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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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S2.

[ xxx년 x월 x일 ]

주스를 다 마실 때쯤이 되자 단테 오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에이 언니 다음으로 관찰할 사람은 단테 오빠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에이 언니만큼이나 단테 오빠 이야기를 많이 적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에이 언니가 저번에 언니는 물론이고 언니 남편도 마음대로 관찰하라고 했으니 마음껏 써도 될 것 같습니다.

단테 오빠는 바다를 보고 싶다는 우리 언니의 말을 듣고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설마 무리한 부탁이었을까 싶어서 조마조마했는데, 단테 오빠가 바닷가를 보고 싶은 건지 바닷속을 보고 싶은 건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바다에 가본 적이 없어 두 가지 다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언니가 자신은 바닷속이 보고 싶다며 손을 번쩍 들었고, 단테 오빠는 그러면 바닷속을 보여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눈을 감고 다섯까지 숫자를 세라고 말했을 때는 어리둥절했습니다. 하지만 숫자를 세고 눈을 뜨자, 언니와 저는 어느새 처음 보는 곳으로 와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책에서만 보았던 거북이였습니다. 커다란 크기에 놀라 팔을 휘저었는데, 옆에서 물살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그때 제가 진짜 물속에 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물속인데 숨을 쉴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언니와 바닷속을 열심히 구경했는데, 너무 정신없이 많은 걸 봐서 그런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만 자세히 적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언니가 두 손을 모아 잡았다가 풀어줬던 물고기입니다. 색깔이 아주 예뻤고, 언니가 모았던 손을 풀고 나서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멍을 때리는 것 같아 귀여웠습니다.

그렇게 한참 바닷속을 구경하다가 언니가 조금 춥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갑자기 원래 앉아 있던 에이 언니네 소파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저희가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자, 에이 언니가 어깨에 담요를 한 장씩 덮어주었습니다.

물속에 오래 있었던 것처럼 추웠지만 옷은 하나도 물에 젖어있지 않았습니다. 에이 언니는 모두 단테 오빠의 마법 덕분이라고 말했고, 저희가 본 것은 전부 진짜 바다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진짜로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온 것일까요? 마법은 정말 대단하고 신기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법사인 단테 오빠도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날 꿈에는 바다에서 보았던 거북이가 나왔습니다. 거북이는 저에게 또 놀러 오라고 말하고 저 멀리 헤엄쳐 사라졌습니다.

저도 거북이를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

오늘은 드디어 관찰 일지를 제출하는 날이었다. 샐리는 가방에 소중히 관찰 일지를 넣어가서 선생님께 제출했는데,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고 샐리를 불러냈다.

“샐리, 혹시 선생님을 도와줄 수 있겠니? 이 관찰 일지들을 교무실에 가져다 놓아줬으면 해. 선생님이 지금 바로 다음 수업에 가야 해서…….”

“아, 네!”

“그래, 선생님 자리 알지? 부탁한다.”

샐리는 선생님께 부탁을 받았다는 생각에 어쩐지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아니, 사실 뛰다시피 하는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손에는 반 아이들의 관찰 일지가 한가득 들려있었고, 그 상태에서 뛰다시피 하고 있으니 균형이 자꾸만 흐트러졌다. 마치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그러니 샐리가 선생님 한 분과 부딪치며 와르르 관찰 일지들을 쏟아버린 건,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죄, 죄송합…… 헉.”

샐리는 당황해 고개를 들었다가 선생님의 얼굴을 확인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다른 학년의 선생님까지는 잘 모르는 샐리지만, 적어도 이 선생님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고학년을 가르치는 선생님 중 한 분이 건강이 악화되셔서, 한 학기 정도 대리로 선생님을 맡으신 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냥 대리 선생님이었다면 이렇게 학교 전체에 소문이 나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소문이 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 선생님이 처음으로 학교에 왔을 때 교장 선생님이 엄청나게 굽실거렸다는 것. 두 번째는, 가차 없이 시험에 0점을 줄 정도로 무서운 선생님이라는 것.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똑똑한 고학년 선배들도 이 선생님의 수업은 울면서 듣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선생님이 말을 무섭게 해서. 그냥 무섭게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아주 무섭게 해서.

‘이런 간단한 문제를 응용하지 못하면 어떻게 앞으로를 살아가겠다는 겁니까? 마지막으로 설명할 테니 잘 들으십시오. 다음은 없습니다.’

‘그동안 학교에 기부금을 낸다고 성적을 적당히 잘 받았던 모양인데, 제 수업에 그런 건 없습니다. 다시 똑바로 공부해오십시오.’

말과 더불어 눈빛은 또 얼마나 살벌한지. 고학년을 비롯해 샐리 같은 저학년 사이에도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그 선생님과 마주치면 얼음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 거야! ……라면서.

그리고 그런 선생님 앞에서 복도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들킨 것도 모자라 부딪치기까지 한 샐리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샐리는 내버려 두고, 그 선생님은 몸을 숙여 관찰 일지를 주워주기 시작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한소리를 할 것만 같았는데, 어느 순간 그 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손을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린 샐리가 허둥지둥 몸을 숙이자, 내용이 보이게 펼쳐져 있는 자신의 관찰 일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공책들이 쏟아지고 엎어지면서 펼쳐진 모양이었다.

