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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24)화 (24/190)

23화 – 도천이 난리가 나겠군

“흐웅…….”

은새가 산체스와 방에 들어간 지 한 시간째.

아기는 벨키오르를 한 번, 은새가 사라진 방문을 한 번 쳐다보았다.

쉭, 쉭. 백합이가 아기에게 딸랑이를 머리로 밀어 주었다.

하지만 장난감에 관심이 쏠렸던 것도 잠시, 아기는 시무룩해졌다.

은새가 없으니 놀고 싶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벨키오르가 아기를 힐끔 보았다. 커다란 손이 아기의 눈을 가렸다.

“졸리면 자라.”

“마! 브우, 브우아!”

챱챱. 아기가 매섭게 벨키오르의 손을 때렸다. 아기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식사라도 할 테냐?”

벨키오르가 은새가 들고 온 짐을 뒤적였다.

“흐웅! 댜다다…….”

아기가 온몸으로 거부했다. 은새가 없는데 지금 밥이 넘어가? 아기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응석만 늘어선. 골치 아프군.”

벨키오르는 은새처럼 요령 좋게 아기를 돌볼 줄 몰랐다. 그냥 마법으로 재울까 하다가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그녀는 지금 그녀 몸에 파고든 저주를 없애러 갔다.”

“…….”

“오래 안 걸릴 거다. 너도 그녀가 아프지 않은 게 좋을 테니.”

아기가 입을 삐쭉였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한동안 은새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기가 힘없이 딸랑이를 흔들었다. 그러다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벨키오르의 시선은 줄곧 은새가 들어간 방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뭔 짓을 하길래…….’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보지 못하니 시간이 더욱 더디게 흘렀다.

벌컥!

“다 끝났어!”

벨키오르가 스윽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이 올곧게 산체스의 뒤를 향했다.

“야, 야.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반려부터 챙기는 거냐?”

“수고했다.”

“앓느니 죽지. 죽어. 저주는 무사히 파훼됐어. 물론 머리카락 하나 상한 곳 없이.”

벨키오르가 산체스가 나온 방으로 들어갔다. 은새는 카펫이 깔린 바닥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벨키오르의 눈초리가 대번에 사나워졌다.

“정말 멀쩡한 거 맞나?”

“그렇다니까 그러네. 확인해 보든가.”

그가 은새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금색 마력이 피어올랐고 그녀의 몸에 저항 없이 스며들었다.

“……깨끗하군.”

“내 실력을 뭐로 보고. 대가는 뭘 줄 거야?”

산체스가 의자에 기대앉으며 히죽거렸다. 드래곤의 거래에 따른 대가는 엄준하다.

“뭘 원하지?”

“서대륙의 아마시스 땅. 그거 나 줘.”

벨키오르가 미간을 설핏 찌푸렸다.

“그 땅으로 뭐 하게?”

“뭐 하긴. 끝내주는 별장 하나 지으려고 그러지. 나도 말년에 풍경 좋은 곳에서 동족들이랑 즐기면서 살고 싶다고.”

별거 아닌 이유였다.

“가져라.”

“오, 쿨한데.”

산체스가 신이 나서 몸을 들썩였다. 벨키오르는 잠든 은새를 품에 안아 들었다.

여기에 더 있어 봤자 속 터지는 소리나 들을 테니 돌아갈 셈이었다.

“뭐야, 가게? 깨어나려면 시간 좀 걸릴 텐데.”

“부작용은 없는 거겠지?”

“당연, 당연. 아, 저주 내성이 생겼을 수는 있겠다.”

“그건…… 잘됐군.”

벨키오르는 한쪽 팔에는 은새를, 다른 팔에는 아기를 안아 들고 은새의 마수까지 알뜰하게 챙겼다.

“와…… 너 그러니까 진짜 애 아빠 같네.”

“허튼소리.”

레어 앞까지 산체스가 졸졸 쫓아 나왔다. 그녀가 팔짱을 끼고 벽에 몸을 기댔다.

“벨키오르. 너무 늦으면 안 돼.”

“뭐를?”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니 되도록 일찍 자각하도록 해.”

벨키오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산체스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참. 요즘 드래곤 슬레이어 놈들이 설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드래곤 슬레이어?”

용살자. 역사 속에서 그들은 인간들의 영웅이었으며 용사였다. 유유자적 살다가 척결의 대상이 되는 드래곤들과는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그래 봐야 인간 아닌가.”

“반신 놈이 하나 끼어 있어서 골치라는데…… 하여튼 알고 있으라고. 잘 가!”

배웅은 거기까지였다. 벨키오르는 세계수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 아이는 이제 괜찮니?]

머릿속을 파고든 목소리에 벨키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겠다. 세계를 넘는 데 부담이 될 테니 정신을 잃고 있을 때 해치우는 게 낫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데려오렴.]

세계수가 가지를 흔들었다. 벨키오르는 은새의 집으로 좌표를 잡았다.

***

마력이 걷히고 벨키오르는 은새의 집 뒤뜰에 서 있었다. 집 안에서 낯선 인기척이 여럿 느껴졌다.

“헉!”

갑작스레 느껴진 강한 힘의 파장에 놀라서 뛰어왔던 도천 길드의 헌터들이 벨키오르와 그 품에 안긴 은새를 보고 경악했다.

첫째로 인간 같지 않은 외모의 벨키오르를 보고 말문이 막혔고, 둘째로 무기력하게 쓰러진 S급 헌터 은새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웬 아기?

“누, 누구…….”

“그대야말로 누구지?”

“도천 길드의 A급 헌터 박도윤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얼이 빠진 길드원을 밀치고 박도윤이 나섰다. 그는 날카롭게 기감을 세우고 낯선 사내를 경계했다.

