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헌터 랭킹 대회
“알겠어, 우리야. 그럼 그렇게 처리하는 걸로 하자.”
은새는 전화를 끊었다. 은새가 랭킹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걸로 웃지 못할 루머가 퍼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도천 길드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은새가 핸드폰으로 인터넷 뉴스란에 들어갔다.
[헌터이모저모] 유은새 헌터, 이민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져
[단독] 도천 길드, 직원 사칭한 일반인 고소
[헌터뉴스K] 유은새 헌터, 여전히 도천 길드 소속. 지나친 억측은 자제해 줄 것을 부탁…….
“별일이 다 있네.”
은새의 이민 이슈가 불거지자 온갖 나라에서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더 좋은 조건을 쳐 줄 테니 자국으로 오라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은새는 해당 이슈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밝히고 도천 길드를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처음에 혼란스러워하던 사람들은 보도가 나간 뒤에 진정했다. 이럴 때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여전히 굳건하다는 걸 깨닫는다.
은새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하던 일에 전념했다.
그녀는 먼저 손톱깎이가 잘 드는지 확인했다. 아기의 손을 펼치자 단풍잎 같은 오동통한 손가락이 꼬물거렸다.
어느새 자란 손톱 때문에 아기의 얼굴에 종종 상처가 났다. 은새는 아기가 싫증을 내기 전에 신속하게 손톱을 깎았다.
‘던전 공략할 때도 이렇게 집중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은새는 자신의 변화가 즐거웠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마수들이 지켜보았다.
손톱 깎기를 마친 후 은새는 욕실로 들어갔다. 작은 욕조에 물을 받으며 손을 휘저어 온도를 확인했다.
“딱 좋아.”
은새는 욕실로 아기를 데려왔다. 아기는 은새가 옷을 벗기는데도 시선을 은새에게 고정했다.
“목욕할 생각에 좋아요?”
은새가 다정하게 눈을 맞췄다. 아기의 금색 눈이 반짝반짝했다.
아기의 맨몸을 타월로 감쌌다. 은새는 한 손으로는 아기의 목을, 팔로는 엉덩이를 받쳤다.
“세수부터 할 거예요. 깨끗하게 씻자.”
“히웅.”
은새는 손수건에 물을 묻혀 눈, 코, 입 순서로 살살 닦았다. 아기가 옹알이를 했다.
그 별 뜻 없는 소리에 하나하나 반응해 주며 은새는 재게 손을 놀렸다.
“머리 감을 때 귀에 물 들어가면 안 되니까 막을게?”
은새는 한 손으로 샴푸를 짜내 거품을 냈다. 머리카락을 뒤로 쓰다듬듯이 하며 문질렀다.
아기가 보채기 전에 헹구기까지 마친 그녀는 그때서야 타월을 벗기고 아기를 천천히 발끝부터 물에 담갔다.
“아이 좋아. 응, 좋아.”
“까르르.”
아기는 은새를 따라 웃는 소리를 냈다. 헹굼물을 배 쪽으로 부으며 비누 거품을 완전히 제거했다.
“다 됐어요. 수고 많았어요.”
아기를 타월에 폭 감쌌다. 얼굴만 내놓은 아기는 핫도그 같아 몹시 귀여웠다.
감기에 걸리지 않게 얼른 옷을 입혔다. 아기를 재워 두고 은새는 티브이 앞으로 갔다.
그제부터 헌터 랭킹 대회가 한창이었다. 오늘 대결하는 건 도천 길드의 우리와 백아 길드의 조기현이었다.
우리는 고유 능력 암혈과 만유인력을 사용하는 검사, 조기현은 암살자 특성의 헌터였다.
상성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은새는 우리가 이길 것이라 확신했다.
[도천 길드의 한우리 헌터 입장합니다!]
무장한 상태의 우리가 대회장으로 들어섰다. 전담 코디팀의 활약으로 그는 평소보다 세련되고 잘생겨 보였다.
관중석에서 우리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우리 오빠악! 흡사 악이라도 지르는 것 같은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생중계되었다.
우리는 도회적인 미남으로 연예인급의 인기를 누렸다. 우리가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백아 길드의 조기현 헌터 입장합니다!]
조기혀언! 기현이 형!
환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이는 조기현은 긴장한 듯 보였다. 하필 첫 대전 상대가 랭킹 1위라니.
운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기현은 이걸 기회로 여기려는 듯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대전 시작합니다!]
선공은 조기현이었다. 암기를 양손에 쥔 그는 빠른 속도로 한우리의 뒤를 잡았다.
암살자는 마수보다 인간을 상대하는 데 적합한 특성이었다. 그래서 레이드 때는 두드러진 활약을 못 하지만 대인전에서는 빛을 발했다.
[한우리 헌터, 공격을 흘려 냅니다!]
그러나 랭킹 1위 앞에서는 그 빛도 퇴색되었다. 던전만 공략한다고 랭킹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우리는 지금까지 숱한 도전을 받았고 그때마다 승리했다.
한우리가 허공을 밟고 점프했다. 붕. 오러를 두른 검이 조기현의 머리 바로 위를 스쳐 지나갔다.
조기현이 날랜 몸짓으로 한우리를 따라잡았다. 몇 번의 격돌.
[아, 속도가 빠릅니다. 보이지 않아요!]
찰나가 목숨을 좌우하는 암살자는 그렇다 치고, 검사인 한우리의 몸놀림은 흡사 신기에 가까웠다.
헌터가 아니고서는 한우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반격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자료 화면이 나가야 관중들은 뭐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많이 발전했네.”
