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 (176/181)

29.

H1.

한나는 찔리는 게 많아 오들오들 떨면서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마탑주를 알고 있지 않냐며 갑작스럽게 물어온 여자에게 이렇게 되물은 것이다.

“서로 어, 어떻게 돕는데요?”

여자는 잠시 한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그 사람이 갑자기 없어져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네.”

“저희가 그분을 찾을 방법을 알아요.”

“!”

뜻밖의 이야기에 한나가 눈을 크게 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어떻게 찾냐고 물어보고 싶어졌지만, 아직 여자가 한 말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분명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했는데.

“그렇다면 저는요? 저는 그, 마탑주를 아는 사람일 뿐이지 도움 드릴 수 있는 게 없는데…….”

하지만 상대방의 말에 이미 혹해 있었기 때문에, 한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여자를 흘깃흘깃 살폈다. 부디 여자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라며.

유독 인상이 흐릿한 남자는 아직도 한나를 관찰하듯이 바라보고 있었고, 여자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단테, 그냥 대놓고 물어보는 게 좋을까?”

“괜히 빙빙 에둘러서 이야기할 필요 있어?”

“흠, 그건 그래.”

서로 귓속말을 하며 몇 마디 주고받는 것 같던 남녀가 곧이어 다시 한나 쪽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분의 눈빛을 한꺼번에 받은 한나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 마탑주라는 분한테 묻고 싶은 게 좀 있는데, 아무래도 지인이시니까 한나 씨에게 대신 물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뭘 물어보려고 하시는데요……?”

“음.”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건드리던 여자가 갑자기 폭탄 같은 발언을 던졌다.

“왜 마탑주도 아니면서 마탑주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건지?”

“……!”

한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리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잠깐만. 무릎을 왜…….”

“제 동생이 진짜 그런 애가 아닌데……. 저도 그 애가 왜 그러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마탑주를 사칭한다거나 그런, 그런 간 큰 짓을 할 만한 애가 아니었는데!”

한나를 일으키려던 여자가 그대로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나는 엎드려 있느라 몰랐지만, 그때 여자는 보기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마탑주 행세를 다니고 다니는 사람이 한나 씨 동생이라고요?”

“네…….”

한나는 훌쩍거리며 대답했고, 여자는 작게 한숨을 쉬며 한나를 일으켜 세웠다. 여자가 한나와 눈을 맞추고 무어라 말하려다가, 빤히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눈동자 색이…….”

한나의 눈동자 색은 오묘한 파란색이었다.

사람에 따라 보라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리고 보라색이라고 우긴다면 헷갈릴 수도 있을 만한 그런 색.

한나는 진짜 마탑주가 보라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알고 있었고, 동생이 마탑주 행세를 하게 된 원인에 눈동자 색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금세 침울해지는 한나를 사이에 두고, 부부라던 두 사람이 잠시 눈빛을 주고받는 듯했다.

* * *

“제 동생이 집을 나간 건 몇 달 전이었어요.”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뒤, 한나는 작게 훌쩍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자기도 성인이니 혼자 여행을 해보겠다며 나간 거였는데, 챙겨간 짐에 비해서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가족 모두가 걱정했거든요.”

“네.”

“그런데 어느 날, 가족과 떨어져 사는 저한테만 몰래 편지가 온 거예요.”

한나는 울적한 얼굴로 품에서 편지 봉투를 하나 꺼내서 보여주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가겠다고. 근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그래서 조금만 더 있겠다는 말은 무시하고 동생이 편지를 보낸 곳으로 찾아갔더니…….”

“찾아갔더니?”

“동생의 외관을 설명하니까 여관 주인이 이렇게 말했어요. ‘아, 혹시 마탑주님을 찾는 건가? 그분이라면 이제 영주님 댁에 계실 텐데!’”

여관 주인의 말을 따라 하는 한나의 목소리가 가면 갈수록 떨렸다. 동생을 찾으러 왔더니 뜬금없이 마탑주가 튀어나왔을 때의 소스라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제 동생이 마법사이긴 하지만, 마탑주 같은 건 절대 아니에요. 처음에는 여관 주인분이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거겠지 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동생의 외관을 들을 때마다 자꾸 마탑주 아니냐고 하잖아요.”

간신히 멈췄던 훌쩍거림이 다시 시작되자, 그 모습을 다소 안쓰럽게 바라보던 에이가 자신의 손수건을 건넸다. 한나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손수건을 받아들고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게다가 동생이랑 제 눈동자 색이 똑같아서, 혹시 마탑주가 혈연도 있었냐며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이후로 꼭 후드를 뒤집어쓰고 다니게 됐어요.”

“고생을 많이 하셨겠는데요……. 그런데 그 영주님 집은 찾아가 보셨어요?”

혈연으로 보이는 걸 이용하면 들여보내줬을 거 같은데. 에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야기했고, 한나는 울적하게 대답했다.

“찾아갔는데 ‘마탑주님이 만남을 거부하십니다’ 소리만 백 번쯤 듣고 나왔어요. 제가 너무 끈질기게 부탁하니까, 나중에는 동생의 필체로 직접 쪽지가 날아오더라고요. 나 지금 누나 만나기 싫어, 그냥 집에 돌아가. 이러고.”

