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20)화 (20/190)

19화 – 씨를 말려 주겠어

[유은새: 우리야, 벨키오르 님이 보자고 하시는데 언제 시간 돼?]

[한우리: 당장 갈게.]

우리는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강원도로 향했다. 가는 동안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그 드래곤이 방법을 찾아냈을까?’

부디 그러길 바랐다. 막상 갔는데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절망스러울 것 같았다.

‘저주 하나 파훼하지 못하는 게 무슨 드래곤이야.’

우리는 아랫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온갖 상념이 그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나 왔어.”

“어서 와, 우리야.”

정신없이 은새의 집으로 달려온 우리는 눈으로 벨키오르를 찾았다. 무표정을 한 벨키오르가 머리를 까딱했다. 밖으로 나오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마당으로 갔다. 우리가 성급히 질문했다.

“방법을 찾았습니까?”

“저 아이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지?”

“……네?”

‘저 아이’라는 호칭이 낯설어 우리는 순간 버벅거렸다. 은새를 말하는 거…… 맞지?

우리의 눈빛이 기묘해졌다. 하지만 그는 결연히 대답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방법이 아주 까다로워. 할 텐가?”

“물론입니다.”

벨키오르가 턱을 쓸어내렸다. 그는 우리가 할 일과 자신이 할 일을 나누었다.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으니 단순노동도 열심히 하겠지.

“다른 건 됐고 타란튤라의 원혼 100개. 그리고 무당강시거미의 알만 구해 오도록.”

“네? 거미 마수…… 말하는 겁니까?”

“그래. 이곳에도 있겠지?”

“그렇긴 한데.”

우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당강시거미의 알은 얼마나……?”

“되는 대로 많이.”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타란튤라와 무당강시거미 모두 A급 마수.

잡기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구해 오라는 품목과 개수가 만만치 않았다.

‘타란튤라의 원혼은 던전 3개를 공략했을 때 확률적으로 1개에서 2개 정도가 나온다. 그런데 100개? 국내 던전 전부를 격파해도 불가능해. 외국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그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무당강시거미의 알 역시 마찬가지……. 수컷이 던전 보스인 경우엔 아예 꽝이다. 게다가 산란기도 아니니.’

어차피 우리가 내놓을 말은 하나였다.

“하죠. 하겠습니다.”

“기한은 되도록 빠르면 좋겠군.”

우리가 이를 악물었다. 까다롭지만 방법을 몰랐을 때보다 지금이 나았다.

‘은새야 조금만 기다려.’

길드로 돌아간 우리는 동료들을 소집했다. 밤늦게 불려 나온 솔과 유하가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미리내는 미리 언질받은 게 있어서 굳은 표정이었고 인찬은 소처럼 눈을 끔벅였다.

복잡한 속내를 감추고 우리가 담담히 말했다.

“은새의 저주를 없앨 방법을 찾았어.”

“뭐? 어떻게?!”

투덜거렸던 게 언제인 양 솔이 귀를 쫑긋했다. 우리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드래곤한테 도움을 요청했어. 그는 아무래도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을 테니까.”

“와, 역시 길짱! 믿었다구!”

“그가 어떤 대가를 요구했어?”

미리내였다. 길드의 두뇌답게 그녀는 이 일의 내막을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하지만 내가 감당할 거야.”

“…….”

“그러니까 너희는 신경 쓰지 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같이 책임져야지.”

유하가 불퉁하게 그의 말을 가로챘다.

“은새에 관한 일인데 길짱 혼자서 책임지는 건 부당하지. 설마 드래곤이 우리를 죽이기야 하겠어? 대련할 때도 봐주면서 하더만.”

“그건 그래.”

인찬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미안했다.

그가 더 말하려는 그때 솔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안달을 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나중에 일어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주를 풀려면 우리가 뭘 해야 해? 빨리 말해. 나 숨넘어가겠어.”

“쉬지 않고 던전을 공략해야 해. 한…… 넉넉잡아 500개쯤?”

“뭐?!”

우리가 먼 곳을 바라봤다.

“타란튤라의 원혼 100개. 그리고 무당강시거미의 알 될 수 있는 대로.”

잠시 생각해 본 미리내가 우리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국내 던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한 달 후에 중국 출장도 있으니 바쁘겠네.”

“거미라! 무조건 때려잡으면 되는 거니까 쉽네. 아주 이 땅에서 씨를 말려 주겠어.”

솔이 의지를 불태웠다. 그날부터 도천 길드 배 거미 대학살의 시대가 열렸다.

***

[익명 게시판] 요새 ㄷㅊ 왜 저래?;;

(기사 링크)

기사 요약: 도천 S급들 다른 던전 다 재치고 거미 나오는 던전만 깨부수고 있음.

등급 상관없이;;

이쯤 되면 거미한테 원한이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

댓글(516개)

⤷타란튤라 나오는 던전에 우리가 모르는 보물 숨겨져 있음? 왜 저래.

⤷기이하다 기이해.

⤷나 뉴비 헌터인데 내가 참가하려던 던전 도천이 가로챔ㅠ 무당강시거미 나오는 데였거든...

⤷⤷야 너두? 나두ㅇㅇ

⤷⤷⤷헐~ 대형 길드라고 이래도 됨? 이건 횡포지.

⤷⤷⤷⤷괜찮음ㅋ 도천에서 보상 빵빵하게 줬거든. 다른 던전으로 토스해줌

⤷야야. 국내뿐 아니라 외국으로도 나가려는 모양인데?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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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일보][단독] 도천 길드 한우리, 최미리내, 김유하 헌터 싱가포르로 출국…… 남궁솔, 서인찬 헌터 필리핀으로 출국.

