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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39)화 (39/111)

39화 

알고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큽!”

소금과 설탕을 들이부었는지, 입에 넣는 순간 단짠의 신세계를 경험한 서현은 하마터면 뱉을 뻔한 걸 커피로 겨우 삼켰다.

음식이 어떤지 평을 기다리듯 바라보는 태성을 보며, 서현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맛있네요.”

“그래?”

서현의 반응을 살피던 태성은 그녀의 입맛에 맞아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달걀프라이를 입에 넣었다.

“이거 뭐야?”

몸서리 친 태성은 휴지를 찾아 입 안에 넣었던 걸 바로 뱉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서현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이걸 어떻게 먹었어?”

태성은 서현의 접시까지 뺏어 한쪽으로 밀어 넣었다.

“맛없으면 맛없다고 하지. 이걸 삼킨 거야? 괜찮아?”

“괜찮아요.”

서현이 피식 웃자, 태성이 생수를 들이켜며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쉽지 않네. 뭐가 문제지? 기다려, 내가 다시 해줄게.”

태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현이 얼른 그를 말렸다.

“태성 씨?”

“응?”

“저 배 안 고파요.”

“그래도 밥은 먹어야….”

태성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서자, 서현이 그를 뒤에서 껴안았다.

“고마워요.”

“……?”

“밥 안 먹어도 배부른 것 같아요.”

태성은 서현의 그 말이 좋다가도 그 말을 의심했다.

“먹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고?”

“그것도 그렇고….”

“뭐?”

태성의 반응이 재미있어 서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태성도 서현을 따라 웃으며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그녀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뭐 시켜 먹을까?”

“태성 씨는 배고파요?”

“아니.”

“저도 진짜 괜찮아요.”

태성이 서현의 팔을 풀고 뒤로 돌아 그녀를 마주 봤다.

그리고는 그녀를 기다란 팔로 감싸 품에 가뒀다.

“나 다른 게 먹고 싶어졌는데….”

“……?”

“배는 안 고픈데… 다른 게 고프네.”

눈썹을 씰룩거리는 태성을 보며 서현은 그를 밉지 않게 흘겨봤다.

“태성 씨….”

“방으로 들어갈까?”

태성이 순식간에 안아 들어 올리자, 서현은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어머!”

태성은 서현을 안아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 높이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악, 뭐 하는 거예요.”

떨어질까 봐 서현이 더 세게 그의 목을 팔로 감싸 안자, 태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너무 가벼워졌어. 살 좀 쪄야지.”

“난 지금이 좋은데? 이왕 살 빠진 거 유지할까 생각 중이에요.”

“난 싫어.”

아침밥은 주지도 않고, 침대로 데리고 가는 태성을 향해 서현은 입을 삐죽였다.

“살찌라면서… 그럼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하고 나서 실컷 먹게 해줄게. 당신 입맛 돌게 해주려고 이러는 거야.”

“점점….”

모르는 척 시선을 외면한 태성은 발로 침실 문을 열고는 서현을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부러질까 봐 걱정되네.”

“그 정도는 아니에요. 몸무게 얼마 차이 안 나요.”

“전보다 살쪄도 좋으니까 마르는 건 안 돼.”

“막상 살찌면 싫어할 거면서?”

태성이 대답을 못 하고, 혼자 생각에 잠기자 서현이 그를 째려봤다.

“뭐야, 지금 대답 못 한 거예요?”

“당신이 살찐 걸 상상했는데….”

태성이 피식 웃자, 서현이 그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왜 웃어요?”

“귀여울 거 같아서….”

“네?”

“뒤뚱거리는 걸 상상했거든.”

“뒤뚱거리다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뒤뚱거려도 좋을 것 같네.”

“미쳤나 봐….”

“그 정도로 네가 좋다고.”

“……?”

“당신이 그 어떤 모습이든… 당신이라면 다 좋을 것 같다고.”

“왜 이래요?”

“글쎄, 왜 이렇게 됐을까?”

예전의 그를 떠올리자, 순간적으로 서현은 일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회사! 회사 안 가 봐도 돼요?”

“며칠 나 없다고 회사 안 망해. 근데 당신은 아니잖아? 며칠 나 없었다고 울고불고….”

“누가요?”

“아닌가?”

“치, 일중독인 줄 알고 걱정했었는데, 아니었네요?”

“지금은 다른데 중독이 돼서 말이야.”

태성은 입가에 미소를 걸친 채 고개를 내려 그녀의 입술을 포갰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농밀한 키스를 나누다가 태성이 입술을 떼고 서현을 위에서 내려다봤다.

“오늘 침대에서 나가지 말자.”

“네?”

“하루 종일 침대 밖으로 나가지 마.”

“밥은요? 화장실은?”

“나랑 같이 다녀.”

“네?”

“내 옆에서 1센치도 떨어지지 마.”

“말도 안 돼. 화장실도 같이 다니자고요? 그건 안 돼요.”

“그럼 그것만 허락하지.”

서현이 미간을 좁히자, 태성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폈다.

“인상 펴고… 시작이다.”

“네? 저는 하겠다고 안 했….”

서현은 그다음 말을 마칠 수가 없었다.

갈급하게 밀고 들어오는 태성의 입맞춤에 점령당하고만 서현이었다.