그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남자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가만히 있던 사람이 입을 여니 지레 놀란 한나가 몸을 움찔거렸다.

“아까 그 상자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사수한 거지?”

“아. 제가 마력 응용을 못 해서 마법사는 아니지만, 정신을 집중하면 마력을 느낄 수는 있거든요. 그 상자에서 동생의 마력이 느껴지기에 혹시 사두면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한나는 말을 흐리다가 눈앞의 남자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뭔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하며, 귀에 똑똑히 박힐 정도로 미성인 목소리가 자꾸 한나를 겁먹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높으신 분 같은데.

“혹시 동생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지금이라도 드릴까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한나가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서 건네주자, 남자가 그 상자를 받았다.

상자를 열어 보자 안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들어 있었다. 그 보석은 특이하게도 나비 모양이었는데, 한나는 그걸 보자마자 상인이 왜 그렇게까지 비싸게 팔았는지를 이해했다.

그러나 그 보석은 곧, 남자가 손을 쥐었다 펴는 순간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흩뿌려졌다.

“……! 이게 무슨…….”

한나가 놀라움을 표현할 새도 없이, 남자의 손에서 보랏빛 마법진들이 떠오르며 그 자리에서 회전했다. 마법진이 만들어내는 빛에 의해서 남자의 얼굴이 잠시 눈에 띄게 밝아졌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 남자는 마냥 흐릿한 인상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렬하리만치 선명한 보라색 눈동자가, 흐릿하기는커녕…….

“허억.”

한나는 마치 마법에서 풀려난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눈앞의 남자는 이제 누가 보아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가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대단한 미남으로 변해 있었다.

한나의 그런 반응을 보고 에이가 자신의 남편에게 물었다.

“단테, 얼굴에 걸어놓았던 마법을 거둔 거야?”

“응. 여기에만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저분이 지금 저런 반응이구나.”

그 태연한 반응에 한나는 남자가 방금까지 마법으로 얼굴을 가려놨음을, 그리고 지금 본 모습이 남자의 진짜 얼굴임을 알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남자를 구석구석 살펴보던 한나의 얼굴이 새하얘진 것은 다시 한번 남자의 눈동자를 확인했을 때였다.

“혹시, 혹시 마…….”

“네?”

“마탑주님…….”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리는데, 한나의 말을 듣던 여자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 눈동자 색 때문에?”

“지, 진짜 마탑주…….”

“네, 진짜 마탑주예요.”

“정말요? 아니, 아니. 마탑주님이 도대체 왜 여기 계신 건가요?! 혹시 제 동생을 잡으러……? 제, 제가 대신 이렇게 사죄드릴 테니까 제발 동생의 목숨만은!”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 남편을 사칭했다고 해서 동생분의 생명을 위협할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한나가 공황 상태에 빠지기 직전, 단조로운 목소리로 빠르게 내뱉은 에이가 곧 자신의 남편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그 눈빛에 약간 못 말린다는 기색이 섞여 있는 것도 같았다.

“단테, 너 평판이 도대체 어떻길래 이분이 목숨부터 언급하셔. 앞으로 좀 착하게 살아 봐.”

“내 평판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던데…….”

“그래도 그때 네가 한 짓들이 있긴 하잖아.”

두 남녀가 눈앞에서 투닥거리는 걸 본 한나는 그만 멍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진짜 마탑주라던 사람도, 그 마탑주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는 여자도 전부 비현실적이었다.

“일일이 마력을 모으는 일이 귀찮다 못해 성가셨는데, 지금이라도 그 사람의 혈연을 만나서 다행이야. 덕분에 더 빠르게 마법을 완성시킬 수 있겠어.”

“마법이요? 무슨 마법을……?”

“동생분을 찾을 추적 마법이요.”

여자가 그제야 간단하게 자신들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마탑주를 사칭하는 사람을 만나보기 위해 동생의 마력을 모으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한나를 만나게 된 거라고.

그리고 진짜 마탑주는 추적 마법 완성을 위해 피를 한 방울만 마법진 위에 떨어뜨릴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사실 한나는 아무리 싫어도 바짝 기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다던 마탑주니 중간에 다른 마음을 먹을 수도 있는 거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손가락을 콱 깨물어 피를 마법진 위로 떨어뜨렸다.

“그런데 추적 마법이 왜 필요한 건가요? 제 동생은 영주님 집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는데……?”

“아, 그거 소문이 잘못된 것 같더라고요. 단테가 확인해 봤을 때 영주 집에 머무르고 있는 마법사는 없다고 했어요.”

“네? 그럼 그, 제가 받았던 쪽지는…….”

분명 동생의 필체였고, 동생의 말투였는데. 더듬거리며 질문하던 한나는 이내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입을 딱 소리 나게 닫았다.

남자는 손 위에 지도 같은 것을 띄우고 그것을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위치를 알아냈어. 이렇게 많이 돌아다녔으면 한번 마주칠 법도 한데, 왜 한 번도 보지 못했는지 알겠군.”

“왜? 어디 있길래 그래?”

“아무래도 누구 집에 갇혀 있나 봐.”

“네에?”

그 말을 들은 한나는 정말이지, 그냥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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