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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73)화 (73/111)

73화 

다 같이 해줄게

“어디로 갈까요?”

황기사의 물음에 숙영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태성을 따라 가볼까… 

태오를 만나고 있는지 아닌지만 보고 오는 거야. 그럼 되지 않을까?

혹시 태오가 있으면 잠깐 태오 얼굴만 보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근데 들키면?

그걸 들켰을 때 일어날 끔찍한 일들이 떠오르자 숙영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니지… 기다려야지. 기다려야지.”

숙영은 답답한 속을 겨우 다스리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 집으로 가요.”

“네, 알겠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숙영은 휴대전화에 있는 태오 사진을 찾아 바라보며 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태성이 보내준 차를 타고 축구장으로 이동하는 길, 축구공을 끌어안은 태오는 들떠 보였다.

“태오 오늘 축구 잘할 수 있어?”

“그럼! 나 축구 잘해.”

“아, 태오 축구 잘해?”

“그럼!”

자신감 하나는 정말이지 태성을 꼭 빼닮은 태오였다.

최 기사는 그런 태오를 귀엽게 바라봤다.

“작은 사모님.”

“네?”

“정말 똑같이 생겼네요.”

“아, 그래요?”

서현과 함께 다녀야 하는 최 기사에게는 태성이 미리 태오가 아들이라고 얘기해 놓은 상태였다.

대신 태오는 모르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최 기사는 계속 조심하면서 말했지만, 태성을 꼭 닮은 태오가 신기해서 자꾸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런 최 기사를 보며 태오는 갸웃했다.

“아저씨 왜 우리 엄마보고 작은 사모님이라고 해요?”

“작은 사모님이니까요?”

“작은 사모님? 엄마 작은 사모님이야? 그럼 큰 사모님은 누군데?”

“우와, 정말 똑똑하네요.”

최 기사가 감탄하자, 서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좀 피곤해요.”

서현이 최 기사를 보며 볼멘소리를 하는데, 태오가 다시 물었다.

“엄마! 큰 사모님은 누군데?”

집요한 구석도 있는 태오였다. 누구 닮아서.

“나중에 만나게 해줄게. 어? 저기 꽃 너무 예쁘다.”

“어디?”

태오의 시선을 돌린 서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함께 창밖을 바라봤다.

잠시 후, 축구장에 도착한 태오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잔디 구장으로 달려갔다.

“엄마! 빨리 와.”

“태오야, 천천히. 넘어져.”

축구공을 잔디 구장에 던진 태오는 서툰 드리블을 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 축구장은 화명그룹의 연수원 잔디 구장이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옆에는 바비큐를 구워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막도 있는 곳이었다.

태성은 태오와 둘이 놀기 딱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 아침 일찍부터 도착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텐트도 그늘막 밑에 쳐놓고 맛있는 간식도 놔두고, 운동장을 뛰며 몸을 풀고 있었다.

저 멀리 태오가 뛰어오는 게 보이자, 태성은 손을 흔들었다.

“태오야!”

공만 보면서 열심히 달리던 태오는 태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

태성을 보고 멈칫한 태오는 누군지 알아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태오는 태성의 앞에 멈춰서서 그를 올려다봤다.

“아저씨가 여기 왜 있어요?”

“태오랑 축구하려고 왔지.”

“저랑요?”

“응! 왔어?”

태성이 서현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서현도 함께 손을 흔드는 걸 보며 태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알아요?”

태성은 무릎을 굽혀 태오와 눈높이를 맞췄다. 

“알고 보니까 태오 엄마랑 아저씨랑 아는 사이더라고.”

“아….”

“자, 저기 봐.”

태성이 가리킨 곳엔 텐트와 간식이 준비돼 있었다.

태오는 그곳으로 얼른 달려갔다.

“우와! 이거 뭐예요?”

“어때? 마음에 들어?”

“네.”

캠핑 의자에 놓여 있는 로봇을 보고 태오는 입을 떡 벌렸다.

“어? 이거?”

“태오가 좋아하는 로봇! 이거 맞지?”

“네! 저 이거 갖고 놀아도 돼요?”

“그럼! 태오 거야.”

“정말요?”

태오는 이때 다가오는 서현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 아저씨가 나 이거 줬는데… 이거 가져도 돼?”

“그래.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응! 고맙습니다.”

태오는 인사를 하고는 캠핑 의자에 앉아 로봇에 빠졌다.

그런 태오를 태성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서현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게 다 뭐예요?”

“준비 좀 했지.”

“애한테 아무 날도 아닌데 이렇게 선물 주는 건 안 좋거든요?”

“오늘이 어떻게 아무 날도 아니야? 태오랑 내가 처음으로 같이 축구하는 날인데.”

말이나 못 하면….

서현은 태성을 흘겨보며 단호히 말했다.

“이런 물질 공세 금지. 애 앞에서 돈 자랑하지 말아요.”

“이건 돈 자랑 축에도 못 끼는데?”

“암튼 안 된다고요. 돈으로 태오 마음 사려고 하는 거예요?”

“알았어, 안 할게. 근데 저기 봐. 돈뿐만 아니라 내 정성을.”

