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쁜끌림 (30)화 (30/111)

30화 

불안한 시선

“어머, 오셨어요?”

“신부님, 신랑분 오셨어요.”

서현이 잘못 들었나 싶어 갸웃하는데, 옆에 있는 실장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신랑분 오셨다네요. 드레스 갈아입기 전에 오셔서 다행이에요. 제가 먼저 나가볼게요.”

“……?”

그가 왔다고? 말도 안 했는데?

실장이 커튼 밖으로 나가자, 서현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커튼 밖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셨어요? 신부님께서 막 드레스 갈아입으시려던 참에 오셨어요. 아, 신랑분 턱시도는 진작에 완성됐었는데, 오신 김에 지금 입어보시겠어요?”

“그러죠.”

태성의 대답에 실장이 다른 직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다른 직원들이 태성을 안내하고, 실장은 서둘러 서현이 있는 커튼 안으로 들어갔다.

커튼 안에서 이 소리를 다 듣고 있던 서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진짜 왔나요? 혹시 고 비서님이 오신 게 아니고요? 아님 기사님?”

서현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실장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제가 이태성 부회장님도 못 알아보려고요. 바쁜 일 다 제쳐두고 예쁜 신부님 보러 달려오셨나 봐요.”

그 말에 옆에 여직원들이 서로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작은 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너무 로맨틱해요.”

“이거 깜짝 이벤트인 거예요? 바쁘다고 하고 몰래 오신 거?”

“부러워요, 신부님.”

정작 서현은 어안이 벙벙해 있고, 직원들이 더 좋아하고 있었다.

“신부님, 신랑님 턱시도 갈아입으시는 동안 머리 손질 좀 할게요.”

“갑자기요?”

“이왕이면 더 예쁘게 보여야죠.”

서현은 실장의 손에 이끌려 화장대에 앉았다. 

머리에 티아라를 올리고, 면사포까지 달고 나니 제법 신부다운 모습이었다.

얼굴 또한 좀 전의 생기 없던 표정이 아니었다.

설렘 가득한 수줍은 표정은 영락없는 신부의 얼굴이었다.

“너무 아름다우시다. 어때요?”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두 분 결혼식을 도울 수 있어서 너무 영광이죠. 정말 만나 뵙고 싶었어요.”

“네?”

무슨 말인가 싶어 서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실장이 두 손을 모으며 한껏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5년 전 약혼식 때, 세기의 사진 주인공들 맞으시죠?”

기자들에게 찍힌 키스 사진을 말하는 거였다.

“사진이 멀리서 찍혀서 신부님 얼굴은 제가 못 알아봤는데, 신랑님은 워낙 뉴스에도 자주 나오시는 분이라… 단번에 뵙고 알아봤어요.”

서현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고, 웨딩샵 직원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상한 소문 많았지만, 그거 다 헛소문일 줄 알았어요. 이렇게 결혼하시는데… 말도 안 되죠. 힘드셨죠? 이상한 소문들 때문에?”

“아, 네….”

“근데 부회장님께서 엄청 다정하신 편인가 봐요. 사진에도 묻어났어요. 오늘 이렇게 몰래 오신 것도 그렇고.”

“…네.”

직원의 대답에 서현은 짧게 대답을 마쳤다.

그 다정함이 의무와 도리 때문이라는 건 아무도 모를 테니까…

또 마음 한편이 공허해지려 하자 서현은 고개를 저었다.

“다 됐나요?”

“네, 그럼 일어나실까요?”

단장이 끝난 서현은 커튼 앞에 섰다.

커튼 밖 상황을 살핀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님, 커튼 열게요.”

“네.”

서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눈을 감았다. 

“신부님, 너무 예쁘세요.”

직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커튼이 젖혀졌다.

최라락-

서현이 감고 있던 두 눈을 뜨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눈앞에는 턱시도를 말끔히 갖춰 입은 태성이 서 있었다.

“……!”

평소에도 멋있지만, 턱시도를 입은 태성은 정말이지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에게 매료돼 눈을 뗄 수 없던 서현은 웨딩드레스를 매만지는 직원들의 손길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제야 그의 표정을 살피는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그였다.

서현은 긴장돼서 잡고 있던 부케를 꽉 쥐었다.

“…이상해요?”

“…….”

“…너무 답답해 보여요?”

노출이 하나도 없었지만,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서현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눈이 부실만큼…

태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빤히 쳐다보고만 있자, 서현은 민망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어색하죠? 디자인은 바꿀 수 없대요. 저는 딱 맞는 것 같긴 한데… 뭐 나름 괜찮은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별로….”

“좋아.”

“네?”

“예쁘다고. 잘 어울려.”

“아… 네….”

부끄러워진 서현은 고개를 숙인 채 부케를 잡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입은 옷이 이래서 그런가 행동까지 유독 수줍고 조심스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태성은 여전히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두 사람의 어색한 모습을 옆에서 설레게 보고 있던 실장이 입을 열었다.

“신부님께서는 그 어떤 디자인을 입으셔도 예쁘셨을 거예요. 이건 본식 드레스입니다. 신랑님 어떠세요?”

“좋네요.”

“턱시도는 어떠세요? 워낙에 모델핏이시라 너무 잘 어울리시는데요.”

“좋습니다.”

“사진 안 찍으세요?”

“……?”

태성이 멈칫하자, 서현이 직원에게 눈짓했다.

“그런 거 안 찍어도 돼요.”

“왜요? 원래 다 찍으시는데… 거울로 볼 때랑 사진으로 볼 때랑 또 다르거든요. 신랑분 잠깐만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태성이 잠시 머뭇대자, 서현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실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진 안 찍어도….”

