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외전 1
원하니까
“어, 태오야. 유치원 잘 다녀왔어?”
- 응, 잘 갔다 왔어.
“밥은? 남기지 않고 다 먹었고?”
- 응, 다 먹었어. 할머니가 또 유치원에 오셔서 밥 나눠주셨어.
“아, 그랬구나. 좋았겠네.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듣고.”
- 응, 알았어. 근데 엄마.
“응? 왜? 태오 할 말 있어?”
- 전화 그만해.
“어?”
- 나 바빠.
“……?”
서현은 태오와 이렇게 떨어진 적이 없어서 그런지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전화를 걸었다.
신혼여행에 와서 전화통만 붙들고 있으니, 이젠 태오가 그만하라고 할 지경이었다.
이때, 숙영이 전화를 바꿨다.
- 새아가, 오늘만 해도 벌써 전화가 몇 통이니? 잘 놀고는 있는 거야? 태성이는 뭐 하고 있어?
“태성 씨요?”
서현은 고개를 돌려 태성을 바라봤다.
침대에 누워서 서현의 뒷통수를 따가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는 그였다.
“태성 씨는 지금 쉬고 있어요.”
- 신혼여행인데 태성이랑 좀 놀아줘라. 태오 걱정 말고.
이때, 태오가 또 전화를 바꿨다.
- 엄마, 내 걱정하지 마. 아빠랑놀아.
“응, 알았어.”
- 난 할아버지, 할머니랑 재미있게 놀고 있으니까 전화 그만해.
“그래, 알았어.”
- 응, 엄마 빠이.
태오가 더 씩씩하게 서현을 달래고 있었다.
서현은 겨우 전화를 끊고, 뒤돌아 태성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요?”
“통화는 다 끝났나?”
서현은 끊긴 휴대전화를 흔들며 미안함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럼 이리 와.”
서현은 얼른 태성이 누워 있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
서현이 올라오자, 태성은 그녀를 끌어당겨 제 품에 가뒀다.
“지금 우리 뭐 하는 중이지?”
“신혼여행 중요.”
“지금 전화가 몇 통째인지 아나?”
“태오가 걱정돼서….”
“태오가 뭐래?”
“그만 전화하래요.”
태성은 피식 웃으며, 서현의 이마에 제 이마를 살짝 쿵 부딪혔다.
“이 봐. 역시 내 아들. 그만 전화하고 나랑 놀자. 좀.”
“그래도… 이렇게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불안해요.”
“그럼 나는?”
“…당신 뭐요?”
“나랑 하루 떨어져 있을 때는 이러지 않잖아?”
“당신은 애가 아니잖아요.”
태성이 서현의 위로 올라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난 당신이랑 하루만 떨어져 있어도 불안한데… 그럼 당신이 내 애인인 건가?”
“무슨 말이에요?”
“날 좀 봐달라고, 장서현.”
태성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서현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보고 있잖아요.”
“이리 와 봐.”
태성은 서현을 데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침대 바로 앞에 펼쳐진 개인 수영장과 그 앞에 펼쳐진 바닷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 풍경들 좀 봐.”
열대우림 정원 안에 둘러싸인 리조트 앞은 새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 리조트는 한 채를 통째로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호가 돼 전 세계 셀러브리티들이 찾는 최고급 리조트였다.
주위에 다른 건물이나 다른 투숙객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 대자연 속에 오직 두 사람만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물론 여러 명의 스태프가 관리를 해주고 있었지만, 이 또한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보호해주는 선에서 관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오직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현은 이 좋은 곳에 도착하자마자 풍경도 뒷전이고 태오와 통화를 하느라 바빴다.
심지어 태오 걱정 때문에 비행기 안 에서도 한숨도 자지 못해서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저도 모르게 기절하듯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일어나서 한 일이 또 태오에게 전화를 한 일이었으니, 서현은 자신의 행동을 떠올려보고는 스스로 반성을 했다.
“미안해요….”
“태오 걱정 때문에 종일 전화기만 붙들고 있는 거 이해는 하는데… 오늘은 태오 엄마 말고 내 여자 해줘라, 장서현.”
“알았어요….”
태성이 서현을 뒤에서 끌어안고 그녀의 목에 입술을 내렸다.
서현의 목덜미와 어깨에 키스를 하던 태성이 옆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의 입술을 그대로 덮쳤다.
촉촉한 입술이 맞닿고, 그의 혀가 얽혀들자 온몸의 신경이 순식간에 그에게 빨려 들어가듯 집중이 되었다.
서현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태성의 두 손이 이내 그녀의 가슴으로 향했다.
“하아….”
“이제 내가 보여?”
“태성 씨….”
“다른 생각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을 하자고. 앞에 봐봐.”
눈앞에는 그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절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서현의 머릿속엔 또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다.
“누구 오는 거 아니죠?”
사방이 창으로 되어 있어서 서현은 태성의 농도 짙은 스킨십이 신경 쓰였다.
서현이 집중 못 하고 또 주변을 둘러보자, 태성이 손으로 그녀의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게 했다.
“여기 우리밖에 없어. 이쪽은 스태프들도 올 수 없는 곳이고.”
서현의 가슴 위에 있는 태성의 손길이 야릇하게 움직였다.
문을 열어 놓으니 침실은 사방이 뚫려 있는 공간이 되었다.
