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이렇게 원하는데?
“음식은 입에 맞나?”
“네, 맛있어요.”
“맛있다… 당신이 솔직하게 나오니… 나도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뭘요?”
“나도 맛있는 걸 빨리 먹고 싶어서 말이야.”
“……?”
“그게 뭔지… 말해 줄까?”
“아뇨.”
당황하는 서현의 표정을 보며 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내 눈을 흘기는 그녀에게 태성은 더 먹으라는 손짓을 했지만 서현은 그의 집요한 눈길에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와인을 마신 서현이 냅킨으로 입가를 정리하자 기다렸다는 듯 태성이 물었다.
“다 먹었나?”
“아뇨.”
“다 먹은 것 같은데 일어나지.”
“벌써요?”
질문과 동시에 그에게 손목이 잡힌 서현이었다.
서현은 순식간에 태성에게 이끌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버튼을 누르자, 스위트룸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현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태성은 20층 버튼을 누르고, 바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태성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서현의 입술로 고개를 내렸다.
태성의 혀는 서현의 입 안을 거칠게 채워 넣으며 그녀를 벽으로 몰아붙였다.
서로의 입 안에서 엉겨 붙은 혀는 떨어질 줄 몰랐고, 입술은 더욱더 빈틈없이 맞물리고 있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객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자, 입술을 뗀 태성은 서현의 손을 잡고 객실로 향했다.
“태성 씨, 천천히 좀….”
“시간은 많이 준 것 같은데?”
객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태성은 다시 한번 서현의 입술을 덮쳤다.
혀를 밀어 넣은 태성의 강한 힘에 숨을 쉬기 힘들었던 서현은 안간힘을 써서 그를 밀어냈다.
“하….”
그러자 태성은 가슴을 밀치는 서현의 두 팔을 한 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올려 벽에 붙였다.
서현의 두 손을 결박한 태성은 고개를 내려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타오르는 욕망이 가득한 그의 눈을 마주한 순간, 서현은 숨이 가빠오는 걸 느꼈다.
“하….”
여전히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태성은 서현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냈다.
“당신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읏… 무슨 소리예요?”
“이 시간만 기다렸어. 이렇게 야한 널 보는 시간.”
“하….”
태성은 서현의 달아오르는 얼굴을 흡족하다는 듯 감상했다.
“이런 얼굴 더 빨리 봤어야 하는데… 널 왜 그동안 그냥 놔뒀을까?”
밖에서는 누구보다 반듯하고 단정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할 줄이야…
“하….”
“그래, 그렇게 좋아해. 당신 이 얼굴이 진짜 미치게 하는 거 알아?”
태성의 과감한 손길에 서현이 놀란 눈을 하고는 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내린 태성이 서현의 입술을 핥고 농밀하게 빨아 당기면서 아래로 손을 떨어뜨렸다.
투둑-
“하아….”
서현이 움찔거리자, 피식 미소를 지은 그가 고개를 틀어 그녀의 입 안으로 더 깊숙이 혀를 밀어 넣었다.
서현의 머릿속은 하얘지기 시작했다.
“하….”
한껏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태성은 그대로 자세를 낮췄다.
서현은 그런 그를 입을 틀어막고 지켜봤다.
그를 말리고 싶었지만, 말려봤자 소용없다는 걸 짧은 시간에 여러 번 느꼈었다.
서현은 태성이 어떻게 해줄지 처분만을 기다리듯 숨죽여 그를 바라봤다.
“불편한 건 좀 나아졌나?”
“……?”
“어때?”
“지금 제 걱정하는 거예요?”
“상태는 봐가면서 해야 하지 않겠어?”
“그만 쳐다봐요. 괜찮으니까….”
서현이 부끄러워 몸을 틀자, 태성이 그녀의 골반을 잡았다.
“괜찮다 이거지?”
확인을 마치기가 무섭게 닿은 뜨거운 숨결에 하영은 몸을 떨었다.
이내 서현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상체를 쓰러뜨리자 태성이 몸을 일으켜 벨트를 풀었다.
“날 기다렸나?”
민망한 서현이 고개를 돌리자, 태성은 그녀의 턱을 잡아 시선을 마주쳤다.
“이럴 땐 솔직하지 못하네? 읏….”
“하….”
“날 기다렸잖아, 그렇지? 대답해.”
“그…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왜? 당신 몸이 이렇게 솔직하게 날 원하는데?”
태성은 서현을 순식간에 들어 올렸다.
그 힘에 놀랄 틈도 없이 그는 속수무책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하… 태성 씨… 떨어질 것 같아요… 하으….”
