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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0)화 (10/190)

9화 – 아기를 임시 보호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뜻이지?”

은새가 양손을 빠르게 내저었다.

“제가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아기가 돌아온 게 신경 쓰여서요.”

“…….”

“드래곤 아기니까 성장이 빠르겠죠? 아기가 이곳에서 안도를 느낀다면 조금 클 때까지만이라도 머물렀으면 싶어서요.”

은새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게 아기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은새가 눈썹을 늘어트렸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아기를 조금이라도 오래 보고 싶은 그녀의 욕심이었다.

“아버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고요…….”

벨키오르는 아쉬움을 뚝뚝 떨어트리며 말꼬리를 흐리는 눈앞의 여자를 말없이 바라봤다.

하얀 얼굴에 하나로 묶은 흑발, 흑요석처럼 검은 눈동자.

여자는 키가 크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몸의 균형이 조화로웠다. 게다가 의외로 신체 능력이 인간치고 강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에게 흑심이 없다는 건 알았다. 이 집을 가득 채운 아기 용품만 해도 그랬다.

그녀가 키운다는 마수들은 자유로웠고 구김살이 없었다. 게다가 주인을 향한 충성심도 투철했다.

그건 그녀의 성품이 온화하고 솔직하다는 뜻이었다.

마수는 태생적으로 경계심이 강했기 때문에 은새가 그들을 대함에 있어 단 한 점의 거짓이라도 있었으면 이토록 진심으로 따랐을 리 없었다.

인간으로서 드물게 음습하지 않은 이였다. 그래서 벨키오르도 그녀와 말을 섞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그에게 있어서 대단한 특혜였다.

‘아기를 데려가지 말라?’

벨키오르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드래곤이다.

그건 그의 자식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수 위그드라실을 수호하는 존재.

그들은 지고했으며 완전했다. 드래곤은 아무리 어려도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았다.

벨키오르 본인이 그러했고 그의 선대가, 그 위의 선대가 그랬다.

‘내 자식이 특이한 것 같긴 한데.’

그는 아기를 떠올렸다. 그의 아들은 드래곤답지 않게 꽤 손을 탔다.

자신을 돌봐 줄 존재를 찾아 보금자리를 나선 것만 봐도 그랬다. 다른 드래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었다.

“왜 내 아들을 보호하려는 거지?”

“네?”

“인간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 없어. 무엇을 노리고?”

벨키오르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지며 은근한 위압감이 실렸다. 마수들이 일어서며 으르렁거렸다.

“드래곤을 길들여서 무엇을 하려는 거지?”

“네? 아무것도요.”

은새는 당황했다.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질지 몰랐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질문했다.

“드래곤은 뭘 할 수 있는데요?”

“어떤 것이든.”

파충류 같은 금색 눈동자가 은새를 면밀히 살폈다.

“인간은 상상도 못 할 부귀영화를 거머쥘 수도 있고 세상을 얻고자 한다면 그 역시 가능하다.”

“필요 없는데요.”

즉답이었다. 너무도 단호한 대답에 벨키오르가 일순 멈칫했다.

은새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돈은 먹고살 만큼 벌어 뒀고 세상을 정복하려는 그런 욕심 없어요. 저 머리 아픈 거 싫어해요.”

“……혹시 모르는 거다. 막상 큰 힘을 가지면.”

“제 힘도 아닌데요. 아기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거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은새가 아기의 힘을 멋대로 휘두르려고 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기가…….”

은새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말을 했을 때 벨키오르의 반응이 상상 가지 않았다.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놓칠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아버님께서 무심하시니 안타까워서요.”

은새의 고개가 떨어졌다. 그녀는 당장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져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벨키오르는 조용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고작 그런 이유라고?’

아기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가 무심하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잊혔다.

“이해가 되질 않는군.”

“그러실 것 같아요…….”

“그대가 낳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누구라도 아기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벨키오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여자는 호구였다.

‘세상에 던져 놓으면 등골까지 빼 먹히겠군.’

벨키오르가 주름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악독하고 야심만만한 인간들만 보다가 이런 유형을 보니 새롭다 못해 가슴이 답답했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드래곤을 키우다니.”

“네…….”

“아기에게 드래곤으로서 자각이 생기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을 거다. 그래도 괜찮나?”

“그 말씀은!”

은새가 반색했다. 까만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벨키오르는 꼭 별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임시 보호를 허락하지. 단, 내가 자주 감시하러 올 것이다.”

“고맙습니다!”

은새는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허락이 떨어져서 무척 기뻤다.

벨키오르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 봤자 잠시일 뿐이다.’

그도 아기가 자꾸 보금자리를 이탈하면 어떡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강제로 묶어 둘 수도 있지만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드래곤으로서 자각이 생기면 아기도 인간과 자신의 차이를 깨달을 터였다. 그때까지 벨키오르는 기다릴 따름이었다.

***

“아기야, 산책 가자.”

은새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기의 옷을 챙겨 입혔다. 오늘 처음으로 구석에 처박혀 있던 유모차를 써 볼 요량이었다.

