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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106)화 (106/111)

106화

특별 외전 2

늘 좋았지, 여기서.

- 우리 둘이서만 저녁을 먹자는 얘기예요?

“응.”

- 우리 둘만요?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자고 말하는데, 서현이 설레하는 것 같지 않자 태성은 어쩐지 기운이 빠졌다.

“왜? 약속 있어?”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애들은요?

“아버지, 어머니한테 부탁했어.”

- 당신이 부탁한 거예요?

“이럴 때도 있어야지.”

- 왜 그랬어요? 죄송하게….

“좋아하셨어. 너무 오랜만에 애들이랑 함께 잘 수 있다고. 그러니까 오늘 저녁은 우리 둘이 시간 보내.”

단호하게 말했지만, 서현이 선뜻 시원하게 대답을 안 하자, 태성은 손끝으로 책상을 튕겼다.

“왜, 일 있어?”

서현이 계속 망설이자, 태성은 초조함에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당신 좋아하는 레스토랑 가자. 우리가 처음으로 갔던 호텔 레스토랑. 당신 거기 음식 좋아하잖아.”

너무 매달렸나?

나 진짜 왜 이러지?

너무 없어 보이게 사정한 것 같아 살짝 후회를 하는데 서현이 입을 열었다.

- 그래요. 근데 대신….

“대신?”

- 나 지금 하던 일이 있어서 일찍은 못 나가요.

“기다릴게. 하던 일 편히 하고 끝나면 연락해.”

- 얼른 끝내볼게요. 

“너무 늦으면 레스토랑 생략하고, 집에서 오붓하게 한잔해도 되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 알겠어요.

서현과 통화를 끝낸 태성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스스로도 너무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기쁜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태성은 바로 전화를 걸어,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객실과 함께.

* * *

“여기 정말 오랜만이지?”

태성은 식사는 뒷전으로 한 채, 서현이 식사하는 것만 바라보고 챙겼다.

그런 그가 걱정된 서현은 포크로 고기를 찍어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당신도 좀 먹어요.”

태성이 입을 벌리자, 서현은 그의 입에 고기를 쏙 넣어줬다.

태성은 고기를 씹으면서도 서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눈빛이 점점 더 뜨거워지자, 서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나 닳아 없어질 거 같아. 당신 눈빛에 화르륵 타거나.”

“견뎌. 난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 잡아먹고 싶은 거, 힘들게 견디는 중이니까.”

“설마 방도 예약한 건 아니죠?”

태성이 대답은 안 하고 미소를 짓자, 부끄러워진 서현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눈을 흘겼다.

“여기만 오면 꼭 그러더라.”

“그래서 늘 좋았지. 여기서.”

태성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눈치채고 있었잖아, 여기 오자고 할 때부터?”

“몰랐는데요?”

서현이 시치미를 떼자, 태성은 연애하던 시절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졌다.

“장서현, 여기서 덜덜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내가 언제 떨었다고 그래요?”

“아니었다고?”

“아니, 그게… 당신이 자꾸… 지금도 그래. 그런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떨렸어?”

“점점….”

목이 탄 서현이 와인 잔을 비우자, 태성은 그녀의 빈 잔에 와인을 따랐다.

“이것만 마시고 올라갈까?”

“벌써요? 당신은 얼마 먹지도 않았잖아요.”

“난 먹을 게 따로 있어서.”

태성이 허공에 뽀뽀를 하자, 서현은 주위를 살폈다.

“누가 봐요.”

그때였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서현은 아주 못 볼 것을 봤다는 눈빛으로 제 쪽을 바라보는 민혁과 눈이 마주쳤다.

“오빠?”

잠시 후, 잠깐 자리를 비웠던 민혁의 아내 성유리 팀장까지 자리로 오면서 네 사람은 자연스럽게 디저트를 함께 먹게 됐다.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고 나니, 자연스럽게 육아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얼마 전에 출산한 유리는 서현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여자들이 육아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자, 태성과 민혁은 잠시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둘씩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성 팀장이 관둔다고?”

“그럼 계속 다닐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건 아니지만… 언제?”

“당장은 아냐. 와이프는 계속 다니고 싶어 하는데… 우리 집에서, 특히 아버지께서 와이프를 마음에 들어해. 너도 알다시피 내 와이프가 똑부러지잖아?”

“그래, 성 팀장 유능하지.”

“그래서 사업 하나를 맡기고 싶어 하셔. 뭐, 이런 거 예상 못 했던 일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너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부터 각오한 일이긴 한데, 너무 갑자기라.”

“갑자기 관두지는 않을 거야. 그럴 사람도 아니고.”

“알지. 그나저나 성 팀장 관두면 서현이가 더 힘들어지겠네.”

서현이 걱정에 태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지자, 민혁은 피식 웃었다.

“넌 서현이가 그렇게 좋냐? 서현이 걱정에 울겠다, 울어.”

“울긴….”

태성이 언짢은 표정을 짓자, 민혁은 재미있다는 듯 더 얄궂게 몰아붙였다.

