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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27)화 (27/111)

27화 

여기 회사라고요

집으로 가는 차 안, 서현은 창밖을 보다가 혼자서 입을 삐쭉였다.

회식 날, 갑자기 나타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던 태성은 벌써 며칠째 연락이 없었다. 

도대체 살았는지 죽었는지 툭하면 연락이 안 되는 그였다.

지독한 워커홀릭이라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마냥 그의 연락을 기다리다 보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어 참 별로였다.

머리로는 기다리지 말라고, 기다릴 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손은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가 껐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운전을 하는 최 기사에게 힐끔 눈을 돌린 서현은 조금 눈치를 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오늘도 바쁘셨어요?”

주어가 빠진 물음에 최 기사는 잠시 머뭇대더니 대답했다.

“누구 말씀이신지… 저요?”

“뭐 기사님도 그렇고, 또 김 기사님도 그렇고.”

“아….”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최 기사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백미러로 서현을 쳐다봤다.

“오늘 김 기사는 바쁜 일 없었다고 하네요. 종일 회사에 계셨거든요, 부회장님께서.”

“아… 네.”

서현이 머쓱해 하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자, 최 기사가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

“오늘 부회장님 야근하신다고 하던데… 저녁은 드셨나 모르겠네요.”

“먹었겠죠.”

“저도 부회장님과 다녀봐서 아는데 부회장님께서 일하실 때는 끼니도 안 챙기고 일에만 집중을 하시는 스타일이시라… 오늘 한 끼도 안 드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설마요. 고 비서님 계시잖아요.”

“고 비서님이 아무리 챙겨줘봤자 작은 사모님만 하겠어요?”

“네?”

“최근 야근 없는 날이 손꼽을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김 기사가 그러는데 며칠 전에 부회장님 보셨다면서요? 부쩍 살 빠진 것 같지 않으셨어요?”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서현은 그날 밤 태성의 몸을 떠올리다가 이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순간, 태성의 벗은 몸이 떠오를 게 뭐람…. 

서현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회사로 야식을 사가는 건… 그건 좀… 오버겠지?

오늘은 연락이 오겠지, 내일은 연락이 오겠지 참고 또 참았는데… 언제 오라고 할지 몰라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락 못 할 정도로 바빴던 거구나 알고 나니 서운함은 물러나고 어느새 그의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은 가득 찼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러다가도 뭐 얼마나 바쁘길래 그런가 싶어 왠지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먼저 연락해 볼까?

휴대전화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서현은 고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고 비서님이시죠?”

* * *

똑똑-

“부회장님.”

고 비서의 목소리였다. 

집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던 태성은 그제야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뻐근한 목을 풀며, 태성은 대답했다.

“들어와.”

고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손에 무언가 들려있었다.

“부회장님, 식사 배달 왔습니다.”

“식사?”

“네, 여기에 차릴까요?”

고 비서가 소파 테이블을 가리키자, 태성은 귀찮다는 듯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생각 없어.”

“그래도 좀 드시죠.”

“생각 없다니까.”

“사실은…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뭐?”

“작은 사모님께서 보내주신 겁니다. 부회장님 드시라고 초밥 보내주신 건데 저희만 먹기 그래서요.” 

“뭐? 서현이가?”

“네. 부회장님 식사 안 하셨다고 하니까….”

“알았어, 나가 봐.”

“그럼 이건?”

“그건 거기 두고.”

“네.”

고 비서가 소파 테이블에 초밥을 두고 집무실을 나가자마자, 태성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전화를 걸자, 몇 번의 통화음이 울리고 서현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어디야?”

- 이제 집에 들어가려고요.

“여기로 올래?”

- 네?

“와.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하니까.”

- 일하는 거 아니었어요?

“밥 먹으라며?”

- 그거야…

“부르면 언제든 오겠다고 하지 않았나?”

- 일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

“와.”

- 알았어요. 갈게요.

통화를 끝낸 태성은 피식 웃으며,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서현이 보낸 초밥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한편, 차에서 내리기 직전 태성의 전화를 받은 서현은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멍했다.

통화 내용을 대충 듣고 이해한 최 기사가 서현에게 말을 걸었다.

“작은 사모님, 어디로 가면 될까요?”

“네?”

“이동하시는 거 아닌가요?”

“네, 맞아요. 회사로 가주세요. 그 사람 회사….”

“네, 알겠습니다.”

최 기사는 제 일인 것처럼 신이 나서 운전을 시작했다.

* * *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곧게 뻗은 복도 끝에 그의 집무실이 보였다.

서현은 숨을 고르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비서실을 지나 그의 집무실 앞에 오기까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잘 먹겠다는 감사 인사를 하는 비서들에게 어떻게 인사를 건넸는지… 어떤 정신으로 걸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한 탓이었다.

혼자 들어가겠다고 말한 서현은 그의 집무실 앞에 홀로 서서 작게 목을 가다듬었다.

처음 와보는 곳도 아닌데… 이상하게 떨려 서현은 정말 여러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지막으로 숨을 크게 내쉰 서현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태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든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빛을 집요하게 마주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진짜 왔네?”

