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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34)화 (34/111)

34화

결혼한다고?

장 회장은 의식을 회복하고 난 후, 병실에 있는 내내 뉴스를 보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김 실장이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이었다.

장 회장은 처음엔 김 실장한테 분노했지만, 곧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의문이 생겼다.

딸처럼 아껴왔다고 생각한 김 실장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거짓말을 한 건지…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시킨 건지… 장 회장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잠적이라니….

이 말도 안 되는 음모의 목적이 뭔지… 장 회장은 그것부터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목적을 모르겠다.

도대체 왜… 누가?

이런 상황에서 옥련의 행방은 아직까지 묘연한 상태였다.

김 실장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연락을 받지 않나 싶어 장 회장은 일부러 옥련을 더 찾지는 않았다.

그저 사실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기다릴 뿐이었다.

사실이 아니니까 곧 밝혀질 일이었으니까.

이렇게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 있는데… 장 회장의 귀에 믿기지 않는 뉴스가 들려왔다.

- 다음 뉴스입니다. 비서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장 회장의 부인이 증언을 했다고 해서 그 영상을 입수했습니다.

“……?”

앵커 멘트를 들은 장 회장은 목덜미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러고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영상에 눈을 떼지 못했다.

영상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된 옥련이 적힌 글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 장 회장은 부인의 간병인이었던 저를 상습적으로 성추행, 성폭행해왔습니다. 부인이 죽자, 이 모든 걸 무마시키기 위해 저와 재혼을 했고, 장 회장과 사는 나날들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거짓 증언을 하는 옥련을 보며 장 회장은 또다시 심장의 통증을 느꼈다.

“이, 이게 무슨….”

장 회장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윽… 윽….”

그때 병실로 들어온 서현이 깜짝 놀라 장 회장에게 다가갔다.

“아빠!”

“윽!”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심장을 꽉 쥐는 장 회장을 보고 서현은 혼비백산이 되어 간호사 호출 벨을 눌렀다.

“아빠, 정신 차려봐. 아빠.” 

* * *

“서현아….”

태성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병상에 누워 있는 장 회장의 옆을 서현이 지키고 있었다.

장 회장의 손을 잡은 채 태성이 들어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서현이었다.

그런 서현의 어깨 위로 태성이 손을 올렸다.

그의 손길이 느껴지자 서현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뚝 떨어져 내렸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나… 나 그렇게 못되게 산 것 같지 않은데….”

“장서현….”

“정말일까요? 아빠가 정말… 정말 그랬을까요? 아빠가 아니라고 했는데… 아니라고 했단 말이에요… 근데 그 여자는 왜… 도대체 왜… 왜….”

“…….”

* * *

“아빠는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지금이 기회 아니야?”

옥련의 인터뷰와 장 회장이 또 쓰러졌다는 뉴스를 보면서 하은은 손톱을 깨물었다.

“지금이 기회인데… 어떻게든… 그래,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

하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러고는 백 회장에게 할 말이 있어 그의 서재로 갔는데,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백 회장과 박 실장의 말소리가 들렸다.

얼핏 들어도 심각한 목소리에 하은은 귀를 기울였다.

“박 실장, 그 여자들 입조심은 잘 시키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김 실장 쪽에 사람 심어놨습니다. 박옥련 씨 역시 딸 때문이라도 비밀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장 회장 성폭력이고 성추행이고 다 꾸민 거라는 거 들키는 날엔 끝이라는 것만 알아둬.”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만큼 얻는 것도 크니… 뭐 해볼 만한 게임은 분명해.”

“그럼요, 조심해서 진행하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예상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된 하은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헉 소리를 낼 뻔한 걸 겨우 참아냈다.

‘장 회장 성폭력이 꾸민 일이라고?’

하은은 본격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래, 지금 장 회장 상태는 어때?”

“한 번 더 쇼크를 받고, 현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대로 깨어나지 않으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럼 깔끔하게 끝날 거 아니야.”

“그렇죠. 그냥 모든 누명을 쓰고 장 회장이 죽는다면 여기서 여자들만 잠적시키면 그만인 건데….”

“그러게 말이야. 그동안 그 박옥련이란 여자가 혈압약도 안 먹였다며?”

“네, 그래서 더더욱 상태가 안 좋은 거로 파악됩니다.”

“쯧, 어리석긴… 그런 여자랑 재혼이라니… 자기 목숨값 노리는 여자랑 도대체 왜 결혼을 한 거야?”

“회사는 망해가는데, 와이프는 암으로 떠나고, 자신까지 치매라고 하면 딸의 앞길을 막게 될까 봐 그랬답니다. 자신이 치매라고 하면 화명이 약혼을 깰까 봐 딸도 모르게 간병인을 둔다는 걸 결혼으로 포장한 거라고 합니다. 물론 박옥련 씨가 장 회장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기도 했고요.”

“딸 생각하는 게 아주 끔찍하구만.”