인찬이 사 준 유모차는 B사의 컬렉션이었다. 가장 부드러운 주행감, 힘들이지 않아도 가볍게 밀리는 뛰어난 기동성을 갖춘 제품이라나 뭐라나.

우선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아기에게 분유를 빵빵하게 먹이고 언더시트 바스켓에 기저귀를 포함해 필요한 용품을 챙겼다.

아기가 은새와 마주 보는 자세로 있을 수 있게 핸들을 조절했다. 시트에 아기를 안아다가 눕히자 아기가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까르르!”

“아이 좋아. 누나랑 외출하니까 좋아.”

그 모습을 벨키오르가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았다. 기가 막혔다.

인간 아기처럼 구는 아들이나 드래곤이란 걸 알았으면서도 행동에 변함이 없는 은새나 이상했다.

은새는 벨키오르가 있어도 딱히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가 워낙 조용했고 필요한 게 있으면 먼저 요구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순간 돌아와 있을 때도 있었다. 은새는 그 생활에 적응했다.

“아버님도 같이 가실래요?”

“뒤따라가지.”

은새는 아기에게 이 말, 저 말 건네며 집 근처를 거닐었다. 마수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날 좋은 날 마수들이 쉬곤 하는 공터에 도착했을 때 은새는 꽃 한 송이를 꺾어 아기에게 보여 줬다.

아기가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

“이게 뭐게~? 이건 꽃이야. 예쁘지?”

“꺄! 꺄!”

아기가 꽃을 쥐고 흔들었다. 입으로 가져가려는 걸 은새가 말렸다.

“어, 먹는 거 아니야. 배가 아야 할 수도 있어.”

“그런 거 먹는다고 드래곤은 탈 안 난다.”

“아이참, 아버님.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게 두면 안 되죠.”

아무거나 먹고 자란 벨키오르는 순간 욱했다.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은새는 커다란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았다. 벨키오르에게 자리를 권하고 은새는 유모차에서 아기를 꺼냈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지나갔다. 은새가 헝클어진 아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시원하지?”

“후웅.”

“그러고 보니 아버님, 아기는 곱슬머리인데 아버님은 직모시네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벨키오르는 심드렁하게 아기를 힐끔거렸다.

“좀 크면 달라지겠지.”

“앗, 그런 거예요? 우리 아기, 아버님 닮았으니까 크면 인기 많겠다.”

은새가 아기를 붕 들어 올렸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좋아했다.

‘웃기는 소리.’

벨키오르는 속으로 딴지를 걸었다. 드래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인간의 호감 따위 받아 봐야 쓸모없었다.

은새는 한참을 아기와 함께 주변 구경을 하다가 아기를 안고 둥개둥개했다. 동요를 나지막하게 흥얼거렸다.

“길쭉한 뿔에. 둥근 빨강 코. 점박이 무늬를 한 멋진 루돌프.”

마수들이 은새 주변을 에워쌌다. 그들은 은새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클리티아 같군.’

벨키오르는 내심 감탄했다. 클리티아는 신화에 나오는 숲의 님프였다.

거대하고 흉포한 괴물들을 수족으로 부리며 숲의 사랑을 받는 여성.

물론 그녀의 몬스터 테이머라는 특성 때문일 수 있으나 꽤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은새의 노래는 계속됐다.

“언제나 너를 기다리면서. 예쁜 꿈을 꾸곤 하지.”

은새가 아기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아기를 정말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너랑 함께한다면. 밤하늘도 즐거워.”

아기는 벨키오르와 있을 때와 달리 충만해 보였다. 가물거리면서도 은새에게 고정되어 있는 눈.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옷자락을 꼭 쥔 손. 벨키오르는 기분이 묘해졌다.

한낱 인간이 주는 애정이 무엇이길래? 그녀에게서 무엇을 느꼈기에 저리 필사적인가.

“기뻐서 코가 반짝이는 멋진 루돌프.”

아기가 완전히 잠들었다. 은새가 옷자락에 감긴 아기 손을 풀며 빙긋이 웃었다.

“그만 집으로 돌아갈까요?”

벨키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

랭킹 대회는 1회전 결과 우리와 솔, 유하 모두 16강전에 올랐다. 아기 아빠의 허락을 받아 아기가 은새의 집에 머무르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동료들이 함께 기뻐했다.

-애 아빠는? 돌아갔어?

우리가 질문했다.

“아니. 왔다 갔다 해.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오늘은 사라졌네.”

-뭐? 외간 남자, 아니 외간 드래곤이랑 한 지붕 아래 있다고?

-미쳤어? 유은새 겁도 없이!

스피커 폰 너머로 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은새는 머리를 기우뚱했다.

“딱히 불편한 점 없는데? 되게 조용해서 있는 줄도 모르겠고.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더 나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안 되겠어, 당장 내가 그 드래곤을 만나 봐야겠어.

“솔아, 진정해. 다음 상대 백찬민 헌터라며.”

그는 골드스타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사사건건 도천을 방해하는.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그게 중요하지.”

드물게 은새가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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