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3)화 (3/190)

2화 – 입에 뭘 물고 있는 거야?

은퇴 선언을 한 그날부터 은새는 차츰 일을 줄여 나갔다.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외국으로 나가는 일도 없었고 국내의 크고 작은 행사도 참석을 자제했다.

그나마 길드원들이 부르면 나가는 편이었는데 그럴 때면 ‘유은새 헌터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파파라치 컷이 찍혀 돌아다녔다.

우리와 미리내가 은새의 저주를 없애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녔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하기야 은새도 하지 못한 걸 그들이라고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솔이 온갖 명약이란 명약을 구해 와 강제로 먹였다. 그중에는 그리폰의 심장도 있었다.

덕분에 은새의 테이밍 능력만 강해졌다. 저주에는 효험이 없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사람들은 하나둘 궁금해했다. 커뮤니티에 ‘유은새 헌터 요즘 뭐함?’이라는 제목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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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강원도 홍천에서 유은새 헌터 본 썰 푼다.

본가가 홍천이라 이번 명절에 내려갔다가 사유지 근처에서 마수 날리고 노는 거 봄.ㅇㅇ

멀쩡하던데? 누가 유은새 헌터 죽을병 걸렸댔냐?

댓글(320개)

⤷헐. 근데 던전 공략은 왜 안 하지?

⤷그럼 망년회 하다가 피 토했다는 소린 뭐야?

⤷⤷그거 와인 먹고 토한 걸 누가 와전시킨 거래.

⤷⤷⤷뭐? 진짜 그런 거면 개웃기는 건데ㅋㅋ

⤷유은새 헌터 은퇴각 재고 있다는 소문 있음. 솔직히 돈 벌 만큼 벌었잖아? 나 같아도 걍 평생 놀고먹겠다.

⤷⤷근거 없는 루머ㄴㄴ

⤷⤷유은새 헌터 은퇴하면 도천 등급 떡락하는 거 아니냐? 솔직히 한우리, 유은새 아니면 도천 별 볼 일 없잖아ㅋ

⤷⤷⤷골드스타 어서 오고. 느이 길드장이 시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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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게시판] 근데 도천 좀 쎄하지 않냐?ㅋ

뭔 일로 사이 틀어져서 한우리가 유은새 팽한 것 같은데ㅋ

그거 아니면 지금 상황이 설명이 안 됨. 걍 다른 길드로 옮겼으면~

댓글(16개)

⤷피디엪 땀. 님 신고 ㅅㄱ

⤷쎄믈리에 왔냐?

⤷그렇다고 하기엔 멤버들이랑 사이 너무 좋던데(사진)

⤷⤷사진 뭐야ㅋㅋㅋ남궁솔 왜 이능으로 불쇼 하는 건데

⤷⤷창의적 재능 낭비의 현장

⤷솔직히 도천이 유은새 버릴 군번이나 됨? 유은새가 도천 버리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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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게시판] 근데 유은새 진짜 왜 던전 공략 안 함?

ㅇㅇ?

댓글(22개)

⤷몰라

⤷ㅁㄹ

⤷그걸 알면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겠음?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이 오가는 것도 모른 채 은새는 한가로이 은퇴 라이프를 즐겼다.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일어나 빨래를 하고 집 안 청소를 했다.

식사를 하고 나면 햇볕을 쬐다가 마수들과 운동을 겸한 산책을 했다.

저주에 걸렸다곤 하지만 당장 죽는 저주가 아니라서 그런지 은새는 태평하기만 했다.

거실에 틀어 놓은 티브이에서 도천 길드의 공략 소식이 흘러나왔다.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들리자 은새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제 낮 오후 1시 40분, 전라남도 담양군에 발생한 A급 던전이 도천 길드에 의해 공략되었습니다. 한우리 길드장은 이번 공략의 어려웠던 점을 내부 환경으로 꼽았으며 남궁솔 헌터가 큰 활약을…….]

띠링!

[남궁솔: 은새! 이번엔 진짜 네가 도와줘야 한다.]

[남궁솔: 헬프헬프헬프. 경기도 안성에 S- 던전 뜬 거 알지?]

[남궁솔: 가끔은 기분 전환도 해 줘야지. 너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님. 아무튼 아님.]

‘솔이도 참 양반은 못 된다.’

은새는 웃으며 답장을 썼다. 동료들은 저주의 존재를 안 순간부터 절대 은새를 무리하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정말 은새의 능력이 필요해서 부르는 건 아닐 테고 안부를 확인하려고 부르는 것이었다. 아마 공략법은 그들 위주로 다 짜 놨겠지.

‘어쩔까.’

갈까? 말까?

갈등하는 그녀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가 방금 찍은 듯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한우리: (사진)]

솔과 인찬, 유하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둥글게 모여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다. 은새는 웃음이 터졌다.

[남궁솔: 야! 한우리 넌 뭘 이런 걸 보내냐? 허 참. 참나.]

[서인찬: 은새야 우린 너 부담 주려는 게 아니라…….]

[유은새: 알겠어. 갈게.]

[김유하: 그럴 줄 알았음. 의리 하면 유은새지.]

[한우리: 버림받았다며 제일 징징댄 거 김유하 아니었냐?]

잠깐 대화가 끊겼다. 핸드폰 너머로 티격태격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있는데 밖에서 와장창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은새가 달려가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

“황새 너!”

까악!

타조만 한 덩치의 마수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도망치려고 하고 있었다. 마수의 목에는 보석 뱀 마수가 목걸이처럼 미동 없이 둘둘 감겨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알게 된 은새가 이마를 팍팍 쳤다. 요 사고뭉치들.

