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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68)화 (68/111)

68화 

어떻게 여기…

서현의 답장을 받은 태성은 휴대전화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분명 아이와 함께 있어서 연락을 못하는 걸 텐데….

태성은 차마 서현에게 뭐 하냐는 문자 메시지는 보내지 못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할까 봐 겁도 났고, 그녀가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자신이 싫었다.

알면서 서현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던 태성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아이는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원치 않는 대답을 듣게 될까 봐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남자가 없었다는 그녀의 말이 거짓일까 봐… 그래서 서현이 자신을 떠나게 될까 봐… 모든 게 두려웠다.

태성이 고민을 하느라, 퇴근을 못 하고 있자 고 비서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집무실을 들어선 고 비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태성을 바라봤다.

“부회장님, 안 들어가세요?”

“고 비서는 왜 안 갔어?”

“남은 업무가 있어서 처리했습니다.”

“그래, 다 했으면 퇴근해.”

“안 들어가세요?”

“난 알아서 들어갈게.”

“네….”

인사를 하고 돌아서던 고 비서는 다시 몸을 돌려 태성을 바라봤다.

“부회장님.”

“왜?”

고 비서는 결심한 듯 숨을 크게 삼키고 입을 열었다.

“부회장님! 부회장님 오늘 아침에 얼굴 너무 좋으셨거든요. 작은 사모님 떠나시고 나서 본 적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랬나?”

“그런데 지금 부회장님 표정은… 다시 안 좋아지셨습니다. 최근 본 중 제일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아침에 보여드린 사진 때문에 그러신 거죠?”

“그렇게 보이나?”

“네….”

고 비서의 말에 태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고 비서한테 감시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어떻게 물어봐야 하나 싶네.”

“이해합니다.”

“이해라… 고 비서는 몰라. 내가 얼마나 비겁한지….”

고 비서는 태성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두 사람을 봐왔던 사람이 고 비서였다.

둘 사이를 알고 있기에, 태성이 서현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기에 고 비서는 마음이 아팠다.

고 비서는 잠시 머뭇대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겁한 게 아니라 두려우신 거 아닙니까?”

정곡을 찔린 태성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것도 맞아. 두렵지….”

태성이 괴로워하자, 고 비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부회장님!”

“왜?”

“그래도 작은 사모님 안 계실 때보다는 지금의 부회장님이 더 좋아보이시긴 합니다.”

“……?”

“부회장님 힘드셨던 거 저 옆에서 늘 지켜봤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고 비서 보기에는 그래 보여?”

“네.”

서현이 없을 땐, 그저 돌아와 주기만 바랄 때도 있었다.

그 어떤 모습이어도 좋으니까 돌아와만 달라고….

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돌아와만 주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지금… 지금 난 뭐지?

서현이 옆에 있는데… 돌아왔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동안 서현이 다른 남자를 만났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고 치자… 상상만으로도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그렇다고 서현을 안 보고 살 수 있나?

서현이 다른 남자를 만난 것도 싫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것도 싫지만, 제일 싫은 건 서현을 안 보고 사는 것이었다. 

가장 못 참겠는 건 그녀가 곁에 없는 거였다.

제일 무서운 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는 것보다, 서현이 제 곁을 떠난다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태성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집어 들었다.

“고 비서, 나 먼저 들어갈게.”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고 비서는 태성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파이팅입니다, 부회장님!” 

멀어지는 태성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 비서는 그를 응원했다.

* * *

집에 다 도착한 서현은 주차를 시키고 뒷좌석을 바라봤다.

곤히 잠이 든 태오였다.

“그래, 오늘 피곤할 만 했지….”

서현도 하루 종일 태오와 돌아다니고, 운전까지 하느라 발바닥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도 오늘 좋아했던 태오의 얼굴을 떠올리니 금세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서현이었다.

서현은 잠든 태오를 보면서 깨울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차에서 내린 서현은 뒷좌석 문을 열었다.

태오가 행여 밝은 불빛에 잠을 깰까 봐 입고 있는 후드티 모자를 머리에 씌웠다.

“오늘 그렇게 재미있었어?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네, 내 아들.”

자는 모습도 어찌나 예쁜지. 서현은 태오를 보면서 연신 미소를 지었다.

카시트 안전벨트를 풀고 서현은 태오를 등에 업었다.

제법 무거워진 태오의 무게에 서현은 살짝 휘청였다.

“후, 언제 또 이렇게 큰 거야?”

서현은 피식 웃고는 태오를 다시 제대로 업고 차 문을 닫았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고 고개를 드는데, 서현은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

눈앞에 태성이 있었다.

