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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25)화 (25/111)

25화 

아직인 거잖아. 너도, 나도.

연습이 끝나고, 연습실에서 나오는 길, 누군가 서현을 불렀다.

“서현 씨, 잠깐만요.”

“네?”

뒤돌아서자, 재단 직원 이 대리가 서 있었다.

“아, 이 대리님이셨구나.”

“연습 끝나셨어요?”

“네, 지금… 근데 무슨 일 있으세요?”

“별건 아니고, 지금 다 같이 모여서 저녁 먹거든요. 서현 씨와 함께 오라는 명을 받아 이렇게 기다렸습니다.”

“저를요? 저는 왜?”

“서현 씨를 그렇게 찾으시네요.”

“누가 저를?”

“가보시면 압니다.”

거의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회식 장소를 찾은 서현은 도착해서도 누가 자신을 찾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이 왔던 이 대리는 회식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회식 무리들 틈으로 사라져 버렸고, 홀로 남겨진 서현은 우선 빈자리에 앉았다.

그때였다.

“서현아, 오랜만이야.”

“……?”

손을 내미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 서현은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선정그룹의 막내딸 백하은이었다.

“나 기억나?”

“어? 어… 그래, 안녕.”

“네가 여기 재단에 있다는 거 알고 깜짝 놀랐어. 너 여기 있다는 얘기 듣고, 보고 싶은 마음에 너 좀 꼭 불러 달라고 했는데, 내가 실례한 건 아니지? 오랜만에 만나니까 너무 반갑다.”

“아, 그래? 근데 여긴 어쩐 일이야?”

“이번부터 후원하기로 했는데, 몰랐구나?”

“후원?”

“응, 우리 자주 보게 될 거야. 서현아.”

하은은 웃었고, 서현은 어색했다.

서현에게 하은은 그닥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딱히 하은이 피해를 준 건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꺼려지는 스타일이었다.

무언가 찜찜하달까?

학교 다닐 때 친구들 사이에서 늘 여왕처럼 군림하던 하은이었다.

모두 하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서현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은의 눈 밖에 나면 안 된다고 조언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게 서현에게 거부감을 불러왔다.

그래서 서현은 학교 다닐 때도 늘 하은을 가까이하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그런 하은이 반갑지는 않은 서현이었다.

하지만 하은은 달라 보였다.

“서현아, 우리 앞으로 자주자주 보자. 내가 관심이 많아졌거든.”

“어디에? 공연에?”

“뭐 두루두루?”

하은은 서현을 향해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Rrrrrr- Rrrrrr-

서현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태성이었다.

서현의 휴대전화를 슬쩍 훔쳐본 하은은 휴대전화 액정에 뜬 태성의 이름을 보고 흠칫했다.

“전화 오네?”

“어, 나 잠깐만.”

서현이 전화를 받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은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한편, 전화를 받은 서현은 회식 장소를 나왔다.

- 왜 이렇게 시끄럽지?

“회식 중이었어요. 무슨 일이에요?”

서현이 태성에게 질문하자마자, 민혁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 서현아. 너 언제 왔어?”

“어? 오빠!”

민혁의 등장에 서현은 태성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깐만요.”

서현은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민혁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오빠, 이제 와요?”

“응, 왜 안 들어가고?”

“잠깐 통화 중이었어요.”

“그래, 빨리 들어와. 먼저 들어가 있을게.”

“네.”

민혁과 짧은 대화를 끝내고, 서현은 다시 태성과의 통화를 이어갔다.

“미안해요. 잠깐 아는 사람을 만나서….”

- 몇 시에 끝나?

“오래는 안 있을 거예요. 조금만… 한 30분만 있다가 가려고요.”

- 최 기사 먼저 보냈던데?

살짝 까칠한 태성의 목소리에 서현은 갸웃했다.

“화났어요?”

- 아니, 거기 어디야?

“재단 앞에 있는 수천갈비요.”

- 알았어. 나올 때 전화해.

“왜요?”

- 갈게.

“온다고요?”

- 오래 안 있을 거라며?

“그렇긴 하지만, 안 그래도 되는데….”

- 30분만 있을 거라며. 거기 도착까지 30분 걸려. 기다려.

두근. 지금 데리러 오겠다고 말하는 그가 싫지 않았다.

“알겠어요, 얼마나 걸려요?”

- 금방 가.

먼저 전화를 뚝 끊은 그였다. 

“맨날 먼저 끊어. 나중에는 내가 먼저 끊어야지.”

서현은 입을 삐죽이며 투덜대면서도 이내 피식 웃으며 회식 장소로 들어갔다.

어디에 앉아야 하나 주위를 둘러보며 빈자리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서현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화들짝 놀란 서현이 뒤를 돌아보니 민혁이 서 있었다.

“아, 깜짝 놀랐잖아요.”

“내가 더 놀랐다.”

민혁은 서현의 어깨를 잡고 맡아놓은 자리로 데리고 갔다.

“네 자리 맡아놨어. 가서 앉자.”

“오빠 앉은 자리는 심각하게 일 얘기만 해서 싫은데….”

“너 오면 일 얘기 안 할게. 나도 일 얘기하기 싫어. 그러니까 네가 날 좀 구해줘라.”

