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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17)화 (17/111)

17화 

자꾸만 신경 쓰이는 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태성이 왔다는 도우미의 말에 숙영은 거실로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서현을 봤다.

“넌 뭐 하니? 안 나오고?”

“네.”

서현이 조금 머뭇거리는 사이, 숙영이 먼저 거실로 나가자, 태성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왔니?”

“네.”

숙영의 인사에 대답을 한 태성은 이 회장을 향해 인사를 했다.

“저 왔어요.”

“그래.”

“얘, 넌 왜 안 나와?”

숙영이 주방을 향해 소리치자, 태성이 갸웃했다.

이어서 주방에서 서현이 나오자, 태성이 살짝 놀랐다.

“……?”

“…….”

서현 또한 조금 어색하게 태성을 바라봤다.

얼마 전 다툰 이후로 처음 보는 두 사람이었다.

태성도 서현도 서로 아는 척도 안 하고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자, 숙영이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뭐 하니? 둘이?”

숙영이 팔꿈치로 서현의 옆구리를 살짝 쳤다.

“아, 왔어요?”

서현의 인사에 태성이 눈짓을 했다.

“여긴 왜 왔지?”

태성의 물음에 숙영이 대신 답했다.

“왜 오긴? 내가 불렀어. 빨리 자리 앉자.”

잠시 후, 이 회장과 숙영, 태성과 서현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식탁 위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음식이 꽉 차 있었다.

서현에게는 앞으로도 이렇게 차리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많이 차렸는데도 숙영은 가짓수가 없다고 계속 핀잔만 늘어놨으니까.

“자, 먹자.”

이 회장의 말에 차례대로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른들과의 자리도 불편했지만, 옆에 앉아 있는 태성이 더 불편해 서현은 밥이 제대로 넘어가질 않았다.

음식 먹는 소리만 들릴 뿐 적막이 가득한 식탁이었다.

누가 와서 먹더라도 체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적막을 깬 건 역시나 숙영이었다.

“태성아, 이것도 먹어봐.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숙영이 태성의 앞으로 돼지갈비찜 접시를 옮겼다.

“알아서 먹을게요.”

“알아서 먹긴, 살 빠진 거 봐. 너 태성이 집에도 간다면서? 근데 뭐 하는 거니? 태성이 건강도 안 챙기고?”

숙영이 찌릿 째려보자, 서현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태성이 젓가락이 어느 반찬으로 가는지 잘 보란 말이야. 알아뒀다가 좋아하는 반찬도 좀 해주고.”

“네.”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단호하게 말하는 태성의 말에 숙영이 말을 줄였다.

이 회장도 시끄럽다는 듯 눈치를 줬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식탁에는 적막이 흘렀다.

조용한 식사가 끝나자마자 태성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서현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넌 내일 낮에 나랑 백화점 가자. 지난 번에 못 산 거까지 사려면….”

태성이 숙영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내일 낮에 이 사람 약속 있어서 안 됩니다.”

“약속이 있니? 무슨 약속?”

“네?”

사실은 약속이라기 보다 개인적인 용무가 있는 서현이었다. 

안 그래도 거절을 하려고 했는데, 태성이 먼저 거절을 한 거였다. 

“저, 그게….”

서현이 눈치를 보자, 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백화점은 다음에 가시죠.”

“아,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이 회장이 살짝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태성은 모르는 척했다.

“가보겠습니다.”

서현은 허리 숙여 인사를 한 뒤, 태성의 뒤를 따라 차고로 향했다.

“어른들 보시니까 저 그냥 집 앞 골목까지만 데려다주세요.”

태성은 대꾸가 없었다.

차는 출발을 해서 집 앞을 지나쳤다.

조수석에 앉은 서현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이제 내려주세요.”

내려 줄 생각이 없다는 듯, 그는 보란 듯이 도로 한가운데로 진입하고는 물었다.

“여긴 왜 왔어?”

“어머님이 오라고 하셔서요.”

“그래서 앞치마를 입고 있었고?”

“그거야 저녁상을 차리느라….”

태성은 서현의 말을 끊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나랑 자는 거 아니었나? 이런 게 아니라?”

“그건….”

말문 막히게 하는 재주가 탁월한 그였다.

서현이 말을 잇지 못하자, 태성이 다시 말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게 특기인가?”

자꾸만 신경을 건드리는 태성의 언사에 서현은 날 선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아니라….”

“그럼 뭐지? 그날 너….”

이번엔 서현이 태성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그날 뭐요? 그날은 당신이 날 그렇게 취급했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고요.”

“왜 신경 쓰이게 하지?”

“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서현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왜 신경 쓰이게 하냐고.”

“제가요?”

“다신 그런 말 입에 담지 마.”

자꾸만 못 알아들을 말만 하는 그였다. 서현은 혼란스러움에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요?”

“당신 할 일이 나랑 자는 거라는 말.”

“그럼 아닌가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지 마. 기분 더러우니까.”

“왜 당신 기분이….”

서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그였다.

“그러라면 그렇게 해.”

“하… 이것도 당신이랑 결혼하려면 지켜야 하는 건가요?”