서현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눈을 감았다 다시 떴지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여전히 눈앞에 있는 태성이었다

“여긴 어떻게….”

“내가 업을까?”

목소리까지 듣고 나니 멍해졌던 정신이 번뜩 들었다.

“태성 씨?”

“내가 업을게. 무거워 보이는데….”

태성이 태오를 업으려고 하자, 서현이 피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많이 놀랐어?”

태성이 다가가자 서현은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아니 그게….”

“미안해. 말을 하고 올 걸 그랬나? 그러면 당신이 못 오게 할 것 같아서.”

아이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 태성을 보면서 서현은 더 놀랐다.

알고 있는 건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이가 있다는 건 기획사 사람들, 그것도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아는 건데 어떻게 알았지?

민혁 오빠한테 들었나?

서현은 태성이 어떻게 알았나 싶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런 서현을 보며 태성은 주저했다.

“우선 들어갈까? 아이가 자는데?”

“아뇨. 잠깐만요….”

서현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는 거예요? 어디까지?”

“어디까지라니?”

“아이… 말하려고 했어요. 말하려고 했는데….”

“당신 탓하려는 게 아니야. 난 단지 당신이 마음 불편해하는 게 싫어서.”

태성이 다가가자, 서현이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오지 마요. 나 지금 이게 더 불편하니까….”

“……?”

태성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서현은 고개를 떨궜다.

“미안해요. 내가 지금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데… 우리 나중에 얘기하면 안 돼요?”

“서현아….”

“저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그러니까 올라가서 얘기해.”

“시간을 좀 달라고요. 당신이 몰아붙이니까 아무 생각이 안 난단 말이에요….”

거의 울 것처럼 울먹이는 서현이었다.

“서현아….”

“정말 말하려고 했어요. 잘 말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당신이 어떻게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게 아닌데… 저한테 시간을 좀 줘요.”

“그래, 시간 줄 테니까 좀 진정해.”

서현이 눈에서 곧 눈물이 떨어질 것 같자, 태성은 더 당황했다.

“미안해. 내가 이러려고 온 게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내가 미안해요. 그럼 저 좀 들어갈게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는 서현이었다.

서현의 이런 반응은 생각하지 못했던 태성은 너무 당황하고 미안해하는 서현을 보며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너무 자기 생각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만 정리됐다고 이렇게 쳐들어오는 게 아니었는데…

태성은 아이를 업고 걸어가는 서현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온 서현은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너무 당황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태오를 침대에 눕히자마자 서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떻게 아는 거지? 어디까지 아는 거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오해한 거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여전히 당황스러워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서현이었다.

정말 잘 말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사과하고 태오를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이 헝클어지자 서현은 절망스러웠다.

이렇게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서현은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 * *

“태오야, 이 놀이터에서만 놀아. 알았지?”

“네, 알았어요.”

이모님과 함께 놀이터에 나온 태오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흙 놀이를 하면서 놀았고, 이모님은 다른 엄마들과 그늘에서 대화를 나눴다.

이모님은 다시 한번 잘 노는 태오를 확인하고 나서야 다른 엄마들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태오는 친구들과 흙 놀이를 하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야, 너 이 물 어디에서 가져왔어?”

“저기!”

친구가 가리킨 곳은 분리수거장이었다.

“저기에 물이 있어?”

“응. 저기 있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손을 닦는 용도로 만들어져 있는 간이 세면대였다.

태오는 물을 가져와 성을 쌓을 생각으로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금방 다녀오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태오가 물을 담을 모래놀이 바스켓을 흔들며 분리수거장으로 가는데, 한 남자가 태오에게 다가왔다.

“얘, 꼬마야?”

“네?”

“네 이름이 태오니?”

자신의 이름을 아는 남자를 보고, 태오는 흠칫 놀랐다.

엄마가 모르는 아저씨들하고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모르는 아저씨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엄마가 늘 말하던 무서운 아저씨일까 봐 태오는 몸이 굳었다.

“누구세요?”

“아, 네가 태오 맞구나?”

확신하듯 말하는 남자를 태오는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남자는 태오의 경계를 풀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여기 이름 쓰여 있네, 장태오라고. 네 이름이 태오지?”

남자가 모래놀이 바스켓에 쓰여 있는 이름을 가리키자, 태오가 살짝 경계를 풀었다.

‘아, 이거 보고 내 이름을 알았구나.’

태오가 조금 안심하는 표정을 짓자, 남자가 몸을 낮춰 태오와 눈을 마주쳤다.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닌데, 아저씨 좀 도와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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