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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38)화 (38/111)

38화 

결박

“내가 떠나지 않겠다고 해도… 난 어차피 당신을 떠날 수밖에 없어요.”

“당신 얘기. 네 얘기 하라고, 장서현.”

서현은 태성의 눈빛을 외면했다.

“쓸데없는 짓이에요….”

“장서현….”

“당신 지금 이상한 거 알죠? 우리 사이에 감정 넣지 말자고 한 거 당신이었어요. 근데 왜 이래요?”

“그땐….”

“의무고 도리고 이젠 안 지켜도 되니까 일 어렵게 만들지 말고….”

태성은 서현의 손목을 잡아당겨 껴안음과 동시에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녀의 모든 것을 결박해서 제 곁에 두고 싶은 태성이었다.

갈급하게 밀려드는 태성의 숨결을 받아내던 서현은 힘겹게 그를 밀어냈다.

“하… 왜 이래요, 진짜?”

“네가 좋아졌어, 장서현.”

“……?”

“네가 불쌍해서 이러는 것도 아니고, 미안해서 이러는 것도 아니야. 그냥 너니까 이러는 거야.”

“태성 씨… 당신 후회할 수도 있어요… 지금 나한테 미안한 거, 불쌍한 거 다 섞여서 착각하는 걸 수도 있다고요.” 

“아니, 나 당신한테 안 미안해. 그리고 당신 하나도 안 불쌍해. 내가 너 그렇게 되게 안 둘 거니까.”

“태성 씨…”

“널 원해, 장서현. 네 몸뿐만 아니라, 네 마음까지도. 널 원한다고.” 

확신에 찬 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서현의 머릿속은 하얘지고 말았다.

날 원해?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을? 

그가 내 마음을….

그가 날… 날 원해.

부딪치는 눈빛에 스파크가 튀고, 서현은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에게 와락 안겨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먼저 입술을 부딪친 건 서현이었지만, 태성은 그런 그녀를 제 품으로 더 세게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을 빨아 당겼다.

천천히… 그러나 빈틈없이 입술을 포개오는 그의 입맞춤에 서현은 몸을 움찔거렸다.

강하게 다가오는 것보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이 입맞춤이 서현의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입술에 닿는 촉감, 부드럽게 들어와 감싸주듯 보듬어 주듯 입 안을 자극하는 그의 혀, 달콤한 꿀처럼 넘어가는 그의 타액까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키스였다.

음미하듯 처음 하는 것처럼 그렇게 정성스럽게 서로에게 집중한 시간이 끝나고 입술이 떨어진 순간, 서현은 서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너무나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어루만져주는 태성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울컥하면서 서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태성은 그 눈물을 손으로 입술로 닦아주었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던 서현이 흐려진 눈가를 닦고, 그를 바라봤다.

마주 보는 그의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서현은 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 서현을 보며 태성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다 운 거 아니었나?”

“…….”

“이 눈물의 의미가… 좋은 쪽이었으면 좋겠는데….”

서현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듯 그저 혼잣말을 할 뿐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러게. 이렇게 돼 버렸더라고, 어느새.”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는 태성을 보며, 서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삼켰다.

“이러지 말아요.”

태성이 서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고개를 들게 했다.

“이럴 건데?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우선 살고 봐야 할 거 아니야?”

기분을 풀어주려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태성을 보며 서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장난칠 때예요?”

“울다 웃으면 몸에 변화 생긴다던데….”

“네?”

“한 번 볼까? 변화가 생겼나?”

“장난 그만 쳐요.”

태성의 가슴을 두 손으로 치려는 순간, 서현은 그에게 손목을 잡혔다.

꼼짝도 못 하게 된 서현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태성이 정염에 일렁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그대로 그녀의 손을 포개어 잡아 벽으로 밀어붙였다.

순식간에 진해진 분위기에 서현은 숨이 가빠왔다.

“하….”

신음 섞인 숨을 내쉬는 순간, 태성의 입술이 서현의 숨을 삼켰다.

“읍….”

서로에게 빨려 들어가듯 입술을 붙이며 태성이 서현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두 팔은 그의 목을 감싸 안았고, 허공에 뜬 그녀의 다리는 자연스럽게 그의 허리를 감았다.

“하아….”

“사랑해, 장서현.”

태성에게 안긴 채 그의 얼굴을 위에서 내려다본 서현은 그의 갈망 어린 눈빛에 취해 그대로 고개를 내려 더 깊숙이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서로에게 취한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이제 볼일 다 끝난 거 아닌가요? 도대체 왜 또 나타난 거죠?”

옥련은 병원으로 갑작스럽게 찾아온 박 실장을 향해 날 선 눈빛을 던졌다.

박 실장은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옥련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옥련은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눈빛이 너무 서늘해서 자꾸만 손에 땀이 나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늘따라 손님이 없는 건지 커피숍은 적막했고, 긴장감은 맴돌았다.

박 실장은 옥련에게 음료를 권하는 손짓을 했다.

“드시죠.”

