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 (169/181)

22.

내 말을 들은 단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의 눈 깜짝할 사이라고 말할 만한 속도로, 단테는 곧장 이렇게 반문했다.

“내가 왜?”

“당신이 나를 피해 다녔으니까요.”

“…….”

단테 반응을 보아하니 그런 건 아닌 모양인데, 아무래도 제대로 된 대답 없이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단테의 얼굴을 슬쩍 놓아준 뒤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당신은 정말 내가 싫어요?”

끌어당겼던 얼굴을 놓아주었지만, 단테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나와 시선을 마주친 채였다. 그렇게 나와 마주 보며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던 단테는 한참 뒤에야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싫지 않아.”

“흠.”

저 말도 충분히 힘겨운 것 같은 단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싫지 않다는 말로 넘어갈 기분이 아니었다.

“그럼 좋아요?”

“…….”

“알았어요, 이렇게 대놓고 물어서 미안해요. 너무 당황하니까 내가 못할 짓 하는 것 같네.”

단테가 딱딱하게 굳다 못해 숨까지 멈추기 전, 나는 빠르게 질문을 철회했다. 쑥스러움을 잘 타는 건 기억을 잃기 전이나 후나 똑같네, 뭐.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방금 말했듯이.”

“……응.”

“그래서 당신이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나는 단테의 소매를 약하게 붙잡고 희미하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절 피하는 걸 보고 온갖 생각을 다 했는데.”

“……내가 널 피한 건.”

단테의 얼굴에 망설임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단테의 소매를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손을 붙잡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잡혀 있었다는 말에 어울렸다. 주머니에 넣어두어 따뜻해진 내 손을, 평소답지 않게 차가운 손이 단단하게 감쌌다.

“기억을 잃고 혼란스러운 점이 많아서 그랬던 거야. 너를 속상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

“흠, 사실 처음에는 속상하다고 말할 것도 없었어요. 그냥 왜 저러나 했지.”

나는 단테의 손을 맞잡고 약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새삼스럽게 서운했던 건 오늘 당신이 눈앞에서 도망갔을 때?”

“…….”

“저랑 말하기도 싫다는 거부 선언인가 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다음부터는 절 피할 거면 말이라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피하는 와중에 어떻게 말을 하는데?”

“그건 피하는 사람이 생각하셔야죠.”

단테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언뜻 그 얼굴에 웃음기 비슷한 게 스쳐 지나간 것 같았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얼굴로 바짝 다가섰다.

“어? 방금 웃었어요?”

“……아니, 안 웃었는데.”

“아냐, 분명 웃었어요.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는데……. 아닌가, 역시 내 착각인가?”

단테가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우리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걸 자각했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뒷걸음질을 치며 잠깐 잡았던 단테의 손도 놓았다.

단테의 시선이 다시금 나를 향했다가, 내 손을 잠깐 향했다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으로 향했다.

그럴 리 없는데도 그 모습이 마치 조금은 허망해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손안이 간질거리려고 했다.

“미안해요. 지금은 너무 가까이 있으면 별로죠?”

“…….”

“나름 조심하려고 했는데도 이러네. 앞으로는 더 생각하고…….”

“아니, 괜찮으니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더 생각하고……? 잠깐만, 뭐라고요?”

목소리가 겹쳐져 단테가 하는 말을 놓친 나를, 단테가 지그시 바라보는 듯했다.

“내 기분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렇게 갑자기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뭔 줄 알고?”

문득 장난기가 치솟아 올랐다. 단테가 무슨 생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놀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성큼성큼 단테에게로 다가가 아까처럼 덥석 단테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단테의 볼을 마치 반죽 만지듯이 주무르기 시작했다.

“…….”

“얼굴이 차갑네요. 산책을 너무 오래 했나?”

단테의 황당하다는 눈빛이 내게 닿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한 건 너잖아.

오랜만에 단테를 이렇게 만지니까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평소에는 당연히 단테가 먼저 엉겨 붙으니까 몰랐는데, 단테와 닿지 않으니 알게 모르게 아쉽다고 느껴졌나 보다. 단테한테 물들어 버리기라도 한 건지.

의외였던 것은 나를 떨쳐내지 않고 얌전히 내 손길을 받고 있는 단테였다.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뭐가?”

“제가 허락도 없이 이렇게 막 만지는 거요.”

마지막으로 단테의 볼을 살짝 꼬집은 뒤 놓아주었는데, 아래로 내려오는 내 손을 따라 단테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마음대로 하라고 한 건 나인데, 기분이 왜 나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내가 이럴 줄은 몰랐을 수도 있잖아요.”

“몰랐어도 상관없어. 네가 하는 거니까.”

그 순간,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방금 너를 싫어하냐는 질문을 듣고 깨달은 건데, 나는 네가 나한테서 거리감을 느끼는 게 싫은 것 같아.”

“거리감이요?”

