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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41)화 (41/111)

41화 

떠날 수 없는 이유

“왜요? 장서현 걔는 자꾸 내 거 빼앗아 가는데 저는 왜 못 뺏어요? 아빠까지 지금 저를 탓하는 거예요?”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짓을 벌인지 모르는 하은을 보며, 백 회장은 절망했다. 

“하은아….”

“아빠는 저한테 잘했다고 칭찬해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 장서현한테 당한 대로 갚아준 거예요. 그뿐이라고요.”

“하은아….”

“근데 자꾸만 장 회장이 꿈에 나타나요. 난 그냥 받은 만큼 돌려준 것뿐인데… 그러게 자기 딸 교육 잘시켰으면 이런 일 안 당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아빠?”

백 회장은 하은을 붙들고 비통함에 눈물을 흘렸다.

“하은아….”

“장 회장이 잘못한 거예요… 장서현을 잘 가르쳤어야죠. 남의 거에 손대지 말라고. 태성 오빠는 내 거였어요. 처음부터 내 거였다고요.”

백 회장은 아무것도 믿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꿈이길, 정말 나쁜 꿈이길…

그런데 눈앞에 현실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이미 하은은 위태로운 상태였다.

“아빠… 나 이태성이랑 결혼할 거예요. 이렇게까지 했는데, 태성 오빠 뺏길 순 없어요.”

“그래… 그래….”

“나 결혼할래… 나 이태성이랑 결혼할 거야… 내가 할 거야.”

“그래… 그래….”

백 회장은 하은을 안고 다독였다.

“그래… 그래… 아빠가 다… 아빠가 다 알아서 하마.”

* * * 

“고 비서, 차를 바꿔야 할 것 같아.”

“네? 무슨 차를 말씀하시는지….”

이 회장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새로 산 차를 바꾸겠다는 태성의 말에 고 비서가 놀라서 다시 물었다.

“이번에 새로 산 차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아무래도 누가 날 미행하는 것 같아. 그게 내 차인 걸 눈치챈 것 같아.”

“회장님이실까요?”

“아니, 그랬다면 이미 서현이 오피스텔을 찾아왔거나 방을 뺏겠지. 아버지는 절대 아니야. 미행한 차가 우리 쪽 차가 아니었거든.”

“그럼 누가….” 

“아무튼 차부터 바꿔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매일 퇴근 후에 김 기사가 내 차고로 들어가고 있는 거 맞지?”

“네, 물론입니다.”

태성은 서현의 오피스텔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김 기사를 이용해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었다.

김 기사가 운전한 차를 타고 집으로 간 척하는 거였다.

서현의 오피스텔도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곳으로 구한 이유도 다 이런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철저히 서현을 숨겼다.

이게 지금 현재로서는 그녀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물론, 서현을 보러 가지 않는 게 더욱 그녀를 숨기기엔 유리했지만, 알아도 그럴 수는 없었다.

보지 않고는 살 수 없었으니까.

그 대신 더욱더 철저히 보안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 비서, 내 주변으로 수상한 움직임 없는지 주시 좀 해.”

“네, 알겠습니다.”

메모를 끝낸 고 비서가 고개를 들고 태성을 바라봤다.

“부회장님, 제가 요즘 첩보영화를 찍고 있는 기분입니다.”

고 비서에 말에 태성도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요즘도 회장님 비서실에서 고 비서 협박하나?”

“네, 뭐… 부회장님 스파이 하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저는 절대 그런 짓 안 하죠.”

“그래, 잘하고 있어.”

“지난번에 부회장님께서 작은 사모님과 도망가시고 며칠 잠수 타셨을 때, 제가 회장님 앞에 끌려갔었잖아요? 그때 제 간이 좀 커졌거든요. 엄청난 덩치들한테 끌려가면서 진짜 이대로 죽는구나, 했는데, 한 번 겪고 나니 뭐… 요즘은 웬만한 협박에 끄떡도 안 합니다. 부회장님께서 지켜주실 거잖아요? 그래도 그때는 말이죠….”

고 비서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자, 태성이 손을 저었다.

“그만 얘기해. 이번에 들으면 백번 채우는 거니까.”

고 비서는 태성의 앞에서 그때의 일을 마치 모험담 얘기하듯 수다를 떨곤 했었다.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싶을 정도로 전보다는 태성을 편하게 대하는 고 비서였다.

“제가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오줌을 지립니다.”

“그건 고 비서가 부실해서 그런 거니까 병원 가고. 지난번 일은 정말 고생 많았어.”

“부회장님….”

고 비서가 뭉클한 듯 가슴에 손을 올리고 태성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태성이 고 비서를 향해 인상을 썼다.

“왜 그래?”

“부회장님… 이런 말씀 좀 그렇지만, 아무튼 오해 없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뭔 얘기인데?”

“저는 지금의 부회장님이 좋습니다.”

“……?”

갑작스러운 고 비서의 고백에 태성은 몸에 소름이 돋아 흠칫했다.

태성의 그런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 비서는 계속해서 고백을 이어갔다.

“이번 일로 부회장님의 인간적인 면도 보고, 더 가까워진 것 같고… 부회장님 팬 됐습니다.”

“뭐? 팬?”

“네, 전에도 부회장님의 능력과 포스를 존경했지만, 지금은 부회장님을 좋아합니다, 제가.”

“뭐라는 거야?”

태성이 심하게 인상을 쓰자, 고 비서가 손사래 치며 미소 지었다.