정말 자연 속에 침대 하나만 놓여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분명 침실인데도 야외에서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서현은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좀 이상해요… 누가 볼 것 같아요.”
“그런 거 싫어서 여기 온 거 잊었나?”
“아…”
서현은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을 했는지 깨달았다.
이 리조트 안에서도 가장 비싼 방,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방,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공간이 이곳이었다는 걸 잠시 잠깐 잊었었다.
서현이 알아들은 것 같자, 태성은 그녀와 함께 풍경을 감상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크게 들이마셨다.
“바다 너무 예뻐요.”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바다의 풍경은 총천연색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태성의 눈에는 서현만 보일 뿐이었다.
“당신이 더 예뻐.”
목덜미에 입술을 내린 태성이 서현의 어깨 위로 촘촘하고 정성스럽게 입을 맞췄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몸이 달아올랐지만 그 순간에도 서현은 태오가 떠올랐다.
“여기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우리 태오도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태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서현과 눈을 마주쳤다.
“분위기 잡기 힘드네.”
눈을 살짝 흘기는 그를 보며, 서현은 입을 막았다.
“아, 미안해요. 내가 또….”
“아니야, 나도 그 생각하긴 했어. 다음엔 태오랑, 우리 둘째랑 같이 오자. 그땐 놀 거 많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둘째 얘기를 하는 태성을 보며, 서현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이미 둘째 낳은 것처럼 얘기하네요?”
“곧 가질 거 아닌가?”
“애 낳는 게 쉬운 줄 알아요?”
서현이 입을 삐쭉이며 눈을 흘기자, 아차 싶었던 태성이 그녀를 뒤에서 더욱 세게 껴안았다.
그런 그를 서현이 어깨로 툭 밀었다.
“왜 갑자기 세게 껴안는데요?”
“미안해서.”
“치….”
“그 힘든 거 혼자하게 해서 미안.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함께할게. 미안해, 서현아.”
“이렇게 진지하게 사과한다고요? 진짜 당신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장난친 건데… 이러면 내가 미… 잠깐… 내가 또 그 말 하면 시간 늘어나요?”
“아, 미안하다는 말?”
“네.”
“신혼여행 중에는 하루 종일 할 거니까 뭐… 미안하다는 말 카운트는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루 종일요?”
“태오가 원하잖아.”
그 말에 서현이 태성을 어깨로 툭 밀었다.
“아들 핑계 대지 말아요. 당신이 원하겠죠.”
“나야 늘 당신을 원하지.”
서현을 뒤에서 안고 있던 태성의 손길이 다시 야릇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민한 곳을 따라 그의 손길이 움직일 때마다 서현은 몸을 움찔거렸다.
“하….”
“경치 너무 좋지?”
“네….”
“자꾸 눈을 감으면 경치를 어떻게 봐?”
경치를 보고 싶어도 태성의 손길이 그러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꾸만 눈이 감기게 하는 태성이었다.
게다가 뒤에서 솟구친 그의 욕망이 자꾸만 서현을 건드려서 경치에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태성 씨 때문에… 하아….”
태성의 손가락이 젖은 살결을 파고들자, 서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음을 또 내뱉고 말았다.
“태성 씨… 나 너무….”
다른 한 손은 그녀의 가슴 끝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왜?”
“못 서 있겠어요….”
“단단히 잡고 있으니까 기대.”
서현은 발끝을 세운 채 그에게 기대고 말았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태성은 서현을 몰아갔다.
“하아….”
“경치 안 봐?”
“아, 안 보여요….”
“그럼 서로한테 집중을 좀 해볼까?”
“하아….”
서현이 태성의 팔을 잡고 애원하듯 매달려 있었다.
“하아… 태성 씨… 제발….”
서현이 강렬한 전율을 느끼고 나서야 태성은 그녀의 젖은 살결에 있던 손길을 거뒀다.
“하아….”
힘이 빠진 서현의 고개를 돌려 태성이 입을 맞췄다.
남은 정신마저 앗아가는 그였다.
진득하게 얽혀드는 그의 숨결을 느끼며, 서현의 몸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갈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이내 입술이 떨어지고, 다시 짧게 뽀뽀를 건넨 태성이 서현을 번쩍 안아 들었다.
서현이 태성의 목을 끌어안았다.
“근데 우리 나가야 하잖아요.”
“나 이대로 나가라고?”
태성이 시선을 내리자, 서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당신 생각에도 하고 나가야겠지?”
이미 기운이 빠진 서현은 그의 품에 얼굴을 기댔다.
“왜 또 이렇게 됐지?”
“앞으로의 일정은 계속 이럴 예정이야. 이게 신혼여행 아닌가?”
“미리 말하지만, 난 당신 체력 못 따라가요.”
“당신은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하니까.”
침대에 서현을 내려놓은 태성은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나만 원하는 건가?”
살짝 서운해하는 기색인 태성을 보며, 서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서현이 태성의 목에 팔을 둘러 그를 끌어당겼다.
“아뇨, 나도 원해요.”
만족스러운 대답이라는 듯 태성이 입꼬리를 올리자, 서현이 그의 입술에 입술을 쪽-
“태성 씨, 사랑해요.”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서 내내 서운한 기색을 숨기느라 고생했는데, 이 한 마디에 태성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들었다 놨다 아주…”
“제가요? 그런 거 아니… 읍!”
서현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은 태성은 뜨겁게 몸을 붙였다.
더 이상 참을 여유는 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