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은퇴 선언
2050년 서울.
“다들 머리 조심! 15초 뒤 브레스가 온다!”
“미친 변종 도마뱀, 브레스를 몇 번이나 쏘는 거야?”
논현동 한복판에 열린 던전을 막기 위해 헌터들이 모였다. 빨간 머리의 여성이 불로 만들어진 창을 있는 힘껏 마수를 향해 던졌다.
크아아아!
하지만 훌쩍 날아올라 공격을 피한 마수는 숨을 흡, 들이마시더니 거대한 용의 숨결을 토해 냈다.
던전 일부가 파괴되며 화마에 휩싸였다. 지글지글 치솟는 열기.
“다친 사람은?”
“못 피하고 넘어진 얼간이 있냐?”
“없다! 너나 잘해라!”
정답게 서로의 생존을 확인한 그들은 공격을 속개했다. 빛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고 오러를 두른 검이 마수의 피부를 갈랐다.
길게 포효한 마수가 꼬리 공격을 했다. 붕 소리와 함께 가까이에 있던 남자가 정통으로 맞았다.
“우리야!”
“한우리 등신, 왜 저리 가까이에 있다가 얻어맞냐? 야, 죽었냐?”
“끄응. 남궁솔, 넌 이따가 두고 보자.”
무너진 잔해 사이에서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다시 격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다. 마수의 공격 타이밍을 계산하던 잿빛 머리 여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은새는?”
“오고 있대!”
“걔는 걸어오냐? 날 때부터 제 발로 걸어 본 적 없을 것 같은 녀석이.”
“나 찾아?”
크아옹!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색 찬연한 깃털을 가진 거대한 조룡 위에서 한 여성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하나로 묶은 긴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자신만만하게 반짝였다.
“빨리빨리 안 다니지!”
헌터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린 이는 오랜 동료이자, 세계 유일의 몬스터 테이머였다.
“가렴, 나의 귀여운 아이들아.”
은새가 적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 뒤에 포진해 있던 마수들이 흉포한 울음을 내지르며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적에게 달려들었다.
쿵! 쿵! 쿵!
까아아악-!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용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육중한 몸을 쓰러트렸다.
“됐다!”
“끝났다!”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12시간 30분 만의 쾌거였다. 헌터들은 그제야 이마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았다.
“올~ 유은새. 멋있는 건 혼자 다 하는구만.”
“왜 이렇게 늦었어! 우리 다 죽고 나서 오려고?”
“멕시코 출장. 미안, 미안. 그래도 한국 도착하자마자 온 거라고?”
짓궂은 동료들의 장난을 은새가 천연덕스럽게 받아쳤다. 진심은 아니었기에 동료들은 어려울 때 와 준 은새를 진심으로 반겼다.
“세계 유일이라는 딱지는 귀찮구나. 여기저기서 오라 가라 하고.”
“다친 사람은 미리내한테 가!”
“오, 우리의 힐러님. 저 여기 다쳤어요. 호~ 해 주세요.”
“미친 남궁솔. 쟤 좀 우리 길드에서 내쫓으면 안 되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S급 던전을 클리어 한 일행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뒤풀이를 갔다.
***
[던전 공략 소식입니다. 서울시 논현동 일대에 생겨난 S급 던전을 금일 도천 길드에서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총 공략 시간은 12시간 30분으로, 길드장 한우리 헌터와 부길드장 최미리내 헌터, 길드원 남궁솔 헌터, 서인찬 헌터, 김유하 헌터, 마지막으로 유은새 헌터가 참전했습니다.
던전 보스는 킹 스피노 골드 드래곤으로…….]
⤷역시 도천좌. 갓도천. 한국 1위 길드답다.
⤷유은새 멕시코인가 아프리카인가 갔다 하지 않았음? 왜 한국에 있어?
⤷⤷귀국 중에 소식 들었다고 함. 당신이 진정한 애국인입니다^^77
⤷수고 많으셨습니다. 헌터님들 덕분에 오늘도 한국은 무사합니다.
⤷킹스피노 저거 얼마 전에 중국에서 잡다가 길드파티 몰살됐던 놈 아님?ㅋㅋ
⤷⤷마따마따 킹스피노 도천한테 개발렸지요? 중국 자존심 빡 상했지요?ㅋ
⤷솔직히 한우리, 유은새 빼면 도천 개X밥이지
⤷⤷야 울지 말고 말해 봐
⤷⤷어디 길드냐? 골드스타냐? 느이 길드장이 시키든?ㅋ
이 세계에 ‘던전’이라는 이계 공간이 생겨난 지 10년. 격변의 시대가 도래하고 세상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달라졌다.
생활양식부터 주거 공간, 법률, 행정, 국제 정세까지.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로 ‘헌터’의 등장이었다. 헌터란, 이능력을 각성해 마수를 멸살하는 이들이었다.
3년쯤은 혼돈의 시기였다. 던전에서 튀어나온 마수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도시가 파괴되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규범이 무너지고 사회적 인프라 역시 크게 손상되었다.
그 어떤 정책과 안전망도 초유의 사태에서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든 적응하는 동물이었고 곧 새로운 세상에 알맞은 생존법을 터득했다.
이때 헌터들은 기업의 후원을 받아 저마다 세력을 구축해 길드를 세웠다. 그중 한 곳이 한국 굴지의 기업, 도천 그룹이 세운 도천 길드였다.
도천 길드는 그룹의 셋째 아들인 한우리를 필두로 단기간에 크게 성장했다.
한우리는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운영을 하며 길드를 한국 최고의 자리까지 올려놓았다.
한우리에게는 다섯 명의 절친한 동료가 있었는데 남궁솔, 최미리내, 서인찬, 김유하, 유은새가 그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을 위협하는 여러 던전을 차례로 격파했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유은새는.
