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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23)화 (23/190)

22화 – 쟤네 낌새가 되게 수상하다

“뭐를요?”

“지금 가려는 곳은 인간이 버티기 힘든 곳이야. 그러니 준비를 해야지.”

벨키오르가 아기를 안고 있는 은새의 입에 환약 같은 동그란 무언가를 밀어 넣었다. 뭔지도 모르고 은새는 받아먹었다.

우물우물……. 풀 향이 강하게 났다. 다 씹어 삼킨 뒤에야 은새가 그것의 정체를 물었다.

“이게 뭐예요?”

“내환연단. 기력을 보하고 신체 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방하는 영약이다.”

“그런 마법 같은 게 있어요?”

“그리고.”

벨키오르가 은새의 이마에 마력으로 그림을 그렸다. 자세히 보니 마법진이었다.

“용암의 열기와 유해한 주변 환경으로부터 그대를 보호해 줄 거다.”

“용암…… 저희가 가려는 곳이 화산이에요?”

“그래. 내 동족의 레어야.”

은새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벨키오르의 동족이라고 하면 드래곤일 것이다.

또 다른 드래곤……. 어떻게 생겼을까? 벨키오르처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얼마나 강할까?

궁금증과 기대감이 차올랐다. 상기된 은새의 표정에 벨키오르가 잔소리를 했다.

“그대는 저주를 없애러 간다는 자각이 없나?”

“아, 맞다. 그분이 도와주시는 거예요?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그런 것보다…… 됐어. 그대가 이런 성격인 걸 잊고 있었다.”

벨키오르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세계에 와서도 은새는 대범하고 해맑았다.

벨키오르는 강하지 않은 손길로 은새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들의 발밑에 공간 이동 마법진이 펼쳐졌다.

[다녀오렴.]

“다녀오겠습니다!”

은새가 아기 손을 잡아 들어 올리며 씩씩하게 인사했고 벨키오르가 고개를 까딱했다.

일행이 빛에 휩싸였다.

“와…… 진짜 화산이네요.”

주위를 둘러본 은새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보호막이 발동되고 있었으나 훅 끼치는 뜨거운 열기와 고약한 냄새.

던전에서도 화산 지형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깊숙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레어에 들어가기 전 벨키오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 동족이 무슨 소리를 하든 흘려듣거라. 헛소리하는 데 특기가 있는 이이니.”

“네!”

은새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S급 헌터들조차 당해 내지 못한 드래곤이었다.

자연계 최상위 포식자. 그들에게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일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은새에게 호의적인 벨키오르가 특이한 것이었다. 은새는 다부진 표정으로 레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머, 어머, 어머, 진짜 인간 여자야!”

은새가 가장 먼저 들은 말이었다.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눈앞의 아름다운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은새가 입을 틀어막았다.

‘드래곤은 다 예쁘고 멋지구나…….’

밤하늘을 닮은 쪽빛의 머리카락. 굴곡진 몸을 감싼 발목까지 오는 검은색 드레스.

쭉쭉 뻗은 팔다리는 낭창했고 커다란 눈동자는 루비를 박아 넣은 듯 반짝였다.

절로 눈길이 가는 외모였다. 그녀의 동공이 파충류처럼 샐쭉 가늘어졌다.

“네가 벨키오르가 말한 인간이구나! 이름이?”

“유, 유은새라고 해요…….”

“품에 안아 든 건 벨키오르의 아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 너 혹시 드래곤이 좋아하는 향수라도 뿌렸니? 해츨링이 남의 손을 타는 경우는 잘 없는데.”

산체스가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아기가 처음 보는 강한 존재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백합이가 겁을 먹고 은새의 옷 안으로 파고들었다. 당황한 은새는 벨키오르를 쳐다봤다.

벨키오르가 은새에게 바짝 접근한 산체스의 머리를 밀어냈다.

“이쪽은 산체스다. 비술의 드래곤.”

“그래!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어. 벨키오르의 반려!”

“네? 반려요……? 누가요?”

“헛소리다. 산체스, 그 입 닥쳐.”

벨키오르가 힘을 방출하며 으르렁거렸다. 산체스는 능숙하게 위협을 흘리고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직 아니야? 그래, 알겠어. 후후훗!”

은새는 어리둥절했다. 생각보다 유한 산체스의 반응도 그렇고 그녀가 하는 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라크네의 저주에 걸렸다고 했지? 어린 게 가엾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해치우자. 해츨링은 저쪽, 너는 이쪽. 어머, 귀여운 마물이네? 그런데 방해돼. 인간만 나를 따라와.”

산체스는 은새에게서 아기를 뺏어 벨키오르에게 안기고 백합이 역시 벨키오르에게 던졌다. 손목이 붙잡혀 끌려가면서 은새는 뒤를 돌아봤다.

“후앵, 마! 아부부부, 흐앙!”

아기가 울먹거렸다. 벨키오르의 머리에 똬리를 틀은 백합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문득 그 광경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새가 붙잡히지 않은 손을 흔들었다.

“금방 다녀올게. 조금만 기다려.”

산체스는 은새를 데리고 커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쾅! 문이 닫히며 외부와 내부가 격리됐다.

은새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낯선 드래곤과 단둘뿐이었다.

그녀의 긴장이 무색하게 산체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우선 차 한잔할까?”

“네? 차요?”

“처음 만났는데 기본적인 절차라는 게 있잖니. 후후.”

그녀의 손짓에 테이블과 의자가 세팅되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티포트가 날아와 찻잔에 쪼르르 차를 따랐다.

은새는 신기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천년지기 친구를 만난 것처럼 산체스가 수다를 떨었다.