“이사장님이 이래도 돼요?”

“이사장도 사람이야. 일에서 퇴근 좀 하자.”

살짝 취기에 올라 너스레를 떠는 민혁을 보며 서현은 웃음이 나왔다.

“취했네요, 오빠?” 

“급하게 몇 잔 마셨더니… 근데 아직 멀쩡해.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자.”

한 잔, 두 잔, 세 잔… 민혁에게 이끌려 술을 몇 잔 마신 서현은 주위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태성이 올 시간이 된 것 같아 회식 장소를 나와 전화를 하려는 순간, 누군가 서현의 손목을 잡았다.

“……?”

민혁이었다.

“서현아, 또 왜 나왔어?”

“오빠는 왜 나왔어요? 사람들이 찾을 텐데.”

“난 너 찾으려고 왔지.”

“저요?”

“응, 너.”

살짝 눈빛이 흐려진 민혁을 보며 서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 무슨 일 있어요?”

“응?”

“오늘따라 술 많이 마시는 것 같아서요.”

“아….”

민혁은 낮에 레스토랑에서 태성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난 네가 남의 거에 침 흘리는 취미 있는 줄은 몰랐는데… 선 지켜. 그거 추하다.”

태성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자, 민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런 민혁을 보며, 서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응?”

“진짜 취한 거 아니에요?”

“취하긴….”

“그럼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있으면… 해결해 줄래?”

“네?”

“놀라긴, 술이나 더 마시자.”

민혁이 서현의 손목을 잡는 순간, 태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손 놓지?”

“……?”

태성의 등장에 서현은 민혁의 손을 뿌리쳤다.

“어? 왔어요?”

“……?”

민혁은 멍한 표정으로 내쳐진 손을 바라봤고, 서현은 당황해 말을 얼버무렸다.

“빨리 왔네요? 잠깐만 기다려요. 가방 들고 나올게요.”

서현이 서둘러 회식 장소로 들어가자, 민혁이 자세를 고쳐 바로 일어났다.

“이게 누구야?”

“너 두 번째다.”

태성의 말에 민혁이 피식 웃었다.

“왜, 불안해?”

“……?”

“결혼한다고?”

“알면 조심하지?”

“아직 결혼 안 했잖아. 아직인 거잖아, 너도. 그리고 나도.”

“……?”

그 순간, 서현이 회식 장소에서 나왔다. 

“오래 기다렸죠? 인사 좀 하고 나오느라고.”

태성에게 먼저 말한 서현이 민혁을 돌아봤다.

“오빠, 나 먼저 갈게요.”

“그래.”

좀 전에 태성에게 보내던 서늘한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다정한 미소를 보내는 민혁을 태성은 언짢게 노려봤다.

“가지.”

태성은 서현의 손목을 잡고 세게 잡아당겼다.

그 모습을 하은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서현의 손목을 잡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태성의 발걸음에 갈급함이 묻어났다.

“천천히 좀 가요.”

“저 자식은 왜 매번 당신 옆에 있는 거지?”

“누구요? 민혁 오빠요?”

오빠라는 호칭에 태성은 걸음을 멈췄다.

태성이 갑자기 멈추자, 따라가던 서현은 하마터면 그에게 부딪힐 뻔한 걸 가까스로 멈춰 섰다.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요? 그리고 여긴 주차장이 아닌데….”

서현이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 순간 태성의 두 손이 그녀의 두 볼을 감쌌다. 

금방이라도 일을 낼 것처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서현의 눈동자는 떨렸다.

“왜 그래요?”

태성은 서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는 좀 전에 민혁이 했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아직 결혼 안 했잖아. 아직인 거잖아, 너도. 그리고 나도.”

서현을 바라보는데, 민혁의 말이 떠올라 태성은 저도 모르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젠장.”

“네?”

“아직이라고?”

“무슨 말이에요?”

“아직은 무슨.”

태성은 그대로 입술을 내려 서현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태성은 고개를 돌려가며 서현의 입술을 더 깊숙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갑작스러운 키스, 그것도 길거리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스킨십에 놀란 서현은 태성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몸을 붙여오는 그였다.

그리고 이내 빠져든 서현은 그의 움직임에 맞춰 타액을 주고받았다.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 태성이었다.

늘 생각지도 못한 행동이 당황스럽다가도 그 당황스러움을 또 싫지 않게 만드는 이상한 사람…

결국은 자기 페이스에 끌어들여 말려들게 만드는 사람….

어차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

서현은 늘 그에게 지는 기분이었지만, 또 그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도 이상했다.

나쁜데 나쁘지 않고, 싫은데 싫지 않게 만드는 그의 묘한 설득력에 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언제 시작할지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키스가 끝나고, 떨어진 입술 사이로 숨결을 주고받자, 그의 손길이 닿은 뺨이 타오르는 것처럼 화끈거렸다.

피식 웃는 태성의 숨결이 전해졌다.

“왜 이렇게 뜨거워?”

“……?”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열이 오르고 있었다.

키스 한 번에 달아오른 서현을 보며, 태성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래서야….”

“……?”

다시 손목을 잡은 그가 이끄는 대로, 서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에게 끌려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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