은새는 감탄했다. 한우리가 암혈을 끌어올려 검에 둘렀다. 검은 피가 독기를 발산했다.
자욱한 안개가 퍼졌다. 조기현은 은신술을 사용해 몸을 감추었다.
하지만 한우리의 고유 능력 만유인력 때문에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조기현은 준비해 두었던 독성 중화 아이템을 사용했다.
[한우리 헌터, 검무를 추기 시작합니다!]
검은빛 잔상을 남기고 한우리가 검을 휘둘렀다. 꽃잎이 휘날리는 것처럼 아름답고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기세만큼은 여타 공격에 뒤지지 않게 위협적이었다. 조기현은 안간힘을 다해 검무를 격파하려고 했으나 애초에 상성이 좋지 않았던 관계로 패하고 말았다.
한우리가 한쪽 무릎을 꿇은 조기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환호와 박수갈채가 터졌다.
[여기는 헌터 랭킹 대회! 한우리 헌터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해설자님, 오늘 대전 어떻게 보셨습니까?]
[에, 한우리 헌터의 기량이 돋보이는 경기였습니다. 2분 31초, 한우리 헌터가 조기현 헌터의 공격을 막을 때…….]
은새의 핸드폰이 띠링띠링 울렸다. 동료들이 우리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었다.
물론 축하뿐만 아니라 왜 좀 더 빨리 쓰러트리지 못했냐는 둥,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많다는 둥 흰소리도 함께였다.
“솔이 경기는 언제였지?”
우리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은새가 대진표를 찾아보고 있을 때였다.
번쩍! 마른하늘에 번개가 쳤다. 순간적으로 사방이 희게 물들었다.
“뭐야?”
은새가 다급하게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기만 했다.
꾸꾸!
매, 매애애.
크르릉.
놀란 마수들이 털을 곤두세우며 사방을 경계했다.
“괜찮아, 괜찮아. 별일 아닐 거야.”
은새가 마당으로 나가 마수들을 달랬다.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으애앵.
“아! 아기 깼나 보다.”
은새는 방으로 달려갔다. 마수들은 한동안 긴장을 놓지 못하고 번개가 친 하늘을 올려다봤다.
***
“으악, 황새야, 이게 뭐야!”
은새는 기겁했다. 아기 방에 개구리 서너 마리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기는 개구리 한 마리를 이마에 붙이고 뭐가 즐거운지 까르르 웃었다.
황새는 뿌듯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화를 내지?
은새가 한숨을 폭 쉬었다.
“아기 보여 주려고 잡아 온 거야?”
까악!
황새가 위풍당당하게 날개를 펼쳤다. 전에 벌레를 왕창 잡아 왔길래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개구리로 선회한 듯했다.
은새는 쪼그려 앉아 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잡았다. 개구리를 모두 밖에 내보내 주고 은새는 황새를 붙잡고 말했다.
“황새야, 아기를 위한 네 마음은 알겠는데 이것들은 살아 있는 생물이니까 함부로 잡아 오면 안 돼.”
까악?
“그렇다고 죽여서 가져와도 안 돼. 나중에 아기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면 그때 냇가로 개구리 보러 가자.”
까악…….
황새는 시무룩해졌다. 멋진 형이 되기는 정말 어려웠다.
“에구, 아가 침.”
은새는 입가로 흘러내린 침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딸랑이를 흔들어 주자 아기가 격렬히 반응했다.
황새와 은새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었다.
“이거 봐라, 황새야. 아기 이제 엎드려 있을 수 있다?”
은새는 아기를 엎드려 놨다. 그러자 아기가 팔꿈치로 지탱하고 머리를 쑥 들어 올렸다. 은새는 잘했다고 박수를 쳤다.
“와, 우리 아기 힘이 장사네! 곧 뒤집기도 하고 기어 다니겠다.”
“히우웅.”
“그러려면 쭉쭉이를 해 줘야지. 시원하게 해 줄게요.”
은새는 아기의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배싯배싯 웃는 게 천사가 따로 없었다.
“오늘 솔이 누나가 티비에 나오는 날이에요. 같이 볼까요?”
“꺄웅!”
“아기도 솔이 누나 보고 싶구나? 그래, 조만간 놀러 오라고 하자.”
은새는 거실에 있는 흔들 침대에 아기를 눕혔다. 랭킹 대회가 생중계되는 채널을 켜 놓고 은새는 빨래를 갰다.
“음, 음음, 음~”
“훙, 후웅.”
“뭐야, 아가. 누나 따라 하는 거야?”
그럴 리 없건만 콩깍지가 낀 은새는 아기가 천재처럼 보였다. 곱슬곱슬한 하늘색 머리를 쓸어 넘겨 이마에 키스했다.
손바닥만 한 아기 옷을 꼼꼼히 갰다. 티브이에서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때 쾅! 소리와 함께 창문이 흔들렸다.
키아아앙!
캬웅!
마수들이 울부짖었다. 깜짝 놀란 은새는 하던 걸 멈추고 아기를 안고 뛰어나갔다.
마당이 반파되어 있었다. 그 한가운데 화려한 복색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하늘하늘 휘날리는 긴 하늘색 머리카락, 멀리서도 눈에 띄는 금색 눈동자.
우아한 선을 그리는 코와 턱의 라인이 무척 미학적이다.
은새는 순간 남자의 외모에 홀렸다가 정신을 차렸다. 우와, 남자 얼굴이 뭐 저래?
성체로 크기를 부풀린 마수들이 남자를 에워쌌다. 이빨과 발톱을 드러낸 마수들은 평소 모습을 생각할 수 없게 흉포했다.
“누, 누구세요?”
남자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의 입에서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대는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