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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2)화 (2/190)

0화 - 프롤로그

하늘에 닿을 듯 뻗은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광활한 공간.

햇빛을 받은 나뭇잎이 나풀거리는 그림자를 만들고, 돌 더미 주위로 큰발다람쥐의 꼬리가 꼼지락거리며 나타났다 사라진다.

길게 자란 풀과 야생화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톡, 토독……. 생명력이 움트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그곳 정중앙에 우뚝 선,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푸른빛을 내는 나무.

은은한 빛을 뿌리는 그것은 이 세계를 지탱하는 원천, 세계수 위그드라실이었다.

그 밑에 둥글게 지어진 둥지에 아기가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톡 튀어나온 이마에 구불구불한 하늘색 머리. 말랑말랑한 뺨.

오므려 쥔 손이 단풍잎처럼 작았다. 아기는 울다 지쳐 잠들었는지 눈꼬리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 홀로 남겨진 아기.

“히웅…….”

아기는 잠결에 서러운 소리를 냈다. 싸아아. 멀리서 불어온 바람이 눈물 자국이 남은 아기의 뺨을 어루만졌다.

몇 번의 낮과 밤이 이어졌다. 달래 주는 이 하나 없이 지칠 때까지 울던 아기는 문득 공간의 비틀림에서 새어 나온 포근한 기운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아기는 거기에 이끌렸다. 왠지 그 기운을 따라가면 더는 춥지도 외롭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 기운에 닿고자 아기는 통통한 팔다리를 열심히 바동거렸다.

“우으!”

그리고 마침내 서서히 퍼져 나오던 따스한 기운이 아기의 손끝에 감긴 순간, 눈부신 빛이 아기를 집어삼켰다.

어느 순간 둥지가 빈 것을 알아차린 세계수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아기가 없어.]

세계수는 주변의 동물들에게 부탁해 아기를 찾았다. 고요하던 공간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바스락.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기척에 세계수가 가지를 흔들었다.

[벨키오르. 아기가 사라졌어.]

“아기가?”

벨키오르라고 불린 사내의 표정에 금이 갔다.

진한 눈썹, 오뚝한 콧날과 날렵한 턱선. 뚜렷한 이목구비와 섬려한 생김새가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 없이 미학적인 얼굴이었다. 거기에 곧은 목과 넓은 어깨, 큰 키가 어우러지니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겼다.

긴 하늘색 머리가 하늘하늘 휘날렸다. 눈을 가늘게 뜬 벨키오르는 생각했다.

‘내 자식이 없다.’

침소로 꾸민 장소가 텅 비어 있었다. 기감을 아무리 넓혀 봐도 아기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죽었나?’

그럴 리 없었다. 그의 자식은 특별했다.

한평생 그토록 원했으나 찾지 못한 반려 대신, 자신의 기와 세계수의 정수를 엮어 태어나게 한 아기였다.

하여 그의 자식은 보살핌이 없어도 살아남을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제 자식이 사특한 무언가에게 사냥당하는 게 그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살기를 발산해 상대를 공격하면 모를까.

‘찾아야 한다.’

아기는 그 자체로 영물인 동시에 영약이었다. 아주 오래전 뭣도 모르는 인간들이 그들을 노렸던 때가 있었다.

영생과 무한한 힘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존재. 그러나 인간은 그들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고 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아직 헛된 꿈을 꾸고 있는 자가 있다면.

‘참혹한 죽음을 선사해 주마.’

그는 날개를 펼쳤다. 아기가 남긴 흔적을 쫓아 비상했다.

자연을 관장하는 드래곤의 분노에 대지가 부르르 떨었다. 생명력을 빼앗긴 나무가 메마르고 꽃과 풀이 시들었다. 놀란 동물들이 후다닥 달아났다.

‘아직 죽지 않았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공이 세로로 찢어진 금색 눈이 차갑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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