한 비명이었다. 마수가 느끼는 감정이 절절히 전해졌다.
억울함, 비통함, 증오스러움……. 솔이 한쪽 귀를 막았다.
“어휴, 죄짓는 기분이네.”
“아까 인찬이한테는 기만이다 뭐다 했으면서.”
“얘가 이렇게 맥도 못 출지 몰랐지. 그냥 길짱 너 혼자 잡으라고 할 걸 그랬다. 이건 마수 학대인 듯.”
한편 은새는 웅덩이토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은새가 봉을 휘두를 때마다 통통 튀는 자그마한 마수들이 나가떨어졌다.
유하의 화살이 날아와 마수들을 꿰뚫었다. 도다리는 웅덩이토끼들이 회오리를 만드는 걸 방해했다.
‘누가 호수가오리의 엄니만 뽑아 갔을까? 어떤 목적으로?’
은새는 생각했다. 헌터들 중에는 잔혹한 짓을 하는 자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은 마수들이 죽어 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걸 구경하고 살육 자체를 즐겼다. 그래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밀렵꾼도 있었다. 마수에게서 무기 강화에 필요한 재료만 취하고 던전 공략은 하지 않는 이들.
그들은 어차피 마수인데 도의를 왜 지켜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가…….’
은새가 잠시 한눈팔았을 때였다.
“은새야!”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은새가 물에 집어삼켜졌다.
친구들도 갑작스럽게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물기둥을 피하느라 바빴다. 호수가오리의 최후의 발악이었다.
우리의 검격이 호수가오리의 지느러미를 갈랐다. 검붉은 피가 호수에 흩뿌려졌다.
거대한 몸체가 기우뚱했다. 첨벙! 뽀글뽀글 거품이 일며 호수가오리의 시체가 가라앉았다.
호수가오리가 죽자 웅덩이토끼들이 흩어졌다. 친구들이 홀딱 젖은 은새에게로 뛰어왔다. 솔이 구박했다.
“유은새 좀 쉬었다고 감 떨어졌네! 그것도 못 피하냐!”
“아하하하, 잠시 딴생각했더니. 다친 덴 없어.”
도다리가 은새를 땅에 내려다줬다. 물기를 짜는데 갑자기 대지가 진동했다.
일행이 당황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지?”
지진은 잠시 후 멈췄다. 던전에 변화는 없었다.
“뭐였지? 이런 일 처음이야.”
“그러게. 난 또 히든 보스라도 나오는 줄 알았다.”
“그게 뭐야. 최종_진짜 최종_진짜 마지막 보스야?”
그들은 뒷마무리를 하고 던전을 빠져나왔다. 은새가 공략에 나선다는 말을 듣고 몰려온 기자들이 인터뷰 요청을 했다.
특종을 노리고 거의 악을 지르는 수준이었다.
“유은새 헌터! 남성과 아기에 대해 한 마디만 해 주십시오!”
“이제 복귀하신 겁니까?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남성의 정체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도천 S급들이 총출동한 만큼 던전 공략 결과에 대해 묻는 이는 없었다. 유하가 은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와. 유은새 인기 많네~”
“벨키오르 님과 아기에 대해 묻는 거잖아.”
우리가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눈짓했다. 그가 기자들 앞에 섰다.
“유은새 헌터는 이 시간부로 복귀합니다.”
촤르르륵! 사진 찍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이전처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점차 활동을 늘려 갈 계획입니다. 이상입니다.”
“남성과 유은새 헌터의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습니까?”
“한우리 길드장, 남성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일행은 기자들의 질문을 무시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도천에서 고용한 인력들이 기자들을 통제했다.
은새의 복귀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
우리가 인터뷰하는 장면이 미디어로 송출되었다. 검은색 모자를 쓴 남성이 핸드폰을 보며 거리를 걷다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유은새 헌터는 이 시간부로 복귀합니다.]
남자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이전처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점차 활동을 늘려 갈 계획입니다. 이상입니다.]
“유은새가…… 복귀한다고?”
멈춘 화면을 남자가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의 미간이 좁아 들었다.
“……어떻게?”
***
[아기야. 오랜만이구나.]
푸르른 빛을 내는 거대한 나무가 가지를 흔들었다. 벨키오르의 품에 안긴 아기가 나무로 손을 뻗었다.
아기는 태어났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깨달았다. 세계수를 지키고 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우웅. 안녀하세요.”
[1차 각성을 축하한단다. 힘든 점은 없었니?]
“뉴나가 도와죠서 괜차났어요.”
은새 생각에 아기의 표정이 밝아졌다. 방긋방긋 웃는 아기가 귀여워 세계수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은새는 잘 있니?]
“뉴나 잘 잇서요. 뉴나 보고 시퍼.”
[이런. 벨키오르가 급하게 데려왔나 보구나.]
“우웅…….”
아기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아기를 힐끔 내려다본 벨키오르가 말했다.
“위그드라실, 아기에게 축복을.”
축복이란 세계수의 권능을 나눠 주는 것이었다. 후계자로서 꼭 필요한 절차였다.
세계수의 가지가 뻗어 왔다. 새로 자라난 연한 가지가 아기를 칭칭 동여매 들어 올렸다.
이파리가 돋아났다. 뺨에 닿는 감촉이 간지러웠는지 아기가 까르르 목을 움츠렸다.
온화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작의 드래곤 벨키오르의 아들이여, 본목을 지키고 사명을 다하는 것에 동의하는가?]
“네에.”
[나의 축복을 받아들이겠는가?]
“네!”
오색빛의 아름다운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아기의 이마에 또렷한 문양이 떠올랐다가 스며들었다.
아기는 제 안에서 꿈틀거리는 능력을 신기하게 여겼다. 충만한 생명력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심장에 자리 잡았다.
[끝났단다.]
“나 이제 뉴나한테 갈래요.”
벨키오르의 품으로 돌아가기 무섭게 아기가 보챘다. 벨키오르가 난감함을 표했다.
“힘을 갈무리하기 위해 한동안 이곳에 있어야 한다.”
“시러요! 보내죠요. 뉴나한테 갈래.”
“안 돼.”
아기는 서러워졌다. 갑자기 은새와 떨어진 것도 속상한데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은새가 자신을 잊으면 어떡하지? 다른 드래곤이 은새를 넘보면 어쩌지?
아기의 눈에서 눈물이 퐁퐁 솟아났다. 인상을 찌푸린 벨키오르가 어설프게 아기를 둥개둥개 했다.
아기의 몸이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렸다. 의외의 행동에 아기가 깜짝 놀라 우는 것을 멈췄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에 벨키오르가 머리를 갸웃했다.
“……이게 아닌가?”
벨키오르가 마법으로 아기가 좋아했던 장난감을 만들어 냈다. 딸랑이와 오리 모양의 오뚝이였다.
아기가 벨키오르의 가슴에 폭 기댔다.
“이거 이제 시러요…….”
“미안하군. 그래도 당분간 이걸로 참아.”
벨키오르는 은새의 흔적을 더듬었다. 이럴 때 그녀는 어떻게 했지?
북실북실한 아기의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오래 안 걸릴 거다.”
“웅…….”
아기가 오동통한 손에 딸랑이를 쥐고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