“됐으니 이만 물러가라. 이 아이는 지금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태이니.”

“당신이 유은새 헌터를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그대들의 우두머리에게 확인해 보는 게 좋겠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벨키오르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에 길드원 하나가 박도윤에게 달려들 듯 질문했다.

“어, 어떡합니까, 박도윤 헌터?”

“기다려.”

그는 해외 출장 중인 한우리 대신 부길드장 최미리내에게 전화했다. 심각한 상황인 줄 알고 다급하게 보고했으나 미리내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감격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정말? 은새가 돌아왔어?

“예? 예……. 어떻게 할까요? 제압할까요?”

-아, 괜찮으니 내버려 둬. 그만 철수해. 수고했어.

뚝 끊긴 전화를 박도윤이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머리를 가볍게 털고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철수한다.”

“예? 유은새 헌터를 저대로 두고요?”

“부길드장님의 지시다.”

은새의 집을 떠나는 길드원들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지? 누군데 유은새 헌터와 긴밀해 보이지? 부길드장님은 어째서 그냥 놔두라고 하시는 거야?

한국에 저런 헌터가 있었나? 아니, 저 얼굴이 인간이 맞긴 해? 아, 뒤돌아서니 얼굴이 생각 안 나……. 빛이 났다는 것밖에는.

벨키오르는 멀어지는 기척을 느끼며 은새와 아기를 침대 위에 올려 두었다. 백합이가 침대 한구석에 똬리를 틀었다.

그는 흘러내린 은새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얗고 말간 얼굴.

‘반려…….’

정녕 그녀에게 단호해지지 못하는 게 반려이기 때문일까. 이렇게 스며들듯이 익숙해지는 것도 그녀가 반려이기 때문에.

그때 밖에서 거슬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벨키오르가 밖으로 나갔다.

기척을 잘 감추었지만 드래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는 위압감을 뿜어냈다.

“돌아가라고 했을 텐데? 계속 근처를 어슬렁거리겠다면 참지 않겠다.”

상대방이 움찔 몸을 떨었다. 벨키오르의 금색 눈이 줄곧 한곳을 응시하자 모습을 숨기고 있던 자는 빠르게 거처에서 멀어졌다.

백찬민 길드장의 지시로 은새의 집을 감시하던 임이석 헌터는 기겁했다.

‘말도 안 돼. 유은새 헌터에게 남자가 있었다니! 게다가 아이까지!’

범상치 않은 남자였다. 은신술을 꿰뚫어 볼 뿐만 아니라 기백이 남달랐다.

만약 임이석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면 분명 사달이 났을 터였다. 생존 본능이 그를 살렸다.

S급 헌터일까? 저만한 실력자가 여태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고?

온갖 상념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는 일대를 벗어나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무슨 일이지?

육재희 부길드장이었다. 임이석은 낮고 빠른 목소리로 그가 본 것을 보고했다.

“유은새 헌터에게…… 남자가 있었습니다. 얼굴이 알려진 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는 확실합니다.”

-뭐?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내겠습니다.”

사진 전송까지 마친 임이석은 이 사실이 보도되었을 때 미칠 파급력을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대범한 짓을 벌였는지도.

“도천이 난리가 나겠군.”

***

중국 측의 당려화 헌터가 채찍을 휘둘렀다. 원숭이와 비슷한 얼굴, 얼룩무늬가 또렷한 다리, 뱀처럼 긴 꼬리를 가진 마수가 가늘고 높은 소리를 내질렀다.

유길선이 소리쳤다.

“주위룡! 못 도망가게 해!”

이능으로 신체를 강화한 주위룡 헌터가 포환처럼 날아가 마수의 뒤를 쳤다. 유하가 쏜 화살이 거대한 몸체에 후두둑 날아가 박혔다.

마수는 끝까지 반항했다.

칭천화 헌터가 양손검으로 마수의 몸에 상처를 냈다. 그사이 검은 연꽃을 개화한 우리가 마수의 팔다리를 묶었다.

솔의 불꽃 창이 마수의 흉부를 관통했다. 마수가 고통스럽게 포효했다.

진아소 헌터가 만들어 낸 빙화가 마수의 숨을 완전히 끊어 놓았다. 헌터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동안 마수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마침내 거대한 마수가 쿵, 몸을 쓰러트렸다. 함성이 터져 나왔다.

82시간 만에 S++급 던전 공략이 완료되었다. 쪽잠을 자며 버틴 헌터들의 표정이 밝았다.

우리는 유길선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유길선이 웃으며 우리와 악수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멋진 활약이었습니다.”

“한우리 길드장이야말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셨더군요. 역시 한국 랭킹 1위다운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헌터들이 던전 밖으로 나왔다. 우리와 유길선이 대표로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이틀간 푹 쉬고 셋째 날에, 무사히 공략을 마친 것을 기념해 축하 파티가 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세팅한 도천 길드원들이 청화 길드가 소유한 호텔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차려입은 솔은 주변에서 말을 거는 것도 무시한 채 연회 음식을 맛보기 바빴다.

그 옆에서 유하가 그 많은 게 다 어디로 들어가냐며 타박해도 소용없었다.

샴페인을 홀짝거리는 우리에게 유길선과 진아소가 다가왔다. 지루한 기색을 지우고 우리는 재벌가 자제로서 교육받은 그린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파티는 즐기고 있습니까?”

“배려해 주신 덕분에 충분히.”

그들은 국제 정세와 던전 이슈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유길선이 문득 질문했다.

“레이드 보상 내역 중에 마수의 알이 있는데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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