“우욱.”
현재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밤 뒤풀이 후유증으로 바닥을 기다시피 해 화장실로 갔다.
속을 게우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은새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술을 궤짝으로 처먹는 놈들이 어디 있어.”
골골대는 그녀가 걱정됐는지 같이 집안에서 지내는 소형 마수들이 다가와 머리를 비볐다.
은새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가장 먼저 자신을 집으로 데리고 온 마수 ‘도다리’의 목덜미를 쓸어 줬다.
도다리는 조룡 마수로, 공작과 같은 현란한 깃털과 금색 눈을 가졌다.
“도다리야, 어제도 네게 신세를 졌구나.”
꾸꾸!
도다리가 어서 씻으라는 듯 은새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나 냄새나?”
꾸, 꾸우-!
은새는 시무룩해졌다. 세계 유일의 몬스터 테이머인 은새는 인가에서 살지 않았다.
강원도 홍천군의 깊은 산속에 그녀의 집이 있었다. 그녀는 동거 마수들을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넓은 부지의 땅을 소유했다.
은새는 씻고 나와서 동거 마수들의 밥을 챙겨 줬다. 마당에서 노닐고 있던 도다리와 민들레, 쪼쪼, 쿠키, 하늘이가 신나서 뛰어왔다.
귀여운 이름과 달리 그들은 차례로 조룡, 영호(影虎), 큰뿔서리양, 일각수, 검은뿔표범 마수로 일반인들은 감히 만지지도 못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이름이 왜 다 그 모양이냐면 은새의 작명 센스가 그따위였기 때문이다.
은새가 흔들의자에 앉아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띠링!
[남궁솔: 유은새 너 생각 안 변했어?]
[남궁솔: 지금이라도 술김에 한 말이라고 해. 모른 척해 줄 테니까.]
[남궁솔: 너 없으면 우리 길드 어떡하라고. 망했어.]
[김유하: 남궁솔 그만. 은새도 생각 많이 했겠지.]
[서인찬: 은새야ㅠ_ㅠ 그래도 우리 계속 친구지? 계속 연락할 거지?]
[최미리내: 너네 은새가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내가 다 부담스러움.]
[서인찬: 아쉬워서 그러지, 아쉬워서.]
단톡방이었다. 은새는 픽 웃으며 액정을 두들겼다.
[유은새: 미안. 그래도 계속 연락은 하고 지내자. 나 조난되면 구하러 오고.]
[김유하: 너어는 무슨 농담을 그렇게 무섭게 하냐?]
은새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무슨 말들을 하는지 액정의 불빛이 깜박거렸다.
어제 술자리에서 은새는 잠정적 은퇴를 선언했다. 그전까지 그런 기색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동료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야, 장난이지? 한창 현역으로 뛸 나이에 은퇴는 무슨 은퇴?’
한우리가 제일 기겁했다.
‘네가 은퇴하면 국가적, 아니지 전 인류적 손실이야. 너는 호호 할머니 될 때까지 일해야 됨.’
‘은새야, 무슨 일 있어? 미국에서 또 수작 부려?’
은새는 말없이 옷자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꺄아, 하고 장난스럽게 눈을 가리던 이들이 삽시간에 얼굴이 굳어졌다.
솔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질했다.
‘너, 너……! 그게 뭐야. 허리가 왜 그래!’
거무튀튀하게 썩어 들어가는 피부가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미리내가 얼른 다가가 상처를 살폈다.
이런 상처라면 내부에서 생긴 문제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봐야 했다. 통증 경감 스킬이 있어도 고통스러웠을 텐데.
은새는 힐을 시전하려는 미리내를 말렸다. 소용없을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처가 아니었으므로.
‘2년 전에 은가시나무 던전 갔던 거 기억해?’
‘설마 거기서 다친 게 여태 안 나은 거야?’
‘왜 말 안 했어!’
동료들이 은새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은새가 잠시 말을 아꼈다.
한중일 연합 레이드 때였다. 북한에서 터진 던전을 막기 위해 도천 길드에서 나섰다.
북한은 던전 초기 대응을 잘못해 더 이상 국가로서 기능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은가시나무 던전은 추정 SS+급 던전으로 이미 브레이크가 발생해 크나큰 피해를 끼치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모여 공략에 나섰다. 레이드 기간만 장장 넉 달.
다 끝났을 때는 사상자가 160여 명에 달했다. 문제는 그 던전 보스가 마지막에 퍼트린 저주였다.
보스는 드물게 이지를 가진 개체였는데 인간들의 손에 죽는 것을 크나큰 치욕으로 여겼다.
‘버러지 같은 인간들아, 내 피는 죽어서도 공포를 남길 것이고 내 살은 영원토록 너희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자폭이었다. 그때 은새가 심하게 다쳤다.
열흘가량을 혼수상태로 있던 은새는 깨어났을 때 눈에 보이는 부상은 이미 완치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놈이 한 놈만 죽어 보라고 저주를 남겼을 줄은 몰랐지.’
혹시 모른다. 중국이나 일본 측에서도 같은 현상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하지만 대중매체에 알려진 사람은 없었고 어쨌든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은새는 자신이 아파하면 같이 무너질 동료들을 알아서 이 일을 숨긴 채 홀로 방법을 모색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동료들은 그 사실을 듣자마자 통곡했다. 은새가 어제 동료들이 내미는 술을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미안하네.”
눈물, 콧물 쏙 빼던 솔과 인찬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은새가 은퇴한다는 게 알려지면 큰 파문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은새는 점차 활동을 줄여 가기로 했다.
“새로운 인생 시작이네.”
죽을 날을 받아 놓고도 은새는 태평하게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