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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100)화 (100/111)

100화

추가 외전 16화

밤의 행복

태오는 원래부터 밤에 잠을 잘 잤고, 문제는 지오였다.

두 시간, 세 시간 간격으로 깨는 바람에 태성과 서현은 밤부터 아침까지 잠을 잔 기억이 최근 3개월 동안은 없었다.

태성은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새벽에 일어나서 애를 보느라 살이 빠졌고, 서현 역시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태오 때도 이랬나?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거리기는 하지만, 태오보다 지오의 잠투정이 확실히 더 심한 건 사실이었다. 

100일만 지나면 애들이 달라진다며 숙영은 서현을 위로했지만, 100일이 오기는 할까? 

그땐 그게 그냥 위로일 거라고 여겼었다.

근데 정말 백일잔치를 한 이후부터 놀랍게도 밤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자는 지오였다.

태성과 서현은 지오가 처음 한 번도 깨지 않고 잔 날, 그 순간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이게 정말인가? 곤히 잠들어 있는 지오를 보면서 눈을 연신 비벼댔었다.

그렇게 밤의 행복이 찾아왔다.

아이들을 재우고 샤워를 하고 난 태성은 화장대에 앉아 있는 서현의 얼굴에 차가운 맥주를 가져다 댔다.

“아! 이거 뭐예요?”

“맥주 한잔할까?”

“안 그래도 좀 당겼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샤워 후에 맥주. 우리 이제 그런 사치 누릴 때 됐잖아.”

“맞아요.”

냉동해 놓은 모유도 많겠다. 

오늘은 이런 호사 정도는 누리고 싶은 서현이었다.

서현은 태성이 내민 맥주를 받아 들고, 볼에 가져다 댔다.

“아, 시원하다. 지오야, 고마워. 엄마 잘 마실게.”

“맥주는 내가 가져다줬는데, 지오한테 고마워하는 거야?”

“태성 씨도 고맙고. 안주는 뭐예요?”

“자!”

언제 또 준비했는지 태성은 과일과 치즈, 마른안주를 담은 접시를 꺼냈다.

“언제 준비했어요?”

“좀 전에.”

서현은 태성이 준비한 안주를 보고 감탄했다.

“이젠 식당 차려도 되겠어요. 점점 솜씨가… 너무 좋아지는 거 아니에요?”

태성은 안방 테라스에 있는 소파 테이블에 안주를 올려놓고, 얼음 바스켓에 담은 맥주를 올려놓았다.

맥주가 식지 않게 한 태성의 센스에 서현은 감탄했다.

태성은 서현을 데리고 소파에 앉았다.

소파는 밖을 향해 있어서 정원이 한눈에 보였다.

꽃과 나무에 조경이 밝혀져 있어서, 어디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다.

태성은 맥주를 따라 서현에게 건넸다.

“자, 받아.”

“고마워요.”

태성은 자신의 잔도 채우고, 서현의 잔과 부딪혔다.

태성도 서현도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목젖을 타고 시원하게 흐르는 맥주가 오늘 하루 고된 일들이 씻겨 내려가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 너무 맛있어.”

“하….”

“우리한테 이런 날이 오다니….”

“그만 감격하고 과일도 좀 먹어.”

태성이 서현의 입에 하몽을 얹은 메론을 쏙 넣어줬다.

“이것도 너무 맛있다. 당신도 먹어요.”

서현도 태성의 입에 안주를 넣어줬다.

태성과 서현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힘든 일은 격려하고, 위로하고, 재미있었던 일은 함께 웃기도 하며… 그렇게 떨어져 있던 시간들을 공유했다.

뭐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데 서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함께 마시는 맥주도 너무 맛있어서 한잔, 두잔, 세잔 마시다 보니 서현은 조금 취기가 올랐다.

서현은 태성의 가슴에 안겼다.

“아, 평화롭다.”

태성은 미소를 지으며 서현의 어깨를 안았다.

“가끔 이런 시간 갖자.”

“네, 좋아요. 오늘도 고마워요.”

“……?”

‘무슨 말이지?’ 하다가 태성은 서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으니까.

이 모든 걸 함께 함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이.

존재 자체가 고마운 사이.

“오늘도 고마워. 서현아.”

태성은 서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 * *

쏴아아-

서현이 시원하게 정원에서 물을 주고 있는데 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지난번에 새로 산 반짝이 풀 어디 있어?”

“쓰던 거 벌써 다 썼어?”

“응.”

태오는 거실에서 엎드려 그림일기를 그리고 있었다.

요즘은 다양한 색칠 도구들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특히 꽂힌 도구는 반짝이 풀이었다.

“엄마가 꺼내줄게.”

통창인 거실 창으로 정원을 오갈 수가 있어서 서현은 물을 끄고 창을 통해 거실로 들어갔다.

서현이 거실 수납장을 뒤지는데, 태오가 다가왔다.

“엄마, 이거 여기 있었어?”

“응, 다음부터는 태오가 여기서 꺼낼 수 있지?”

“응.”

태오가 필요한 색깔을 몇 개 골라서 그림일기를 그리려고 돌아서는 순간,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 안돼!”

태오는 얼른 달려가서 지오가 입에 물고 있는 그림일기를 뺏었다.

지오는 좀 전까지만 해도 거실에 누워 모빌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배밀이를 하고 와서 태오의 그림일기에 침을 묻힌 거였다.

놀란 서현도 얼른 지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지오가… 아, 나 이거 어떡해… 침 다 묻었어.”