“그런데 여기서 반전은 장 회장이 치매가 아니라는 겁니다.”

“뭐야?”

“스트레스성으로 잠시 기억이 오락가락했던 건데, 그걸 지금의 와이프인 박옥련 씨가 이용했다고 합니다. 같은 병원에서 딸을 간병하면서 장 회장 와이프의 간병까지 하던 박옥련 씨가 장 회장이 자신에게 기대게끔 거짓으로 치매가 심하다고 말하며 도움을 준 건데요. 딸 걱정이 앞선 장 회장은 그 말을 덜컥 믿어버린 거죠.”

“진단도 받았을 텐데….”

“박옥련 씨가 자신의 전남편을 의사라고 속여 가짜 진단을 받게 했다고 합니다.”

“하긴 작정하고 달려드는 사기꾼을 어떻게 막아? 당한 거구만.”

“네, 그렇습니다.”

“그 인생도 참… 이게 다 화명그룹에 딸내미 시집보내려고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어떻게 보면 그렇죠?”

“송충이는 솔잎을 먹으랬다고, 분수에 넘치게 먹으려다가 체한 거지. 쯧쯧. 아무튼 그 여자, 다른 마음 먹지 못하게 감시 잘해. 사기까지 치는 여자니 더더욱 조심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태성이랑 장서현이 파혼 기사 내보내.”

“저희 쪽에서요?”

“파혼 기사 낸다고 해서 화명에서 반박 기사를 내겠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흔들어 놓자고.”

“네, 알겠습니다.”

백 회장과 박 실장의 대화를 다 들은 하은은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런 거였어? 아빠, 고마워요.’

* * *

“아빠, 얼른 일어나 봐요… 아니라며… 이대로는 억울하잖아.”

여전히 누워만 있는 장 회장을 보며 서현은 답답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이제 일어날 때가 됐는데 수면 상태가 길어지자 서현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서현이 문 쪽을 바라보는데,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하은이었다.

“……?”

“서현아.”

“여긴 어떻게….”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은 어떻게 뚫고 들어온 건지, 하은은 태연하게 병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뉴스를 봤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상심이 크지?”

“여긴 무슨 일로….”

“너 보러 왔지. 내가 여길 왜 왔겠어? 잠깐 얘기 좀 할까?”

병문안을 왔다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옷차림과 풀메이크업에 서현은 조금 갸웃했지만 여기까지 온 사람을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 앉아. 뭐 좀 마실래?”

소파로 자리를 안내한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주스 있는데….”

“아니야, 괜찮아. 나 너한테 할 말 있어서 왔어.”

“……?”

“나 태성 오빠랑 결혼해.”

“……?”

서현은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

“태성 오빠랑 나랑 결혼한다고.”

너무나도 당당히 자신을 바라보는 하은의 눈빛에 서현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그게 무슨….”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알아. 하지만 생각해보면, 화명에서 너희 집안과의 결혼… 솔직히 파혼 예상은 하고 있었잖아.”

당연히 예상은 하고 있었고, 늘 염려하고 있었던 일이 맞았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그것도 백하은에게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벌써 결혼 상대를 구했다는 말에 서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하….”

“태성 오빠랑 나랑 약혼 곧 진행될 거 같아. 부모님들끼리는 이미 얘기 끝난 상황이야.”

서현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를 반복했다.

말은 한마디도 못 하겠는데, 왜 웃음이 계속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서현은 연신 헛웃음만 지었다.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손은 떨렸고, 떨리는 두 손을 붙잡으려 서현은 목덜미를 손으로 감쌌다.

겨우 숨을 고르고, 입을 뗐다.

“태성 씨도 아는 얘기야?”

“응, 당연히. 왜, 진짜인지 물어보게? 근데 그러지는 마. 난 너도 태성 오빠도 힘든 거 보기 싫으니까.”

“뭐?”

“굳이 확인 사살 할 필요 없는 거잖아. 그리고 태성 오빠, 지금도 충분히 너 때문에 힘들어.”

꽤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서현이 모르는 태성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서현만 모르는 둘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하은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백하은?”

“몰랐어? 서현아, 내가 이런 얘기까지는… 그래, 너도 알아야지. 지금 너희 아버지 일로 화명그룹도 이미지 타격 많이 받았어. 사람들이 그러더라. 사돈이 그런 거 몰랐겠냐고. 그동안 비서 성추행이고, 성폭행 알면서도 눈감아준 거 아니냐고. 그리고 회사 거래도 부당 이익을 준 거 아니냐고… 이게 말이 돼? 화명그룹이야 말로 피해자인데 말이야. 근데 여기서 너와의 결혼을 그냥 추진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그건 인정하는 것 밖에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그래서 절연하는 수밖에. 오빠는 어차피 파혼할 거 급하게 진행하지 말고 좀 더 시간을 갖자고는 하는데, 어른들께서 서두르시네.”

“어차피 파혼할 거?”

가슴이 너무 답답해진 서현은 겨우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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