텐트를 꾸미고 간식을 챙겨온 걸 보며 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태성을 향해 엄지를 들었다.

“인정!”

“그렇지?”

“몇 시에 일어났어요? 고생했겠다… 힘들었죠? 같이하지….”

서현이 걱정을 해주자, 태성은 몰래 그녀의 손을 잡아 몸 뒤로 숨겼다.

“당신이 안아주면 바로 충전될 것 같은데.”

“태오랑 함께 있는 거 잊지 말아요.”

“알아… 우리 아들 기운 빼서 낮잠 좀 재워야겠다.”

“뭐 하러?”

“글쎄?”

“뭐예요?”

“재미있게 놀겠다고.”

태성은 서현에게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태오에게 다가갔다.

“태오야, 우리 오늘 축구도 하고 여기에서 맛있는 것도 먹자.”

그 말에 태오가 서현을 쳐다봤다.

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오가 미소를 지었다.

“네!”

태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떡 벌렸다.

태오가 TV 만화를 좋아하는 거 같길래 태성은 캠핑용 스크린도 설치를 해 놓고, 해먹도 설치해 놓았다.

“이거 다 아저씨 거예요?”

“응. 태오 가질래?”

“진짜요?”

“응.”

“왜요?”

“응? 그거야… 주고 싶으니까.”

“왜요?”

“주고 싶어서.”

“왜요?”

‘왜요?’ 놀이에 빠져들고만 태성이었다.

태오가 어느새 장난스럽게 ‘왜요?’만 반복하자 태성이 당황했다.

서현이 그런 태성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신 있다며?

“태오야, 장난 그만 치고 스트레칭부터 하자.”

“응, 엄마.”

서현의 말에 태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잔디 운동장으로 나가 꼬물거리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순간 서현의 위대함을 느낀 태성은 입을 떡 벌렸다.

“태오가 당신 말이면 무조건이네?”

“당신도 그러잖아요.”

“나?”

생각해 보니 그랬다.

“비결이 뭐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얼른 태오랑 같이 스트레칭해요.”

태성은 어느새 태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몸이 이제 서현의 말에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리모컨이라도 숨겨놨나?

뭐지? 나 왜 이렇게 된 거지?

잠시 후, 땀이 날 정도로 신나게 축구를 한 태성과 태오는 배부르게 밥까지 먹고는 텐트에 누웠다.

“아, 배부르다.”

“아저씨 나 배 나왔어요.”

“어디?”

“여기 봐요.”

태오가 옷을 올리고 배를 더 내밀자, 태성도 따라서 옷을 올리고 배를 내밀었다.

“아저씨도 이만큼 나왔다.”

태오는 태성의 배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어? 아저씨 이거 뭐예요?”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해서 배를 내밀어도 근육이 잡히는 태성이었다.

태오는 신기한 듯 태성의 근육을 만졌다.

“우와 딱딱해.”

“태오도 운동 열심히 하면 이렇게 근육 생겨.”

“저도요?”

태오는 자신의 동그란 배와 태성의 배를 번갈아 봤다.

아무리 봐도 저 배가 될 것 같지 않은데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태오를 보며 태성이 피식 웃었다.

“태오 축구 잘하던데?”

“아저씨도요.”

“우리 매주 토요일마다 이렇게 축구 하는 거 어때?”

“토요일마다요?”

“왜? 싫어?”

태오는 잠시 머뭇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축구 재미있었어?”

“네.”

“태오는 어떤 운동 또 좋아해? 다음엔 다른 것도 해보자.”

“저 수영요.”

“수영?”

“네. 하고 싶은데 이제 못 가요.”

“왜?”

“제가 이제 커서 엄마랑 같이 못 들어간대요. 저는 남자들이 옷 갈아입는 데로 들어가야 하는데… 엄마가 혼자는 위험하다고 안 된대요.”

“아….”

그러고 보니 수영장은 남녀가 구분되어 들어가고, 나올 때 샤워까지 하고 나와야 하는 건데 태오 나이는 여탕에 들어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혼자 수영복을 입고 씻고 나오기엔 무리가 있는 나이였다. 

자칫 목욕탕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수도 있고, 게다가 험한 세상이니까.

태성은 태오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게 해준 게 미안했다.

“태오야, 우리 다음 주에는 수영장에 갈까?”

“진짜요?”

“그래, 아저씨도 수영 좋아하거든.”

“우와, 진짜죠?”

태성은 좋아하는 태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 말해. 아저씨가 다 같이 해줄게.”

“네.”

해맑게 좋아하는 태오를 보면서 태성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태오는 태성에게 해보고 싶은 것들을 끊임없이 말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유치원 친구들이 여기 갔다 왔다, 저기 갔다 왔다 얘기를 할 때마다 태오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래서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태성에게 말하는데 어느새 태오의 목소리가 점점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또… 또….”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누워 있다 보니 태성도 하마터면 깜빡 졸 뻔했는데, 어느새 쌕쌕 숨을 내쉬며 잠이 든 태오였다.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았으면 말하다가 잠이 들까….

태성은 옆으로 누워, 잠든 태오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빠랑 다 같이 가자. 아들.”

태성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태오가 눈을 비비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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