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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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D23.

단테가 떡볶이라는 음식을 먹어보았던 것은 에이와 처음으로 고향에 왔을 때였다.

그때 에이는 자신이 그리워했었던 음식 중 몇 가지를 다시 먹어보고 싶어 했으며, 그중에 떡볶이도 있었다. 고향의 많은 것들을 소개해주고 또 체험시켜주던 에이였지만, 떡볶이만큼은 단테가 먹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머뭇거렸더랬다.

단테는 그 음식을 먹기 전, 에이가 왜 걱정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이가 ‘너 매운 거 잘 먹어?’라는 질문을 했을 때, 덤으로 그녀 자신은 매운 것을 잘 먹는다고 말했을 때 그 걱정을 이해했다.

그렇게 먹어본 떡볶이는 솔직히 말하면…… 혀를 일부러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음식 같았다.

복숭아 맛 음료수를 건네주며 힘들면 그만 먹으라던 에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 초월자인 만큼 어느 정도 고통에 내성이 있는 단테는 끝까지 에이와 함께 그릇을 다 비우기는 했으나, 자신이 매운 음식을 못 먹는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그가 매운 걸 못 먹는 게 아니라, 이 정도 맵기를 감당해내는 에이 고향 사람들이 이상한 거 아닌가 싶었었는데.

“…….”

“안 드세요?”

“응? 아냐, 지금 먹을 거야. 먹어야지…….”

한눈에 봐도 매울 것 같은 색깔을 바라보며, 에이의 고향 사람들뿐만 아니라 에이가 특이했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작은 어린아이였을 때도 매운 걸 잘 먹었다니.

똘망똘망한 에이의 시선에 못 이겨 떡 하나를 입에 넣기는 했지만, 결국 음식을 덜 씹은 채 목구멍 뒤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표정 관리를 한다고 했으나 그도 모르게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는지, 곧 에이가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혹시…… 매운 거 잘 못 드세요?”

“……그런가 봐.”

“미리 말해주셨으면 떡꼬치를 사 왔을 텐데…… 못 드시겠으면 이리 주세요. 제가 먹을래요.”

컵을 달라는 듯 위로 손을 뻗는 모습에, 단테는 괜찮다고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그냥 에이가 떡볶이를 먹고 싶은 거 아닌가 싶어서.

그리고 그 추측이 다행히 맞았던 건지 에이는 떡볶이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입안을 가득 채우던 매움을 겨우 해결하고 나서, 단테는 어린 에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도 못 알아차릴 정도로 에이는 음식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지만, 어린 에이는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귀여웠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말랑한 볼과 댕그란 갈색 눈동자가, 또 의자에 앉았더니 달랑 들릴 정도로 작은 키가 특히 그랬다.

자그마한 에이를 볼 수 있게 되다니. 역시 꿈속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내길 잘했어.

어른인 에이가 알았다면 한숨을 쉴만한 생각을 하는 사이, 떡볶이를 전부 먹은 에이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

“떡볶이도 못 드셨는데 계속 배고파서 어떡해요? 오래 굶었다고 하셨잖아요.”

“아까 떡 하나 먹어서 이제 괜찮아.”

“그걸로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거짓말쟁이.”

가볍게 핀잔한 에이가 곧 있는 힘껏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자세를 취했다. 어린아이가 무릎에 팔을 올리고 고민을 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귀여워할 듯한 모습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단테는 당연히, 그런 에이가 너무 귀여워서 달랑 안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꿈속이라고 해도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단테는 혼자서 주먹을 꾹 쥐며 자신의 욕심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의 시간 뒤에, 에이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돈을 더 들고 올게요. 저번에 언니가 500원짜리 동전을 서랍 밑에 숨기는 걸 봤었거든요. 그걸 가져오면 될 거예요.”

“잠깐만, 에…… 아니. 언니 돈을 막 가져오는 건 나쁜 짓이지 않을까?”

“나중에 갚죠, 뭐. 언니도 가끔 제 물건 말도 안 하고 빌려 가니까 쌤쌤이에요.”

그 나이대 어린애들이 쓸만한 말을 쓴 에이는 곧장 자신의 말을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 그를 의자에 그대로 앉혀두고, 자신은 집에 갔다 오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빨리 갔다 올 테니까!”

“나는 정말 괜찮…….”

“뛰어갔다가 올게요!”

손을 세차게 흔든 에이는 곧 등을 돌려 저 멀리 사라졌다. 어린 시절 에이가 유달리 착했던 건지, 아니면 눈에 띈 이상 그냥 보내줄 수가 없었던 건지. 마주 손을 흔들어주다가 어색하게 팔을 내린 단테는 곧 무언가를 직감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기 무섭게 주변 풍경이 흔들리고, 곧 공간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단테는 그걸 보고 에이가 깨어나려나 싶었지만, 잠시 기다리자 진동은 곧 잠잠해졌다.

그 대신, 그를 감싸고 있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단풍잎이 다 떨어져 가는 가을 끝 무렵의 날씨가 느껴졌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이 유달리 높아 보이는 계절이었다. 단테는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을 가늠해보려다가 포기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어린 에이를 만났던 방금 전과는 달리, 지금은 에이가 근처에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테는 발 닿는 대로 가다 보면 에이를 만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예상은 곧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오늘…… 맛있게…….”

“……잘 먹을게…… 너도…….”

어떤 모퉁이를 돌기 직전, 단테는 어떤 여자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에이를 발견했다. 둘은 친구 사이인 것처럼 보였는데, 둘 다 똑같은 교복을 입은 채 똑같은 상자를 한쪽 손에 들고 있었다.