태성과 서현은 그렇게 둘만 있는 세상에서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 어쩌면 둘 사이엔 다신 없을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눈 마주칠 때마다 몸을 붙이고, 서로의 안을 채우며….

* * *

숙영의 미술관을 찾은 하은은 한숨을 내쉬면서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전화를 해도 문자를 해도 받지 않는 태성이었다.

원래 받아준 적도 없었지만, 하은은 끈질겼다.

호의적인 이 회장과 숙영의 태도에 용기를 얻어 하은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태성에게 들이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태성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하은은 태성의 엄마라도 더 공략해 보자는 심정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패션아이템을 갖고 미술관을 찾은 거였다.

“약속이 되어 있으신가요?”

직원의 말에 하은은 그 직원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나 누군지 몰라요?”

“네?”

“이런 데서 일을 하려면… 내가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센스가 이래서 오래 일하겠어요?”

“……?”

“관장님 사무실 어디에요?”

“저 약속을 하셔야….”

“잘리고 싶어? 빨리 안내해.”

큰소리가 나자, 책임급의 성 팀장이 다가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차림새며, 개념 씹어 먹은 건방진 갑질을 보며 성 팀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집안의 자제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더 다가가서 보니,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미술관 커피숍에서 숙영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목소리를 높였던 선정그룹 막내딸 백하은.

하은을 알아본 성 팀장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하은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제 앞에 있는 직원보다 직급이 높아 보이는 여직원이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 직원이 왔구나 싶어 하은은 제 앞에 있는 직원을 째려보고는 성 팀장을 따라 숙영의 사무실 앞에 섰다.

성 팀장이 노크를 하려고 하자, 하은이 막아섰다.

“이만 가 봐.”

딱 봐도 저보다 어려 보이는데, 끝까지 반말을 하는 하은을 보며 성 팀장은 입술 안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묵례를 한 뒤, 걸음을 옮겼다.

성 팀장이 멀어지자, 하은은 가져온 명품 아이템들을 점검하고 노크를 하기 위해 팔을 들었다.

근데 그때였다.

사무실에서 날카로운 숙영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하은은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숙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 실장, 오늘은 데리고 오겠다면서?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태성이가 서현이 데리고 갔다면서, 서현이 주변 사람들이라도 파보란 말이야. 오늘로 태성이 집 나간 지 3일이나 지났어요. 이틀 뒤에 있을 회사 창립 기념 파티에는 무조건 태성이 참석해야 되니까 그전까지는 무조건 찾아서 내 앞에 데려와요. 알았어요? 끊어요.”

모든 이야기를 밖에서 들은 하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태성 오빠가 서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고? 이게 말이 돼?”

주먹을 불끈 쥔 하은의 몸이 분노로 바들바들 떨렸다.

“장서현… 죽여 버릴 거야.”

* * *

“어때, 마음에 들어?”

최고급 오피스텔로 서현을 데리고 들어간 태성은 그녀의 짐을 내려놓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제대로 채워 넣은 것 같은데…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더 말해. 바로 채워줄게.”

서현이 할 말을 잃은 채 주변을 둘러보자, 태성이 그녀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지금 저보고 여기서 지내라고요?”

“응, 마음 같아서는 내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까, 당분간만 여기서 지내.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내 집하고는 차로 5분 거리니까.”

“너무 과해요….”

“뭐가?”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오피스텔이었다. 오피스텔을 채운 모든 게 명품이었다.

서현은 부담스러움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태성을 바라봤다.

“이러지 않아도 돼요.”

“너 내 여자야. 뭐든지 최고급으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만 당신한테 해줄 거라고.”

“태성 씨… 저 이렇게 안 해줘도 이미 충분해요. 태성 씨 마음이면 된다고요.”

이때, 태성이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 서현의 눈앞에서 촤라락- 펼쳐 보였다.

태성의 손가락에 걸린 목걸이가 빛나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태성은 대답 대신,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러고는 목걸이를 한 서현을 바라봤다.

“역시 잘 어울리네.”

“이건 또 언제 샀어요?”

“좀 됐어.”

“언제?”

서현의 물음에 태성은 혼자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서현을 좋아하고 있었으면서 유치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던 자신이 이내 부끄러워졌다.

태성이 혼자만 웃자, 서현이 갸웃했다.

“왜요? 뭐가 웃긴대요?” 

“그런 게 있어. 이 목걸이도 내 마음이니까 늘 하고 다녀. 알았지?”

“네, 고마워요.”

서현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빤히 쳐다보자, 머쓱해진 태성이 고개를 돌렸다.

“집 좀 구경해 봐. 당신이 살 집인데….”

“네….”

서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말대로 속옷 한 장 가져오지 않아도 당장 생활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게 갖춰져 있는 공간이었다.

심지어 서현이 손 놓았던 피아노까지 갖춰져 있었다.

“난 태성 씨한테 뭘 해줘야 할까요?”

태성은 서현을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얘기했다.

“내 곁에 있는 거. 그거면 돼.”

태성의 말에 행복하면서도 또 마냥 행복할 수 없는 현실을 아는 서현은 눈빛에 불안함을 담은 채 그의 품에 더 깊숙이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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