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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7)화 (17/190)

16화 – 황새는 참지 않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벨키오르는 조소했다.

“오만한 말이군.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라.”

“…….”

“내가 어떤 것을 요구할지 알고. 드래곤과의 거래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하는 말인가?”

갑작스레 덮친 한기에 우리는 오싹했다. 모른다. 이 세계에는 드래곤이 없으니까.

하지만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하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안 떨어지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저나 다른 이들에게는 가혹할지언정 은새에게는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왜. 그녀가 내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지켜보셨으면 알겠지만 다정한 친구입니다. 사심 없이 진심으로 아기를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족은 다르더라도 지성체인 당신이라면 도리를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방지구나.”

벨키오르에게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우리는 혀를 깨물어 간신히 버텼다.

한참 뒤 벨키오르가 마뜩잖다는 어조로 말했다.

“……생각해 보지. 단, 그대가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우리는 한숨 놓을 수 있었다. 그의 등이 식은땀으로 푹 젖었다.

우리는 무미건조한 벨키오르의 얼굴을 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제발, 부디. 그가 은새를 살려 주기를.

돌아온 벨키오르와 우리를 보며 은새가 질문했다.

“무슨 얘기 하셨어요? 우리 안색이 파리한데.”

“별거 아니야. 초밥 먹었어?”

“응. 아기랑 놀아 주면서 하나씩 집어 먹었지.”

“일부러 먹기 편한 거 사 오기는 했지만 진짜냐……. 평소에 잘 좀 챙겨 먹어.”

“걱정 마셔. 시간 늦었는데 자고 갈래?”

“아니야. 길드에 일이 있어서.”

우리는 금방 돌아갔다. 은새가 아기를 재우며 벨키오르의 눈치를 봤다.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가 우리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까 봐 걱정됐다. 결국 역성을 들고 말았다.

“먼젓번에 버르장머리 없게 굴긴 했어도 착한 친구예요.”

“됐다. 서로 똑같은 말을 하는군.”

“엥. 우리가 그래요?”

벨키오르는 한숨을 내쉬고 자리를 떴다.

***

황새는 산책 중이었다. 목청 높여 까악까악 노래를 부르며 강원도 산천을 노닐었다.

황새 나이 세 살. 한창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였다.

황새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구경했다. 때로는 암석이 가득한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이끼로 뒤덮인 나무 밑동을 뒤져 벌레를 잡아먹기도 했다.

하얀 거품을 만들며 부서지는 폭포수에 목욕할 때도 있었고, 야생동물 발자국을 따라가며 어떤 동물일까 상상하기도 했다.

개울가에 앉아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을 때였다. 황새의 예민한 청각에 인간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오,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마수들 피하려고 별짓을 다 한다.”

“참아. 잘하면 특종거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인간? 인간이라고?

황새의 까만 눈동자에 반짝 호기심이 깃들었다. 황새는 인간을 본 경험이 적었다.

은새가 사는 이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엄금되어 있었다. 테이밍되어 있다곤 하나 마수는 위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년 전쯤부터 은새가 칩거하면서 경비는 더더욱 강화되었다. 호기심을 갖는 인간들이 쓸데없이 늘어난 탓이었다.

황새는 훌쩍 날아올라 나무 위로 올라갔다. 숨소리를 죽이고 인간들이 오길 기다렸다.

“유은새는 대체 뭘 하길래 집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는 거야?”

“결혼했다는 소리도 있고 건강 악화라는 소문도 있던데.”

“결혼? 누구랑?”

“모르지. 한국인이었으면 말이 안 나왔을 리 없고 외국인 아닐까? 유은새가 돌아다닌 나라가 좀 많아?”

“와. 유은새랑 결혼했으면 땡잡은 거네. 돈 개많이 벌었을 텐데.”

남자들이 낄낄댔다. 황새는 다른 말을 몰라도 주인의 이름인 ‘유은새’는 알아들었다.

그들의 태도에서 비우호적인 느낌을 받았다. 황새는 기분이 나빠졌다.

마수 누나, 형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계는 꼭 부수고 인간은 내쫓아야 한다고 한 게 이해가 됐다.

저들이 은새에게 해를 끼치리란 본능적인 감이었다. 황새는 조금만 더 남자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건강 악화는 뭐, 진짜라면 대박이지만 도천이 가만두고 볼까? 한우리 길드장이며 S급들이 엄청 싸고돌더만. 도천의 공주님이잖아.”

“야, 이건 비밀인데.”

카메라를 목에 건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과장되게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한다.

“얼마 전에 한우리 길드장이 비밀리에 일본으로 출국했다는 소리가 있어.”

“왜?”

“유은새 때문에. 유은새가 던전에서만 발병하는 희귀한 병에 걸렸고 한우리 길드장이 미친 듯이 치료제를 찾고 있다고.”

“헐~ 팩트임? 대박 특종.”

“딱 갔는데 유은새 다 죽어 가는 얼굴이면 대박이겠다.”

마주치는 눈빛에 야비한 기색이 스쳤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드시 특종을 따내서 한몫 단단히 챙기겠다는 열망이 깃들었다.

모자를 쓴 남자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근데 골드스타도 웃겨. 이런다고 도천에 흠집이라도 갈 줄 아나?”

