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아기의 부모님을 찾습니다
아기가 손을 뻗어 허공을 잼잼 했다. 은새가 손바닥을 간질여 주자 아기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 모습에 경계심이란 없었다. 은새가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너는 내가 누군 줄 알고 순하게 웃니.”
“꺄아!”
“그래, 걱정 마! 아가야, 누나가 엄마, 아빠 꼭 찾아줄게!”
은새는 아기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작고 따뜻한 온기. 포근한 아기 냄새가 났다.
사실 아기를 맡기로 했을 때 가장 큰 걱정거리는 그것이었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휴식기에 들어간 1년간 은새는 마음 정리와 더불어 재산 정리도 했다. 나중에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마수들은 길드에서 데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왠지 아기는 선뜻 남에게 맡길 수 없었다. 부모를 잃고 앙앙 우는 아기를 자신과 겹쳐 본 탓일지도 모른다.
그럴 일은 절대 없어야겠지만 만에 하나 아기의 부모를 찾아주지 못한 채 자신이 죽는다면…… 자신 못지않게 아기를 살뜰히 돌봐 줄 동료들이 있었다.
그러니 걱정은 접어 두고, 은새는 자신을 찾아온 아기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죽기 전에 좋은 일 하고 가지, 뭐.’
일순 씁쓸한 미소를 지은 은새가 아기의 뺨에 입 맞췄다.
아기는 얼굴에 닿은 은새의 머리카락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챈 은새가 기겁했다.
“그런 건 먹는 게 아냐! 지지야, 지지.”
“까르르.”
“지지? 지지가 좋아? 에이 지지. 누나 머리카락 지지.”
아기가 가슴을 들썩였다. 금색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어쩜 너는 눈이 별 같니. 너무 예쁘다.”
“후웅.”
“아가야, 네 이름엔 ‘별’ 자가 들어갈 것 같아. 한글이든, 한자든. 꼭 그러길 바라.”
은새가 고불고불한 아기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톡 튀어나온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은새는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 혼자 놀고 있어. 분유 타 올게.”
“흐앵.”
은새는 아기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천장에 설치한 모빌을 움직였다. 빙글빙글 도는 동물 친구들에게 아기가 시선을 빼앗겼다.
은새가 주방에 가 있는 동안 쉬익 하는 소리를 내며 어둠 속을 무언가가 기어 왔다.
보석 뱀 백합이었다. 백합이뿐만 아니라 거대한 털뭉치를 닮은 큰뿔서리양 쪼쪼도 구르듯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아기가 실례를 하고 울 때부터 잠에서 깨어 있었다. 은새가 자리를 비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에 침투했다.
쪼쪼는 겅중 뛰어서 아기가 누워 있는 침대를 올랐다. 마찬가지로 백합이도 침대 기둥을 타고 아기 곁으로 갔다.
“아우?”
아기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쪼쪼와 백합이를 봤다. 그들은 은새가 있는 주방 쪽을 힐끔거렸다.
쉬익, 쉬익. 매애!
둘이 대화를 나눴다. 그런 다음 백합이가 아기의 몸을 둘둘 감쌌다.
쪼쪼도 아기의 머리맡에 앉아 아기의 머리털을 핥았다. 청백색 털뭉치에 푹 파묻혀 아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분유 포트가 있어서 다행이야. 온도 맞추기 힘들 뻔했어.”
몇 분 뒤, 은새가 돌아왔다. 그녀는 의외의 광경을 마주했다.
“음? 얘들아, 뭐 하는 거야?”
“꺄아! 꺄아!”
쪼쪼의 침에 머리가 범벅된 아기가 백합이를 쥐어뜯고 있었다. 아기는 쭉쭉 늘어나는 백합이를 마음껏 휘둘렀다.
백합이는 행여 아기가 다칠세라 단단하게 몸을 바꾸지도 못하고 쉭, 쉭 괴로운 비명만 질렀다. 쪼쪼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고 백합아. 백합이 죽네.”
은새가 얼른 백합이를 아기의 손에서 구해 줬다. 잠시 축 늘어져 있던 백합이는 다시 아기의 곁으로 돌아갔다.