지오를 보는데, 반짝이 풀이 입에 묻어 있었다.

서현은 깜짝 놀라서 지오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엄마, 내 거 망가졌다고.”

서현의 귀에 태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지금 반짝이 풀을 먹은 지오만 보일 뿐이었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지오를 닦이고 나온 서현은 태오의 물건을 치웠다.

“태오야, 너 엄마가 동생 만질 수도 있으니까 바닥에서 하지 말고, 테이블에서 하라고 했지?”

“엄마, 내 그림이 망가졌단 말이야. 이지오가 내 거 망가뜨렸다고.”

“지오는 아기잖아. 태오가 거기에 그림을 놓은 게 잘못이지. 다음부터 테이블에서 해. 알았지?”

“엄마, 왜 나만 혼내. 지오가 잘못한 건데 왜 나만 혼내.”

“태오야.”

이때, 태성이 집에 들어왔다.

“아빠 왔다.”

태오는 태성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아빠!”

태오를 번쩍 안은 태성이 거실로 들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태오가….”

서현이 말을 하려는 순간, 억울한 태오가 말을 막았다.

“아빠, 이지오랑 엄마 나빠. 이지오는 내 그림 망쳤고, 엄마는 나한테만 뭐라고 했어.”

“태오야.”

서현이 부르자, 태오는 태성의 목을 세게 끌어안았다.

“아빠, 엄마가 나만 혼내.”

태성은 서현에게 눈짓을 하고는 태오를 바라봤다.

“태오야, 아빠랑 같이 목욕할까?”

“응. 이지오 빼고. 아빠는 태오랑만 씻어.”

단단히 삐친 태오를 데리고 태성은 우선 방으로 향했다.

“아빠! 나 컵 줘.”

“그래.”

태오는 컵을 가지고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장난치기 시작했다.

태오의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자, 태성이 입을 열었다.

“태오, 오늘 서운했어?”

“응. 엄마는 나만 미워해. 아빠는 태오 안 미워하지?”

“태오야, 엄마도 아빠도 태오 안 미워해. 사랑하지.”

“아니, 엄마는 이지오만 좋아해.”

“왜 그렇게 생각해?”

“맨날 이지오만 안아주고, 맨날 이지오만 데리고 자고, 맨날 이지오만 안 혼내고, 맨날 이지오만 밥 먹여주고, 맨날 이지오가 잘못하는데 나만 혼내….”

태오는 말을 하면서도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태성은 그런 태오를 꼬옥 껴안아줬다.

“태오야, 엄마는 태오 안 미워해.”

“아니야, 미워해.”

“아니야. 태오 어렸을 때 기억해?”

“응.”

“지오만 할 때도 기억해?”

“그건 기억 안 나.”

“태오도 지오만 할 때는 엄마가 매일 안아주고, 혼도 안 내고, 밥도 먹여주고 그랬는데, 그거 기억 안 나지?”

“응, 안 나.”

“엄마가 지오는 아기라서,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거지 절대 태오를 덜 사랑하고 지오를 더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근데 왜 나만 혼내?”

“지오는 아기라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태오는 다 알잖아. 그래, 안 그래?”

“그래.”

“그러니까 엄마가 태오한테 부탁을 하는 거야. 엄마는 지오 때문에 이제 많이 힘드니까. 태오야, 엄마 도와줘 이렇게 말한 거야.”

“그런 거야?”

“응.”

“근데 왜 화내면서 말해?”

“그건 엄마가 잘못했네, 그렇지?”

“응. 그리고 그림 망가뜨린 이지오도.”

“그래, 지오도 혼나야겠다.”

“아빠가 혼내줘.”

“그래, 혼내줘야겠다. 어떻게 혼내줄까? 무섭게 혼내줄까?”

태오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조금만. 지오 또 우니까.”

“조금만 혼내줄까?”

태오가 또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무서울 텐데… 아, 아니야. 아빠. 혼내지 마.”

“왜?”

“지오 또 울 거 같아.”

“울어도 혼내야지.”

“아니야, 혼내지 마. 내가 그냥 테이블에서 그림 그리면 돼.”

“그럼 그럴까?”

“응. 지오가 거긴 못 올라오겠지?”

“그럼. 절대 못 올라가지.”

동생을 혼낸다니까 또 마음 약해진 착한 오빠 태오였다.

똑똑-

태오가 잠자기 전 책을 읽어 주는 시간.

원래는 태성이 하는 거였지만, 오늘은 서현이 대신 태오의 방으로 들어갔다.

“태오야.”

“엄마?”

“엄마가 우리 태오 책 읽어주려고 왔지.”

“아빠는?”

“아빠는 지오랑 있지. 우리 태오 오늘 엄마한테 많이 서운했어.”

서현이 말을 꺼내자, 태오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러더니 또르르 눈물이 흐르자, 서현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울지 마.”

“엄마는 태오가 미워졌어?”

“아니, 그럴 리가 있어? 엄마가 아들을 왜 미워해.”

“근데 왜 맨날 나만 혼내고….”

“엄마가 미안해. 지오가 너무 어려서 다칠까 봐 엄마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어. 미안해, 태오야.”

“엄마….”

태오가 안기자, 서현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너무 서툰 엄마라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만 게 너무 속상해 서현은 태오를 꼬옥 안아줬다.

“태오, 오늘 엄마랑 잘까?”

“지오는?”

“지오는 아빠랑 자라고 하지.”

“정말?”

태오는 서현의 품에 포옥 안겼다.

이때, 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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