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8)화 (8/190)

7화 – 아기 아빠세요?

“네? 저는 유은새…… 인데요.”

은새가 저도 모르게 이름을 댔다. 남자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도사렸다. 마수들은 눈앞의 존재가 그들이 상대해 온 어떤 상대보다 강하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왜 그대가 내 아들을 데리고 있는 거지?”

“아들이요?”

은새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아기가 은새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었다.

남자와 아기를 번갈아 쳐다봤다. 닮았다. 혈연을 의심할 수 없게 두 사람은 꼭 닮아 있었다.

은새가 반색했다.

“아기 아빠세요?”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

남자가 기운을 발산했다. 쿠궁. 우리의 만유인력과 비슷하면서 다른 강력한 힘이 은새와 마수들을 짓눌렀다.

키아아옹!

크릉!

하늘이와 민들레가 당장 덤벼들 것처럼 위협적인 포효를 내질렀다. 은새는 다급하게 마수들을 말렸다.

“얘들아 그만, 그만! 죄송해요. 애들이 예민해서. 다 설명드릴게요.”

“…….”

“일단 안으로 들어오실래요?”

은새는 문 앞에서 비켜섰다. 남자가 일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했다.

“어…… 제가 아기를 보호하게 된 데에는 고의성은 없었고요. 이게 말하자면 긴데.”

“…….”

“아버님?”

“들어 보지.”

남자는 은새보다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슴을 쓸어내린 은새가 얼른 그의 뒤를 따라갔다.

누가 집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모를 그림이었다.

남자는 낯선 양식의 집을 천천히 둘러봤다. 네모난 상자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왔고 곳곳에 아기가 사용할 법한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는 그 물건들에서 아기의 흔적을 발견했다. 아기의 기운이 짙게 배어 있었다.

“저…… 아기의 상태부터 확인하시겠어요?”

은새는 눈치를 보다가 말을 걸었다. 남자는 은새의 품에 안긴 아기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봤다.

아기는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랐고 충만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자신이 왔는데도 눈길도 주지 않는 게 어지간히 저 여자가 마음에 든 듯했다.

같은 존재였기에 알 수 있었다.

‘해를 입은 것 같지는 않군.’

“여기 앉으세요.”

은새는 후다닥 티브이를 끄고 남자를 거실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흔들 침대를 끌고 와 아기를 눕혔다.

마수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가까이에서 은새를 둘러쌌다. 은새가 나가 있으라는데도 고집을 부렸다.

“저, 이 애들은 제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니까 이해해 주세요.”

“…….”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은새는 자신이 몬스터 테이머라는 점과 그래서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다는 점,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니 기르는 마수가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물고 왔다는 점, 백방으로 아기 부모님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가 없었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아버님께서 외국인이신 줄 알았다면 그쪽으로 알아봤을 텐데요.”

“외국인?”

“한국인 아니시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말 잘하시네요.”

은새가 놀라워했다. 눈앞의 남자는 맹인도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남이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데 그의 얼굴은 성은이 망극이었다.

만약 이런 얼굴이 한국에 있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었다.

“아니. 나는 아기의 흔적을 쫓아 세계를 건너왔다.”

“……네?”

“언어는 마법으로 그대가 이해 가능한 말로 번역되는 것이고.”

“네에?”

은새는 귀를 의심했다.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나는 이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그…….”

‘미치셨어요?’라는 말이 하마터면 튀어나올 뻔했다. 은새는 입단속을 했다.

“몬스터 테이머라고?”

“네…….”

“귀한 재능이군.”

일순 남자의 동공이 세로로 가늘어졌다. 은새는 오싹함을 느꼈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이 세계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내 아들의 정체를 알고 있나?”

“아니요? 정체라뇨?”

“이 아기는 내 기운과 세계수의 정수를 엮어 만들어 낸 나의 후계자.”

남자가 흔들 침대에 누인 아기를 힐끔거렸다. 아기는 여전히 시선을 은새에게 고정한 채였다.

‘데려가기 힘들 수도 있겠군.’

아기의 눈빛을 읽은 벨키오르가 직감했다.

한편 은새는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저기 실례지만…… 종족이 어떻게 되세요? 인간 맞으시죠?”

“나를 보고도 인간이라고 생각하다니.”

은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남자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나는 세계수 위그드라실을 지키는 시작의 드래곤.”

“…….”

“벨키오르다. 더 질문할 건?”

은새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이 덜덜 떨렸다.

‘드래곤, 드래곤이라니.’

지금껏 드래곤은 그녀가 사냥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던전에서 튀어나온 그들은 인간을 학살했고 도시를 파괴했다.

‘하지만 말이 통하는데? 인간과 흡사한 외양을 지녔는데?’

말이 통하는 개체는 은새에게 저주를 내린 그 던전 보스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알던 상식이 파괴되는 경험을 했다.

“저기, 드래곤은 원래 다 아버님 같나요?”

“……?”

“그러니까 사람처럼 말하고, 이지를 갖고 있고, 저와 다를 바 없는 생김새에…….”

벨키오르의 아름다운 얼굴에 불쾌감이 어렸다.

“무슨 착각을 하는지 알겠군. 그대가 아는 ‘드래곤’이란 마물을 뜻하는 거겠지?”

“마물이요?”

