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쁜끌림 (22)화 (22/111)

22화 

날 좋아해요?

따뜻한 조명과 감미로운 선율이 흐르는 호텔 루프탑 라운지 너머로 화려한 불빛을 자랑하는 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서현은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가리고 감탄했다.

“여기 뭐예요?”

“밥 먹는 곳.”

“밥 먹으러 여기까지 왔다고요?”

“우선 앉지.”

태성의 손에 이끌려 테이블 앞에 선 서현은 보이는 테이블 의자에 앉은 뒤 다시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여기 정말 좋네요.”

서현이 넋을 잃은 사이, 태성은 물을 따라주러 테이블로 다가온 웨이터에게 예약한 음식을 내오라고 눈짓을 했다.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풍경을 바라보던 서현은 불현듯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갑자기 여기까진 왜 온 거예요?”

“그냥.”

“그냥? 혹시 저한테 뭐 할 말 있어요?”

“아니. 바다 보고 싶다며?”

“네? 제가 언제….”

잠시 생각을 더듬던 서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아까 내가 한 말 들었어요?”

“…….”

“정말?”

태성이 대답 없이 서현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바다로 던졌다.

그런 그를 보면서 서현은 갸웃했다.

그러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진짜예요? 제가 아까 한 말 때문에 여기 온 거예요?”

태성이 대답은 하지 않고 쳐다보기만 하자, 서현은 눈을 피했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지…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무안하게….”

“맞으면?”

“네?”

“감동하나?”

진지한 그의 목소리에 서현은 심장이 쿵 떨어졌다.

“…진짜예요? 진짜 저 때문에 여기….”

“아니.”

말을 끊고 나온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에 서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태성이 피식 웃었다.

그런 그를 서현은 흘겨봤다.

도저히 모르겠는 저 속이 궁금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백하은이랑 골프장에 왜 갔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물어볼 용기가 없던 서현은 그를 떠보기로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제 자신도 모르겠지만…

“오늘 골프는 재미있었어요?”

“그냥 그랬어.”

“그냥 그랬다고요?”

“응.”

서현이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태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보지?”

“제가 뭘요.”

그때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테이블에는 바닷가 호텔답게 정갈하게 담긴 회와 해산물로 만든 퓨전 한식 요리가 차려졌다.

음식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골프장에 대한 얘기는 끊겼고,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스테이크가 아니네요?”

“맘에 안 드나?”

“아뇨, 좋아서요. 한식이라서 집밥 느낌도 나고… 좋네요.”

태성이 손짓으로 서현에게 음식을 권했다.

그러자 서현이 그제야 젓가락을 들고 회를 한 점 입에 넣었다.

“맛있네요.”

태성은 서현은 빤히 쳐다봤다.

“뭐 나한테 화났나?”

태성의 물음에 뜨끔한 서현은 아닌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아뇨.”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제가 왜요?”

“원래 맛있는 거 먹으면 그런 표정 아니잖아.”

“제가 어떤 표정인데요?”

“적어도 지금 그 표정은 아니야.”

“…….”

티를 낸 게 뜨끔했던 서현의 눈에 전복이 들어간 돼지갈비찜이 들어왔다.

“아, 이거 좋아한다고 했죠?”

서현이 돼지갈비찜이 담긴 접시를 태성의 앞으로 밀어 넣자, 그가 다시 접시를 제자리로 옮겨놨다.

“왜요?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별로 안 좋아해.”

“네? 분명히 어머님이 지난번에 태성 씨 좋아하는 거라고….”

“이건 형이 좋아하는 거야. 우리 형.”

“……?”

형? 형이 있었… 아!

서현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처음 화명그룹과 약혼을 얘기할 때, 그에겐 형이 있었다.

아버지인 장 회장이 늘 장남이 아닌 차남과 약혼을 한다고 불만을 가졌던 게 생각이 났다.

약혼 후, 태성과 함께 유학 생활을 하던 그의 형이 죽었었다.

그리고 태성이 화명그룹의 유일한 후계자가 된 거였다.

그래… 형이 있었어….

순간 의문이 생겼다.

분명 얼마 전 숙영은 태성이 돼지갈비찜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날 태성은 돼지갈비찜에 손도 대지 않았었다.

왜 형이 좋아하는 음식을 태성 씨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뭐지?

서현은 고개를 들어 태성을 바라봤다.

서현이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태성이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런 표정이지?”

서현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어머니는 왜 그때 태성 씨가 갈비찜을 좋아한다고 한 거예요?”

“음… 형이랑 나를 많이 헷갈려하셔. 일부러 그러시는 건지, 아님 진짜 헷갈려 하시는 건지… 그럴 땐 그냥 맞춰드리는 게 나아. 괜히 분위기 이상해지니까. 당신도 그냥 모르는 척해.”

담담하게 말했지만, 태성의 표정은 조금 씁쓸해 보였다.

서현은 왠지 그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태성 씨가 좋아하는 건 뭐예요?”

“……?”

“어떤 음식 좋아해요?”

“그게 왜 궁금하지?”

“난 태성 씨가 좋아하는 게 궁금해서요. 어쨌든 우리… 결혼할 사이니까?”

“…해산물.”

“아… 싫어하는 음식은요? 돼지갈비찜?”

“그건 별로 안 좋아하는 거고.”

“다른 게 있어요?”

