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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끌림 (9)화 (9/111)

9화

한 마리 짐승

서현이 망설이자, 태성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데도, 서현의 몸은 점점 더 굳어가고 있었다.

그의 눈에 녹을 것 같으면서도, 얼어붙을 것만 같은…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서현이 어쩌질 못하고 덜덜 떨고만 있자, 태성이 낮게 읊조렸다.

“힘빼.”

그 두글자에 그의 갈급함이 느껴진 건 착각일까?

그 강압적인 어조에 기가 눌려 서현이 힘을 풀자, 태성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그래, 그래야지.”

만족스러운 듯 바라보던 태성은 이내 고개를 내렸다.

“뭐, 뭐 하는….”

태성의 입술이 범해서는 안 되는 곳으로, 예상치 못한 곳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으… 그만….”

“그만할까, 진짜?”

여전히 입술을 지분거리며 말하는 그의 물음에 서현은 머뭇거렸다.

“그만해?”

“…아뇨.”

“그럼 가만있어.”

그만하자는 게 무얼 말하는 걸까?

서현은 덜컥 겁이 났다.

그 어떤 것도 그만할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서현은 저도 모르게 다리를 잘게 떨었지만 입을 꾹 틀어막은 채 신음은 절대 내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인 건가?

태성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꺾어버리겠다는 듯 그녀를 자극했다.

“흐읏.”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은 서현은 제 입을 더 세게 틀어막았다.

이태성이… 이태성이… 이 남자가 지금….

서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려 태성을 바라봤다.

나 지금… 이 남자가 지금…. 

평소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현재 그와의 간극이 굉장한 흥분을 가져왔다.

“하아….”

이러면 안 돼.

간신히 참아내고 있는데,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태성은 귓가에 들려온 그녀의 신음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그래, 더 소리 내, 장서현.

서현은 그에게서 도망치려는 듯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태성은 그런 그녀의 골반을 꽉 붙잡은 채 계속해서 자극하기 시작했다.

“하아….”

참을 수 없다는 듯 신음이 터지더니 서현은 고삐가 풀린 것처럼 몸을 들썩였다.

비명에 가까운 그녀의 신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지만, 서현은 이미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가 지금 무슨 소리를 내뱉고 있는지… 이건 서현의 의지가 아니었다. 본능이었다. 참을 수 없는 본능.

파르르 떨던 서현의 몸에 기운이 빠지자, 태성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살폈다.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진 그녀였다.

태성은 느껴본 적 없는 충만한 만족감을 안은 채, 더 큰 만족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읏.”

“아….”

태성은 살짝 당황했다. 설마…

다시 또 살짝 힘을 줬을 뿐인데, 그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

이건 좀 전의 비명과는 달랐다.

“너? 너… 처음인 건가?”

“…….”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약혼을 했다.

‘당연한 거 아니냐고’ 빽 소리를 지를 뻔한 서현이었다.

다행히 참았고, 순간 정적이 일었다.

말없이 서로의 눈만 바라보다가 피식 미소를 짓는 그를 보자, 서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또 저 남자한테 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고는 괜히 강한 척을 했다.

“얼른 해요.”

“5년 동안 조신하게 날 기다린 건가?”

이미 서현이 처음이라고 확정 지은 태성이었다.

“그런 건가?”

“…얼른 하라고요.”

눈도 못 마주치는 서현을 보며, 태성은 깨달았다.

이런 여자가 스캔들이라니…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역시나 헛소문이었군.

그래, 넌 이런 애였지. 잊고 있었네. 

태성이 빤히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리자, 서현이 그를 째려봤다.

“웃지 마요.”

“그래.”

말과는 다르게 피식 웃는 태성을 보며 서현은 또 눈을 흘겼다.

“웃고 있잖아요.”

“그래. 웃을 때가 아닌데… 그렇지?”

순간적으로 태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럼 다시 시작할까?”

잠깐 그녀를 의심했었다. 내가 달라진 것처럼 그녀도 달라진 것은 아닌가 해서…. 

근데 달라지지 않은 그녀가… 이건 정말 염치없지만 왜 반가운 걸까?

