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추가 외전 5화
욕구가 치밀어
서현은 태오가 태어나고 가지 못했던 곳들을 떠올렸다.
“나 엄청 매운 음식 먹고 싶어요.”
“매운 음식?”
“네, 태오가 아직 매운 거 못 먹어서 우리 매운 음식 안 해 먹잖아요. 그리고… 영화.”
“영화 좋지.”
“요즘 유명하다는 영화 본 게 없어요. 매일 만화 영화만 봤지.”
“하긴… 만화 캐릭터 이름이랑 주제곡까지 외울 지경이지.”
“맞아요. 그리고….”
“또 있어?”
“그럼요. 지금 생각이 안 나서 그렇지 평소에 하고 싶은 거 너무 많았단 말이에요. 아, 우리 술 한잔할래요?”
“술?”
“전에는 술 마시고 싶단 생각 안 했었는데, 요즘에는 조금 당기더라고요. 육아하는 엄마들이 왜 술 당긴다고 하는지 알겠어….”
“그래, 그러자. 다 하지 뭐. 그럼 어디부터 갈까?”
“집으로 가요.”
“집?”
“집으로 매운 음식 주문해 놓고 그거 안주 삼아서 와인 마시면서 영화 봐요.”
“그래.”
“아, 신난다.”
서현이 신이 나서 휴대전화로 배달 어플을 검색하자 태성이 그녀의 볼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아까는 태오 못 데려가서 안달이더니….”
“그거야 어머님 다치셨는데 태오까지 있으면 두 분 힘드실까 봐 그랬죠.”
“괜찮다고 하시잖아. 가끔 이런 시간 갖자. 당신 좋아하는 거 보니까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 같네.”
“아니에요. 당신은 만점이지.”
“정말?”
서현이 태성의 팔을 끌어안았다.
“응, 정말요.”
자신을 올려다보는 서현과 눈이 마주친 순간, 태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여자 또 훅 들어오네.”
“……?”
태성이 서현을 끌어안아 몸을 붙였다.
“어?”
태성이 아무 말도 없이 씨익 미소를 짓자, 서현이 눈을 흘겼다.
“무슨 말을 못 하겠어.”
“얘가 당신만 보면 날뛰는데… 이건 나도 통제가 안 되는 부분이라.”
태성이 눈빛이 어느새 또 진해지자, 서현은 부끄러워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자 태성이 그 손을 가져와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오늘 나 하고 싶은 것도 하나 해도 되나?”
“그거 하면… 다른 것들은 다 못 할 것 같은데?”
“그건 당신 선택. 잘 버텨봐.”
“뭐라고요?”
“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까.”
태성이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 * *
“하… 태성 씨, 좀 씻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서현을 벽으로 밀어붙이는 태성이었다.
“지금 그럴 만한 처지가 아니야. 내가….”
“그래도….”
태성을 말리면서도 서현의 몸은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태성의 입술이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서현은 태성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상체를 쓰러뜨렸다.
서현은 그를 밀어냈지만, 태성의 입술은 떨어질 줄 모르고 집요했다.
감당할 수 없는 자극에 서현이 태성의 목을 감싸 안고 온몸을 떨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에게 기대자, 태성이 일어나 서현을 벽에 붙였다.
“좋았어?”
“빨리요….”
애타는 눈빛으로 재촉하는 서현을 보며 태성이 고개를 비스듬히 숙였다.
“천천히 하랄 땐 언제고?”
“빨리요, 태성 씨….”
“원하신다면.”
태성의 움직임에 하영은 달뜬 신음을 내뱉었다.
“하아….”
“당신 지금 이 눈빛… 자주 좀 보여주면 안 되나?”
“하아….”
“이 소리도 자주 좀 들려주고.”
그의 말을 따른 건 아니었는데, 서현은 이미 정신이 날아간 채 그에게 매달려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지르고 있었다.
바쁜 서현을 배려해 오랫동안 참느라 인내심은 이미 바닥이었다.
스위치가 켜진 이상, 이젠 멈출 수 없었다.
* * *
희뿌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욕실 안. 욕조에 몸을 담근 서현은 태성에게 기댄 채 와인을 마셨다.
“아, 좋다.”
“그러다 취해.”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요?”
“하긴….”
벌써 두 잔째 와인을 마시고 있는 서현이었다.
태성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서현에게 입을 맞췄다.
“술에 취하는 건지, 장서현한테 취하는 건지….”
태성이 매력적으로 웃자, 서현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반칙이에요.”
“뭐가?”
“그렇게 웃으면… 또 하고 싶어지잖아요.”
“……?”
“왜 그런 표정이에요?”
“심장 아파서… 당신 진짜 위험한 여자야. 겨우 참고 있는데, 자꾸 부추기지?”
태성이 고개를 내려 입을 맞추려는데, 갑자기 궁금하게 생긴 서현이 입술을 피했다.
“아, 나 물어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지금 꼭 물어봐야 할까? 일단 하고 얘기하자.”
태성이 다시 입술을 찾자, 서현이 그를 살짝 밀어냈다.
“또 까먹는단 말이에요. 생각났을 때 물어볼래.”