“선, 선생님. 제가 주울게요.”

“잠깐.”

샐리가 자신의 관찰 일지로 손을 가져다 대려고 하자, 선생님의 팔이 샐리를 막았다. 거의 즉시라고 말할 만큼 빠른 반응에 샐리가 몸을 움찔 떠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는 듯 선생님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남은 관찰 일지들을 마저 주워준 뒤, 샐리의 관찰 일지만 다른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샐리와 눈을 맞추며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교무실로 가는 길이었습니까?”

“네? 네, 네.”

“또 넘어질지도 모르니 이건 제가 들어주죠. 같이 갑시다.”

무섭다고 소문난 선생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친절이었다. 게다가 그 선생님은 샐리에게 아픈 곳은 없는지, 무릎이 까지지는 않았는지 물어보기까지 했다.

간신히 괜찮다는 말만 하고, 교무실까지 혼자 갈 수 있다는 말은 하지 못한 샐리는 결국 그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까지 함께 가게 되었다. 긴 복도를 함께 걸어가면서 힐끔힐끔 그 선생님을 계속해서 살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생님은 아까부터 샐리의 관찰 일지를 읽고 있었다.

질문을 참고 참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샐리는 결국, 용기를 짜내어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저, 선생님.”

“예.”

“제 관찰 일지는, 그, 왜 읽으시는 건가요……?”

개미가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였지만,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는지 선생님의 발이 멈추었다. 관찰 일지에만 고정되어있던 하늘색 눈동자가 샐리에게로 향했고, 고개의 움직임에 따라 선생님의 안경 줄이 잠시 반짝이며 흔들렸다.

“이 관찰 일지가 학생이 쓴 겁니까?”

“네…….”

선생님은 그러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물으면 안 되는 질문이었을까 하고 샐리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을 때, 그제서야 선생님의 말이 다시금 이어졌다.

“혹시.”

“네?”

“혹시, 그 사람은…….”

그러나 그 말은 문장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멈추고, 선생님이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샐리는 그 모습이 마치 질문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자신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곧 선생님은 마음을 다잡은 듯 샐리를 향해 딱딱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옆집의 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옆집……?”

다소 뜬금없고, 학교 선생님에게 나올 줄은 몰랐던 말이었다. 샐리는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이다가, ‘옆집의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혹시 에이 언니와 단테 오빠를 아세요……?”

“……예. 아는 사람들입니다.”

“헉, 정말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아는 사이라니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샐리는 순간 엄청나게 신나서, 자기도 모르게 말을 줄줄이 내뱉기 시작했다.

“어떻게 아세요? 선생님이 에이 언니 친구신 건가요? 아니면 단테 오빠랑? 에이 언니가 저한테 오늘 아침에 머핀도 구워줬어요! 진짜 맛있었어요!”

“…….”

“그런데 정말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네?”

“그냥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휙 돌리며 샐리의 공책을 덮었다. 궁금한 걸 대답해주지 않자 샐리는 곧바로 시무룩해졌는데, 샐리를 두고 걸어가는 것 같던 선생님이 다시금 발을 멈추었다.

“빨리 오십시오. 곧 있으면 쉬는 시간이 끝납니다.”

“아, 네!”

샐리는 정신을 차리고 선생님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러다가 여전히 남아있는 호기심이 고개를 치켜들어서, 아까보다 더 커진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에이 언니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 덕에 용기를 얻은 덕분이었다.

“케이드 선생님, 그런데 에이 언니한테 선생님 이야기해도 돼요?”

“…….”

“네?”

선생님은 오랫동안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교무실에 다다를 때쯤이 되자, 옆에 있는 샐리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 대답에 샐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 얼굴을 잠시간 바라보는 것 같던 선생님은, 곧 고개를 돌려 교무실의 문을 열었다.

샐리가 알려주는 대로 샐리의 선생님의 책상에 관찰 일지들을 올려놓은 케이드 선생님이, 곧 다른 책상에서 사탕을 하나 꺼냈다. 아마 그 책상이 케이드 선생님의 책상인 것 같았다.

선생님같이 무서운 사람도 사탕을 가지고 다니는구나. 샐리의 긴장감이 살짝 풀어졌을 때, 선생님이 샐리에게 사탕을 건네주며 말했다.

“제 이야기는 해도 좋지만, 제가 그 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네?”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샐리는 얼떨결에 사탕을 받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샐리를 보고, 선생님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사람들은 언제든 잘 지낼 테니까요.”

어느 때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선생님이 덧붙이는 말을 듣고, 샐리는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옆집의 풍경을 떠올렸다.

지붕에 늘어진 풀잎의 그림자와 창문으로 들어오던 적당히 따뜻한 햇볕. 늘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한눈에 보아도 행복해 보이던 그 집을.

차례대로 에이 언니와 단테 오빠의 얼굴까지 떠올리자, 샐리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맞아요, 언니랑 오빠는 늘 잘 지내고 있어요.”

샐리가 그렇게 대답하자, 케이드 선생님은 처음 보는 얼굴로 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입니다.”

- <남편이 마탑주였다>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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