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2)화 (12/190)

11화 – 보셨어요? 우리 아기가!

“백찬민 너 돌았어?!”

솔이 고함을 버럭 내질렀다. 하지만 벼락이 내려치는 소리에 묻혔다.

드래곤급의 마수라도 사냥하는 것 같은 위력이었다. 중계석도, 관중석도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이게 무슨 일이죠? 백찬민 헌터, 고유 능력을 사용합니다!]

[아아, 남궁솔 헌터 무사한가요?]

연기가 걷히고 솔의 모습이 드러났다. 옷 여기저기가 찢기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경기장 위를 벗어나면 장외패를 당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버틴 것이었다. 솔이 비틀거리다 왈칵 성을 냈다.

“이, 이 돌아 버린 새X, 천벌 받을 새X, 상도덕도 없는 새X!”

눈이 뒤집힌 솔은 온갖 쌍욕을 내뱉었다. 목청이 어찌나 좋은지 마이크 없이도 쩌렁쩌렁하게 경기장을 울렸다.

뒤늦게 사람들이 환호했다. 해설자가 정신을 차리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나, 남궁솔 헌터.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고유 능력 ‘투지’를 발동한 모양입니다!]

솔은 이마에 흘러내리는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그녀가 사납게 눈을 치떴다.

“죽어 봐라, 너 오늘.”

솔의 신형이 사라졌다. 백찬민의 바로 앞에서 나타난 솔은 그를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퍽! 퍼버벅, 퍽, 퍼억!

백찬민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가드가 소용이 없었다.

두 명의 하이 랭커가 경기장 바닥을 굴렀다. 품위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개싸움이었다.

삑!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대기 중이던 헌터들이 투입됩니다!]

우르르 올라온 헌터들이 솔과 백찬민을 떼어 놨다. 두 사람 다 피범벅이었다.

[결과는? 도천 길드의 남궁솔 헌터의 판정승입니다!]

와아아! 남궁솔! 남궁솔!

솔은 피 섞인 침을 탁 뱉고 제 발로 걸어서 경기장을 나갔다.

***

“아이고, 솔아…….”

중계 화면으로 경기를 지켜본 은새는 탄식했다. 힐러인 미리내가 있으니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한동안 커뮤니티에서 오늘 경기를 두고 말들이 많을 것 같았다.

은새는 마수들의 밥을 챙겨 주고 아기 방으로 갔다. 잠든 아기 곁에서 벨키오르가 책을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지?”

“음. 아뇨. 슬슬 아기가 깰 것 같아서요.”

은새는 배시시 웃었다. 무신경한 애 아빠가 점차 아기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게 보기 좋았다.

벨키오르가 미간을 좁혔다.

“웃는 게 헤프군.”

“저 원래 잘 웃어요.”

은새는 여봐란듯이 활짝 미소 지었다. 벨키오르의 미간의 골이 깊어졌다.

“흐앵…….”

“애기 깼어. 아빠랑 누나가 시끄러웠어.”

은새는 얼른 칭얼거리는 아기 곁으로 갔다. 그녀는 가장 먼저 기저귀를 확인했다.

갈아 줘야 할 것 같았다. 새 기저귀와 물티슈를 챙기는 그녀를 벨키오르가 유심히 지켜봤다.

“아버님이 해 보실래요?”

“내가?”

벨키오르는 못 들을 소리를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저 없으면 아버님이 해 주셔야죠. 기저귀 가는 법 아세요?”

“…….”

벨키오르는 지긋이 은새를 노려보았다. 그가 느릿하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어!”

아기의 엉덩이가 뽀송뽀송해졌다. 기저귀도 새것처럼 깨끗했다.

은새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가 눈을 빛냈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마법이다.”

“와, 신기해요.”

헌터 중에도 마법사가 있었다. 하지만 발동 시간이 오래 걸리고 스킬 획득 문제로 인기가 없었다.