“내가 왔으니 아기 안 지켜 줘도 되는데. 우리 쪼쪼랑 백합이, 아기가 걱정됐니?”
매애!
쉬익. 쉬익.
그들뿐만 아니었다. 아기 방 창문으로 하늘이와 도다리가 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은새가 뺨을 긁적였다.
“든든하긴 한데 이럴 필요까진 없는데.”
아기가 처음 온 날, 동료들이 떠나고 난 뒤부터 마수들은 공동 육아를 자청했다.
은새는 대충 마수들의 생각을 이해했다. 주인에게 지켜야 할 존재가 생겼다. 그 존재는 약하고 어리다.
그러니 자신들이 지켜야 한다.
때로는 황당무계하지만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 은새는 쪼쪼와 백합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고마워. 아가, 이제 맘마 먹자.”
은새는 아기를 품에 안아 입에 젖병을 물렸다. 쪼쪼와 백합이가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아기는 배가 고팠는지 꿀꺽꿀꺽 힘차게 분유를 먹었다.
“우리 아가는 어쩜 이렇게 순할까. 보채지도 않고. 맛있어요?”
젖병은 금방 비워졌다. 아기가 쩝쩝 입맛을 다셨다.
“밥을 먹었으니 트림을 해야지.”
은새는 배운 대로 아기를 바로 세워 안고 등을 두드렸다. 어깨 너머로 마수들이 보이자 아기가 꺄, 꺄 손을 뻗었다.
백합이는 그 손길을 피해 쪼쪼의 목에 스르륵 몸을 감았다. 아기는 작고 약하지만, 손아귀 힘이 지나치게 좋았다.
아기가 귀여운 트림을 하자 은새는 아기를 안은 채로 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자자. 누나가 자장가는 잘 모르고.”
아기는 눕혀 놓고 토닥거리는 것보다 이렇게 해 줄 때 더 빨리 잠이 들었다.
곧 평온한 적막 틈으로 귀여운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길쭉한 뿔에. 둥근 빨강 코. 점박이 무늬를 한 멋진 루돌프.”
그녀가 아는 몇 안 되는 동요였다. 느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며 둥개둥개했다.
처음엔 말똥말똥했던 아기 눈이 점차 흐려졌다. 아기가 잠투정했다.
“……너랑 함께 한다면. 밤하늘도 즐거워. 어떤 곳이라도 함께 날아가.”
은새는 아기의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 순하고 착한 네 부모님은 누굴까? 많이 걱정하고 계시겠지?’
은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도천 길드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게 불안했다.
“기뻐서 코가 반짝이는 멋진 루돌프.”
‘별일 없을 거야.’
그래야 했다. 이 아기의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그것만큼 비극이 없을 것이다.
“잠들었네.”
어느새 아기가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뱉었다. 은새는 조심스럽게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마수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도 이제 가서 자렴.”
쪼쪼와 백합이가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
황새는 기운이 없었다. 황새는 올해 세 살 된 마수였다.
새끼 때 던전에서 은새에게 주워져 줄곧 강원도에서 살았다. 보석 뱀 백합이와 함께 이 집의 막내로 귀여움만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 막내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주인에게 새로 돌봐야 할 식구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그 식구 때문에 도다리와 하늘이에게 몹시 혼이 났다. 황새는 엇나간 사춘기 청소년처럼 부리로 돌멩이를 쪼갰다.
쉬익, 쉬익.
풀숲을 기어 온 백합이가 황새를 불렀다. 황새는 못 들은 척을 했다.
황새는 백합이에게도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 자신을 버리고 새 식구에게 찰싹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잔뜩 골이 난 황새를 동그란 검은 눈이 응시했다. 백합이는 평소처럼 황새의 다리를 타고 올랐다.
까악! 까악!
황새가 신경질을 부렸다. 몸을 흔들어 백합이를 털어 버리고자 했다.
백합이는 이빨을 세워 황새를 콱 물었다. 황새가 꽥 비명을 질렀다.
자신을 달래 주지 않고 백합이가 되레 성을 내자 황새는 기가 죽었다. 황새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백합이는 황새가 한심했다. 자신이 사고 쳐서 혼난 걸 가지고 꽁해 있는 게 바보 같았다.