“우리는 그것들을 드래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인간들이 멋대로 가져다 붙인 거지.”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수들은 처음 발견된 나라나 지역을 따서, 설화나 전설 속에 나오는 묘사를 보고 인간들이 이름을 붙였다.

논현동 던전 공략 때 등장한 킹 스피노 골드 드래곤도 그러했다. 일단 공룡처럼 생겼고 날개가 달렸으면 다 드래곤으로 분류됐다.

“그렇군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됐다.”

“저…… 다른 세계에서 오셨으면 아기는 어떻게 저희 세계에 온 걸까요?”

그게 의문이었다. 아기는 왜 홀로 다른 세계에 내던져졌는가?

“내 아들이 그대의 무엇이 마음에 들어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대가 몬스터 테이머라니 대략 짐작 가는 바는 있군.”

“네?”

“이곳으로 향한 아기의 흔적에서 그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힘이 남아 있었다.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혼자 자라. 하지만 내 아들이 특이하게 ‘보호자’를 원했으면 지금 같은 상황이 설명된다.”

“그럼 아버님께서는 아기를 줄곧 혼자 두셨다는……?”

“그게 왜?”

은새는 속상했다. 손가락을 빨며 똘망똘망하게 은새를 바라보고 있는 아기가 가여웠다.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제대로 사랑을 못 받아서 세계를 넘어왔다니.

인간적인 사고방식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기에게 정이 들었던 은새는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랐다.

벨키오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가 끝났으니 아기를 데려가겠다.”

“이렇게 갑자기요?”

따라 일어서며 은새가 아쉬움을 드러냈다. 벨키오르가 아기를 안아 올렸다.

“흐앵!”

아기가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시러, 너 시러!

아기는 벨키오르가 자신을 태어나게 한 존재라는 자각이 있었다. 하지만 춥고 외로운 요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몰랐으면 모를까, 은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아기는 그녀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기의 몸에서 빛이 났다. 이곳에 와 처음으로 드러낸 힘이었다.

벨키오르에게 못 미치는 위력이더라도 아기는 있는 힘껏 반항했다.

눈썹을 찌푸린 벨키오르는 아기의 힘을 억눌렀다. 아기가 눈물을 퐁퐁 쏟아냈다.

그 광경을 보고 은새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렇다고 아기 아버지가 아기를 데려간다는데 그녀가 말릴 수도 없었다.

벨키오르가 마당으로 나갔다. 그의 손짓에 마력을 입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떠올랐다.

수십 개의 마법진이 그려졌다. 대지가 쿵, 쿵 땅 울림소리를 냈다.

은새가 다급하게 외쳤다.

“저기! 아기 이름이 뭔가요? 그것만이라도 알려 주세요.”

“이름은 없어.”

“네?”

벨키오르가 머리를 기울였다.

“드래곤은 성체가 되면 스스로 이름을 짓는다.”

“그럼 아명이라든지, 아버님은 뭐라고 부르시는데요?”

“부르지 않는다.”

멍해졌던 은새는 왈칵 성질이 났다. 정말 너무한 아버지네!

은새의 상식선에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뭐라고 따질 수도 없게 광활한 힘이 휘몰아쳤고 은새가 다시 눈을 떴을 땐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반파된 마당만 보일 뿐이었다.

“갔네…….”

아기와 인사도 나눌 새도 없었다. 은새는 상실감에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

“뭐어, 아기 아빠가 아기를 데리고 가?”

랭킹 대전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쥔 솔이 은새네 집에 놀러 왔다가 기막힌 소식을 들었다. 미리내와 우리, 인찬도 덩달아 놀란 표정을 했다.

유하는 다음 대전을 위해 컨디션을 조절하느라 오지 않았다.

은새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기 용품을 느릿느릿 정리했다.

“응……. 미안, 그때 아기 아버님이 찾아와서 솔이 네 경기 못 봤어.”

“그건 됐고, 결국 아기 아빠는 누구였던 거야?”

“이세계의 드래곤이래.”

“드래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마수는 아니고, 사람 같은 모습이었어. 말도 통하고. 세계수를 지키는 시작의 드래곤이랬나.”

“……은새 너 속은 거 아니야? 어떤 겁대가리 상실한 외국인 헌터 놈이 사기 친 거 아니냐고.”

“그런 거 아니야. 아닐걸?”

우리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너는 안 그렇게 생겨서 어수룩한 데가 있잖아. 어디 가서 등쳐 먹히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 걱정은 됐거든? 하여튼 엄청 남신처럼 생겼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이능과는 다른 능력을 쓰던데.”

“얼빠 유은새가 본 적 없는 얼굴이라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

“솔이 너 자꾸 시비 걸래?”

은새가 뾰로통하게 쏘아붙였다. 인찬이 팔자 눈썹을 하고 은새를 달랬다.

“아기랑 갑자기 헤어져서 서운하겠다.”

“응……. 부디 아기 아버님이 잘 대해 주셔야 할 텐데.”

“왜?”

“잘은 모르겠는데 아기를 혼자 두는 것 같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은새가 머뭇거렸다.

“그분이 그러는데 드래곤은 원래 혼자 큰대. 아기 이름도 안 지어 준 거 있지.”

“와, 그건 진짜 너무했다. 애 아빠 맞아?”

은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걸 본 미리내가 솔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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