나 또한 5년 동안 그 어떤 여자도 곁에 둔 적 없었지만, 그녀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걸 바랄 자격 따위 없었으니까.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반가운 거지? 

왜 안심이 되는 거냐고.

그 안도감은 안 그래도 성난 욕망을 더 키우고 있었다.

“내가 장서현의 처음은 다 가지는 건가?”

아니라고 백날 해봤자 믿지 않을 그였다.

서현은 딱히 반박할 수가 없어서 그를 째려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보지?”

“재수 없어. 짜증 나.”

“왜?”

“당신은 처음 아니잖아요.”

“당신도 가져, 그럼.”

“……?”

무슨 말인지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휘몰아치는 자극을 주는 그 때문에, 서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릴 뿐.

“하… 제발… 제발….”

“제발?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장서현?”

그녀는 분명히 처음이었다.

혼자만 처음일까 봐 억울할 뻔했는데, 기분이 썩 나쁘진 않네.

태성은 조금 더 부드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긴장 풀어.”

“어떻게 하는지 모른단 말이에요.”

조금은 신경질이 난 듯한 목소리로 서현이 칭얼대자, 태성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조금 새어 나왔다.

“후….”

태성은 조급한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천천히 조금씩 움직였지만, 서현의 두 눈에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아픈 건 줄 몰랐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태성이 서현의 흐르는 눈물에 키스를 함과 동시에….

“……!”

처음 느끼는 버거움에 놀란 서현이 순간적으로 상체를 들었다 침대로 떨어졌다.

이게 뭐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가득 찬 느낌에 서현은 온 몸에 소름이 끼쳐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하아….”

태성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겨우 진정하고 이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뻐근하고 생경한 고통이 이어졌다… 그러다 이내 온몸에 소름이 끼치더니 처음 느껴보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에 서현은 숨을 헐떡였다.

“하….”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흥분감은 처음이었다.

그의 몰아치는 열기에 함락되어 정신을 잃기 직전, 초점이 흐릿해진 서현의 눈에 그가 들어왔다.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하던 남자는 어디 가고, 정염에 휩싸인 채 뜨겁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 마리 짐승이 제 위를 군림하고 있었다.

* * *

“후….”

한숨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연주회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자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에 서현은 날이 서 있었다.

“나 진짜 왜 이래….”

며칠째, 태성과 함께했던 그 밤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와 밤을 보내고 난 다음 날 아침, 그는 침대에 없었다.

일어났을 때 이미 그는 외출을 한 뒤였고,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혹사당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자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 차를 타고 집에 와서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고, 일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휴대전화부터 확인했다.

몇 통의 부재중 전화, 몇 개의 메시지. 그중 그의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 밤을 보내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놓고는 보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집으로 화명그룹의 주치의를 보내서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주치의에게 건강 상태를 체크받고 영양제를 투여받고, 그리고 그와 통화를 하는 주치의 선생님을 보면서 또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연락이 없는 그였다.

먼저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연락해서 뭐라 그래….

이미 회사 거래와 투자금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에게 연락할 이유는 없었다.

근데 왜 연락을 기다린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왜 연락이 없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 미치겠는데, 연주회는 코앞이고… 정말 최악이었다.

오늘도 연습은 힘들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서현.”

민혁이었다.

“아, 이사장님.”

“둘만 있는데 이사장님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몇 번을 불렀는데….”

“아, 그랬어요?”

“왜 그래? 요즘 계속 그러네? 진짜 무슨 일 있어?”

“아뇨… 근데 연습실까지 웬일이에요?”

“소속 피아니스트가 연습 잘하고 있나 감시하러 내려왔지.”

“네?”

“농담. 실은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긴 서현과 민혁은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왠지 모를 어색함에 그저 멋쩍게 미소를 짓는데, 민혁의 시선이 서현의 목으로 향했다.

“어? 너 목은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서현이 얼른 목에 붙인 밴드를 손으로 가렸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실수로 옷 입다 손톱으로 긁어서.”

“얼마나 상처가 크길래?”

민혁이 걱정하며 목에 난 상처를 살피려 하자, 서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할 말 있으시다면서요? 무슨 얘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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