서현의 물음에 조금 망설이다가 태성이 대답했다.

“…바나나.”

서현은 의외의 음식에 깜짝 놀랐다.

“네? 바나나? 그걸 왜 싫어해요?”

“알레르기 있어.”

“진짜요?”

갑자기 서현이 눈을 반짝이자 태성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

“…왜 그렇게 보지?”

“알레르기 가지고 이러는 거 좀 아닌 거 아는데… 바나나 알레르기… 왜 귀엽지?”

“……?”

“당신한테 안 어울려요. 그럼 바나나 우유도 못 마시겠네요?”

귀엽다는 말에 태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안 마셔.”

“되게 귀여우시네요?”

서현의 말에 태성이 알레르기가 오른 것처럼 인상을 썼다.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요. 증상은요?”

“목이 부어올라 따끔거리고.”

“아, 조심해야겠다. 다른 알레르기는 없어요?”

“없어.”

“음… 해산물 좋아한다고 했죠?”

서현이 태성의 개인 접시로 회를 한 점 집어 옮겼다.

그러고는 먹으라고 손짓했다.

“먹어봐요, 이거 엄청 맛있어요.”

“알아서 먹을게.”

그 말에도 서현은 태성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한번 먹으라고 손짓했다.

“얼른.”

태성은 마지못해 서현이 놔준 회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챙김을 받는다는 느낌… 약간 묘한 기분으로 태성은 회를 입에 넣었다.

태성이 회를 입에 넣자마자 서현이 물었다.

“맛있죠?”

“그러네.”

태성이 맛있게 먹는 걸 보는 순간, 서현은 또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백하은을 만난 이유가 뭔지… 파혼을 할 생각인 건지….

오늘 여기까지는 왜 온 건지?

머릿속이 복잡한 서현이었다.

생각을 떨쳐내려 해도 떨쳐낼 수가 없어 서현이 순간 멍해졌는데, 이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네?”

“무슨 생각을 하길래 불러도 못 듣냐고.”

“아, 그랬어요?”

서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미소를 짓고는 대화를 이어가려 애썼다.

“아,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 돼지갈비찜… 그거 안 좋아한다고 했으면 양념 고기를 싫어하는 거예요? 아님 물에 빠진 고기를 싫어하는 거예요?”

“…….”

“네?”

“양념.”

“아… 알아둘게요. 바나나랑 돼지갈비찜 먹을 일은 없겠네요…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

서현은 용기내서 그를 떠본 거였다.

순간 마주친 눈빛이 어색했다.

서현은 태성의 눈빛을 외면하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 어색함을 눈치챈 듯 태성이 질문을 던졌다. 

“진짜 뭐 나한테 서운한 거 있나?”

“아뇨.”

다시 한번 오늘 왜 백하은과 골프장에 갔는지 질문할 기회가 생겼지만, 서현은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듣고 싶지 않은 얘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올까 봐 겁이 났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근데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은… 가정할 때 하는 말 아닌가?”

“그게 왜요?”

“아직도 우리의 결혼을 만약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서로 주고받을 거 다 주고받고?”

“……?”

“왜? 또 결혼하기 싫어진 건가?”

“아, 아뇨.”

확신을 안겨주는 그의 말에 서현은 하마터면 울컥할 뻔했다.

오늘의 불안을 한꺼번에 해소해 주는 말에 눈물을 참느라 입을 꾹 다물었다.

서현은 애써 눈물을 삼키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렸다.

그때, 태성의 말이 심장에 박혔다.

“어디 도망갈 생각하지 마. 결혼하기 싫어졌다고 해도 이미 늦었으니까.”

서현이 고개를 돌려 태성을 바라봤다.

서로의 눈빛이 부딪쳤다.

“왜 그렇게 봐?”

“당신은 왜 그렇게 봐요?”

서현을 바라보는 태성의 눈빛이 더 진해졌다.

“태성 씨, 자주 그렇게 저 보는 거 알아요?”

“알아.”

“알아요?”

“응. 싫은가?”

“싫은 건 아닌데….”

‘이상하게 당신이 날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순간순간 착각을 하게 만드는 태성의 눈빛이었다.

서현은 하마터면 속으로 생각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고 그의 눈을 바라보는데… 또 그에게 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날 좋아해요?’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걸까?

목 끝까지 올라온 물음을 삼켜내려니 가슴이 답답해서 그런가,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서현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덥네요.”

“더워?”

태성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서 오히려 서늘할 정도였으니까.

그때였다.

펑- 퍼엉-

반짝이는 대교를 배경으로 호텔에서 준비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불꽃놀이예요.”

서현은 어느새 불꽃놀이에 시선이 빼앗겼다.

모든 분위기가 완벽했다.

터지는 불꽃과 대교의 불빛, 루프탑의 불빛이 이뤄내는 조화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골치 아픈 모든 현실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그저 이 순간이 행복할 뿐이었다.

서현은 고개를 돌려 태성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서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태성은 그녀의 미소를 보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

그런 사정을 모르는 서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불꽃놀이를 감상했다.

“불꽃놀이 오랜만이네요.”

태성은 불꽃을 잠깐 보고는 다시 서현을 바라봤다.

여전히 심장은 두근대고 있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자꾸 서현에게 눈길이 가는 태성이었다.

아무리 불꽃이 요란하게 터져도 태성의 눈에는 서현만 들어올 뿐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