미국에는 멀린의 후예를 자처하는 강한 마법사가 있다고 들었으나 극히 드문 경우였다. 아기가 팔다리를 바동거렸다.

“아, 아웅, 마.”

“그래, 우리 아기. 거실로 나갈까요?”

은새가 아기를 안았다. 벨키오르가 책을 덮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은새는 러그 깔린 바닥에 앉아 아기를 안고 햇볕을 쬐었다. 날씨가 무척 좋았다.

보석 뱀 백합이가 방울 달린 공을 물고 왔다. 은새가 방울을 딸랑딸랑 흔들었다.

아기가 즉각 손을 뻗었다.

“아햐, 햐! 끄응.”

“읏차.”

은새는 아기를 바닥에 엎어 놨다. 딸랑딸랑, 아기가 방울 소리를 듣고 상체를 일으켰다.

“잘했어요! 팔 힘이 엄청 좋아졌네. 이러다 어느 순간 뒤집기도 하겠어요.”

벨키오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그게 왜?

뒤집기 하는 게 뭐 대수라고?

아기가 엎드린 채로 은새가 흔드는 공을 향해 잉챠잉챠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

발라당.

“아기야!”

은새가 놀라서 얼른 아기를 받쳤다. 뒤바뀐 시야에 아기가 놀라서 눈을 끔벅였다.

그러다 은새의 다급한 얼굴을 보고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은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보셨어요? 보셨어요? 우리 아기가!”

“뭘 봤냐는 거지?”

“뒤집기 했잖아요! 장하다, 우리 아기!”

그녀의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 은새가 아기를 번쩍 들고 비행기를 태웠다.

벨키오르는 점점 더 알 수 없어졌다.

‘이러다 날기라도 하면 기절하겠군.’

그는 희한한 걸 보는 눈으로 은새를 봤다. 은새는 핸드폰을 들고 찰칵찰칵 아기와 사진을 찍었다.

오늘을 기념할 것이라면서.

***

[유은새: 오늘 우리 아기가 처음으로 뒤집기 했어!(사진)(사진)(사진)]

단톡방에 알림이 쏟아졌다. 때아닌 육아를 하느라 조용하던 은새가 폭주하듯 사진을 올렸다.

미리내에게 상처 치료를 받고 귀가 잡혀 잔소리를 듣던 솔이 살았다는 얼굴을 했다. 동료들이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아기랑 은새 둘 다 너무 귀엽다.”

“벌써 뒤집기를 한다고? 내가 잘 몰라서 그런데 성장 속도 빠른 편 아니야?”

“이유식 먹여야겠다. 은새 이유식 만들 줄 아나? 가 봐야겠네.”

흐뭇하게 사진을 감상하던 그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런데 이 남자 누구야?”

“어디?”

“여기, 이 사진. 은새랑 아기 뒤에 있는 남자.”

활짝 웃고 있는 은새와 아기 뒤에 무표정을 한 남자가 찍혀 있었다. 다양한 타입의 미남, 미녀들을 보고 사는 그들의 눈에도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진 이였다.

핸드폰 액정을 뚫고 자기주장을 하는 이목구비, 신비로운 하늘색 머리카락, 금색 눈.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조각상 하나를 가져다 놓은 듯했다. 솔이 즉각 경계했다.

“애 아빠인가? 그 드래곤?”

“오호라. 오늘은 집에 있나 보지?”

동료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길드를 뛰쳐나왔다.

그들이 향한 곳은 강원도 홍천이었다.

***

“누가 오는군.”

벨키오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헝겊으로 만들어진 촉각 장난감으로 아기와 놀아 주던 은새가 그를 돌아봤다.

“네?”

쾅쾅쾅!

“유은새! 우리 왔다, 문 열어!”

솔의 목소리였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지? 은새가 반색하며 현관으로 갔다.

그녀는 친구들의 속도 모르고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얘들아. 어쩐 일이야?”