“오라면서요.”

“그랬지. 근데 진짜 왔네.”

웃으며 말하는 그가 마치 놀리는 것만 같아 서현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왜요? 갈까요?”

“아니, 앉아.”

소파 테이블에는 이미 초밥이 차려져 있었다. 

서현이 소파에 앉자, 태성이 바로 그 옆에 앉았다.

갑자기 옆으로 훅 다가온 태성 때문에 서현은 화들짝 놀랐다.

“왜 여기 앉아요?”

“안 되나?”

빤히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서현은 작게 숨을 삼켰다.

“네, 안 돼요. 저리 가서 앉아요.”

태성은 그럴 생각 없다는 듯 서현의 옆으로 한 뼘 더 다가갔다.

“왜 안 되지?”

“그건….”

분명히 젓가락은 마주 보게 놓여 있는데, 옆에 꼭 붙어 앉아 있는 태성 때문에 서현은 도저히 초밥을 먹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저기로 가요.”

서현이 가라는 말을 할수록 몸을 더 붙여오는 태성이었다.

서현은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냥 제가 옮길게요.”

서현이 일어나려 하자, 태성이 그녀의 허리를 안아 제 무릎에 앉혔다.

“헉! 뭐 하는 거예요?”

“내 무릎에 앉아서 먹고 싶어?”

“아뇨, 이러지 말아요. 누가 봐요.”

“지금 들어오면 해고.”

“네?”

서현은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반문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지금 들어오면 해고라고 미리 경고해뒀으니까 걱정 마. 아무도 안 들어… 아니 못 들어오니까.”

이게 무슨 횡포인가? 직원들이 불쌍하다 생각했다가… 돌연 서현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하려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까? 

직원들이 키득거렸을 생각을 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머, 미쳤나 봐.”

“진짜 미쳐볼까?”

“이거 놔요. 내려갈래요.”

서현이 발버둥 치자, 더욱 세게 껴안는 태성이었다.

“그럼 내려줄 테니까 얌전히 옆에 앉아 있어. 내 무릎에서 먹기 싫으면.”

별다른 선택권은 없어 보였다.

그의 고집은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서현은 체념한 듯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알았으니까 놔줘요.”

그제야 태성의 팔에 힘이 풀렸고, 태성의 품에서 벗어난 서현은 얌전히 그의 옆에 앉았다.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요.”

“무슨 생각?”

“여기 회사라고요.”

“그래서?”

서현이 찌릿 째려보자, 태성이 고개를 기울이며 한 뼘 더 가까이 옆으로 다가왔다.

“왜 이래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길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유도를 하는 것 같네?”

“그런 거 아니거든요. 밥 아직이라면서요. 밥부터 먹어요, 얼른.”

“밥부터 먹고 뭐? 뭐 다른 게 있나?”

“어머. 오늘 진짜 왜 이래요?”

“당신이 안 하던 행동으로 사람을 자극하니까 그렇지.”

서현은 마음이 들켰을까 봐 살짝 당황했지만, 일부러 더 차갑게 핑계를 댔다.

“오해하지 말아요.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 그저 제 도리, 의무를 한 것뿐이니까요.”

“이게 당신 도리, 의무인가?”

“당신 건강 챙기는 건… 당연히 아내 될 사람으로서 도리고, 의무라고 생각해요, 전.”

“그럼 다른 도리와 의무부터 하면 어때? 난 지금 다른 게 고파져서 말이야.”

“네?”

허리를 감싸 안은 태성이 순식간에 서현을 들어 올려 무릎에 앉혔다.

“어머.”

태성은 서현이 놀라는 표정을 짓자, 장난스럽게 표정을 따라 하고는 그녀의 허리를 더 당겨 제 몸에 붙였다.

“다른 허기부터 좀 채워도 될까?”

“이러지 말아요.”

“하면?”

“하지 말아요.”

입술이 점점 다가가자 하지 말라고 했던 서현이 서서히 눈을 감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태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는 서현의 눈에 입을 맞췄다.

쪽-

서현이 깜짝 놀라 눈을 뜨자, 그 순간 태성은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그러고는 단숨에 서현의 혀를 옭아매고 단물을 삼키듯 그녀의 타액을 빨아 먹었다.

고개를 틀어 더 깊숙이 맞물린 입술 사이로 주고받는 타액은 그 무엇보다 달콤한 피로회복제 같았다.

“음….”

욕망이 짙어질수록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은 태성이 잠시 입술을 뗐다.

“더 배고파졌는데?”

“……?”

태성이 서현의 입술을 살짝 머금었다가 뗐다.

“이대로는 못 보내겠다.”

태성이 다시 서현의 입술을 살짝 빨아당겼다.

“오늘 밤 같이 있어.”

정염 짙은 그의 목소리에 서현은 숨이 가빠왔다.

마주한 눈빛에서 마치 스파크가 튀는 것만 같았다.

서현은 대답 대신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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