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 (172/181)

25.

O1.

올리버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에서 노점상을 여는 상인이었다.

그가 파는 물건은 팔찌나 목걸이처럼 소소한 장신구들이었고, 장사 수완을 발휘해 ‘이걸 사면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진다더라’, ‘건강을 기원하는 보석이 달려있다더라’ 등의 말을 덧붙이니 남녀노소 구분 없이 물건이 곧잘 팔렸다.

그날도 그런 식으로 내놓은 물건을 팔고 있던 때였다. 한창 사람이 붐빌 시간에 연인처럼 보이는 두 남녀가 가판대로 다가왔는데, 평소 그가 보던 연인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보통 여자 쪽이 장신구를 구경하고 남자 쪽은 시큰둥하게 보는 척만 하거나 여자 뒤에서 기다리곤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남자 쪽이 연인들끼리 착용하는 장신구를 구경하고, 여자 쪽은 영 관심이 없어 보였다.

추운 날씨에 걸맞게 따뜻하게 걸쳐 입은-여자 쪽이 유달리 따뜻해 보이긴 했다-연인은 누가 봐도 다른 지역에서 여행을 온 이들 같았다. 올리버는 습관처럼 손님의 안목에 대한 칭찬을 줄줄 내뱉으면서도, 눈으로는 신기하게 그들을 살펴보았다.

여자도 평범하긴 했지만, 남자 쪽은 얼마나 흔한 얼굴인지 인상이 유독 흐릿해 눈을 맞추고 있어도 그 얼굴이 머리에 남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나한테 자꾸 대보지 말고 그냥 네가 마음에 드는 걸로 사. 난 뭐든 상관없다니까?”

“너한테 잘 어울리는 게 내 마음에 드는 거야.”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동하고 남았을 말을 듣고도, 여자는 귀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덤덤한 표정을 할 뿐이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건 노란색 유리구슬이 달린 팔찌 두 개였고, 남자는 바로 착용하고 갈 테니 포장할 필요 없다는 말을 했다.

올리버는 또 물건을 팔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혹시 다른 물건은 관심 없으신가? 이쪽 여자분한테는 머리 리본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어때, 에이? 살까?”

“내가 말려도 살 거면서 뭘 물어보고 그래…….”

“맞아.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살 거야.”

남자는 웃으면서 곧바로 머리 리본도 달라고 이야기했다. 구매에 망설임이 없는 그 모습을 보며, 올리버는 혹시 뭐라도 더 팔 수 없을까 싶어 사탕발림을 마구 내뱉었다.

“또 다른 건? 이건 지니고 있으면 부부간의 금실이 좋아진다는 목걸이고, 이건 아까 머리 리본과 마찬가지로 여자분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머리띠인데.”

“아, 그럼 이것들도.”

“그리고 이건…….”

“아니, 잠시만. 너 뭘 이렇게 많이 사?”

“기다려 봐, 아가씨. 내가 이 물건은 정말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특별히 보여주는 거니까.”

올리버는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 가판대 밑에서 한 상자를 꺼냈다.

상자의 뚜껑을 열자, 가판대에 널려있던 물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귀해 보이는 보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걸 꺼낸 올리버조차도 그 보석의 가치를 몰랐지만, 확실히 그럴듯하게 보이긴 했는지 손님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 보석은 신기하게도 안에 미약한 반짝거림이 돌아다니고, 오묘하며 몽환적인 색깔을 띠고 있었다. 비록 크기가 손가락 두 마디 겨우 될 정도로 작기는 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장신구로 쓰기 적합해 보였다.

“이게 내가 건너건너 아는 사람한테 받은 건데, 듣기로는 아주 대단한 분이 직접 힘을 불어넣은 보석이라더군.”

“아주 대단한 분 누구요?”

여자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올리버는 일부러 좌우를 살핀 후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이 지역에 머무른 지 꽤 됐다는 그분 말이야.”

“그분이 누군데요?”

“그것도 몰라? 자네들도 그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여행을 온 줄 알았는데!”

선심을 써서 특별히 가르쳐준다는 듯, 올리버가 극적으로 말하기 위해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마탑주 말이야!”

“……?”

여자는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고, 그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알 수 없는 얼굴을 했다. 손님들이 놀라기를 기대했는데 애매하기 짝이 없는 반응만 돌아오자, 은근 조바심이 난 올리버는 이것저것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설마 전쟁 영웅 중에 제일 유명한 마탑주를 모르는 건 아니지?”

“음, 잘 알고 있죠. 그것도 무척.”

“그래. 요새는 그 유명세도 다 옛말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기억하고 있기는 하잖아. 사실 나는 마탑주라는 그 사람이 뭘 그렇게 잘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뭐, 다들 영웅이니 뭐니 하며 떠받드니 그러려니 하는 거지. 덧붙인 사족에 여자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하기 직전, 올리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여튼 최근에 글쎄, 어떤 마법사가 이곳에 나타나서 자기가 마탑주라고 말하고 다녔다지 뭔가!”

“오…….”

