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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3)화 (13/190)

12화 – 이 정도로 강하면 사기잖아!

집에서 얼마 떨어진 공터. 마수들이 쉬곤 하는 그곳에서 도천 길드의 핵심 멤버들과 벨키오르가 마주 보고 섰다.

은새는 아기를 안고 큰 나무 아래 서 있었다. 그녀 주위를 마수들이 에워쌌다.

하늘은 어느새 캄캄해진 상태였다. 마석으로 작동하는 아이템으로 사위를 밝혔다.

은새가 몸을 푸는 친구들과 무료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벨키오르에게 물었다.

“저,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당연하지!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

솔이 쭉쭉 몸을 늘리며 대답했다.

“맞아.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어?”

“이미 벌어진 일이니…….”

“은새 넌 심판이나 잘 봐.”

“왜 싸우는 거지…….”

자신감을 보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찬이 기가 죽은 얼굴로 방패를 매만졌다. 벨키오르가 고개를 까딱했다.

“그렇다는군.”

은새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마음 편히 대결을 관전했다. 양측 다 적당히 알아서 할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측은 자연스럽게 마수를 사냥하는 진형으로 섰다. 우리와 솔, 인찬이 전방, 유하가 중앙, 미리내가 후방이었다.

탱커인 인찬은 전방과 후방을 오가는데 오늘은 벨키오르의 전력을 모르기 때문인지 전방에 섰다.

삭막한 긴장감이 흘렀다. 은새가 말했다.

“첫째로 상대방의 목숨을 노리면 안 돼요. 기왕이면 자연 훼손은 지양해 주길 바라요. 둘째로 제가 멈추라고 하면 멈춰야 해요. 아시겠죠?”

“OK.”

“그러지.”

“그러면…….”

삐익! 은새가 마수를 부를 때 쓰곤 하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즉시 우리와 솔이 이능을 방출했다.

“남궁솔, 왼쪽!”

“라져!”

우리와 솔이 협공했다. 벨키오르의 양쪽에서 오러를 실은 검과 불로 만들어진 창이 찔러 왔다.

“…….”

벨키오르는 가볍게 뛰어올라 공격을 피했다. 다음은 유하의 화살이 폭격처럼 쏟아졌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벨키오르가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공간이 비틀리며 빛의 화살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저거 뭐야! 이게 말이 돼?”

“어떤 능력을 쓰는 거지?”

파티의 두뇌인 미리내가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그녀가 외쳤다.

“뒤틀린 성탑 던전 공략으로!”

“알겠어!”

솔이 불꽃을 키웠다. 우리가 팔을 그어 새카만 피를 뽑아냈다.

우리의 암혈에 솔의 불꽃이 더해졌다. 조금이라도 스치면 재도 안 남기고 사라질 강력한 무기가 생성되었다.

저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든 벨키오르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손끝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두 힘이 맞부딪쳤다. 콰과과과! 휘몰아치는 힘의 소용돌이에 일대가 쓸려나갔다.

먼지가 가라앉기 전 인찬이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고 앞에 나섰다.

깡! 콰직. 벨키오르가 할퀸 자국 그대로 방패에 흠집이 났다. 막지 않았으면 누군가 큰 부상을 입었을 뻔했다.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정말 마수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인찬이 치고 빠지고, 유하 집중타격!”

“한우리 고유 능력 개화해! 만유인력으로 어그로!”

“남궁솔 각개점화! 터트려!”

쉬지 않고 공격이 이어졌다. 우리와 솔이 맹공을 펼쳤고 유하가 미리내의 지시를 받아 틈새를 노렸다.

은새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지 않게 하려고 마수들이 몸을 던졌다. 은새는 아기가 놀라지 않게 등을 토닥토닥했다.

그녀는 공터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이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벨키오르가 우리를 공중에서 따라잡아 집어던졌다.

“크윽!”

땅에 처박힌 우리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솔이 벨키오르의 뒤에 나타나 창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그녀가 찌른 것은 허공이었다.

“어디 있어?!”

솔이 뒤를 돌아보기 전 척추를 쪼개는 것 같은 통증이 온몸을 덮쳤다. 솔이 비명을 지르다 으르렁거렸다.

“빌어먹을 드래곤.”

“말하는 게 상스럽군.”

걸레짝이 된 일행과 다르게 벨키오르는 머리만 좀 흐트러졌을 뿐이었다. 솔이 고유 능력 ‘투지’를 개화했다.

화홍염제라는 이명에 걸맞게 솔은 하나의 거대한 불꽃이 되어 벨키오르에게 덤벼들었다.

솔의 공격에 가속도가 붙었다.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수준이었다.

미리내의 버프가 더해지자 솔은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벨키오르가 솔의 뒷덜미를 잡아 땅으로 메쳤다.

그리고 마법으로 꽁꽁 옭아맸다. 움직이지 못하게 된 솔이 바락바락 외쳤다.

“이 정도로 강하면 사기잖아!”

“온실 속 화초로 주변의 떠받듦만 받으니 이 모양인 거다.”

모욕감에 솔이 씩씩거렸다. 유하의 화살이 날아와 그들 사이를 갈랐다.

벨키오르가 물러서며 혀를 쯧, 찼다.

“그 능력을 가지고 그렇게밖에 못 쓰다니 안타깝군.”

“뭐?”

벨키오르의 손에서 유하의 이능과 비슷한 것이 피어올랐다. 빛 덩어리는 유하와 인찬 사이에 떨어져 강력하게 회전하며 사방을 초토화로 만들었다.

흡사 갈퀴로 땅을 짓이기는 것 같았다. 유하가 질린 표정을 했다.

“헉, 헉, 헉…….”