“그래.”

제 멋대로인 남자였다. 

먼저 기분 나쁘게 한 사람이 누군데… 주제 파악을 하라는 거겠지.

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그러죠.”

한동안 적막이 이어졌다. 

그러다 서현의 머릿속에 불현듯 스치는 물음이 생겼다.

“아까 말한 중요한 일이 뭐예요? 내일 어디 가요?”

“그런 거 없어.”

“없다고요? 아까는 분명… 혹시 거짓말했어요?”

“…….”

“왜?”

“가고 싶었는데 내가 거절한 건가?”

“아뇨, 사실은 제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거절할 참이긴 했어요. 낮에 연습실에 좀 들렀다가 어디 갈 곳이 있거든요.”

“연습실? 또 그 자식 만나러 가는 건가?”

비꼬듯 말하는 태성을 보며 순간 서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자식이라뇨?”

“변명도 안 하는 건가?”

태성의 말에 서현은 무슨 말인가 싶어 기억을 더듬었다.

“무슨 변명을… 저기 설마….”

서현은 기가 막혀 태성을 바라봤다. 

태성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한 채, 정면을 보며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런 그를 보며 서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하… 혹시 민혁 오빠 말하는 거예요?”

그 말에 태성은 거칠게 핸들을 꺾어 차를 세웠다.

“악, 놀랐잖아요.”

“기억력이 나쁜 편인가?”

“무슨 소리예요?”

“남자가 있으면 정리하라고 했던 말.”

“남자라뇨?”

“스캔들까지 난 남자를 그 시간에 만나러 갔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지?”

“그게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라….”

“내가 왜 기분이 더러워야 하는 거지? 난 공유를 싫어한다고 했을 텐데?”

“제가 뭘 어쨌다고.”

“그놈이랑 당신의 시간까지 공유를 하라는 건가? 그날 거긴 왜 갔지?”

“연습 간 거였어요.”

“근데 그놈이랑 그러고 있었나?”

“이태성 씨, 지금 당신 이상하거든요?”

“그만!”

태성의 고함에 서현은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너무 놀라 굳어 있는데, 태성이 몸을 기울여 다가오자 서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렀다.

“왜? 왜 이래요?”

“그만 신경 쓰이게 하라고. 그만. 내 신경 좀 긁지 말란 말이야.”

“제가 뭘 어쨌다고 이러는 거예요?”

“허락 없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마. 그놈 만나지 마. 나랑 함께 있는 시간에 다른 놈 얘기도 꺼내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마. 신경 쓰이게 하지 말라고!”

“……?”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진 서현은 눈만 껌뻑였다.

“장서현, 대답 안 해?”

“……?”

“대답해.”

순간적으로 마주한 태성의 눈빛에 압도당한 서현은 말문이 막혔다.

“…….”

“대답해.”

“…알았어요.”

그제야 태성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서현은 숨을 골랐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서현의 눈동자였다.

태성은 서현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하는 방향이 서현의 집이 아니었다.

* * *

10인용 식탁에 두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하은과 그의 아버지 백 회장.

엄마는 일찍 여의고 언니 둘은 결혼을 해서 나가고 혼자만 남은 하은은 이 저택에서 백 회장과 둘이 살고 있었다. 입주 가사도우미들과 함께.

식탁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단출하기만 한 식사 인원이었지만,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빈 공간 없이 화려하게 차려져 있었다.

밥알을 세면서 밥을 먹고 있는 하은을 보며 그의 아버지인 백 회장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아침부터 왜 그래? 왜 먹는 게 시원찮아?”

하은이 대답을 하지 않자, 백 회장은 옆에 서 있는 박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얘 왜 이래?”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박 실장이 힐끔 하은의 눈치를 보자, 그녀가 먼저 그의 말을 끊었다.

“박 실장님 조용히 해요.”

하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순간 모든 직원들이 동작을 멈췄다.

한번 히스테리를 부리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성질을 부리는 하은이었다.

직원들은 그런 걸 알기에 하은의 심기를 건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더럽고 치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기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월급이 다른 곳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은의 성질을 버텨내는 값이 월급에 포함된 듯싶었다.

“오늘 국 왜 이래?”

“왜, 맛있기만 하구만.”

“얼마 전부터 거슬렸어요. 싫으니까 바꿔줘요.”

하은이 오늘은 국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백 회장은 또 그러나보다 싶어 박 실장에게 눈치를 줬다.

그럼 박 실장이 알아서 처리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 직원의 업무 분야를 바꾸거나 해고를 하거나.

하은의 심기가 오늘따라 더욱 안 좋았다.

백 회장은 한숨을 내쉬면서 젓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하은을 바라봤다.

“빨리 말해라. 왜 이러는지.”

“후….”

“말을 해야 해결을 하지.”

백 회장의 닦달에 하은은 입을 열었다.

“아빠는 제가 원하는 건 다 해주신다고 했죠?”

“또 뭘 말하려고 그래?”

“그러셨죠? 다 해주신다고.”

“그래, 또 왜?”

“저 이태성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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