“응.”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던 내 손을, 단테가 다시 붙잡아 올렸기 때문에.

단테는 내 손에 자신의 옆얼굴을 파묻듯이 기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낯설어하거나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고, 마음대로 했으면 좋겠어.”

“……갑자기 왜 그래요? 원래 이렇게 솔직한 분이 아니셨던 것 같은데.”

“그냥. 내가 널 피하는 게 속상했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까…….”

찰나에 단테의 숨결이 내 손바닥에 닿아서, 반사적으로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더는 숨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렇게 말하는 단테의 눈동자는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보였다. 나는 그 눈동자를 본다고 넋을 놓을 뻔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음, 그래요. 어쨌든 제가 닿는 게 싫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싫지 않은 게 아니야. 좋은 것 같아.”

“……역시 갑자기 너무 솔직해지신 거 아니에요, 당신?”

감정의 흐름을 당최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살짝 당황한 채로 단테를 바라보고 있자니, 단테가 이번에야말로 선명하게 웃어 보였다.

……정말이지 며칠 만에 보는 미소였다.

나는 그 입꼬리가 그리는 호선에 속절없이 시선을 빼앗겼다. 다정하게 내게로 향해있는 미소가, 오랜만에 마주친 그 표정이 내 눈동자 안에 박히듯이 들어왔다.

맞아, 나는 이 얼굴이 보고 싶었어.

“있잖아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작게 속삭이듯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부름에 단테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지고, 손바닥에 더 깊이 온기가 닿았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럼 정말 아무거나 해도 돼요?”

“왜?”

“당신한테 입 맞추고 싶어요.”

충동적으로 한 말에 단테가 살짝 놀라는 듯싶었다. 그러나 곧이어 단테의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가 자연스럽게 올라와 목과 뒷머리를 받쳤다.

“……응.”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으면서 단테에게 입을 맞췄다.

손을 잡고, 단순히 단테를 만지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충족감이 내게로 밀려 들어왔다. 한밤의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전해져 오는 온기가 뜨거웠고, 동시에 기분 좋았다.

안 봐도 단테의 귀가 평소처럼 붉게 변해있을 것 같았다. 굳이 차가운 바람 때문이 아니더라도.

살짝 젖은 소리를 내며 단테와 떨어졌을 때, 나는 눈을 떠 단테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방금 전과는 다른 기색을 띤 얼떨떨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였기 때문에, 그 눈동자를 본 순간 단번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도 아니고.”

입을 맞추는 걸로 기억을 되찾다니.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흘러나왔기 때문에, 나는 잠깐 목을 가다듬었다. 그 찰나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 단테는 얼굴색을 점점 달리했다.

“……에이.”

“와, 내 이름 진짜 오랜만에 들어봐. 왜?”

“내가 기억을 잃었던 동안 있었던 일은, 제발 잊어 줘. 잊어주면 좋을 것 같아.”

“기억을 되찾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야?”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희미한 안도감이 들어서인지 작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웃고 있는데, 단테 혼자서 안절부절못하며 자꾸만 내 눈치를 살폈다.

“너한테 차갑게 말했던 건 전부 진심이 아니었어…….”

“나도 알아, 진심이 아니었던 거.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날 힐끔거리는데 모를 수가 없지.”

“피했던 것도, 네가 서운해할 줄 모르고 그랬던 거고…….”

단테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흡사 낑낑거리는 강아지 같았다. 내가 빤히 보다가 단테의 머리를 쓰다듬자 단테가 금세 자세를 낮춰 주었다.

“괜찮아, 네 기억이 돌아왔으면 됐어. 나보다 늦어져서 걱정했는데 별 탈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다.”

“……응.”

“아. 그래서 말인데,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쓰다가 기억을 잃은 거야?”

단테는 내 말에 입을 다물었다가, 비로소 초조함을 지워 보이고 평소처럼 웃어 보였다. 그래, ‘평소처럼’.

“그건 나중에 보여줄게.”

“나중에?”

“응, 나중에.”

또 기억을 잃을 만한 위험한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 잠깐 단테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려다가, 뭘 또 불안해하나 싶어 그만두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냥 기분 좋게 있고 싶었으니까.

나는 단테를 당겨 그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

“돌아온 걸 환영해, 단테.”

웃음기 어린 단테의 목소리가, 나를 마주 끌어안는 손길과 함께 내 심장 깊숙한 곳을 울렸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에이.”

* * *

며칠 뒤 아침.

단테는 나에게 선물이라며 문을 하나 보여주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문이라는 영문 모를 소리를 덧붙이면서.

나는 그 문을 열자마자 이것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차렸다.

멍하니 그 안을 바라보다가, 곧바로 단테에게로 달려가 정신없이 그를 끌어안았다. 단테는 큰 소리를 내어 웃었고, 그 웃음소리에 나도 따라 웃었다.

이렇게 밝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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