“하, 하, 하! 당연히 네가 보고 싶어서 왔지.”

“누가 남궁솔 입 좀 다물게 해. 국어책 읽냐?”

유하가 수치스러워했다. 우리와 미리내가 은새보다 먼저 집 안으로 척척 걸어 들어갔다.

걸음을 옮길수록 그들은 숨통을 조여 오는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컴컴한 동굴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와 미리내는 이때껏 만나 본 적 없는 강렬한 존재와 마주쳤다. 벨키오르가 새파란 살기를 뿜어냈다.

‘큭!’

우리는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유은새, 미쳤어! 어떻게 저런 걸 집 안에 들여?’

‘저 사람이 드래곤이라고? 우리가 상대할 수 있을까?’

우리와 미리내가 걸음을 멈추자 뒤따라오던 동료들이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이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솔이 호승심을 내비쳤고 인찬과 유하가 긴장했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문단속을 하고 맨 마지막으로 들어오던 은새는 통로에 우두커니 서 있는 친구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다들 안 들어가고 뭐 해?”

은새가 머리를 쏙 내밀었다. 우리와 대치 중인 벨키오르를 발견했다.

“아버님? 제 친구들이에요. 말씀드린 적 있죠?”

“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벨키오르가 살기를 거두었다. 공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던 동료들은 어이가 없었다.

은새의 인도에 친구들이 거실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드래곤을 직접 마주한 이들의 표정이 안 좋았다.

은새가 굳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낭랑하게 소개를 시작했다.

“이 친구는 제가 속한 길드의 길드장 한우리예요. 검사고요. 이쪽은 부길드장 최미리내. 힐러예요.”

우리가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였고 미리내가 살피는 눈길로 벨키오르를 보았다.

“불의 이능을 사용하는 남궁솔, 아 성이 ‘남궁’이고요. 이름이 ‘솔’이에요. 탱커 서인찬, 빛의 이능을 사용하는 김유하예요. 다 제 오랜 친구들이에요.”

“그런가.”

벨키오르는 대강 알아들은 시늉을 했다. 접근할 때부터 투기를 감추지 않던 이들이라 그들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은새가 제법 즐겁게 말하고 있으니 그들의 무례는 잠시 묻어 두기로 했다.

“얘들아. 이쪽은 아기의 아버지, 벨키오르 님이셔. 말했다시피 드래곤이고.”

일행은 순간 벨키오르의 눈동자가 파충류처럼 변하는 걸 목격했다. 소름이 쭈뼛 돋았다.

“싸워 볼래요?”

솔이 대뜸 그렇게 말했다. 강한 상대를 보면 나오는 그녀의 못된 버릇이 발동했다.

미리내가 지끈지끈한 이마를 짚었다.

“솔아, 실례야.”

“서인찬, 남궁솔 입 막아.”

인찬이 허둥지둥 솔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솔은 오히려 당당하게 질문했다.

“드래곤은 강해요? 저희가 아는 드래곤이랑 많이 달라서요. 인간 모습을 한 드래곤은 처음 봤어요.”

“…….”

“산에 처박혀 아기만 보고 있기 심심하지 않으세요? 저희 나름대로 인간 중에서 강한 축에 속하는데. 몸풀기 어때요?”

동료들은 골치 아프다는 얼굴이었지만 흥미가 동한 것 같았다. 특히 우리가 강렬한 시선을 보내왔다.

말이 없던 벨키오르가 은새를 돌아보았다.

“그대의 친구들이니 죽이면 안 되겠지?”

오만한 말이었다.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싸해졌다. 솔은 되레 몸을 들썩이며 흥분했다.

“정말 겨뤄 보고 싶네.”

“나가지.”

벨키오르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일행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은새가 불안하게 창밖을 쳐다봤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 지금요?”

“미룰 것 있나.”

단조롭지만 확실한 허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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