태성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고는 피식 웃었다.
“뭔데? 뭐가 궁금하신데요?”
“당신은 나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말 안 했나?”
“못 믿겠어.”
“왜? 내가 좀 나중에 깨달아서 그렇지 첫눈에 반한 거였어, 당신한테.”
“근데 그렇게 했다고요?”
서현은 태성의 어깨를 밀고는 정면을 바라봤다.
태성은 고개를 비스듬히 내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가 뭘 그렇게 했을까?”
“약혼식 때… 솔직히 말해요. 그때도 나 좋아했어요?”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한테 키스할 정도로 비위가 좋진 않아, 내가.”
서현이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태성이 답답하다는 듯 눈을 찡그렸다.
“의심 많네, 장서현?”
“내가 왜 좋았는데요?”
“음… 처음 볼 때부터 당신이 이상하게 시선을 끌더라고.”
“그래서?”
“그래서?”
“응, 그래서요? 더 얘기해 줘요.”
서현이 눈을 반짝이자, 태성은 그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듣고 싶어?”
“응, 듣고 싶어요. 궁금해. 태성 씨가 날 얼마나 헷갈리게 했는지 알아요?”
“그러는 당신은 내가 싫은 거 아니었나?”
“싫어한 적 없어요.”
“……?”
“그냥… 설레는 거 들키기 싫어서…. 태성 씨만 보면 자꾸 실수할 거 같고… 몰라요. 나도 참 바보 같죠?”
태성이 서현을 뒤에서 꼬옥 껴안았다.
“왜요?”
“귀여워서. 자기 마음도 모르는 모자란 놈, 안 버려줘서 고맙다.”
“사람 마음 다 흔들어 놓고, 어떻게 버려요? 절대 못 버리게 해놓은 사람이 누군데….”
“내가 그렇게 좋은가?”
태성이 볼에 얼굴을 비비자, 서현이 그를 밀어냈다.
“왜 또 이렇게 얘기가 흐른 건데요… 내가 물어봤는데….”
“알았어. 뭐부터 얘기해 줄까?”
“나 다시 만난 날은 왜 그랬던 거예요?”
“아, 그날….”
태성이 민망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꼭 얘기해야 하나?”
“네. 진짜 당신 이상했어.”
“하… 그거야… 그날 당신이 너무 예뻤거든.”
“내가요?”
“몸매가 드러나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는데, 나쁜 생각이 들더라.”
“나쁜 생각?”
“당장 안고 싶은 생각.”
“정말?”
“응, 미국에서 겨우 마음 접고 왔는데, 다시 만난 지 1초 만에 마음에 불을 지르더라. 당신이.”
“그런데 나쁜 말 하고?”
“그거야 당신이 다른 놈들하고 대화하느라 날 쳐다보지도 않더라고. 게다가 나 없는 동안 정민혁이랑 스캔들은 났다지….”
“질투한 거였어요?”
“하아… 계속 얘기해야 하나? 나 너무 없어 보이는 거 같은데?”
“난 너무 재미있는데?”
서현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태성이 그녀를 밉지 않게 째려봤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살짝 튕겼다.
“이제 좀 믿는 건가? 내가 당신한테 첫눈에 반했다는 말?”
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태성을 바라봤다.
“너무 좋다.”
“뭐가?”
“당신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거요.”
“장서현이 좀 강력해야 말이지.”
서현이 예쁘게 미소 짓자, 태성이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당신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내 마음속엔 장서현뿐이야.”
“나도 그래요.”
태성의 입술과 서현의 입술이 깊숙이 맞물렸다.
키스 한 번에 또 단숨에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순간,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서현이 입술 사이로 웃음을 흘렸다.
“우리 또 이렇게 됐어요.”
태성도 공감하는 듯, 같이 입꼬리를 올렸다.
“밤새 이러자.”
“또?”
“나 오늘 승부욕 생겼거든.”
“승부욕?”
“우리 둘째.”
“아….”
“당신이 협조 좀 해야겠어.”
서현의 눈동자가 불안감에 조금 흔들리자, 태성이 그녀의 눈에 입을 맞췄다.
“오늘 갖자, 둘째.”
서현은 어쩐지 벌써부터 긴장이 돼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무서워.”
“무섭긴… 설레겠지.”
태성이 경직된 서현의 어깨에 입술을 내렸다.
그러고는 촘촘히 입을 맞추며 서현의 목덜미로 입술을 올렸다.
“나 당신 체력 못 따라가요.”
“당신은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하니까.”
태성은 서현을 일으켜 마주 보고 앉았다.
“준비됐나?”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그럼 이제 말은 좀 그만할까?”
태성의 손이 점점 서현의 은밀한 곳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서현이 태성의 목을 세게 끌어안았다.
“이상하게 떨려. 당신한테 안길 때마다 매번 떨려요. 이젠 안 그럴 때도 됐을 텐데… 나 진짜 이상하죠?”
태성은 서현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아니, 사랑스러워. 그리고 당신은 날 자극할 줄 알아.”
“……?”
“욕구가 치민다고. 장서현 잡아 먹고 싶은 욕구.”
정말 서현을 잡아먹으려는 듯 태성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