에이는 아까 전보다 훨씬 자란 모습이었지만, 아직 성인은 아닌 듯했다. 키가 지금의 에이보다 더 작기도 했고, 무엇보다 머리카락 색깔이 갈색이 아닌 까만 색이었다. 에이가 염색한 적이 있다고 말했던 바로 그 시기인 듯싶었다.

에이의 머리카락 길이는 날개뼈 위까지 닿아 있었는데, 늘 단발머리인 에이만 봐왔던 단테로서는 신기한 감정이 들었다. 역시 에이는 무슨 머리를 하든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윽고 에이와 그녀의 친구가 손을 흔들며 헤어지고, 에이는 단테가 있는 모퉁이 쪽으로 다가왔다. 그도 모르게 발걸음을 뒤로 물리려는 순간, 모퉁이를 돈 에이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어.”

“…….”

“음…… 안녕하세요?”

단테는 멍하니 에이를 바라보다가, 에이가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는 성격은 아니라는 걸 상기하고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에이는 왜 자신한테 인사를 한 거지?

하지만 그가 뭐라도 더 생각해보는 것보다, 에이가 불쑥 무언가를 내미는 것이 더 빨랐다.

“막대 과자 드실래요?”

“……?”

“그때 옛날에, 배고프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말한 에이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혹시 지금도 배고프실까 싶어서.”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단테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아무래도 꿈속인 만큼, 어린 에이와 더 자란 에이의 사이에 상관관계가 생긴 모양이었다.

“……날 기억하고 있어?”

“귀신을 본 경험은 보통 쉽게 안 잊히니까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요.”

“귀신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음, 네가 날 기억하고 있다니 놀랐어.”

단테는 적당히 자신이 지나쳤을 세월을 가늠해본 뒤 입을 열었다.

“아주 어릴 때 보고 한참 못 봤는데. 그렇지?”

“네. 저도 지금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실 줄 몰라서 놀랐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그다지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담담한 건 이때부터 그랬구나 싶어져서, 단테는 가까스로 웃음을 삼켜냈다.

“아까 말했던 막대 과자라는 건 뭐야?”

“아. 오늘 날짜가 날짜인 만큼 친구들끼리 막대 과자를 엄청 많이 주고받았거든요.”

무슨 날짜? 단테는 에이의 말에 의문을 가졌지만, 그에 관하여 묻지 않고 단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에이가 그의 말에 이상한 점을 눈치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에이는 손에 들고 있는 것 말고도 더 있다는 듯, 가방을 앞으로 고쳐 매고 과자 상자를 몇 개 더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너무 많아서 어차피 다 못 먹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 통 드실래요?”

“음, 준다면 고맙게 받을게.”

“네.”

에이는 그대로 과자를 건네주려는 듯하다가, 갑자기 손을 물리며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이미 아시겠지만 아무 사심도 없이 드리는 거예요.”

“갑자기 사심 이야기는 왜?”

“오늘은 막대 과자를 친구들끼리 주고받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도 주고받는 날이라서요.”

뜻밖의 이야기에 얼어버린 단테를 두고, 에이는 다시금 막대 과자 한 통을 그에게 건넸다.

“특별히 제가 좋아하는 맛으로 드릴게요. 자, 여기요.”

“……응, 고마워.”

에이에게서 얌전히 과자 상자를 받으면서, 단테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꿈 밖으로 나가면 진짜 에이한테 막대 과자를 사 줘야지…….

에이가 준 과자를 그대로 들고 있으려고 했는데,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안 먹느냐고 재촉하는 것 같기에 단테는 마지못해 상자를 열었다. 먹기 아까운데.

상자를 열어서 과자를 꺼내 하나를 물고 나서야 에이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나저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뭔데?”

“저희 혹시, 제가 어릴 때 말고도 만난 적이 있던가요?”

단테는 그 말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떴고, 에이는 무언가 고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 친숙한 느낌이 들어서요. 되게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처럼……. 분명 그때 보고 한참 못 봤는데.”

“그건…….”

단테는 무어라 대답하려다가, 다시 공간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빙그레 웃었다. 그가 웃는 얼굴을 보고 에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이제 꿈에서 깨어나면 알게 될 거야.”

“네?”

“즐거웠어, 에이. 꿈속에 들어오는 걸 허락해줘서 고마워.”

에이라고? 어린 에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끝으로, 그대로 주변 풍경이 무너졌다. 단테는 자신의 몸이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사람, 풍경, 심지어 에이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뭉개지는 광경 속, 꿈 밖에서 온 단테만이 온전했다.

그리고 그가 연하게 띠고 있는 미소도.

어린 시절의 에이를 보고 왔으니, 이제 진짜 에이에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어느새 현실은 이른 아침이 되어있었다. 단테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가,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에이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일어난 거 다 알아, 에이.”

“으음…….”

단테가 이불을 끌어당기자, 모서리라도 사수하려는 듯 바르작거리는 몸짓이 느껴졌다. 에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단테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엎드리며 베개로 얼굴을 파묻었다.

“에이. 어제 무슨 꿈 꿨는지 기억나?”

혹시 기억하고 있을까 싶어서, 단테는 은근한 목소리로 에이에게 물었다. 에이는 다시 잠든 것처럼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곧 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밥을 못 먹은 귀신을 만나서…… 먹을 걸 챙겨주는 꿈.”

“뭐?”

그 말을 들은 단테는, 에이의 잠이 다 날아가도록 크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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