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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12)화 (12/111)

12화 

급해서 말이야.

“오늘, 일부러 안 받은 건가?”

“…….”

“대답해. 오늘 일부러 안 받은 건가?”

돌아보는 그의 시선이 너무 차가워서 서현은 순간 숨을 삼켰다.

“…아뇨.”

“그래, 그래야지.”

“협박하는 건가요?”

“협박처럼 들렸나?”

태성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오늘처럼 또 전화를 안 받는다… 글쎄? 오늘도 겨우 참은 거라 내가 어떻게 나올지는 나도 궁금한데? 근데 안 그러는 게 좋을 거야.”

서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자, 태성이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는 태블릿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당신만 잘한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왜 벌써 겁먹은 표정이지?”

서현은 잠깐이지만 그에게 또 기가 죽었다는 게 약이 올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당신은요?”

“뭘 말이지?”

“당신도 내 전화 잘 받아요. 당신이 내 전화를 안 받으면… 그땐 나도 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으니까.”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서현을 보며, 5년 전의 비슷한 상황이 떠올라 태성은 피식 웃었다.

겉모습만 조금 바뀌었을 뿐 여전한 그녀였다.

태성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협박하는 건가?”

“협박처럼 들렸어요?”

분명 화가 나서 째려보는 것 같은데,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그녀였다.

오히려 지금 당장…

“악, 뭐 하는 거예요?”

태성이 서현의 뒤통수를 손으로 감싸 끌어당겼다.

“기억 안 나? 그때도 이런 식으로 당신이 날 자극했던 거….”

“……?”

“당신 첫 키스.”

“……!”

이내 태성의 입술이 서현의 입술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러곤 서현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가며 정성스럽게 빨아 당기고 핥았다.

거칠게 다가오던 그 밤의 키스와는 다르게 천천히 그녀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은 태성은 음미하듯 천천히 그녀의 혀에 엉켜 들었다.

“음….”

운전기사와 뒷좌석 사이에는 격벽이 있었지만, 그래도 서현은 누군가 차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밀어냈다.

입술이 잠깐 떨어진 찰나에 마주한 그의 눈빛에 압도당한 서현은 그대로 굳고 말았다.

거부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서현은 저도 모르게 또 그에게 다시 입술을 빼앗기고 말았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차 안을 가득 메우고, 서로에게 집중했다.

떨어질 줄 모르던 입술이 드디어 떨어지고,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태성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생경한 감정에 알레르기 반응 같은 거부감을 일으키듯 미간을 좁혔다.

인상을 쓰는 그의 표정이 서현의 가슴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좀 전에 키스는 예상치 못한… 어쩐지 다른 느낌 같았는데… 잠시 잠깐 아주 잠깐 착각할 뻔했다.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옮긴 태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운 말투를 건넸다.

“오늘은 무슨 연습을 한 거지?”

갑자기? 이제 키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가? 

아님, 인상 쓸 정도로 별로였나?

서현은 생채기 난 마음을 애써 숨기며 퉁명하게 대답했다.

“곧 연주회가 있어요.”

“어떤 연주회인지는 모르겠지만, 푼돈 때문에 하는 거라면 나한테 얘기해.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네?”

서현은 잘못 들었나 싶어 제 귀를 의심했다.

돈을 준다고? 아무리 그의 재력이 필요해 결혼한다지만, 돈을 준다는 그의 말에 서현은 새삼 깜짝 놀랐다.

그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받는다는 건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제야 자신이 그와 어떤 암묵적인 거래를 했는지… 이 결혼이 어떤 결혼인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실감이 났다.

이어진 태성의 말은 그 관계에 대해 쐐기를 박았다.

“화명의 수준과 격에 맞는 연주회가 아니라면 거절해. 돈 몇 푼 벌겠다고 격에 안 맞는 연주회나 일 다니면서 손가락질 받지 말고.”

“그건….”

서현의 말을 막고, 태성이 또 입을 열었다.

“나랑 결혼할 거 아닌가? 우리 모든 대화는 끝낸 거 같은데? 말로든 몸으로든. 밤새.”

좀 전에 다정한 키스를 건네던 남자는 온데간데없고, 다시 야한 농담을 건네는 나쁜 남자가 서현의 앞에 있었다.

“그렇게 말 안 할 순 없어요?”

“왜? 또 나랑 결혼하기 싫어졌나?”

“아니 그게 아니라….”

“하기 싫어진 건 아닌가 보군. 근데 왜 안 물어봐? 결혼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건지 그게 제일 궁금할 것 같은데?”

“…아, 고마워요. 거래도 투자도….”

“고맙다는 인사는 안 해도 돼. 어차피 서로 원하는 걸 해주기로 한 거 아니었나? 나도 원하는 걸 얻고….”

“꼭! 꼭 그렇게 말을… 후… 됐어요.”

지적해 봤자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서현은 속으로 다음 말을 삼켰다.

태성도 그다음 말은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 제 할 말만 했다.

“결혼을 좀 서두르기로 했어. 올해 안에 올리기로 하지.”

“정말요?”