벨키오르에게 가장 많이 얻어터진 우리는 힐이 소용이 없을 만큼 만신창이였다. 그가 피를 왈칵 쏟아 내며 비틀거렸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눈빛은 형형했다. 강한 상대를 향한 호승심, 열등감과 패배감,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 등이 넘실거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은새가 외쳤다.

“그만! 이제 그만해!”

“더할 수 있어!”

솔이 악을 질렀다. 피투성이가 된 인찬이 조용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입을 틀어막았다.

“읍, 읍, 읍!”

“……졌습니다.”

아랫입술을 깨문 미리내가 패배를 시인했다. 우리와 유하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비탄에 잠긴 미리내가 그들에게 다가가 힐을 했다. 상처는 나았으나 체력이 회복이 안 돼 일행은 한동안 멍하게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은새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괜찮아?”

“은새야, 너 다시 생각해 봐.”

미리내가 은새를 끌고 구석으로 갔다. 그녀의 눈동자에 걱정의 빛이 서렸다.

“봤으니 알겠지만 저 사람은, 아니 존재는 괴물이야. 그런데 혼자 같이 있을 수 있겠어?”

“응?”

“만약 수틀려서 널 해치기라도 하면…….”

눈을 깜박이던 은새가 배시시 웃었다. 은새가 한 팔로 아기를 안고 미리내의 등을 쓸었다.

“괜찮아. 그럴 분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착하고 순한 아기의 아버지인걸. 지금까지 별일 없이 지냈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은새가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아니면 잘 봐 달라고 매일 맛있는 거라도 바치지, 뭐.”

미리내가 긴장이 탁 풀려 헛웃음을 지었다.

“너는 아무나 잘 믿는 거 고쳐야 해, 진짜.”

“나 아무나 안 믿는데?”

세 살배기 마수 황새도 믿지 않을 소리를 늘어놓는 은새를 뒤로하고 미리내가 동료들을 챙겼다.

벨키오르가 먼지 묻은 옷을 탁탁 털었다. 은새가 그의 곁으로 갔다.

“제 친구들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됐다.”

금색 눈이 물끄러미 은새를 내려다보았다.

“맛있는 건 됐으니 가끔 노래나 불러다오.”

“네? 노래요? 아…… 미리내랑 한 말 들으셨어요?”

은새가 볼을 긁적였다. 벨키오르는 가타부타 말을 얹지 않고 집으로 먼저 돌아갔다.

***

쾅!

사무실 책상에 있던 집기가 나동그라졌다. 백찬민은 치솟는 화를 참지 못하고 이마에 힘줄이 솟아 떨어진 물건을 콱콱 밟았다.

백사자라고 불리는 젠틀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부길드장 육재희가 뒷짐을 진 채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남궁솔…… 남궁솔! 남궁솔!”

백찬민이 소리를 질렀다. 랭킹 대회에서 남궁솔과 개싸움을 벌여 굴욕적인 패배를 한 백찬민은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아직 육재희가 랭킹 대회에 참전 중이었으나 길드장인 백찬민이 패배하면서 사실상 골드스타 길드의 패배나 마찬가지였다.

암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백찬민이 짓씹듯이 내뱉었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도천.”

입에 문 사탕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육재희가 어렵게 입을 뗐다.

“……저,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그게, 누가 또 마켓에 대량의 상급 마석을 유통했다고 합니다.”

“되는 게 하나도 없어! X발!”

백찬민의 발길질에 기어코 책상마저 사달이 났다. 그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어떤 버러지 같은 게…… 도천이야?”

“아닌 듯합니다. 도천 측에서도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제대로 알아본 거 맞아?”

“예.”

던전 부산물과 아이템을 거래하는 마켓. 길드는 저마다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고 마켓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골드스타 길드는 도천 길드를 이기기 위해 마켓에도 관여했는데, 특히 마석의 공급량을 조절해 가격을 올리고 폭리를 취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 때문에 헌터 협회에 로비를 하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누군가가 마켓에 대량의 마석을 풀어 가격을 떨어트렸다. 골드스타로서는 손해일 수밖에 없었다.

“추적은?”

“하고 있습니다만 워낙 용의주도한 자라 꼬리를 잡기 힘듭니다. 마치 저희가 어떻게 나올지 미리 아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부인의 소행인 건?”

“안 그래도 관련자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X발…….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마석 판매자 하나 찾는 게 그렇게 어려워? 어? 육재희, 너 능력이 그것밖에 안 돼?”

“죄송합니다.”

육재희가 허리를 숙였다. 지금 백찬민의 기분은 극도로 좋지 않아서 납작 엎드려야 했다.

백찬민이 이를 갈았다.

“도천, 그 빌어먹을 새끼들 때문에 죄다 엉망이야.”

골드스타 길드의 후원 기업인 금성 그룹.

도천과 골드스타, 두 길드와 마찬가지로 도천 그룹과 금성 그룹은 경쟁 관계였다. 그들은 헌터 시장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다.

금성 그룹에서는 도천 그룹의 자제인 한우리를 추락시키기 위해 백찬민을 압박했다. 덕분에 백찬민은 하루하루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그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쳐들었다.

“유은새. 유은새 요즘 뭐 해?”

“그게…… 거주지에서 잘 안 나오는 모양입니다.”

“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백찬민이 턱을 쓸었다. 냄새가 났다. 수상한 냄새가.

“기자 포섭해. 유은새가 어떻게 지내는지 낱낱이 취재하라고 해.”

“하지만 마수들 때문에 접근하기 힘들 겁니다.”

“딱 한 방이면 돼. 유은새의 추락은 도천의 추락으로 이어질 테니까. 흠집이 없으면 만들라고 해. 그런 거 걔네 특기잖아?”

백찬민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육재희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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