“백합이랑 장난치려면 저어기 산에 가서 하라고 했지! 어떡할 거야, 화분 다 깨졌네.”

마당에서 기르는 선물받은 화분들이 흙을 토해 낸 채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황새와 백합이는 은새가 데리고 있는 마수 중 가장 어렸다.

새끼일 때 던전에서 주워 와서 지금까지 키웠다. 윤기 나는 새카만 털과 날카로운 이빨, 거대한 발을 가진 검은뿔표범 마수 하늘이가 목 울림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혼냈다.

기가 죽은 황새와 백합이를 보니 은새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 생닭고기를 수북이 챙겨 왔다.

“간식 줄 테니까 얌전히 놀아라.”

까악!

쉬익-

그새 기운 차리고 닭고기를 냠냠 먹는 황새와 백합이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하늘이에게도 간식을 챙겨 주고 은새는 어질러진 마당을 치웠다.

은새는 문득 생각했다.

‘요양이라기엔 우당탕탕 귀농생활 같은데…….’

***

S- 던전 공략은 그 주 토요일로 일정이 잡혔다. 은새는 도다리와 하늘이, 민들레를 데리고 경기도 안성으로 갔다.

도다리가 날개를 접고 착륙했다. 미리 도착해 있던 기자들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은새와 마수들의 사진을 찍었다.

아마 ‘특종’, ‘속보’ 따위의 헤드라인을 걸고 기사가 올라갈 것이다. 그런 일에 익숙한 은새는 덤덤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은새야! 오랜만이야.”

은새를 가장 먼저 발견한 미리내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미리내로부터 따스한 기운이 퍼졌다.

은새가 겸연쩍은 표정을 했다.

“힐 안 해 줘도 되는데.”

“아무 효과 없는 거 알지만 이런 거라도 하게 해 줘.”

“아무 효과가 없다니. 기운이 넘치는데?”

은새는 과장스럽게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귀엽다는 듯 미리내가 은새의 볼을 꼬집었다.

“유은새애애. 어떻게 한 번을 먼저 연락 안 하냐!”

솔이 저 멀리서 달려와 은새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마수들과 놀아 주면서 그런 것에 단련된 은새는 뒷걸음질을 치며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였다.

우리가 솔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너는 네 덩치 생각 안 하고 자꾸 덤벼들래?”

“내 덩치가 왜! 나는 작고 귀여워.”

우리가 정색했다. 솔은 빈말로라도 귀엽다고 할 수 없었다. 키가 170이 훌쩍 넘고 몸에 근육이 단단했다.

S급 헌터인 솔이 달려들면 덤프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은새가 괜찮다며 손을 휘저었다.

“솔이 귀엽지. 작지는 않지만.”

“은새 너까지!”

솔이 징징 우는 시늉을 했다. 간만에 즐거운 분위기였다.

“그럼 들어가자.”

도천 길드의 에이스들이 뭉쳤다. 광활한 빛에 휩싸인 그들이 던전에 입장했다.

“서인찬, 탱커!”

“오케이!”

인찬이 방패를 들고 미리내의 앞을 단단히 버티고 섰다.

“김유하 감 떨어졌냐? 목표물 제대로 못 맞히지?”

“조용히 해 봐, 집중 안 되거든?”

우리의 구박에 유하가 허공에 빛의 화살을 만들어 냈다. 그가 활을 당겨 마수의 머리를 맞혔다.

퍽! 뇌수가 터졌다. 하지만 머리가 날아간 마수의 몸이 꿈틀거리며 새로운 머리를 만들어 냈다.

“윽. 재생력 하나는 끝내준다.”

“쟤는 자힐이 되니까 힐러가 필요 없겠다.”

“지금 농담이 나와?”

유하가 솔을 타박했다. 은새의 마수인 하늘이가 거대하게 몸을 부풀려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키아아앙-!

깨애액!

두 마수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은새는 도다리를 타고 비행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우리야, 3시 방향 한 마리 더!”

“오케이!”

쏜살같이 튀어 나간 우리가 검에 오러를 둘렀다. 그가 허공을 밟으며 검을 내지르자 마수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났다.

상처가 아물기 전 솔이 화염의 창을 만들어 던졌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마수가 크게 몸부림쳤다.

“어우, 아프겠다.”

“그런 실없는 소리 할 정신이 있어?”

검은뿔표범 하늘이와 영호 민들레가 협공했다. 민들레가 그림자 속에 뛰어들었다가 마수의 바로 뒤에서 솟구쳤다.

크앙!

민들레에게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밧줄처럼 마수를 옭아맸다. 그 찰나를 노리고 하늘이가 마수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냈다.

“어우, 은새네 애들 오늘 페이스 장난 없다.”

“은새도 신난 것 같은데?”

우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수들의 주의를 끄는 은새를 봤다. 그의 눈동자에 복잡한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쟤는 진짜…… 던전에서 살아야 하는 앤데.”

S-급 던전은 수월하게 공략되었다. 애초에 이쪽의 기세가 오늘 너무 좋았다.

“은새야, 밥 먹고 가. 가지 마아.”

은새가 강원도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자 솔이 은새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이 도천 길드에 집중되어 있었던 터라 은새는 오늘 일찍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중에 따로 만나서 식사하자.”

“힝.”

솔과 동료들을 달래고 강원도 집으로 돌아온 은새는 옷도 안 갈아입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런데 마수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너희 왜 그래?”

꾸우, 꾸우!

도다리가 어딘가를 부리로 가리켰다. 은새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황새 너, 입에 뭘 물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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