“딸에게 가봐야 해요. 할 얘기 있으면 빨리하시죠.”

옥련은 재촉했지만, 박 실장의 태도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네 사정이야 알 바 없다는 듯.

“제가 누군지 궁금합니까?”

“네?”

“누군지 알아볼 만큼?”

옥련은 찔리는 게 있는 듯 박 실장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내렸다.

그러고는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옥련은 시치미를 뗐지만 박 실장은 모든 걸 안다는 듯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습니다. 사실을 알면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

“어설프게 건달들 시켜서 알아보지 말란 말입니다. 저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말고, 오지랖도 부리지 말고, 그저 시킨 대로만 하면 되는 겁니다, 아셨어요?”

“…….”

“왜? 이제 와서 장 회장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 겁니까?”

“도대체 장 회장한테 왜 이런 거죠? 당신 목적이 알고 싶은 거예요, 난.”

“그게 왜 알고 싶죠?”

“당신 목적이 뭔지, 내가 어떻게 이용당했는지 알아야, 행여 잘못되더라도 대처를 할 거 아니에요.”

“당신이랑 나랑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행여 잘못되더라도 영상 촬영은 당신이 독단적으로 당신 의지로 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만한 대가는 지불한 거로 알고 있는데….”

“그거야 그렇지만, 당신 목적을 좀 말해줘야… 당신이 목적을 달성한 건지… 이젠 더 걱정하면서 살 필요가 없는 건지… 그걸 알고 싶은 거예요, 난.”

“그 정도 양심의 가책, 마음의 짐도 없이 살고 싶은 겁니까? 참 끝까지 이기적이네요… 하긴, 장 회장 재산까지 다 빼돌렸더군요? 그래서 그 집 딸은 길거리에 나앉았고? 당신답습니다.”

“서현이가 화명그룹에 시집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파혼당할 줄은 몰랐다고요.”

누구 때문에 서현이 파혼을 하게 됐는데… 박 실장은 옥련을 보며 비웃었다.

“그러게 모르는 게 약입니다. 알면 괴로워지는 법이죠.”

“……?”

“쥐 죽은 듯이 사세요. 아는 순간, 다칩니다. 오늘은 경고로 끝나지만, 또다시 허튼수작 부렸다간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행복, 붙잡으셔야지요.” 

옥련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 * *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눈부셔 잠에서 깬 서현은 살며시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폭신한 이불의 감촉이 좋아 안으로 더욱더 파고들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는데, 태성의 향기가 느껴졌다.

꿈인가? 

기분 좋은 느낌에 서현은 살며시 눈을 떠 머리끝까지 덮었던 이불을 내렸다.

익숙하지 않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태성과 함께 열락의 시간을 보낸 방… 그리고 옆에 그가 있었….

부풀어 오른 이불로 손을 뻗자, 있어야 할 태성이 없어 서현은 흠칫 놀랐다.

진짜 꿈이었나?

그 순간,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서현은 침대 밑으로 떨어진 슬립을 주워 입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주방을 본 서현은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지금….”

“일어났어?”

서현은 눈에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한 번, 두 번, 여러 번 눈을 비볐다.

태성의 뒤로 보이는 엉망이 된 주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뭐 하고 있었어요?”

“아침밥 차렸지… 근데 이거 할 줄 알아?”

커피머신 하나도 작동할 줄 몰라서 버벅대는 태성을 보며 서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침밥을 차렸다고요?”

“응, 뭐 간단히.”

아일랜드 식탁을 가리키는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접시 위에 무언가 있긴 했다.

검게 그을린 숯과 같은 비주얼의 식빵과 색깔로 봐선 달걀 같은… 아무래도 달걀프라이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 비주얼의 달걀 덩어리와 보기에도 딱딱하게 튀겨진 소세지가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서현이 저도 모르게 난감한 표정을 짓자, 태성이 슬쩍 눈치를 봤다.

“왜?”

“이거… 먹게요?”

“왜, 안 될 것 같아?”

“아니 그게….”

“우선 이거부터 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 이거 왜 안 나오는 거야? 설명서도 없고…”

커피머신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하는 태성을 보며, 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를 밀어냈다.

서현이 능숙하게 물을 채워 넣고 커피 캡슐을 찾아 머신을 작동시키자, 태성이 경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런 태성을 보며 서현은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당신 멋있어 보여서.”

“지금 되게 바보 같은 거 알아요?”

“……?”

“이태성 씨도 못 하는 게 있었네요? 사람 아닌 줄 알았는데… 다행이에요.”

“뭐가?”

“인간미 느껴진다고요.”

그 말에 태성이 씨익 웃으며, 서현을 식탁 의자에 앉혔다.

“앉아.”

이윽고 두 사람은 음식을 눈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먹어 봐. 보기에는 이래도… 뭐 좀 느낌 있지 않나?”

도대체 어디가 느낌이 있다는 건지… 어떤 느낌을 말하는 건지….

서현은 우선 그중에 가장 무난해 보이는 달걀프라이로 추정되는 음식을 조금 포크로 떠서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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