남자들은 골드스타 길드의 의뢰를 받아 이곳에 왔다. 유은새의 근황을 낱낱이 파헤쳐 달라는 내용이었다.

취재를 못 하면 만들어서라도 기사를 내라고 했다. 그러면서 거액의 돈을 제시했다.

“유은새 하나로 휘청거릴 도천이 아닌데. 다른 건 몰라도 S급들의 멘탈이 파사삭 하긴 하겠다.”

“그게 곧 실적으로 이어지겠지. 내버려 둬.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돼.”

“그건 그래.”

남자들은 헉헉거리며 산을 탔다. 점점 은새의 집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황새의 눈이 부리부리해졌다. 어떻게 겁을 줘야 저 인간들에게 멋지고 무서운 마수로 기억될까?

황새는 누나, 형들의 도움 없이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황새는 다 컸다.

이제 동생도 있고 스스로가 늠름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실전 경험이 없었지만 던전에 가면 훌륭하게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황새는 자신만만했다.

까아악!

일단 크고 우렁차게 우짖었다. 인간들은 마수의 울음소리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다.

바삐 걸음을 옮기던 남자들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들은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때 황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날아올랐다. 이 몸 등장!

“뭐, 뭐야? 마수다! 근데 좀 작은데?”

경악하던 남자들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은새의 파트너로 알려진 마수들은 죄 크고 사나웠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나타난 마수는 깃털을 부풀리기는 했어도 던전에서 흔히 보는 마수들보다 덩치가 작고 생김새가 귀여웠다.

황새는 콧대를 세웠다. 무섭지? 겁나 죽겠지?

까아악!

다시 한번 울음소리를 낸 황새는 본격적으로 ‘몰이’를 시작했다. 활강하듯 내려온 황새는 부리로 그들을 마구 쪼았다.

남자들이 펄쩍 뛰었다.

“으악! 야, 어디 가?”

“일단 튀어! 다른 마수까지 불러오면 골치 아파진다!”

남자들이 허둥지둥 내달렸다. 황새는 발톱을 이용해 그들을 할퀴며 점점 기슭 쪽으로 몰아갔다.

점점 산세가 험해졌다. 남자들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여긴 어디야?”

거친 암벽들 사이로 콸콸 쏟아지는 폭포. 그 아래 바닥이 가늠되지 않는 거대한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축축한 냄새와 비린내가 났다. 마수들이 가끔 와 목욕하는 곳이었다.

다음 순간 황새는 카메라를 목에 건 남자의 옷깃을 낚아채 그를 들어 올렸다.

“으, 으악!”

풍덩!

남자가 웅덩이에 내동댕이쳐져 머리까지 깊숙이 잠겼다. 그는 살려 달라고 허우적댔다.

까악깍깍깍!

황새가 바닥을 구르며 웃어 젖혔다. 모자를 쓴 남자의 표정이 공포로 물들었다.

황새가 슥 그를 돌아보았다.

“으악!”

마찬가지로 남자의 옷깃을 물어 물에 빠트렸다. 흠뻑 젖은 그들은 덜덜덜 떨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빠져나오려고 하면 다시 집어넣고. 또 빠져나오려고 하면 다시 집어넣고. 그게 반복되었다.

어느 순간 인간들은 도망치는 걸 포기하고 그 자리에 있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푸르릉.

까악?

익숙한 소리에 황새가 반응했다.

일각수 쿠키가 풀숲을 헤치며 걸어왔다. 쿠키는 물에서 허우적대는 인간들과 의기양양한 황새를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푸릉, 푸르릉.

까악, 까악, 깍.

두 마수가 대화를 나눴다. 저 인간들이 은새를 노리고 침입했고, 자신이 멋지게 해치웠다는 내용이었다.

쿠키가 황새의 얼굴을 핥았다. 칭찬이었다.

황새는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쿠키가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인간들에게 다가갔다.

푸르릉!

쿠키가 입으로 물어 인간들을 건져 올렸다. 남자들이 땅 위에 엎어졌다.

“콜록, 콜록!”

“흐아,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몸을 추스를 새도 없었다. 쿠키가 붉은 깃을 보고 흥분한 황소처럼 발을 굴렀다.

“어……?”

심상치 않아진 공기에 남자들이 긴장했다. 힘차게 달려온 쿠키가 그들을 머리로 들이받아 버렸다.

“아악!”

“살려 줘!”

쿠키의 박치기로 인해 멀리 나가떨어진 그들은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어디가 부러지고 긁히는지 그런 걸 신경 쓸 정신머리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엉덩이에 구멍이 나진 않았다. 쿠키에게 그 정도 자비는 있었다.

“으아아악!”

한동안 강원도 산천에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헌터뉴스K] 유은새 헌터 건강 악화 의심?

[오마이헌터뉴스] 하이랭커 헌터 A씨의 폭거…… 마수 방임 이대로 괜찮은가

쾅. 백찬민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고작 의심? 기사 이 따위로밖에 못 내!”

육재희는 뒷짐을 지고 선 채로 고개를 숙였다. 그도 기사를 확인했다.

고작 어그로 끄는 것 정도밖에 안 되는 찌라시였다. 돈이 아까웠다.

“이걸로는 논란거리도 안 돼. X발, 유은새는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이 집요한 놈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냔 말이야.”

백찬민이 은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한동안 사무실에 적막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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