“오해 마십시오, 저 여자 좋아합니다. 인간적으로 좋고, 팬이다, 이 말씀입니다.”

“아부까지 안 해도 돼. 안 그래도 내가 고 비서는 데리고 갈 거니까.”

“이런 점도요. 부회장님은 의리도 최고이십니다. 정말 볼매.”

“뭔 매?”

“볼수록 매력적이시라고요. 볼매.”

두 손으로 엄지를 들어 올리는 고 비서를 보며, 태성은 고개를 떨궜다.

더는 들어줄 수가 없어서 나가라고 손짓을 하자, 고 비서는 인사를 꾸벅하고는 두 팔을 들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그 모습을 보고 태성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치를 떨었다.

서현이 저런 애교를 보여줬으면 좋겠구만, 원하는 사람은 안 해주고 저런… 태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서현이 보고 싶어졌다. 

서현을 보면서 눈을 정화하고 싶다는 생각에 태성은 고 비서를 내보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문화재단 이사장실에서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의사를 명확히 밝힌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민혁은 차마 서현을 잡지 못하고 떠나는 그녀를 볼 수밖에 없었다.

서현이 이사장실을 나가고, 잠시 생각을 고른 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급하게 이사장실을 나간 민혁은 서현을 찾아 헤맸다.

금방 어디로 간 거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기둥에 가려서 안 보였던 서현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민혁은 전속력으로 달려가 서현의 손목을 붙잡았다. 

“서현아.”

“오빠….”

“정말 이대로 재단을 나가겠다는 거야?”

안타까워하는 민혁의 마음이 느껴졌지만, 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미안. 더 민폐 끼치고 싶지도 않고, 지금은 피아노 할 생각도 없어요.”

“네 공부는? 한국에 있기 싫다며?”

“그땐 그랬는데… 한국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태성을 떠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서현의 말에 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

“……?”

“갑자기 한국을 떠나기 싫어진 이유… 여기 있기 싫다고 했잖아.”

“내가 여기 있길 바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떠날 수가 없어요.”

설마 했던 이유를 직접적으로 듣고 나니 민혁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분노가 끌어 올랐다.

“그 사람이 이태성이야?”

“오빠….”

“너 이태성이랑 파혼한 거 아니었어? 이젠 결혼도 안 할 건데… 그 자식 집안에서 너를….”

“오빠, 신경 써주는 건 너무 고마운데… 나 그 사람 옆에 있고 싶어요.”

“서현아….”

“나한테는 이제 사랑하는 엄마도, 아빠도 없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 내 곁을 떠났는데, 그 사람은 아니에요. 그 사람 나 사랑해요. 저도 그 사람 사랑하고요. 나 그냥 다른 욕심 안 부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어요. 그 욕심만 부리면서 살래요.”

“장서현!”

민혁은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서현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너 진짜….”

“오빠….”

민혁은 서현의 어깨를 잡은 두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나는….’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민혁은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힘든 서현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어차피 지금 말해봤자 거절당할 게 뻔해 보였으니까.

힘든 그녀 곁에 좋은 친구로라도 남아 있는 게, 민혁으로서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의 전부였고 최선이었다.

“오빠 미안해요. 저 갈게요.”

서현이 돌아서려하자, 민혁이 서현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 서현아.”

이대로 보내면 정말 끝일 것만 같아 우선 손목을 잡긴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민혁이 고민을 하고 있는 틈에 서현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벨이 울리자, 서현의 손에 들려 있는 휴대전화 액정에 태성의 이름이 떴다.

민혁의 눈에 들어온 그 이름 이태성….

민혁은 저도 모르게 서현의 손목을 잡았던 손에 힘을 빼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 * *

서현은 일찍 끝내고 집에 오겠다는 태성의 연락을 받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차렸다.

평소에는 주문해서 먹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서현은 오늘 왠지 태성을 위해 솜씨를 발휘하고 싶어졌다.

야근을 하는 날이 잦아서 일찍 오는 날은 드문 태성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스페셜한 날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그를 저녁에 기다리는 일상이 익숙해지고 있는 서현이었다.

낮에 민혁에게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나한테는 이제 사랑하는 엄마도, 아빠도 없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 내 곁을 떠났는데, 그 사람은 아니에요. 나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어요.”

제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서현은 새삼 놀랐다.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태성이 더 특별한 존재로 마음속에 박혀 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그에게 손수 지은 밥을 오늘 더더욱 해주고 싶었다.

내 소중한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늘 정성스럽게 대해주는 그에게 뭐든 해주고 싶었다. 뭐든.

요리는 제법 그럴듯하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솔직히 요즘 요리 솜씨가 늘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다.

파혼 기사도 나고, 이 회장의 감시도 있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마치 유명 연예인들 연애하듯 집에서만 차에서만 데이트를 해야 했기에 같이 나가 외식을 안 한 지는 꽤 되었다.

덕분에 서현의 요리 솜씨는 점점 늘고 있었다. 태성도 옆에서 도와주지만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는 그였다.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한 그를 보며, 결혼을 하면 이러 하려나 상상하게 될 정도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신혼부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서현과 태성이었다.

사실 태성은 오늘 저녁에 오랜만에 근사한 호텔로 가서 룸서비스를 시키자고 했지만, 서현은 거절했다.

괜한 소문이 났다가 곤혹을 치를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태성이었기에, 서현은 그냥 마음 편히 오피스텔에 있는 쪽을 택했다.

그가 오려면 이제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요리를 마무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세팅을 하려면 시간이…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계산하는데 그때였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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