댓글(119개)

⤷???? 님들 어디 가요? 설마 거미 잡으러 외국까지 가는 거야?

⤷S급 헌터들의 못 말리는 거미 사랑...

⤷이거 자세히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분명 뭔가 있음.

⤷hoxy... 유은새 헌터가 거미 마수 갖고 싶다고 한 거 아님?ㅋㅋ

⤷⤷아니 그렇다고 해도 저건 선 넘었지. 거미 마수 100마리 키울 거 아니면.

⤷대체 타란튤라랑 무당강시거미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거야??

***

벨키오르는 망망대해 한복판에 있었다. 새파랗다 못해 어두운 바다 위.

보이는 것은 물결치는 바다와 눈이 부시게 청명한 하늘뿐이었다.

“직접 사냥에 나선 것은 오랜만인데.”

벨키오르의 동공이 샐쭉 가늘어졌다. 그는 물을 투과해 크로노스의 흔적을 찾았다.

크로노스는 해저에 사는 마물이었다. 혹등고래와 비견되는 크고 길쭉한 몸체, 사나운 이빨, 꼬리에 달린 철퇴 같은 가시.

바다의 무법자라고 불리는 포악한 성질머리까지.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상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닷속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금색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의 몸이 마력에 감싸였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띤 하늘색의 비늘.

콰지직 소리를 내며 등에서 날개가 돋았다. 펄럭거림 한 번에 바다 위로 파도가 쳤다.

햇빛을 받은 거대한 몸체가 부드럽게 하늘을 유영했다. 웅장하고 다채롭다. 누군가 본다면 눈을 뗄 수 없을 장관이었다.

오랜만에 본 모습으로 돌아온 벨키오르가 기지개를 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펴니 한눈에 다 담기도 어려웠다.

크오오오……. 자연을 관장하는 드래곤의 등장에 하늘과 바다가 떨었다.

이런 일이 익숙한 그는 지체하지 않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같은 귀여운 소리가 아니었다.

태풍이 이는 것처럼 바다가 뒤집어졌다. 드래곤은 쭉쭉 헤엄쳐 깊은 어둠 속, 해저 동굴에 도달했다.

살기를 감지한 크로노스가 꿈틀거렸다. 크롸? 크로노스가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었다.

드래곤은 냅다 크로노스의 목덜미를 물어 버렸다. 크롸롸롸! 열받은 크로노스가 몸을 비틀었다.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크로노스는 강력한 이빨과 꼬리의 가시로 드래곤을 공격했다.

아무리 최상위 포식자 드래곤이어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크로노스는 눈물 나게 억울했다.

바닷속을 홀로 유유히 살아가던 크로노스는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부글부글 열이 뻗쳤다. 크로노스는 죽기 살기로 있는 힘껏 반항했다.

꼬리의 가시가 드래곤의 비늘에 상처를 냈다. 드래곤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크로노스의 목을 조르는 악력이 거세졌다. 물보라가 시야를 방해해도 드래곤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았다.

피가 낭자했다. 피 냄새를 맡고 상어가 접근했다가 드래곤의 기운에 놀라 도망갔다.

씩씩거리는 크로노스를 보고 드래곤이 낮게 읊조렸다.

[그만 포기해라.]

결말이 정해진 승부였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인정할 수 없었다.

크롸-!

크로노스의 입에 에너지 덩어리가 뭉쳤다. 그것이 쏘아지기 직전 드래곤은 한숨을 쉬었다.

[성가시게 하는군.]

드래곤은 단전에 힘을 줬다. 크로노스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브래스가 그의 입에서 뿜어졌다.

축 늘어진 크로노스의 사체를 물고 드래곤이 물 밖으로 나왔다. 드래곤은 사람이 안 사는 섬 해변가에 사체를 내동댕이쳤다.

드래곤이 푸르르 물기를 털었다. 그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화하자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물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땅에 내려섰다.

[벨키오르 님, 성공하셨군요!]

“듀. 판도라꽃은 찾았나?”

[물론이에요. 레아탄 협곡에 훼손되지 않은 꽃밭이 있었어요. 안내해 드릴게요.]

듀는 가고일 족으로 벨키오르의 수족이었다. 듀는 벨키오르를 도와 크로노스의 사체를 해체했다.

필요한 것만 취한 벨키오르는 곧장 레아탄 협곡으로 향했다. 판도라꽃밭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풍요의 드래곤 님이 도와주셨어요!]

“하필…….”

벨키오르가 인상을 찡그렸다. 풍요의 드래곤, 몬텔라는 피곤한 인사였다.

이미 드래곤들 사이에는 벨키오르가 말년에 인간 여자를 가까이하고 있다는 소문이 쫙 돈 상태였다. 산체스의 짓이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몇 번을 말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도움을 준 것을 핑계로 몬텔라가 얼마나 귀찮게 굴지 벌써 넌더리가 났다.

공간 이동 마법을 몇 번 발동하니 레아탄 협곡에 금세 도착했다. 건조한 돌풍이 하늘색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구불구불한 실선을 그리는 거대한 협곡 아래 메마른 강바닥이 보였다. 빽빽하게 자란 야생 풀과 쓰러진 나무, 우거진 덤불 등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드래곤과 가고일의 등장에 야생동물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났다. 듀가 앞장섰다.

[이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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