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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27)화 (27/190)

26화 – 우리 아기가 달라졌어요

아기의 기척이 달라진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이는 벨키오르였다. 아기는 은새가 옆에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손쉽게 몸을 뒤집었다.

꼬물꼬물 몸을 일으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1차 각성을 마친 아기는 훌쩍 자라 세 살 정도 되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토실토실한 뽀얀 뺨. 여전히 구불구불한 하늘색 머리카락.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팔랑거리는 커다란 눈. 전체적으로 색소가 옅은 아기는 손 뻗으면 사라질 신기루처럼 신비로웠다.

“뉴나.”

은새는 여전히 벨키오르의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기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뉴나!”

“깨우지 마라.”

벨키오르가 엄하게 일렀다. 아기는 곧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음…… 어?”

“뉴나!”

말소리에 잠에서 깬 은새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은새가 벌떡 일어났다. 벨키오르는 멀어진 온기를 아쉬워하다가 혀를 쯧 찼다.

“아기야……? 정말 우리 아기야?”

아이는 와다다 기어와 허공을 잼잼 했다. 그 모습이 은새가 기억하는 모습과 꼭 닮아서 은새는 환하게 웃음 지었다.

“아기야! 이제 괜찮아? 안 아파?”

“히히, 웅.”

은새가 안아 들자 아기는 머리를 폭 기대 왔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들렸다. 아기는 평온함을 느꼈다.

은새는 미열이 남은 작은 몸을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빨아먹고 싶을 정도로 말랑말랑한 뺨. 벨키오르를 쏙 빼닮아 벌써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유려한 이목구비.

“왜 이렇게 훅 컸어. 우리 아기 말도 할 줄 아네? 자란 모습도 귀여워. 우리 아기가 최고야. 잘 견뎠어.”

“히히. 나 아팠어요. 그래도 뉴나가 괜찬타, 괜찬타 해 줘서 참을 수 있었어요.”

“그걸 들었어? 우리 아기 장해. 천재야.”

은새가 참지 못하고 아이의 뺨에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벨키오르가 다가와서 물었다.

“몸 상태는?”

“뉴나, 이거 바바.”

벨키오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끄덕한 아기는 은새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아기가 마력을 방출했다. 개나리색 같은 예쁜 노란빛이 아기의 몸을 감쌌다. 다음 순간.

뿅!

[나 이 모습도 할 슈 있어요!]

하늘색 비늘을 가진 올망졸망한 용이 날아올랐다. 아직 몸에 비해 날개가 작아 바삐 움직여야 했지만 아주 늠름하고 멋있었다.

적어도 은새의 눈에는 그랬다. 그녀의 눈망울에 감격이 차올랐다.

“드래곤이구나! 비늘이 햇살에 비친 조약돌처럼 반짝반짝해. 아기만큼 예쁜 드래곤은 아마 없을 거야.”

귀염뽀작한 드래곤이 은새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뭉툭한 코가 은새의 뺨에 닿았다.

아기 드래곤을 마음껏 예뻐하던 은새가 불현듯 안색이 어두워졌다.

“저 그런데…… 아기는 이제 돌아가나요?”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벨키오르가 그녀를 쳐다봤다.

“아기가 드래곤으로서 자각할 때까지만 이곳에 머무시겠다고…….”

[시러! 나 안 가요. 안 갈 거예요.]

아기 드래곤의 오동통한 앞발이 은새의 머리를 꼭 껴안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벨키오르가 아기 드래곤의 날개를 잡아 은새에게서 떼어놨다. 날개를 잡힌 아기 드래곤은 앙증맞은 이빨을 드러내며 꼬리를 휘둘렀다.

벨키오르가 눈썹을 찡그렸다.

“계속 여기 있겠다고?”

[뉴나 곁에 있을래. 가려면 아빠 혼자 가요.]

“그건 안 된다.”

[왜!]

아기 드래곤의 반항이 가소롭다는 듯 벨키오르가 코웃음을 쳤다. 그가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새가 인간인 것은 알겠지?”

[…….]

“그런데도 옆에 있겠다고?”

많은 뜻이 담긴 말이었다. 자연계 최상위 포식자 드래곤.

아직 어리다지만 드래곤인 아이는 본능적으로 타종족과 자신을 구별했다. 그들은 군림하는 자이지, 공생하는 자가 아니었다.

[뉴나랑 있을 거야…….]

앞발에 얼굴을 묻고 아기 드래곤이 서러운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은새가 안절부절못했다.

“하아.”

벨키오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은새.”

“네?!”

“아기를 데리고 위그드라실에게 다녀오겠다.”

“그 말씀은…….”

은새가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 않고, 막는다고 이곳에 오지 않을 것 같지도 않으니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줄 수밖에.”

“벨키오르 님!”

은새가 당장 그를 끌어안을 듯이 튀어 올랐다. 감출 수 없는 환희가 차올랐다.

‘가만 생각해 보면 벨키오르 님은 아기한테 참 무른 것 같아.’

벨키오르의 손에서 풀려난 아기 드래곤이 은새와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두 존재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아기야, 사진 찍자. 이 모습도 간직해 둘래.”

은새가 핸드폰을 가져와 카메라를 실행시켰다. 아기 드래곤은 은새에게 찰싹 달라붙어 온갖 포즈를 취했다.

아기 드래곤은 숙련된 모델이었다.

“벨키오르 님도 같이 찍어요!”

“나는…….”

“안 돼요?”