“벨키오르가 처음 네 얘기를 했을 때는 믿지 않았단다. 저 결벽스러운 놈이 여자를? 그것도 인간 여자와? 동족들이 다 말도 안 된다고 했지. 하지만 정말 그가 너를 데리고 왔구나.”

“하하…… 그런가요.”

은새는 머리를 갸웃했다. 결벽스러워? 벨키오르가?

산체스가 과장되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는지 모르겠는데 벨키오르가 저 나이 먹도록 반려를 찾지 못해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단다. 혼자 늙어 죽는 드래곤이라니! 부끄러워라! 그래도 이제라도 만났으니 다행이야. 응, 벨키오르를 잘 부탁해.”

“저, 반려라는 게 뭔가요?”

“드래곤의 짝. 영혼의 반쪽. 세상의 중심. 그리고 너.”

“저요? 제가 왜…… 벨키오르 님은 그런 말씀 안 하셨는데요.”

산체스가 손끝으로 첨탑을 세우며 의뭉스럽게 웃었다. 그녀는 신탁의 드래곤 아케이아와 나눴던 대화를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벨키오르 저놈도 긴가민가한 모양이지. 처음이라 더 헷갈릴 거야. 얘, 인간아. 네가 이곳에 왔다는 것만으로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단다. 한낱 인간의 저주를 풀고자 동족에게 도움을 청한다? 너는 드래곤이라는 종족을 모르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라.”

드래곤은 이기적이었다. 게다가 오만했다.

그들은 결코 희생하거나 협력하지 않는다. 고고한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벨키오르의 최근 행보는 수천 년간 그를 봐 온 동족이라면 놀라 뒤로 자빠질 만큼 파격적이었다.

반려가 아닌 이와 손 닿는 것도 싫어서 세계수의 정수로 후계자를 낳은 벨키오르였다. 본인은 그저 변덕을 부리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거겠지, 눈앞의 이 인간 여자에게. 산체스는 자신이라도 아둔한 동족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시렴. 몸에 좋은 약재들로 우린 차란다. 건강에 좋아.”

산체스가 찻잔을 밀어 주며 독촉했다. 은새가 허겁지겁 찻물을 입에 담았다.

‘윽, 써…….’

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은새는 어색하게 웃으며 찻잔을 비웠다.

“잘 마셨습니다. 이제 뭘 하면 되나요?”

“아무것도. 너는 그냥 한숨 푹 자면 돼.”

순간 은새의 시야가 핑글 돌았다. 수마가 덮쳐 왔다.

잠들기 직전 어렴풋하게 산체스의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잘 자렴. 좋은 꿈 꾸고.”

***

“내가 유은새 때문에 못 살아. 이 사고뭉치!”

수일째 연락이 안 되는 핸드폰을 붙들고 솔이 분통을 터트렸다. 옆에서 유하가 해탈한 표정을 지었고, 우리가 애니멀테라피로 마수 하늘이의 목을 쓰다듬었다.

“먼저 연락 올 때까지 내버려 둬. 어쩔 수 없잖아.”

“나는 그 드래곤 마음에 안 들어. 왠지 저러다 은새 달랑 납치해서 자기네 세계로 튈 것 같은 느낌이라고.”

“설마……. 아무리 은새가 맹해도 순순히 당하진 않겠지.”

그들은 현재 중국 후난성에 출장을 와 있었다. 부길드장인 미리내와 인찬은 한국에 두고 우리와 솔, 유하, 그리고 A급 헌터 오향기와 배진혁 등이 동행했다.

마수는 하늘이만 데려오고 나머지는 길드에 데려다 놨다. 은새의 집은 길드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A급 헌터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우리가 박수를 쳐 주의를 집중시켰다.

“오늘 실수하지 말고 잘하자. 중국 헌터들한테 얕보이지 말아야지.”

오늘 그들이 공략할 던전은 S++급이었다. 현재 중국에선 고등급 던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었고 그만큼 하이랭커 헌터의 인력이 부족했다.

사실 헌터의 수가 부족하다기보다는 길드 분쟁과 정치 싸움 때문에 공략이 지연되고 있다는 게 맞았다.

일행은 차를 타고 던전 발생지로 이동했다. 먼저 와 있던 청화 길드의 헌터들이 도천의 길드원들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한우리 길드장.”

“유길선 길드장, 안녕하십니까.”

대화는 중국어로 이루어졌다. 이번에 차출된 길드원 대다수가 중국어를 할 줄 알았다.

“어려운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어서 기쁩니다.”

“다른 곳도 아닌 청화 길드의 의뢰인데요. 마땅히 와야지 않겠습니까?”

우리와 유길선이 악수를 하며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었다. 도천 측의 얼굴들을 확인한 유길선이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런데…… 유은새 헌터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번 일정에서도 빠지고, 대내외적으로 통 모습을 보이지 않는군요.”

“유은새 헌터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헌터 활동을 쉬고 있습니다. 조만간 상황을 봐서 복귀할 듯합니다.”

그때 유길선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는 턱을 매만졌다.

“그런가요……. 부디 심각한 일은 아니길 바랍니다.”

“염려 감사합니다.”

유길선이 헌터들을 모아 두고 레이드 방향에 대해 간략한 발표를 했다.

솔이 슬금슬금 다가와 우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야. 길짱. 쟤네 낌새가 되게 수상하다. 지들이 뭔데 유은새의 안부를 물어?”

“조용히 해.”

“유은새를 콕 집어서 지명했을 때부터 이상했어. 분명 뭔가 있다. 보상에 웬 괴상한 마수 알을 준다고 하고.”

“있긴 뭐가 있어. 너나 가만히 좀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찝찝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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