“신문에 그려진 그림이랑 다르게 생겨서 처음에는 안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지만. 그 사람이 보여주는 마법을 보면 마탑주구나, 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고.”

“그 사람이 마법을 되게 잘 쓰나 봐요?”

“나는 전해 들은 게 다지만, 마탑주가 손을 들어 올리니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쳤다나 뭐라나. 그리고 마법도 마법이지만, 마탑주의 특징으로 알려진 이, 이 눈동자 색깔 말이야.”

올리버가 자신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흥미롭게 듣고 있는 듯하면서도 모호한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뭐가 됐든 호응을 끌어내고 신이 난 올리버의 목소리도 한층 더 올라갔다.

“그 희귀한 눈동자 색깔이 소문난 대로였대. 오묘한 색깔이 멀리서 봐도 눈에 띈다고 하더군.”

“음……. 그래서 그, 자기가 마탑주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여기에 머물고 있다고요?”

“그래. 이 지역이 마음에 들기라도 했는지, 아예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나 봐.”

“그 사람은 어디로 가면 볼 수 있는데요?”

“소문으로는 영주님네 댁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 했으니, 아마 거기로 가면 볼 수 있겠지.”

“그렇군요…….”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올리버 쪽으로 기울였던 자세를 바로 했다. 여자의 얼굴은 다시 아까처럼 무표정하게 변해 있었는데, 자신의 연인과 달리 말이 없어진 남자는 어느새 뒤를 돌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묘하게 올리버 쪽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지만, 올리버는 자신의 착각이겠거니 생각했다.

“재밌는 소문을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여자는 그 외에도 이것저것 마탑주에 대해서 더 물어보다가, 이내 그들이 구매한 것들을 가방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그때까지도 보석이 든 상자를 들고 있던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멍청하게 물었다.

“어? 이거 안 사고?”

“왜요? 꼭 사야 하나요?”

“아니, 마탑주에 관해서 계속 물어보길래 관심 있는 줄 알았지.”

보통 여기까지 들으면 너무 신기하다면서 얼마냐고 물어왔을 터였다. 가격을 듣고 너무 비싸다고 떠나갔던 손님들을 떠올리며, 올리버는 남몰래 침을 꿀꺽 삼켰다.

돈이 꽤 있어 보여서 이 물건을 보여준 거였는데, 아예 얼마인지조차 물어보질 않는 건가?

“제가 마탑주한테 관심이 있는 건 맞지만, 그 물건은 이상하게 끌리지 않아서요.”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한 여자는 곧 들릴 듯 말 듯 하게 중얼거렸다.

“난 또 ……가 사용했던 물건이 돌아다니는 건 줄 알았네.”

“뭐라고 했어, 아가씨?”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올리버가 여자를 향해 되물었지만, 여자는 고개만 저을 뿐 자신의 말을 되풀이해주지 않았다. 그저 짐을 다시 한번 챙기며, 정말 가보겠다는 듯 가볍게 인사를 해왔다.

올리버는 그 인사에 다시 처음처럼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일말의 아쉬움을 느꼈다. 오늘이야말로 이 물건을 팔아넘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살짝 뒤로 물러나 있던 남자까지 여자의 뒤를 따라나서고, 곧 가판대 앞은 텅 비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이 마치…….

“……?”

올리버는 눈을 비볐다가, 다시 평범한 머리 색으로 변한 남자를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한 것 같았는데, 눈을 비비는 찰나에 잊어버리고 말았다.

별생각 아니었겠지, 뭐. 올리버는 다시 상자를 가판대 밑으로 집어넣었고, 금방 손님이 온 탓에 평범하기 짝이 없던 그 연인들은 금방 기억에서 사라졌다.

* * *

나는 가판대에서 충분히 멀어진 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단테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흐릿한 인상으로 비칠 테지만, 여전히 내게는 본모습 그대로 보이는 그 얼굴을.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지금 내가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단테.”

“……응.”

“언제부터 마탑주가 두 명이었어?”

단테는 내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했고,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소리 내어 크게 웃어버리자 입김이 하얗게 나왔는데, 추위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 상황이 우스웠다.

“아니면 나 몰래 출장을 오기라도 한 거야?”

“그런 게 아닌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에이…….”

“물론 알기야 잘 알지. 아, 내가 살다 살다 마탑주를 사칭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될 줄이야.”

이렇게 엄청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도 계속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단테의 착잡하다는 저 얼굴이, 그리고 그 착잡함 속에 섞여 있는 일말의 민망함이 자꾸 나를 웃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보석이 마석인 걸 알아보고 좀 놀라긴 했는데 말이야. 뒤에 들은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너한테 저 마석 품질이 어떻냐고 몰래 물어보는 것도 잊어버렸어.”

“한눈에 봐도 하급 중에 하급인 마석이던데, 뭘. 누군가가 힘을 불어넣었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야. 마석 안은 텅 비어 있었어.”

“그래? 조금이라도 네 힘이 느껴지지는 않았고?”

“……설마 하루 종일 놀릴 생각인 거야, 에이?”

그 말에 간신히 멈췄던 웃음소리가 다시금 터져 나왔고, 단테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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