“왜 그렇게 놀라지?”

“아니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결정이 난 거예요?”

“갑작스러운 건 아니지. 우리 약혼하고 5년이나 지났으니까.”

“그렇긴 한데… 좀 급한 것 같긴 하네요….”

“내가 급해서 말이야.”

“네?”

태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뭐가요?”

“내가 왜 5년 동안 장서현을 가만 놔뒀을까?”

서현을 바라보는 태성의 눈이 욕망을 가득 담은 채 일렁였다.

태성이 허리를 끌어당겨 안자 서현이 다시 운전기사 쪽을 살폈다.

“어딜 봐?”

태성이 그녀의 턱을 손으로 잡아 시선을 묶었다.

“나랑 있을 때 다른 데 보지 마.”

“이것도 당신과 결혼하려면 지켜야 하는 건가요?”

“물론.”

태성이 매력적인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고개를 내려 서현의 입술을 머금고 가볍게 빨아 당겼다.

“역시 맛있어. 기억나? 그 밤?”

태성은 금세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

“이 표정은 내 앞에서만 짓는 거로.”

“다른 곳에서 지을 리가 없잖아요.”

“하긴….”

어느새 장난스럽게 미소 짓는 태성이었다.

그런 태성을 보며 서현은 갸웃했다.

어떤 게 당신의 진짜 얼굴일까?

“당신은 진짜 어떤 사람이에요?”

“어떤 것 같아?”

‘자신을 숨기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표정이 있거든요. 그게 당신 같은데… 당신은 왜 가면을 쓰려고 하는 걸까요?’

서현이 빤히 쳐다보자, 태성이 다시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 * *

온 힘을 다해 저를 받아들이는 그녀에게 미쳤던 밤이었다.

그녀를 안느라 밤새 잠을 자지 못했지만, 다음 날 아침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하고 힘이 넘쳤었다.

이런 가뿐함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 후계자로 살아온 그에게 아침은 늘 피곤한 하루의 시작이면서 이미 피곤함에 절어 있는 지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야말로 느껴본 적 없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늘 기운 없던 다른 날의 아침과 달리, 서현을 보는 순간 한 번 더 안고 싶다는 기운이 또 솟구쳤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녀를 덮쳤다.

역시 좋았다.

그녀와 관계를 갖는 순간,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랄까?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 화명그룹의 후계자로서의 삶에 자유는 없었다.

근데 그녀와 함께하는 밤, 자유를 느꼈다.

좋다 못해 끓어오르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두려웠던 밤.

처음 마주하는 날것의 욕망이었다.

흥분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까지 밀어붙여 그녀의 여린 몸을 힘들게 했기에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자제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렇게 참아보려고 했는데, 인내심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바닥이 나고 말았다.

오늘이면 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몸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지금 제 눈앞에서 얌전히 스테이크를 오물오물 씹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정확히는 그녀의 입술을 보면서 태성은 또 욕정에 휩싸였다.

저 입술을 지금 당장 빨고 싶다는 욕정.

‘미쳤군.’

태성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기가 막혀 고개를 저었다.

식사를 하던 서현이 그런 태성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태성을 보며 서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그럼 그만 쳐다보면 안 돼요?”

“……?”

“그 눈빛 부담스럽거든요.”

“그랬나?”

태성은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 앞에서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여자는 서현이 처음이었다.

“원래 그렇게 솔직한 편인가?”

“글쎄요… 제가 그런가요?”

머쓱해진 서현이 물을 한 모금 마시자, 태성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런 태성을 보고 서현이 움찔,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왜 그래요?”

“왜? 이것도 부담스러운가?”

“좀 그렇긴 한데… 제가 뭐라고 하든 어차피 맘대로 하겠죠?”

“물론.”

이번엔 서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태성을 빤히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지?”

“엄청 잘생겼어요. 그거 알죠? 그래서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건가?”

질문인가 싶다가도 혼잣말인 것처럼 서현이 툴툴거리고는 다시 스테이크를 썰자, 태성이 눈썹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질문인가?”

“질문이었는데… 질문하다 보니 답이 나와 버렸어요.”

또 한 번 솔직한 서현의 말에 태성이 기가 막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재미있단 말이야…

태성의 눈앞에 있는 서현은 그가 손에 쥔 것 중, 현재로서는 가장 흥미로운 것이었다.

“음식은 입에 맞나?”

“네, 맛있어요.”

“맛있다… 당신이 솔직하게 나오니… 나도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뭘요?”

“나도 맛있는 걸 빨리 먹고 싶어서 말이야.”

“……?”

“그게 뭔지… 말해 줄까?”

“아뇨.”

당황하는 서현의 표정을 보며 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내 눈을 흘기는 그녀에게 태성은 더 먹으라는 손짓을 했지만 서현은 그의 집요한 눈길에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와인을 마신 서현이 냅킨으로 입가를 정리하자 기다렸다는 듯 태성이 물었다.

“다 먹었나?”

“아뇨.”

“다 먹은 것 같은데 일어나지.”

“벌써요?”

질문과 동시에 그에게 손목이 잡힌 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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