은새가 팔자 눈썹을 하자 벨키오르는 거절하지 못했다.

한참 포토타임을 가지고 난 뒤 아기 드래곤은 아빠 드래곤의 손에 이끌려 세계수가 있는 세계로 갔다.

텅 빈 뒤뜰엔 은은한 빛을 뿌리는 세계수만이 자리했다.

“가 버렸네…….”

북적북적하던 집 안이 고요했다. 마수들이 은새 주변으로 몰려와 상실감에 젖은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 곧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 그것만으로 은새는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었다.

***

은새는 오랜만에 길드로 출근했다.

아직 결혼설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저주도 없어졌겠다, S급 헌터인 그녀가 밖을 못 돌아다닐 이유는 없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은새를 보고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보디가드로 동행한 도다리가 꾸꾸 울며 기자들을 모두 내쫓아 버렸다.

길드 내에서도 은새는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일은 워낙 익숙했기에 은새는 무시한 채 길드장 사무실로 직행했다.

우리가 놀란 표정으로 일어났다.

“은새야, 무슨 일 있어?”

“으음. 무슨 일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고.”

은새가 볼을 긁적였다.

“유은새, 여기 있냐!”

부르지도 않았는데 은새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하나둘 몰려왔다.

우리가 내 사무실이 너희 놀이터냐고 불만을 토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기는 어떻게 하고 혼자 왔어?”

“아기가 1차 각성을 했거든!”

미리내가 놀라워했다.

“벌써? 생각보다 빠르네.”

“응. 사진 볼래? 드래곤 모습 진짜 귀여워. 누나라고 말도 해.”

은새가 자랑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작은 핸드폰으로 다 같이 볼 수는 없어 단체 메시지방에 전송했다.

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

사진이 쉬지도 않고 올라왔다. 친구들이 기가 질린 얼굴을 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이계 드래곤의 모습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게 드래곤이구나…….”

“은새 너도 아빠 드래곤의 실제 모습은 못 본 거지?”

“응. 궁금하긴 해. 얼마나 크고 멋질까? 분명 어떤 마수들보다 위압감이 넘칠 거야.”

“나왔다. 유은새 저 표정.”

몬스터 테이머 은새는 종종 이상향에 부합하는 마수를 만났을 때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도 마수라면 마수였으니까.

인찬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런데 너 괜찮아? 아기, 영영 돌아간 거 아니야?”

“어? 아니야.”

“엥?”

“돌아온다고 했어. 아기가 내 옆에 있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유아 용품을 새로 사야 해.”

은새는 핸드폰에 코를 박고 쇼핑몰 페이지를 뒤졌다. 솔이 미리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입을 가렸다.

“수상하다, 수상해. 그 드래곤이 그 말을 들어줬다고?”

“그 드래곤 은새한테 반한 거 아니야?”

“파핫, 설마!”

재미난 농담을 들은 것처럼 박장대소했던 친구들이 우뚝 행동을 멈추었다.

“설마…….”

불길한 생각이 언뜻 솟아났으나 그들은 애써 지웠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똑똑.

“길드장님.”

우리의 비서 목소리였다.

“중국 측에서 보낸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와.”

비서가 몇 겹으로 봉인된 상자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나갔다. 은새가 궁금증을 표했다.

“이게 뭐야?”

“지난번 중국 출장의 보상으로 들어온 마수 알. 은새 네가 가져가.”

“내가?”

마수 알이라는 말에 은새가 반색했다. 포장을 뜯어 보니 타조알만 한 크기의 연분홍빛이 도는 알이 나왔다.

“어느 던전에서 구한 건지는 말 안 해 줬어?”

“봄의 탑(春塔) 던전.”

“거기서 나온 걸 주다니, 꽤 큰 결심을 했구나.”

은새가 놀랐다. 봄의 탑 던전은 격변의 시대가 도래한 후 중국의 상징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춘티엔더야오칭’이라는 마수가 처음으로 등장한 던전이었다.

당연히 중국에서 처음 발견됐기에 중국어로 이름이 붙었다.

“이거 부화시킬 수 있겠어?”

“몰라. 연구 좀 해 봐야겠는데…… 부화해도 문제되는 거 아냐?”

“아니야. 알의 소유권을 확실히 양도한다는 문서를 받았어.”

“그렇다면야…….”

“근데 중국 놈들 말 바꾸기 천재잖아. 방심하지 마, 길짱.”

우리가 유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에 대한 대책은 따로 마련해 둘게.”

솔이 기지개를 켰다. 실실 웃으며 은새에게 말했다.

“알은 알이고 저주도 없앴는데 유은새 던전에 복귀해야지?”

“나?”

“그래! S급 주제에 언제까지 놀고만 있을 거야! 아기도 없겠다, 일해, 일!”

그러고 보니 이제 그녀를 방해할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들이 분주해졌다.

“던전 수배할까? 한 시간이면 돼.”

“아까 보니까 도다리 데려왔더라? 가볍게 A급 어때.”

“A급 던전에 S급 헌터 여섯 명은 인력 낭비 아니냐…….”

“산책이지, 산책.”

친구들이 신나 보이니 은새는 그저 허허 웃었다. 오랜만에 몸을 풀고 싶기도 했다.

‘던전이라.’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다시 현역으로 뛸 수 있다고 하니 심장이 뛰었다.

약 한 시간 뒤.

“던전 수배 끝났어. 준비하고 가자.”

도천 S급들의 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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