백합이는 황새가 새 식구와 잘 지냈으면 했다. 언제까지 막내일 수는 없다는 걸 황새가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랐다.
쉬익!
까악?
백합이가 황새를 일어나게 했다. 황새가 미적거리니 백합이가 이를 드러내 위협했다.
황새는 또 억울해졌다. 대체 자신에게 왜 그런단 말인가.
백합이는 황새를 끌고 아기 방 창문으로 갔다. 때마침 은새가 자리를 비워 아기가 혼자였다.
아기는 돌아가는 모빌을 보다가 발가락을 입에 가져다 넣었다.
아우. 아우.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백합이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백합이가 황새를 보며 꼬리로 창문을 가리켰다. 황새는 마지못한 척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인간 아기가 있었다. 강기슭에서 놀고 있을 때, 허공에서 뚝 떨어진 걸 황새가 호기심에 물고 왔지만 아기를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
아기는 모빌이 멈추자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다. 사방으로 팔과 다리를 뻗어 허우적거렸다.
때마침 아기의 시야에 벌레 한 마리가 들어왔다. 벌레는 침대 기둥을 타고 올랐다.
아기의 순진무구한 눈동자가 벌레를 따라 움직였다. 벌레가 발을 잘못 디뎌 뚝 떨어지자 아기가 까르르 웃었다.
별로 재미날 것도 없는데 아기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거기서 황새는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아기가 너무 작고 연약해 보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말도 못 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상대를 자신이 질투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쉭쉭.
까악.
황새는 백합이의 말에 수긍했다. 자신들은 저 아기를 돌봐 줘야 했다.
너무 연약해서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존재. 황새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책임감이 자라났다.
“음? 황새 왔네? 황새야, 아기한테는 장난치면 안 돼. 알았지?”
까악!
돌아온 은새가 당부했다. 황새는 강하게 부정했다. 다시 아기를 쳐다봤다.
황새는 아기의 멋진 형이 되어 주기로 했다.
***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은새의 집에 손님이 방문했다.
“어서 와, 우리야.”
은새가 속한 길드의 길드장, 우리였다. 우리는 비 맞은 우산을 털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몸은 좀 어때?”
“똑같아. 더 나빠지지도 않았고 좋아지지도 않았어.”
우리의 눈동자에 걱정이 스쳤다. 하지만 은새는 못 본 척 유순히 웃었다.
“뭐 마실래?”
“커피로 줘. 아기는?”
“자. 방에 쪼쪼랑 있어.”
은새가 주방으로 향하자 우리는 아기가 머무르는 방으로 갔다. 암막 커튼을 쳐 어두운 방 안.
우리의 기척을 느낀 쪼쪼가 고개를 들었다. 사방이 어두웠지만 S급 헌터인 우리가 행동하는 데에는 지장 없었다.
“쪼쪼, 고생이구나.”
우리가 쪼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쪼쪼가 혀로 날름 우리의 손을 핥았다.
쪼쪼는 과거에 새끼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에게 더 애틋하게 굴었다.
잠시 뒤 은새가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커피 다 내렸어. 거실로 와.”
“응.”
거실 식탁엔 간단한 다과와 진한 향기를 내는 커피가 두 잔 놓여 있었다. 빗방울이 지붕을 두들기는 소리가 제법 분위기 있었다.
커피 향을 음미하던 우리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선물 가져왔어.”
“뭔데?”
“김유하가 챙겨 줬는데 이거.”
그가 아공간을 열어 안에 있던 걸 꺼냈다. 분유가 거실에 박스째로 쌓였다.
“무슨 분유를 이렇게 많이 샀어?”
“특수 분유래. 이건 설사 방지 분유고 저건 알레르기용 분유. 이건 M사 분유, 거기 있는 건 S사 프리미엄 분유…….”
“지금 있는 것도 많은데. 게다가 특수 분유는 의사랑 상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 유은새 공부 많이 했네?”
“당연하지.”
은새가 거실 구석을 고갯짓했다. 거기에는 육아 도서가 탑처럼 쌓여 있었다.
“미리내가 가져다줬어.”
“잠깐 맡은 아기인데 다들 지극 정성이네.”
우리가 피식 웃었다. 그가 다시 아공간을 휘저었다.
“네 선물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