“서현이 옆에 있는 널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알아?”

“무슨 생각?”

“진짜….”

“진짜 뭐?”

“진짜… 개 같다.”

“뭐!”

태성이 발끈하자, 민혁이 손사래를 치며 박장대소했다.

“아니 욕이 아니라, 아까도 그래. 레스토랑에서 입술을 쭉 내밀고, 그게 뭐냐?”

“음!”

“아주 그냥, 좋아 죽겠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꼬리가 떨어져라 흔드는 개 같더라, 너?”

“개… 그러는 넌 아니고?”

“나도 물론 그렇지. 근데 너랑 나랑 차이점이 있지.”

“무슨?”

“난 숨길 줄 알고, 넌 숨길 줄 모른다는 거.”

“……?”

태성이 고개를 갸웃하자, 민혁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잘 생각해 봐. 넌 좀 숨길 필요가 있다니까.”

“어쭈 조언까지?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했냐?”

“까칠하긴… 너 솔직히 말해봐. 서현이 성격으로 봐서는, 너한테 먼저 안 들이대지? 너만 안달복달하지?”

“네가 봤어?”

태성의 반응을 본 민혁은 안 들어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속삭였다.

“적극적인 서현이를 보고 싶다면… 내 말 명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나도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운 좋게 통한 비법이 있거든.”

민혁은 태성이 원하지도 않는데 조언을 하기 시작했고, 육아 얘기를 하던 서현과 유리의 이야기 주제는 어느새 남편들 이야기로 흘러갔다.

“먼저 덮쳤다고요?”

“네. 아이 낳고 나니까 민혁 씨가 너무 조심스러워하고 어려워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피곤해할까 봐 미안해하고.”

“그럴 수 있죠. 그럴 땐 여자가 적극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긴 한 거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덮쳤어요.”

“신혼 맞네요. 저도 그때는 그랬는데… 오래된 기억이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피곤해서 자기 바쁘죠.”

“서운하시겠다. 늘 표현 받는 쪽이시죠?”

“뭐….”

“표현해 줄 때 같이 좀 해주세요. 저도 몇 번 거절하다가 어느 날 맨날 들이대던 사람이 조심스러워하면서 들이대지 않으니까 위기감 느껴지던데요? 앞으로 부부생활이 쭉 이러면 어쩌지? 덜컥 겁이 나서 덮쳤다니까요.”

“아….”

“너무 좋아하던데요? 그래서 가끔은 필요한 거 같긴 해요. 저보다 잘 아시잖아요. 결혼 선배이신데.”

“저, 잘 몰라요. 지금도 조금 반성하고 있고.”

유리의 이야기를 들은 서현은 그동안 태성을 밀어내기만 했던 자신이 떠올라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 나가서 왜 안 들어오죠?”

“그러게요.”

그때였다.

서현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 왔다.

* * *

“태오야, 괜찮아?”

헐레벌떡 방으로 들어온 태성과 서현은 태오의 턱 상태부터 살폈다.

“어쩌다가 다쳤어.”

태오가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자, 숙영이 얼른 감싸 안았다.

“슈퍼맨이라고 하면서, 순식간에 뛰어내리는데 말릴 틈도 없었어. 우리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미안해서 어쩌니….”

“아니에요. 어머니….”

“꿰매면 오히려 흉 지니까 상처 벌어지지 않게 해줬는데, 덧나지 않게 조심하라더라. 많이 놀랐지?”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죠?”

“나보다 태오가 놀랐지.”

서현은 눈에 힘을 주고 태오를 바라봤다.

서현의 눈빛을 본 태오는 숙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잘못했어요….”

“엄마가 높은 곳 올라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서현이 엄한 표정을 짓자, 태성은 얼른 태오를 달랬다.

“엄마가 속상해서 그래. 태오 다음부터는 조심할 거지?”

“네….”

턱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풀이 죽어 있는 태오를 보고 있자니 서현은 속이 상했다.

괜히 부부의 시간을 갖겠다며 우리끼리 저녁을 먹자고 해서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하고.

“집에 가자.”

“네….”

평소였으면 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태오였지만, 서현의 심각한 목소리에 바로 자기 장난감을 챙기기 시작했다.

* * *

서현이 태오의 방에서 나오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성이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뒤를 따랐다.

“고생했어.”

“당신도 고생했어요.”

서현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자, 태성은 그녀를 뒤에서 꼬옥 껴안았다.

“기운 내. 애들 다 다치면서 크는 거지. 남자애잖아.”

“휴… 피곤하다. 얼른 자요, 우리.”

서현은 힘없이 안방으로 향했고, 태성은 그 뒤를 따랐다.

서현은 지친 기색으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잘 자요.”

모처럼 오붓한 부부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는데, 축 처진 서현을 보고 있자니 태성은 한숨이 나왔다.

태성이 침대에 눕자, 서현은 반대로 몸을 돌려 누웠다.

등을 보이는 그녀가 어쩐지 야속해 태성은 그녀를 뒤에서 꼬옥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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