그 순간, 태성이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걸어온 태성은 서현의 옆으로 섰다.

“……?”

“다 찍는다잖아.”

직선으로 내려다보는 그와 눈을 마주친 서현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내렸다.

태성이 실장을 향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이걸로 찍어주시죠.”

“네.”

실장은 태성에게 휴대전화를 받아 직원에게 넘겼다.

직원이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전화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조금만 더 붙어서 서주시겠어요?”

태성이 더 옆으로 바짝 붙어서자, 서현은 어색해서 조금 경직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웃어주세요.”

직원의 말에 어색하지만, 살짝 미소를 지은 두 사람이었다.

찰칵-

정면을 바라보는 태성을 훔쳐보듯 슬쩍 올려다본 서현은 기분이 좋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순식간에 여러 장을 찍은 직원이 태성에게 휴대전화를 넘겼다.

태성이 같이 사진을 보자며 휴대전화를 서현 쪽으로 내밀었다.

그와 사진을 함께 보는데, 서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때?”

“괜찮네요.”

서현은 대답했고,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성이 사진을 볼 뿐 보내줄 생각을 하지 않자, 서현이 입을 삐쭉였다.

“저도 보내줘요.”

“안 찍을 것처럼 하더니?”

“제가 언제요…”

태성은 피식 웃으며 서현의 휴대전화로 사진을 전송했다.

“보냈어.”

“고마워요.”

사진을 찍어준 직원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자, 실장이 두 사람을 돌려세워 거울을 보게 했다.

거울에 비치는 두 사람은 여느 커플과 다름없는 잘 어울리는 신랑, 신부였다. 

거울을 보는 태성과 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을 잃었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그래도 먼저 입을 뗀 건 태성이었다.

“잘 어울려.”

“태성 씨도요.”

서로 마주 보고는 미소를 짓는데, 보는 이들마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근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웨딩샵 직원들도, 웨딩샵을 찾은 다른 고객들도 쑥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 비서가 다급하게 달려와서는 서현을 보고 멈칫했다.

“…….”

당황한 고 비서를 보며, 태성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 부회장님, 잠시만.”

고 비서가 서현의 눈치를 보자, 무언가 낌새가 이상함을 느낀 태성이었다.

“잠깐만.”

서현에게 양해를 구하고, 태성은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고 비서가 따라붙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저기 그게… 잠깐 나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웨딩샵을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서현은 갸웃했다.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주위 시선이 자꾸만 몸에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뭐지?

아무래도 더는 웨딩샵에 머물면 안 될 것 같아 서현은 실장을 바라봤다.

“갈아입을게요.”

* * *

옥련은 병상에 누워 잠든 지은을 애잔하게 보고 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남편 성철이 들어왔다.

“안 가봐도 돼? 그 노인네가 찾을 텐데?”

“이제 안 가도 돼.”

“응? 무슨 소리야? 아직 그 노인네 죽지도 않았잖아. 아직 재산도 다 못 빼돌렸는데….”

“입 닥쳐. 그 입을 도대체 얼마나 놀린 거야? 입 다물라고 했지?”

“그럼 어쩌냐? 말 안 하면 자꾸 때리는데….”

“맞아 죽더라도 말은 말았어야지.”

그러면서 옥련이 성철을 바라보는데, 납치당해서 얻어맞은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 됐어. 어찌 되면 잘됐어. 언제 이식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 영감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부터가 무리였어.”

“그래서 어쩌게?”

옥련은 지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당신은 그 입이나 조심하고 지은이 보살피는 거에만 집중해. 딸 살려야 할 거 아니야.”

옥련의 냉정한 잔소리에 성철은 투덜거렸다.

“알았어… 내가 노냐? 나도 하루 종일 지은이 옆에만 있다고.”

“닥쳐. 내가 너 다시 받아들인 이유 하나야. 지은이 아빠라서. 그러니까 아빠 역할 똑바로 해. 나도 엄마 역할 똑바로 할 테니까.”

“말 좀 예쁘게 하면 안 되냐?”

옥련이 째려보자, 성철은 얼른 꼬리를 내렸다.

“알았어, 그만 째려 봐. 그나저나 얼른 우리 지은이한테 맞는 심장이 나타나야 할 텐데….”

“안 되면 인공심장이라도 넣어서 살릴 거야.”

“인공심장이 한두 푼이야? 보험 적용된다 하더라도 그거 유지하려면 한두 푼이 아닐 텐데….”

“한두 푼 아니니까 내가 이런 짓까지 하는 거 아니야… 내 딸 살리려면 내가 뭘 못하겠어… 난 다 할 수 있어. 다 할 거라고. 내 심장이라도 떼서 살릴 수 있다면 살릴 거야.”

옥련은 지은의 손을 쓰다듬으며 자기 최면을 하듯… 자기합리화를 하듯… 그렇게 계속 중얼거렸다.

그런 옥련에게 성철이 쭈뼛쭈뼛 다가와 등을 쓰다듬었다.

“저기 돈 있으면… 나 용돈 조금만 주면 안 될까?”

옥련은 성철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 * *

“왜 이렇게 안 와?”

벽걸이 시계를 본 장 회장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혼잣말을 했다.

잠깐 친구를 만나겠다고 나간 옥련이 돌아오지 않자 장 회장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옥련이었다.

“늦나?”

전화를 끊고, 다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데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옥련인가 했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오는 와중에도 메시지가 계속해서 뜨는 게 보였다.

장 회장은 무슨 일인가 싶어 우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장은그룹, 장 회장님 휴대전화 맞습니까?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 김은영 씨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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