“안 떨어뜨리니까, 걱정 마.”
“읏… 아아, 하아….”
서현은 어느새 무서움은 잊고 그에게 매달려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질렀다.
그 밤 그에게 여러 번 안겼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자극은 또 새로웠다.
인정하기 싫지만… 느끼기 싫지만 또 느끼고 있었다.
아, 어떡해….
서현은 저도 모르게 제 스스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서현의 움직임을 느낀 태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혼자만 미쳐 있는 줄 알았는데….
장서현 너도 날 기다렸구나.
동시에 떨리는 전율을 느낀 태성과 서현은 서로를 더 세게 꼬옥 껴안았다.
여운을 즐기듯 태성은 서현의 입술을 가볍게 빨아 당겼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의 발걸음은 그녀를 안은 채 침실로 향하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은 사그러들 줄을 몰랐다.
서현은 다음 날 아침에야 그의 침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태성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 * *
얼마 남지 않은 연주회 연습은 버겁기만 했다.
서현은 자꾸 같은 부분에서만 실수를 하는 바람에 연습의 진도는 나가지 못한 채, 짜증만 쌓여가고 있었다.
“하… 나 진짜 왜 이래… 집중하자, 집중.”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는데, 얼마 못 가서 또 삐끗.
“하….”
쾅-
저도 모르게 불쑥불쑥 올라오는 신경질에 피아노 건반 위로 엎드리고 말았다.
“이게 뭐야, 진짜….”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연습을 하자 했는데, 어느새 힘이 쭉 빠진 채 한 손으로 멍하니 피아노를 치는 서현이었다.
그러다가 서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 안 되겠다.”
밖으로 나간 서현은 연습실 입구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이제 가을이 되려는지 후덥지근하기만 했던 바람이 제법 청량하게 느껴졌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꽉 막혀 있던 가슴이 조금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째다… 일주일째.
태성에게 아무 연락이 없는 게 일주일째였다.
지난번에도 이렇게 연락이 안 된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길게 연락이 안 되진 않았었다.
그땐 주치의라도 보내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그였다.
근데 이번엔… 진짜 아무 연락이 없었다.
관계만 갖고 나면 다음 날 연락이 두절되는 그를 매번 이해해야 하는 건지….
이번엔 또 무슨 일인 건지….
일주일이 지나니 그를 만난 그동안의 일들이 모두 거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원래 내 인생에 그가 없었던 것처럼, 그동안 내가 꿈을 꾼 거였나 싶을 정도로….
그에게서 연락이 없는 게 이렇게 불안한 일일까?
내가 왜 이러지?
그냥 내 생활하면서 지내면 되는 건데… 자꾸 그를 기다린다.
혼란스러웠다. 그에 대한 감정이 명쾌하지가 않았다.
태성에게 먼저 연락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서현은 그때마다 마음을 접었다.
이유가 있겠지. 굳이 연락할 필요 없으니까.
그러다가도 왜 결혼 준비를 하자는 말을 안 하지?
마음이 바뀌어서 갑자기 결혼하기 싫어진 건가?
불안감 더하기 또 다른 복잡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머릿속을 엉망으로 휘젓고 있었다.
진짜 그의 말대로 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 매달리는 사람은 나구나… 어느새 또 그에 대한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며칠째 이러고 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때였다. 전화가 걸려왔다.
* * *
우아한 선율이 흘러나오는 백화점 VIP 라운지.
태성의 엄마 숙영은 교양 있는 자세와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마주 앉아 있는 서현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곤 주위를 살피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넌 애가… 집안 망한 거 홍보하고 다니는 거니?”
“네?”
“옷이 그게 뭐니?”
“연습실에서 바로 출발해서요.”
서현은 그래도 나름 깔끔하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숙영의 눈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상 명품만 걸치는 화명의 사모님에게 서현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앞으로 신경 쓰겠습니다.”
숙영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서현을 바라봤다.
몇 시간 전, 서현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었다.
태성의 어머니이자 예비 시어머니인 숙영의 전화였다.
약혼을 하고 나서 5년 동안 통화 한 번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 통화를 하는 거였다.
서현의 스케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백화점으로 나오라는 전화였고, 서현은 연습 스케줄을 모두 미루고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일주일 동안 태성에게 연락이 없어서 이 결혼 안 하는 건가? 내가 꿈을 꿨나 하는 찰나였다.
숙영의 전화를 받고, 꿈이 아니었구나.
이 결혼, 진짜 하나보다 새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태성만 넘어야 할 산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산이 또 있구나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